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7
126장. M.T.S에서 (2)
“유리야,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런데 요즘 표정이 왜 그래? 연애라도 하는 거야? 핸드폰 뚫어지겠네? 남자 연락 기다리지?”
“다 늙어서 연애는 무슨.”
말하면서도 손유리는 심장이 찔렸다.
요즘 습관처럼 그 남자의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루에 많아야 한두 통이 전부다.
며칠 전 억지스럽게 데이트를 했다.
홍대에 가서 기어이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 남자와 함께 있으면 왠지 유쾌했다.
영혼이 자유로운 남자 같았다.
부가 상당함에도 거침없이 길거리 음식을 즐겼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또한 미술과 음악에도 엄청나게 조예가 깊다.
그것도 연주자와 화가로서의 재능은 스타급이다.
마당발 능력자인 그 남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관한 상식도 남달랐다.
듣고 있으면 멍하니 빨려 들어갔다.
손유리는 그 남자 이야기만 나와도 가슴이 설렜다.
“늙어? 이 엄마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대학교 3학년이 그런 말하면 못써! 엄마도 그 나이 때 완전 날렸다.”
“세대가 달라요. 대학교 때 팡팡 놀면 취직은 고사하고 졸업도 못합니다.”
“그러게 말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낭만을 몰라. 자기들이 성인이라는 걸 모르고 고삐리처럼 수업만 그렇게 열심이니?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녀야지. 인생에 다시없을 청춘 시절인데.”
손유리는 거실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대한민국 상위 0.01프로만 거주할 수 있다는 대형 주상복합아파트 펜트하우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전경이 오늘따라 스산했다.
“엄마, 나 그림에 소질 있는 거 맞지?”
“왜 그래? 한국대 미대 과 톱이면 그게 증거 아니니?”
“……. 그렇지?”
손유리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손유리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학업능력뿐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누구보다도 컸다.
천재과는 아니어도 사물을 보는 시선이 독특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림 그리는 게 어릴 때부터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 자꾸 회의감이 들었다.
“유리야, 네 방에 걸려있던 작품들 뭐야? 네 거야?”
“응.”
“오! 우리 딸이 언제 그렇게 실력이 일취월장한 거야? 갤러리에 걸어도 고가에 팔릴 것 같은 엄청난 작품이던데.”
“선물 받았어.”
“선물? 그런 명작을?”
강남 사모님 소리를 듣는 손유리의 엄마 이혜라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딸 방을 청소하다 발견한 그림 세 점.
딱 봐도 대단한 화풍이었다.
고흐, 고갱, 폴 세잔의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딸을 미대로 보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혜라.
붓질에 담겨 있는 기가 엄청나다는 걸 알았다.
“누가 줬어.”
“누가? 설마 교수님이?”
“안타깝게도 우리과 교수님도 그 실력은 못 돼.”
손유리는 냉정하게 평가했다.
교수들이 들으면 서운할지 몰라도 손유리는 확실히 실력차를 안다.
“그럼 누가?”
대단한 작품을 선물로 줄 정도의 남자가 궁금한 이혜라였다.
살짝 눈치를 챘다.
딸이 요즘 사랑의 열풍에 푹 빠졌다는 것을 말이다.
“있어……. 그런 남자.”
말하면서도 보고픈 그 남자.
오늘도 연락 한번 없는 게 무심함의 표본 같았다.
* * *
“대표님 오셨습니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경호원이 거수경례를 올렸다.
대부분 군인 출신이라 경례가 자연스럽고 편해 보였다.
“수고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들어가십시오. 대표님!”
주차 차단막이 올라갔다.
A.T 경호원들을 이곳까지 파견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삼우 법무법인을 통해 완벽하게 계약을 맺었다.
어설픈 업체들에게 맡기느니 한진웅 대표의 경호팀이 나았다.
앞으로 스타가 탄생할 장소다.
경호가 강화돼서 나쁠 게 전혀 없다.
경호팀은 제대로 충성심을 보였다.
그쪽 업체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계약조건을 아낌없이 베푼 나에 대한 마음이었다.
지금도 정문을 통제하는 경호업체 직원의 눈빛에 뜨거움이 담겨져 있다.
경호업체 직원들을 계속해서 확충했다.
여성 경호원들도 모집했다.
걸그룹에게는 여성 경호원들의 밀착 경호가 필요한 때가 많았다.
한진웅 대표의 인맥이 대단히 넓었다.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새로 건축한 건물답게 주차장이 넓었다.
그곳에 연예인들 전용 수입 대형 SUV가 몇 대나 주차돼 있었다.
가뿐하게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5층까지 단독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1층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띵.
대로 옆에서 살짝 벗어난 신축 건물의 상태는 좋았다.
평수가 넓었다.
지하에도 대형 연습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1층 문이 열렸다.
그리고…….
“줄 서세요! 줄!”
“면접은 순서대로 불러줄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차례 기다리시면 됩니다!”
도깨비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호텔 로비 같은 1층 홀에 대충 봐도 수백 명이 몰려있다.
“나 화장 잘 됐어?”
“그럼. 오늘 완전 물광 쩐다.”
“힝! 어제 잠을 설쳐 컨디션 꽝이야.”
“괜찮아. 넌 잘 될 거야. 나만 믿어.”
친구를 다독이는 고등학교 1학년 쯤 되는 소녀가 눈에 아주 익숙하다.
쌍꺼풀이 없다.
