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3
132장. 동네 형
“안에 누구 계세요?”
강예서는 조심스럽게 사람을 찾았다.
일요일 오후 20층 거대 건물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19층에 위치한 게스트룸 같은 공간은 참으로 호화스러웠다.
봉은사가 훤히 보이는 창밖 풍경은 정말 끝내줬다.
오랜만에 제대로 밖을 보고 큰 숨을 내쉬었다.
침대도 편안했다.
리조트 같이 음식도 조리해 먹을 수 있었다.
냉장고에 20층에 근무하는 세라 언니가 이것저것 가득 넣어 놨다.
간편하게 입을 옷이나 화장품 같은 일상 생활용품도 챙겨줬다.
아래층에는 산적 같은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20층 건물 자체가 호텔보다 더 보안이 철저했다.
강예서는 며칠 푹 쉬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연기가 좋아 부모님과 떨어져 한국에서 버텼다.
더럽고 치사해도 대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성 접대나 스폰서는 싫었다.
온전히 자기 실력으로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동료들이나 후배들 중 몇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배역과 광고를 따냈다.
그래도 참았다.
미국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시지만 언제나 정직한 삶을 강조한 부모님 말씀이 머리에 박혔다.
악마의 유혹은 부모님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삶이었다.
그런데 참고 있던 소속사에서 이제 대놓고 협박했다.
운 좋게 조연에서 인기를 얻어 광고를 획득했지만, 그곳 광고 담당자가 강예서를 원했다.
그걸 박차고 나온 강예서다.
과거 초창기 시절 자신을 동생처럼 챙겨주던 황연태 매니저를 찾았다.
어느 날 갑자기 투자를 받아 중견 기획사 대표가 된 황연태만 떠올랐다.
가끔 조폭들과 회사에서 술자리를 벌이던 이광주 대표를 막아줄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때도 말리다 잘렸던 황 대표다.
황 대표도 과거 이광주에게 맞았다.
아무리 잘나가는 연예인이라 해도 이광주는 허리를 밟아 버리고 재떨이 날리기로 유명했다.
이광주는 키는 작아도 독기로 쩐 인간이다.
이제는 생각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무서워서 도망쳤지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릴지 몰랐다.
여차하면 미국으로 잠시 피신할 생각도 해봤다.
일도 중요했지만 신념과 순결은 더 소중했다.
그전까지 이곳은 최상의 안전 터였다.
하지만 심심했다.
20층에 근무하는 여직원과 안면을 텄다.
세라 언니라 불렀다.
같이 커피 마시며 수다도 떨었다.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은 걸 알았지만 운동 삼아 20층까지 올라와보니 사무실 유리문 밖으로 빛이 보였다.
혹시 몰라 그녀를 찾았다.
“들어와요.”
“!!!”
강예서는 깜짝 놀랐다.
귀에 익숙한 목소리.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중저음이다.
스르륵.
버튼을 누르자 자동 유리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이, 이사님.”
장태산 이사의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어서 와요. 예서 씨.”
방금 내리고 있었던 듯 사무실은 커피향이 진했다.
“사무실 불이 커져 있어 와봤어요.”
“심심하죠?”
“네? 네…….”
“커피 마시겠습니까?”
“네!”
세라 언니가 내려주는 커피는 기가 막혔다.
원래부터 커피를 좋아하던 강예서는 그 맛에 매료됐다.
“앉으세요.”
장 이사가 자리를 권했다.
‘진짜 이 회사 대표일까? 유 팀장님 말로는 학생이라던데…….’
사무실이 정말 특이했다.
다른 곳 같다면 파티션으로 벽을 만들고 공간을 활용해야 할 넓은 자리에 미니 정원이 있었다.
커피 마시기 딱 좋은 장소였다.
“여기.”
“감사합니다.”
강예서는 향긋한 원두커피를 받아들었다.
나이는 어린 대표지만 분위기는 감히 범접하기 힘들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유 있는 품위 같은 게 느껴졌다.
M.T.S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이사 신분이다.
황 대표가 경어를 사용했다.
커다란 건물에 공실이 많아 보였지만 전혀 상관없는 것 같았다.
뭔지 몰라도 돈이 많은 건 확실했다.
‘집안이 재벌?’
강예서는 여러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강예서도 인맥과 정보가 많았다.
그가 아는 그룹이나 기업체 자제 중에 이런 사람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낼 만해요? 불편한 점은 없습니까?”
“네! 정말 좋아요.”
“집처럼 편하게 지내십시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장태산 이사는 편하게 지내라 말했다.
‘얼굴 피부가 나보다 더 좋은 것 같아. 화장품은 뭘 쓰는 거야? 그리고 몸매는……. 탑이네.’
동료 배우 중에 모델하다 넘어온 남자들보다 몸이 더 좋았다.
얼굴도 선이 굵고 멋졌다.
오밀조밀한 아이돌이 아니라 강인한 남자 향기가 풍겼다.
“저 그런데 이사님. 궁금한 게 있어요.”
강예서는 궁금한 걸 잘 참지 못했다.
“뭐가 말입니까?”
“뭐하시는 분이세요? 세라 언니 말로는 학생이라던데.”
“한국대 법학과 재학생입니다.”
“아……. 한국대……. 네? 한국대 법학과요???”
고개를 끄덕이다 강예서는 깜짝 놀랐다.
외모도 배우들 뺨을 후릴 정도인데 머리도 좋았다.
한국대 법학과라면 대한민국 수재들이 가는 곳이다.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한국대 법학과는 안경 쓴 공부벌레들이나 가는 곳이다.
“그리고 M.T.S 이사에 여기 투자회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와아아아. 쩔어요.”
