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277
1297장. 돌아오다.
“도대체 어디 계시는 거야?……. 연락은 왜 안 되는데? 언니는 혹시 알아?”
“나도 몰라. 보안팀에서는 어느 정도 아는 것 같긴 해. 함구령이 떨어졌진 걸 보니.”
“이 엄중한 시국에 설마…….”
“아니야. 회장님 그렇게 한가한 분 아냐.”
“연애를 한가한 때 하나. 느낌 오면 땡기는 거지.”
“땡겨? 그게 가능해???”
“에휴. 언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흐흐흐. 도도희 대표님은 뭘 좀 아는 것 같네?”
“당연히 나는…….”
“그래서 몇 년 동안 일개미처럼 일만 하는 거야? 과거가 화려해서?”
“그게 아니라…….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LOR 투자법인 비서실.
자리를 비운 주인 없는 회장실 앞에서 유세라 상무와 도도희 대표가 실없는 대화를 나눴다.
회장이 자리를 비운 채 사라졌다.
떠나기 전 당분간 연락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은 들었다.
워낙 바쁜 남자였고 평소에도 그런 일이 많아 이번 역시 그러려니 했다.
게다가 산재한 일거리도 많았다.
투자법인에 속한 기업들 관리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규 투자 업무까지 겹쳐 처리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로 확장됐다.
장태산이 지시한 일은 도도희가 소화해 내기도 벅찰 만큼 양이 엄청났다.
신규 투자 사업 쪽은 그녀도 모르는 영역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할 게 쌓이다 못해 넘쳤다.
투자 업무 파트 자체가 뭐라도 알아야 무시당하지 않았다.
장태산 회장은 4차산업의 패러다임을 먼저 읽고 실행했다.
물리학과 생물학, 디지털의 결합을 통한 혁신 기술을 꿰찼다.
유비쿼터스 컴퓨터, 스마트 도시, 빅 데이터, 자율주행자동차, 로봇공학, 블록체인 및 신경 기술 등등까지 그 영역을 상상을 뛰어넘었다.
정작 도도희는 대학교 시절보다 더 빡세게 공부해야 했다.
수하에 둔 직원들에게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제대로 투자하기 위해서는 거의 전천후가 되어야 했다.
계획한 일정대로 무리 없이 일을 처리했다.
그런 와중에 사건이 터졌다.
한 건씩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주순자 사건.
그녀의 추잡한 과거와 함께 조근영 대통령과 권력층에 넓게 퍼져 있던 비리가 합쳐져 전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이르렀다.
전 최병박 정권부터 이어져 왔던 부패와 불소통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화산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다면 방패막이를 자처했을 보수 언론들이 도리어 공격을 가했다.
주순자의 절제되지 못한 욕심이 급기야 화를 부르고 만 것이다.
난공불락 같던 대통령의 지지율이 폭락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촛불집회.
예상치 못한 사태에 여당도 당황했다.
그동안 국민들을 무시하고 기득권층을 위해 횡포를 부리던 여당도 화들짝 놀라 등을 보였다.
국회의원 선거를 통한 차가운 민심 이반을 경험한 결과였다.
당 대표 도장 먹튀 사건의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 당장은 곧 다가올 대선이 문제가 아니었다.
촛불이 켜지기 시작하면서 국민적 분노가 더 거세게 활활 타올랐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기득권층의 뿌리까지 다 태워버릴 기세로 불타올랐다.
100만이 넘는 인파가 혹한 속에서도 촛불을 들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거의 매일 이어지고 있는 촛불 시위.
최병박 당시의 촛불 시위는 애교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기세를 몰아 법원에서도 시위 범위를 청와대 바로 앞까지 허용했다.
줄을 잘못 섰다가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되는 순간 법원도 날아가게 될 처지에 놓였다.
병풍이 돼 주었던 언론들도 현재는 조근영 대통령의 편에서 완벽하게 돌아섰다.
동시다발적으로 주순자의 악행이 하루가 다르게 낱낱이 까발려졌다.
평창 올림픽 사업에 빨대를 꽂으려 했던 것까지 알려졌다.
대기업들을 상대로 협박하고 커미션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속된 말로 양아치나 하던 짓거리를 서슴없이 행해온 사실이 다 까발려진 것이다.
보수층이 청와대에 등을 돌린 만큼 드러난 사실들을 감출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보수 언론사 측에서는 감춰왔던 비밀 정보를 풀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청와대를 중심으로 구축돼 있던 조근영 대통령 주변의 권력층도 분열하기 시작했다.
발맞춰 경제 정책 실패 문제도 대두됐다.
모든 상황이 누가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만천하에 드러났다.
SNS를 통해 들불처럼 번져가는 조근영과 주순자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적.
“너도 갈 거야?”
“언니는?”
“퇴근 후에 가보려고.”
“……나도 가봐야지. 그래도 한 번은 참석해야 후회하지 않겠지.”
