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68
1288장. 아브라카다브라!
“폐하. 대신관들께서 성문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대신관들이 말입니까?”
아린이 놀라며 물었다.
늦은 밤이다.
업무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아린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왕국연합군이 패전한 뒤 제국은 기초를 탄탄히 다졌다.
감히 누구도 황실의 일에 토를 달지 않았다.
강력한 무력이 뒷받침되자 모두 고개를 조아렸다.
아린은 바쁜 와중에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몰수한 연합군의 물품을 팔아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었다.
제국이 무너진 뒤 세금은 널뛰기 수준이 됐다.
왕과 귀족들은 전쟁 준비를 위해 백성들을 쥐어짰다.
그걸 보통 수준으로 돌려놓기 위해 포고령을 연달아 발표했다.
과거 제국에서 시행하던 법률과 행정 정책이 적용됐다.
그만큼 귀족들의 권력 행사는 제한을 많이 받았다.
그 과정에 황권이 강화됐다.
상황이 급변하면서 아린에게 일거리가 몰렸다.
아직 대륙은 완벽하게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왕국들은 항복을 선언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골치가 아픈 일이긴 했지만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아니었다.
황실수호공작이 움직이면 웬만한 문제는 끝이다.
이제는 끝내야 할 대륙의 분열.
고위 귀족들과 연달아 회의하느라 아린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런 상황에 대신관들이 찾아와 줄을 선다는 보고까지 들어왔다.
‘베커의 예상이 맞았어.’
크게 놀라며 다시 물었지만 사실 아린은 먼저 들어서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대신관들이 성문 앞에 줄을 서더라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들의 대리자인 대신관이나 사제들은 황제 앞에서도 품위를 지킬 권리가 주어졌다.
황제들도 고개 숙여 대신관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예법일 정도다.
그런 대신관들이 야밤에 성문 앞에 줄을 서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황실수호공작이 제안한 신전 길들이기.
마법사이기에 신실한 신자들만큼은 아니지만 아린도 신전을 어려워하기는 마찬가지다.
대다수 백성들이 신을 섬겼다.
황실도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찌할까요?”
시종장이 물었다.
난처한 상황이다.
평소라면 대신관급은 늦은 밤이라도 황제와 독대 가능했다.
“……수호 공작의 하명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린의 선에서 명을 내렸다.
자신이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지만 실제적 주인은 베커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가진 압도적 무력으로 제국이 다시 부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신관이라고 해도 수호공작이 먼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시종장이 고개를 숙였다.
“따뜻한 차를 비롯해 여러 편의를 극진히 봐주세요.”
박정하게 대할 수 없다.
앞으로 제국 운영에 신전들의 도움은 필수다.
“알겠습니다.”
시종장이 조용히 물러났다.
“이런 점은 배워야 해. 시작할 때 끝을 봐야 해.”
아린은 이번에도 베커에게 한 수 배웠다.
미친 황소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베커 공작.
저돌적인 것 같으면서도 계획적이다.
“……그런데 이 밤에 어디를 간 거야?”
밖으로 나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집무실에 존재하지 않는 베커.
이동 마법을 사용해 사라졌다.
“별일 없겠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린은 몹시 긴장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여인의 촉에 걸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하아.”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
– 채…… 책임?
알파닥이 묻는다.
맞아 책임.
– 와아! 오빠가 아빠 된다더니 그 말이 정답이네. 아예 청혼을 하지그래.
비약이 심했다.
나타샤는 누가 봐도 불쌍한 소녀다.
– 소녀? 1018년 살아온 8서클 할머니야!
알파닥,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 무슨 생각?
나타샤가 겨우 1000년을 살았어.
저 나이가 할머니면 수천 년을 살아온 넌?
– 비교할 걸 비교해! 난 수명이 10,000년을 훌쩍 넘게 사는 최상급 마족이야. 겨우 수천 년밖에 못 사는 드래고니아와 비교하면 안 되지!
전형적인 내로남불.
– 내로남불?
요즘은 의미가 바뀌어 가는 추세다.
내불남불.
내가 해도 불륜, 남이 해도 불륜.
“오빠가 정말 나 책임질 거야?”
나타샤가 배시시 웃으며 묻는다.
애교가 심상치 않다.