키도 그렇게 크지 않지만 은은한 포스가 느껴졌다.
교복 맵시가 훌륭했다.
그리고 오버랩 되는 소녀의 모습!
영화와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강고은!!!
세상에, 드라마 도깨비 신부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그 강고은이 여기에 왜 있는 거야?
그리고 저기 눈치 보고 있는 남자애는 미래소년단의 준?
내가 살던 시절 난 도저히 구경도 못 해본 스타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대박!
연습생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온 미래의 스타들.
다들 나이가 어렸다.
그들이 내 회사에 합류하기 위해 모였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면접 보러 왔어요?”
“네?”
그때 지나가던 스태프가 날 보고 물었다.
“바보처럼 있지 말고 번호표 받아요.”
“…….”
순간 나 바보가 됐다.
내가 어디를 봐서 면접생처럼 보인단 말인가.
“형 존잘. 가수? 아니면 연기?”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앳된 녀석이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작년부터 서서히 유행한 존잘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했다.
키는 175센티미터 정도 됐다.
여드름이 슬슬 분화를 시작하며 피어났다.
“아니 난…….”
“나이는 좀 있으니까. 연기죠? 형! 대박 잘생겼음. 여기 있는 남자들 다 오징어 만들었어요.”
녀석이 아부 맛을 안다.
“혼자 왔어?”
“네.”
“가수?”
“흐흐으. 딱 봐도 가수잖아요. 전 미래의 아이돌 래혁이라고 합니다.”
본명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했다.
“가명이지?”
“오! 형 눈치 깠어요? 가명입니다.”
“진짜 이름은 뭐야?”
왁스로 머리에 힘 빡 주고 나타난 녀석이 귀여웠다.
얼굴도 기본 이상에 눈빛이 맑았다.
“동준이요……. 마동준.”
“본명도 괜찮은데?”
“삘이 안 와요. 래혁이가 좀 더 강해 보이잖아요. 아이돌은 우상이니까 이름도 쩔어야 해요.”
래혁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녀석은 넉살이 좋았다.
팀에 들어가면 분위기 메이커로 딱이다.
아이돌들이 전부 다 노래 잘하고 잘난 건 아니다.
팀의 케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감칠맛 내는 친구들이 필요했다.
“면접 잘 봐라.”
“네! 형도 파이팅하세요. 딱 봐도 형은 붙을 겁니다.”
눈치도 빠른 놈이다.
개념탑재가 제대도 된 꼬맹이다.
내가 붙을 걸 알고 아는 척하는 거다.
어디를 가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녀석이다.
“가수 쪽 지망생 아니래.”
“휴우. 다행이다. 뭐 저렇게 잘 났어?”
“아이돌로 키우기에는 키가 너무 커. 연기 쪽이 확실해.”
“저 비주얼이면 센터감이다.”
남자 아이돌도 센터 담당은 얼굴이다.
날 경쟁자로 여기는지 남자 가수 면접생들이 긴장했다.
“진짜 얼굴 죽인다.”
“뭔 남자 피부가 저렇게 좋아?”
여자 면접생들도 날 보고 수군거렸다.
그 와중에 느껴지는 아직 앳된 강고은의 강렬한 눈빛.
아직 고등학생임에도 그 눈빛이 남달랐다.
딱 봐도 미녀는 아니다.
하지만 심미안이 가득 찼기에 밖으로 은은하게 그 매력이 발산됐다.
안면 중악에 쌍인화살(雙印化殺)이 보였다.
하늘이 허락한 치명적 유혹이 그녀에게 감춰져 있다.
그녀 가까이 있다면 남자들은 매력에 푹 빠져나오지 못할 관상이다.
제대로 여자 연예인의 운명을 타고 났다.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 바닥에서 장수할 것이다.
괜히 도깨비 신부 주연이 된 게 아니다.
고은 양. 나 말고 나중에 도깨비에게 그 뜨거운 시선 부탁합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 게 없었다.
통제되고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갔다.
“면접생은 이용 못 합니다. 순서가 호명되면 면접장소인 2층까지 걸어가십시오.”
경호원이라 아니라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앞을 막았다.
회색 슈트를 착용하고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가 있다.
회사가 잘나가니 직원들도 어깨뽕이 되는 것 같다.
“직원입니다.”
“네? 직원요? 처음 보는데 장난 마세요.”
나이도 어린놈이 뭔 ‘헛소리야’ 라는 표정이다.
스윽.
품에서 황 대표가 전해줬던 명함을 내밀었다.
M.T.S 엔터테인먼트 이사 장태산.
“!!!”
눈이 한없이 커지는 남자 직원.
“이, 이”
“쉿.”
눈이 엄청나게 커진 직원에게 손가락으로 조용히 해달라 신호를 보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모를 수도 있죠. 오늘 첫 출근입니다.”
무늬만 이사다.
당연히 모르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대놓고 이사 직함 자랑하고픈 마음도 없다.
이곳은 주 전장이 아니라 일종의 휴게실 개념이다.
띵! 스르륵.
경쾌한 울림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뭐야? 특혜야?”
“여기 연습생인가 봐.”
“신인 배우인가?”
뒤통수로 들려오는 면접생들의 웅성거림.
질투 섞인 레이저도 몇 개 느껴졌다.
그들은 몰랐다.
오늘 자신들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난 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M.T.S의 본격 연습생 면접.
오늘 왠지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확실히 들었다.
# 12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