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0
129장. 생각보다 더 멋진 동생
“형? 무슨 일 있어요?”
“흐흐흐. 왜?”
“보드카 서너 병 마신 주정뱅이같이 얼굴이 확 달아올라 있어요.”
주, 주정뱅이!
정신을 퍼뜩 차렸다.
“하필 주정뱅이야!”
“러시아에서는 정신줄 놓으면 다 그렇게 생각해요. 저 자식 오늘 술 좀 마셨구나 하고 말입니다.”
저 자식?
블라드미르 저 자식 악신계에서 더 굴릴 걸 잘못한 것 같다.
괜히 인심 써서 데려왔나 싶은 게 애가 세상 사는 법을 몰랐다.
그래도 참았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오후에 있었던 연속된 사건은 날 기쁘게 만들었다.
세상에 도깨비 신부의 여주인공 강고은이 M.T.S에 꼭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를 보던 순간 잠깐 멍했던 강고은.
자리에 앉아 연예인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꼭 해보고 싶었다고! 정말 시켜만 주시면 자신 있다고!
도깨비 신부 대사 톤과 똑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앞으로 도깨비 신부가 나오려면 9년 정도 남았다.
그 기간 동안에 강고은은 성격과 말투가 변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본인의 일상생활이어서 그때도 그렇게 잘 어울렸던 것이다.
황 대표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계약금 1억을 쏘고 10년 전속 계약을 받아내라고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전부 장학금 처리할 것이며 연기하라 강요하지 않겠다는 약조도 해줬다.
전화로 강고은 부모님이 이 바닥을 믿지 못한다고 말해 삼우 로펌 변호사를 대동하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팬이었던 강예서도 안전을 핑계 삼아 사무실 건물에 고이 모셨다.
19층에 가끔 회사에서 쉬기 위해 룸을 만들었다.
전망도 좋고 시설도 두바이 7성급 호텔 수준으로 개조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남자에게 재복(財福)은 곧 여자를 의미했다.
대기업 총수들이 그렇게 세컨드가 많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돈이 뿌리는 매력을 여자들은 귀신 같이 알아챈다.
그게 바로 잠재된 사주 법칙이다.
피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전생 인연과 운명이 실타래로 서로 엮여 있다고 보면 된다.
“맛있냐?”
“흐흐. 두말하면 입만 아파요. 이거 정말 죽여요.”
초딩 입맛 블라드미르에게 선물을 가져왔다.
악신계에서 쫄쫄 굶었던 녀석은 식탐이 강했다.
초콜릿부터 사탕, 과자 등 군것질하기를 좋아했다.
신선계는 정말 웃기는 곳이다.
인간계에서 그냥 가져올 수 없었다.
집에 실물 과자를 구입해 놓고 천신계에 소환했다.
말이 소환이지 생각하고 떠올리면 그대로 옮겨온다.
단, 집에 돌아가 천신계에 헌납한 과자를 먹어보면 기가 확 빠져 있다.
제사상에 오른 음식이 맛있어 보여도 뭔가 부족한 맛이 느껴지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짜는 아니다.
카르마 포인트가 미약하게 빠져나갔다.
“형, 정말 무슨 일 있어요?”
초콜릿 케이크 한 판을 아작 낸 후 블라드미르가 물었다.
“오늘 면접 봤다.”
“와아아아! 형 멋져요! 난 돈 많은 사장님이 좋아요.”
“카르마 포인트가 아니라?”
“헤헤. 그게 그거죠. 돈이 있어야 포인트도 많이 벌잖아요.”
똑똑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래서 직원들 잘 뽑았어요? 사람 잘 뽑아야 해요. 잘 못 뽑으면 땅에 묻는 것도 일이잖아요.”
“땅에 묻어?”
“제가 있던 곳 아시죠? 그곳은 일 년에 직원들 수십 명이 사라져요. 타국 첩보원에 정보를 팔거나 이중스파이, 그것도 아니면 저처럼 너무 깊숙이 알면 죽여서 묻어요.”
죽음을 쿨하게 말하는 블라드미르.
나이도 어린 녀석이 참 거칠게 컸다.
“그 정도는 아니야. 형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소소하게 키우는데 미래에 쓸 만한 인재들 위주로 뽑았다. 미래 개발성, 실력, 인성이 기준이다.”
내 면접은 아주 간단하게 끝났다.
오래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얼굴 한 번 보고 목소리 들어보면 답이 나왔다.
관상에 끼가 많은 연습생들은 기본적으로 재주가 많았다.
전생에 자신이 추구하고 싶었던 꿈을 찾아왔기에 당연히 자기 최고 수준의 재능을 품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 인재들 중에 나중에 사고를 칠 것 같은 반골 성형의 관상이나 너무 색기나 욕망이 많은 인물들은 뺐다.