심장이 떨린다.
미모와 더불어 풍겨 나오는 묘한 기운.
요기(妖氣)다.
앞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대륙에 이름을 떨칠 게 확실했다.
– 나타샤가 엄마를 닮았어…….
샨트리아의 흐뭇한 마음이 느껴졌다.
당해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남성체는 신이나 드래곤이나 인간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했다.
– 요망한 게 어디서 애교질이야! 꼬리도 없는 게 어디서 흔들어!
알파닥이 빽 소리쳤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맞다.
“오빠? 여기 누구 있어? 갑자기 한기가 들어 그리고……. 왜 오빠에게서 우리 오빠 냄새가 나는 거야?”
사락.
촉이 예민한 나타샤가 다가왔다.
코를 가져와 어깨 쪽에서 냄새를 맡았다.
훅하고 밀려오는 나타샤만의 체취.
시원하면서도 달콤했다.
– 에휴……. 마족이나 인간이나 남자들은…….
알파닥이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샨트리아. 이제 밝혀도 되지 않을까?
– 뭐, 뭘 말입니까?
샨트리아가 주춤하며 묻는다.
당신이 여기 와 있다는 거.
– 안 됩니다! 그건 절대 불가합니다!!!
샨트리아가 강하게 거부했다.
왜?
샨트리아가 왔다는 사실을 밝히면 나타샤는 바로 나를 받아들일 것이다.
1000년 동안 기다렸던 과거 오빠.
– ……제 마지막 남은 자존심입니다.
샨트리아가 어렵게 말을 뱉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과거 대륙을 떨게 만들었던 광룡 샨트리아는 이 자리에 없다.
소멸되기 직전에 겨우 남은 의념체로만 가죽에 붙어 있다.
나타샤에게 모양 빠지게 알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죽어도 자존심은 남아 있네.
알파닥이 샨트리아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알파닥 그러는 거 아냐.
– 뭐가?
네가 남자 마음을 알아?
– 됐어. 알아서 뭐하게. 난…… 강한 수컷이 좋아. 약한 수컷은 도태되는 게 마신께서 정한 율법이야.
광룡 샨트리아가 약한 수컷으로 취급받았다.
알파닥과 고차원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무의미했다.
“맞아……. 오빠 냄새야.”
덥석.
나타샤가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흐으음.”
길게 목덜미 쪽에서 숨을 쉬었다.
나타샤……. 그러면 안 돼.
– 세상에……. 믿을 오빠 하나 없다더니…….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르자 알파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남자다.
그것도 알 것 다 아는 성인.
미녀가 목에 얼굴을 박고 냄새를 맡는 행위는 지독하게 위험했다.
“냄새 좋아……. 흐이.”
부비부비.
나타샤가 목에 얼굴을 대고 비볐다.
하아. 샨트리아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 그게 저도 잘…….
확실하게 믿음을 줄 증표 없어?
– 증표라 함은…….
없으면 있는 사실 확 깐다!
샨트리아를 협박했다.
이대로 놔두면 위험하다.
나타샤에게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 아! 있습니다!
그때 샨트리아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게 뭔데?
– 그런데 그게 말하기가…….
말을 하다 말고 샨트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감춰진 비밀.
빨리 말하는 게 좋아.
아니면 나타샤에게 가죽 갑옷 드러낸다!
– 나를 바라보며 외쳐봐. 아브라카다브라!
“나를 바라보며 외쳐봐. 아브라카다브라???”
샨트리아의 외침에 무의식 중에 따라 외웠다.
잘나가던 걸그룹이 가사에 담아 외치던 전설의 그 마법 주문.
대한민국에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 순간.
파르르르르!
품에 안겨 강아지처럼 냄새를 맡던 나타샤가 몸이 격정적으로 떨렸다.
그리고.
고개를 바짝 치켜드는 나타샤.
“우리 오빠와의 비밀 맹세 주문을 어떻게!!!”
하아…….
샨트리아.
명색이 9서클 최강 드래곤이라는 작자가 어떻게 그런 주문을.
– 나를 바라보며 외쳐봐. 아브라카다브라?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알파닥이 사정없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화끈하게 얼굴이 붉혀질 만큼 부끄러웠다.
– ……제가 그래서 말 안 한다고 했잖아요!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