강예서는 진심 감탄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저런 엄청난 스펙이라니.
“혹시 나이가…….”
“스물입니다.”
“뭐, 뭐라고요? 스물요!!!”
강예서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상식파괴의 끝판왕이었다.
세라 언니도 대표가 어리다고만 말했지 스물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게.”
‘뭐야? 진짜 스무 살이야?’
얼굴은 정말 동안이 맞았다.
그러나 옷차림은 셔츠 위에 연 하늘색 카디건과 가벼운 정장 바지는 나이와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어울렸다.
학생이 아닌 대기업 팀장급 간부 정도 되는 스타일이다.
‘괴물 아니지? 외계인?’
빙긋 웃고 있는 이곳 대표를 보며 강예서는 소설에 나오는 우주 괴물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훈남일 뿐이다.
“미국 비자 있습니까?”
“시민권자예요.”
“잘됐네요. 조만간 미국에 갈 생각인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미국에요?”
비행기 표값이 만만치 않아 몇 년간 가보지 못한 미국이다.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
부모라는 말에 강예서는 가슴이 울컥했다.
꼭 성공해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또로록.
강예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부모라는 말은 외톨이들에게는 세상의 가장 큰 위안이자 그리움이었다.
“울지 마십시오.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장 이사가 강예서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걸 받아 강예서는 눈물을 닦았다.
“계약이 파기되면 어느 곳으로 가고 싶습니까?”
“네? 계약 파기요?”
악마 같은 이광주가 돈을 뽑기 전에는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수익에서 10프로만 정산 받아도 성공했다 여기는 루어 엔터테인먼트다.
이제 막 수익을 얻게 된 강예서를 놓아 줄 리 없다.
“……. 만약 그렇게 된다면 M.T.S에 뼈를 묻을게요!”
야무지게 강예서는 답했다.
소속 연습생들에게 주거와 밥, 사대보험에 최저임금까지 지불하는 기획사는 아무 곳도 없다.
더욱이 황연태 대표는 이 바닥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인재였다.
그리고 눈앞의 이사라는 남자.
그가 있기에 강예서는 더욱더 M.T.S에 소속되고 싶었다.
“그 약속 지켜야 합니다.”
“네. 부모님 이름 걸고 맹세합니다.”
강예서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답했다.
“확고한 결심 믿겠습니다.”
“정말 저 M.T.S로 이끌어 주실 거예요?”
강예서는 믿기지 않았다.
소속사가 소속 연예인들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나가려면 터무니없는 위약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별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
웃으며 답하는 장 이사의 모습에 강예서는 심장이 미칠 듯 뛰었다.
누구나 꿈꾸는 스타.
눈앞의 남자가 말하니 진짜 될 것만 같았다.
띠리리 띠리리.
그때 강예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가족들과 통화할 때 사용하는 비밀 핸드폰이다.
소속사에서도 전혀 몰랐다.
“잠시만요.”
“편히 받아요.”
강예서는 이모라고 뜨는 액정화면을 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모?”
“예, 예서야……. 흑.”
“이모! 무슨 일이야! 왜 그래!”
이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다 흑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한국에서 강예서를 엄마처럼 돌봐주던 이모다.
그런 이모가 갑자기 울 이유가 없었다.
“강예서. 나다.”
그때 핸드폰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세요! 우리 이모에게 왜 그러세요!”
강예서는 덜덜 떨며 물었다.
“벌써 내 목소리 잊어버렸어? 흐흐. 나 최 이사다.”
“헉!”
강예서는 숨이 턱 막혔다.
이광주 대표의 심복 최상준 이사.
전직 깡패 출신이라며 스스로 자랑하고 다녔다.
말 안 듣는 연습생들을 불러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비열하게 웃었다.
“최, 최 이사님이 왜 이모 핸드폰을…….”
“몰라서 물어? 강예서 니가 황연태 품에 숨어 봤자지. 이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그럼 안 되지. 우리 이 대표님 얼굴에 똥칠하고 밥이 넘어가디?”
“이모는 아무 관련 없어요! 놔줘요! 이모! 이모!!!”
“이모 안 잡아먹는다. 그러니까 좋은 말할 때 회사로 와라. 오면 이모 모셔다드리마.”
최상준이 느긋하게 말했다.
황연태를 덮치러 갔지만 삼엄한 경비에 꼬리를 내렸다.
괜히 강남 한복판에서 주먹질해서 좋을 게 없었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된 경비업체였다.
이광주 말을 지켜내야 했다.
성격 지랄 같은 놈은 직속 부하들이라도 봐주지 않았다.
강남 조폭뿐만 아니라 뒤에 야쿠자도 있었다.
최상준은 최상의 수를 찾았다.
바로 강예서를 돌봐주던 이모를 인질로 잡는 것이다.
회사 기록카드에 기록된 지인 주소.
바로 아래 수하들과 함께 찾아냈다.
예상대로 강예서와 연락할 방법이 있었다.
“당신들……. 우리 이모한테 무슨 일이라도 나면……. 죽여 버릴 거야!”
강예서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함을 쳤다.
괜히 자신 때문에 일을 겪게 되는 이모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이모부가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사촌 오빠는 군대에 있었다.
홀로 살아가는 이모를 겁박하는 악마 같은 놈들.
그때 강예서의 손에서 핸드폰을 조용히 빼가는 손.
남자의 눈에 가늠하기 힘든 분노가 일렁였다.
“최 이사. 나다.”
“나? 누구? 황 대표?”
“아니.”
“그럼 누구야! 뭐하는 새끼야!”
최상준이 버럭 호통을 쳤다.
“미친 개새끼들 때려잡는……. 동네 형.”
“뭐, 뭐라고!”
# 133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