그렇게 선발된 최종 연습생은 20명.
황 대표도 나와 거의 비슷하게 연습생들을 겹치게 선택했다.
“저처럼요?”
“너?”
“흐흐. 제가 형의 충성스러운 직원이잖아요.”
안타깝지만 블라드미르는 신계에 쓸모 있는 존재는 아니다.
악신계라면 모를까 신계에서 해커는 환영받지 못했다.
신들이 컴퓨터를 즐길 리 없다.
말로 안 되는 마법 같은 공간이 이곳이다.
굳이 컴퓨터가 없어도 하루하루가 스펙터클했다.
결정적으로 신들이 컴퓨터를 배워 쓸 일이 없다.
그렇기에 블라드미르는 오로지 내 전용 신선이다.
그런 녀석이 아양을 떤다.
세상 사는 법 모른다는 거 취소다.
이 자식 고단수다.
“알았다. 그건 그렇고 하나 묻자.”
“뭘요?”
“아무리 너라고 해도 날고뛰는 천재들 속에서 해킹이 가능한 거야? 미국 NASA를 비롯해 첩보국 인재들도 장난 아닌데.”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곳에서도 유독 뛰어난 실력을 보인 블라드미르다.
엄청난 보안 장치가 널린 핵 프로그램까지 손댈 줄 아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의 재주를 거의 다 전수받았지만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제법 있었다.
해커질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블라드미르였지만 녀석도 다 아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녀석은 자신만만했다.
“이거 영업비밀인데…….”
“나랑 지금 밀당하는 거 아니지?”
“에이 제가 어떻게 저를 신선계에서 밥 주시는 형님과 밀당을 해요. 당치도 않는 말씀입니다.”
블라드미르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저 녀석 뭔가 감추는 게 있다.
“그럼 지금 영업비밀 이야기는 뭐냐?”
삐딱한 시선처리로 블라드미르를 봤다.
“이거 배우려면 저와 상당한 시간을 보내셔야 합니다. 쉬운 게 아닙니다.”
일단 겁주고 시작하는 녀석.
괜히 러시아 연방보안국 소속이 아니다.
“시간 많아. 걱정하지 마.”
남는 게 시간이다.
그리고 신계와 인간계의 시계추는 달랐다.
신계에서 몇 달을 보내도 인간계에서는 0.1초도 안 지나간다.
“형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말해.”
“저 어릴 적부터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푸틴 대장 계좌금도 털었습니다.”
“뭔데?”
“그 소원 들어주시면 제 인생 다 바쳐서 형님께만 충성하겠습니다!”
블라드미르 녀석의 눈을 봤다.
이제야 비밀을 말하려는 것 같다.
녀석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은하수처럼 빛났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불행하게 컸던 녀석이 소망하는 그 무엇 한 가지.
녀석이 나에게 안겨줄 보너스는 실로 엄청나다.
초고속 인터넷과 광통신, 홈 네트워크 같은 통신기술과 소프트웨어, 멀티미디어, 클라우드 서비스 같은 데이터베이스가 갈수록 발달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기술들이 융합하여 정보의 생산과 응용까지 빅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일상에 침투한다.
그런 시대를 살고 왔던 나다.
막연한 것과 달리 확실하게 미래를 아는 나에게 블라드미르는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말해. 형아가 들어주마.”
“형!!!”
녀석이 안겼다.
하아, 아무리 신이라도 남자는 사양하고 싶다.
신선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향내가 났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향수와는 다른 그 무언가가 있는 향이다.
그래도 싫다.
러시아 남자치고는 체구가 작은 블라드미르는 어린 동생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전생에 나에게 얻어터졌던 남동생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세계적 쉐프를 불러다가 매일 같이 정찬을 먹일 수도 있다.
초콜릿 공장 그거 얼마나 하겠나.
블라드미르가 원하면 모두 다 오케이다.
이곳 신계에서도 할 일이 많았다.
인간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지만 블라드미르는 배울 수 있다.
인간계에서 개발한 컴퓨터는 이곳에서도 활용 가능했다.
지금 블라드미르 앞에도 최신형 개인 슈퍼컴퓨터가 있다.
메인보드 제조업체 TYAN에서 개발한 256기가 플롭스 성능의 개인 슈퍼컴이다.
내가 구입하고 소환한 녀석이다.
소환과 동시에 컴퓨터가 부셔졌다.
개발되지 않은 미래의 물건은 가져올 수 없다.
철저하게 신계도 인간계와 발맞췄다.
“단, 이곳에서 내가 지시한 일들은 완벽하게 처리해라. 잠잘 곳, 먹을 것을 비롯해 모든 다른 것들도 다 들어줄 테니까.”
“걱정 마. 형! 나 의리 빼면 시체야.”
미안하다 넌 진작 시체였다.
“그래서 뭘 원하냐? 포인트냐? 레벨업 하고 싶어?”