사무실 최고층에서 바라다보이는 강 건너 광화문 광장의 불빛.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도 꺼지지 않은 건물들의 불빛이 아니었다.
순수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작은 촛불로 밝혀낸 분노의 횃불이었다.
“기다려. 회장님 곧 오실 거야. 그렇게 무책임한 분 아니잖아.”
“나야 믿지. 그래도…… 궁금하잖아. 어디서 뭘 하시는지…….”
도도희가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안경테를 매만지며 창밖을 응시했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남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장태산 회장에게서만 볼 수 있는 태산 같은 믿음과 그의 강한 의지를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예 중독되어 그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나도 그래…….”
30대를 넘겼지만 아직 20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유세라.
이미 차갑게 식은 커피를 입에 가져갔다.
연락 한 통 없는 매정한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좋았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었다.
***
“2016년 11월 26일…….”
메시지와 함께 눈에 들어온 날짜.
짐작했던 대로 시간이 흘렀다.
과거에는 이동해 있는 동안 멈춰있던 시간이 이제 기다려주지 않았다.
“음…….”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몰려왔다.
이계에서의 시간과 함께 흐르기 시작한 지구의 시간.
초보자 보호 기간이 끝났다는 말이 이제 실감 났다.
– 이, 이 장치는 뭡니까?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샨트리아가 스마트폰을 보고 당황했다.
불빛이 들어오고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정보들을 전달하는 화면.
양상 마법 아이템과 비슷했지만 분명 달랐다.
지구 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걸작품.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기계야.”
– 스마트폰요? 기계라 하기에는…… 너무 정밀합니다. 마나 양은 쥐꼬리만 한데 어떻게 이런 정보들이 다 담겨 있는 겁니까?
드래곤이 봐도 신기할 거다.
그러나 오늘은 길게 답해줄 수 없었다.
“직접 보고 느껴.”
– 알겠습니다.
샨트리아가 현명하게 답했다.
스륵스륵.
메시지창을 바로바로 넘겼다.
– 이게 바로 한글이군요.
드래곤은 나와 같이 시각을 공유했다.
“읽을 수 있어?”
– 의식이 제한적으로나마 공유됩니다.
샨트리아는 무척 똑똑했다.
지금은 가죽에 의념만 남아 있는 상태지만 명색이 드래곤이다.
– ……그런데 마나가 오크 똥만큼 고약합니다.
“무슨 말이야?”
– 아르펜 대륙보다 농도나 질적인 면에서 훅 떨어집니다. 게다가 마나에 뒤섞여 있는 냄새는…… 아주 역합니다.
맞는 말이다.
이계에 갔다 올 때마다 느꼈던 지구의 환경 오염의 심각성.
지구가 아파하고 있었다.
마나라 불리는 지구 자체의 기운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에 예민한 사람들은 느낄 수 있다.
마나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면 느껴지는 기운이 더 강할 것이다.
“익숙해져야 돼.”
– 그래야죠. 긴 세월 거저 살아온 게 아니까요. 흐흐흐.
얘기를 나누며 쌓여 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 회장님 어디에요? 지금 큰일 났어요!
– 회장님 바쁘시려나요?
– 연락 주십시오!
– 아들 바빠?
– 오빠! 어디야? 지금 밖이 난리야!
– 촛불집회 안 갈 거야???
유세라 상무와 도도희 대표, 그리고 가족들이 보낸 문자가 대부분이다.
빠르게 메시지들을 살폈다.
날짜를 살펴보니 한창 촛불이 타올랐던 시기와 같다.
미래를 경험한 만큼 지금 이 시점의 분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대학 동창들과 집회에 나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근영을 지지하는 열성지지자들을 제외하고 국민들 대다수가 분노했던 시절.
다시 경험하려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시선이 멈췄다.
눈에 들어온 이름 하나.
앞으로 중요한 밑거름이 될 인맥의 문자였다.
– 회장님. 대표님이 급히 뵙고 싶어 하십니다!
– 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 회장님…… 답변 좀…….
몇 개의 문자와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절박함.
충분히 상태가 짐작 가능했다.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역사는 흘러가고 있었다.
다행히 나비 효과는 강하게 덮치지 않았다.
몇몇 변수가 나타나긴 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다.
– 성에 마법진이 깔렸군요. 그런데 이 묘한 마나 기운은 마법진에서 생성된 게 아닌 것 같은데…….
샨트리아는 그 와중에도 성을 파악했다.
전기를 느꼈다.
전기도 일종의 마나다.
“이동 마법진 가능해?”
– 좌표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9서클 경지가 아니라 자칫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살던 동네가 아니었다.
거기에 강대한 마나를 부리던 드래곤도 아니다.
8서클 마법사.
– 단거리 이동 마법은 가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
– 마나가 충분하다면 마법진을 이용한 이동마법은 가능합니다.
“훌륭해!”
내가 원하던 바였다.
괜히 샨트리아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게 아니다.
띠릭.
통화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리릿.
신호가 갔다.
그리고.
– 회, 회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회귀의 전설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