“아니 나에게는 의미 없어.”
“왜? 신선계는 포인트로 집도 꾸미고 여성 신들과 사랑을 꿈꿔도 되는 곳이야. 내 아는 분들 중에도 팔자 펴신 분들 많다.”
“여자 관심 없어. 그저 난…….”
녀석의 소원이 궁금했다.
뜸 들이는 모습.
뭔가 대단한 걸 요구하려는 것 같다.
“놀이동산이 갖고 싶어.”
“뭐? 놀이동산!!!”
뜬금없는 블라드미르의 요구.
녀석은 순수한 욕망이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살던 내 고향……. 러시아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멋진 놀이동산 부탁해요. 그게 제 유일한 꿈입니다!”
순간 가슴이 찌릿해졌다.
피할 수 없는 블라드미르와의 약속.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천천히 끄덕여졌다.
지난번에 들어 본 적 있다.
살아생전 가장 큰 기쁨이 부모님과 함께했던 놀이동산 소풍이었다던 블라드미르.
녀석은 그 행복감을 러시아에서 살면서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블라드미르.
생각보다 더 멋진 동생이다.
* * *
“이제부터 빼도 박도 못 한다. 흐흐.”
블라드미르와의 계약은 대만족이다.
녀석 소원대로 러시아에 큼지막한 디즈니랜드 하나 설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과 기회는 풍족했다.
그런 대가로 블라드미르는 내가 제시한 공부를 팠다.
신이라 머리가 더 비상하다고 스스로 말했다.
비트코인의 핵심인 블록체인에 대해 파라고 1차 명령을 내렸다.
녀석이 품고 있던 IT 지식에 대해 며칠 밤을 새서 토론했다.
신계에서는 배고픔을 몰랐다.
다만 그 맛을 기억하기에 섭취할 뿐이다.
굶는다고 죽거나 하지 않는다.
카르마 포인트가 떨어져야만 육도윤회의 수레 판에 다시 올라간다.
“블라드미르 방화벽은 짱이다. 해킹 실력 좀 더 키우면……. 다 털 수 있다!”
본래부터 이 게임 같은 회귀 인생은 버프의 끝장판이다.
신들과의 거래로 얻게 된 능력을 시간이 없어 다 활용할 수가 없을 정도다.
태극오행양의심법으로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해졌다.
내공이 갈수록 늘어났다.
육체가 깨어나자 덩달아 정신능력과 두뇌도 개발됐다.
필요한 산소와 혈류가 기와 함께 원활하게 제공되자 두뇌는 항상 극상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알고리즘 공부를 위해서는 수학자 한 분 조만간 초빙해야겠어.”
블라드미르가 천재지만 알고리즘 분야 쪽은 아니었다.
좀 더 강력한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식 능력자들이 필요했다.
블라드미르의 능력을 얻게 되면서 내 보안이 상당히 허술하다는 걸 깨달았다.
급히 3중, 4중의 보안장치를 더 마련했다.
“데이터센터를 가장한 대규모 개인 서버 공간도 필요해. 슈퍼컴퓨터 몇 대 구입하고 말이야.”
다행히 회귀 전 컴퓨터 지식으로 보안을 커버했기에 망정이지 상당히 위험했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최첨단 시설이 필요했다.
“진짜 대단한 녀석이야. 2017년에나 서서히 밝혀지는 약점을 벌써 알아내다니. 천재는 하늘이 점지하는 거다.”
후천적 천재가 된 나와 달리 선천적 천재들은 사고방식이 달랐다.
2017년 말부터 시끄럽게 달궜던 CPU 보안 약점.
세상에 블라드미르는 벌써 그 약점을 알고 탈탈 털었다.
CPU 설계인 아키텍쳐 오류로 인한 보안 취약점.
CPU 성능 극대화를 위해 명령어의 순서를 바꾸거나 예측 실행하던 방법이 탈이 났다.
명령어 순서가 바뀌었을 때 무시된 결과들이 캐시메모리에 저장된다.
해커들이 이 취약점을 노리면 운영체제 커널 영역의 메모리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다 털린다는 거다.
1995년 이후 출시된 인텔 프로세스는 멜트다운, ARM과 AMD은 스펙터의 약점이 남았다.
CPU를 교체하기 전에는 소용없는 극단의 상황이다.
그걸 나만 이용 가능했다.
앞으로 10년 동안 세상 모든 컴퓨터는 마음만 먹으면 밥이 된다.
“오오오! 저 여자 뭐야?”
“우리 학교 여학생은 아니지?”
오늘은 토요일.
공대 컴공과 누나 온시은과의 데이트 약속 날.
입학보다 더 어렵다는 한국대 기숙사에 거주하는 그녀를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차에서 창문을 내리고 시원한 봄바람을 맞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온시은???”
# 13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