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7
136장. 악성 베토벤
이건 뭐지?
모차르트가 신이 된 건 짐작 가능했다.
3살 때 신동 소리 듣고 5살 때 작곡, 7살에 바이올린 소나타를, 8살에 교향곡, 12살에 오페라까지 작곡한 모차르트.
생전 628곡을 작곡한 그가 신이 안 되면 누가 되겠는가.
교육받은 전 세계인들 중 모차르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간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환생했을 줄은 몰랐다.
“신이 된 지 200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환생? 무슨 일 있었던 건가?”
강제로 신계에서 쫓겨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신들은 대부분 신(神)생활에 만족했다.
아니 인간계로 떨어지거나 윤회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특히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말고 청년 시절 이후부터 불우하게 살았다.
첫사랑도 아버지 때문에 헤어졌다.
대중의 관심은 쉽게 사라졌고 작곡가 살리에르의 중상모략과 대주교와의 관계 악화로 어렵게 생활을 유지했다.
물론 이때가 요술피리 같은 맹곡도 탄생했던 시절이었지만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모차르트 잘못도 많았다.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였다.
여자는 어찌나 쫓아다녔던지…….
죽음 또한 허망했다.
극빈자 장례로 치러졌고 비가 많이 와 장지에는 아무도 따라가지 못했다.
무덤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몰라 아내였던 콘스탄체가 유해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환생했다는 소리다.
“그럼 모차르트 말고 누구…….”
파아앗!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섭게 빛이 터졌다.
나를 기다렸던 그 누구.
재빠르게 기회를 얻었다.
***
띠링 띠리리 띠리리링~♪.
쿵작쿵작!
빛이 사라지자마자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밝지만 경박스러운 음률이다.
나의 아버지 때나 길가에 울렸고, 신파 영화에서나 들었던 낯설고 이상한 악기 소리가 들렸다.
“여긴…… 또 뭐야!”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위에 대형 공연 천막이 서 있었다.
사방에 펄럭이는 만국기가 어지럽게 눈에 들어왔다.
“유니콘?”
세상에 새하얀 뿔 달린 백마가 보였다.
옆구리에는 큼지막한 날개까지 달렸다.
딱 봐도 전설로 내려오는 유니콘 같았다.
“우와와와!”
절로 감탄이 터졌다.
신계에 자주 오지만 유니콘은 처음 본다.
푸르르르르르르.
잡티 하나 없는 녀석이 날 보고 웃는다.
커다란 눈동자로 보이는 건 비웃음?
“너 나 아냐?”
푸르 푸르르르.
“모른다고?”
끄덕끄덕 고개를 흔들어 답하는 유니콘…….
말귀를 알아들었다.
과연 천생 말 새끼다웠다.
“설마 네가 날 불렀어?”
푸르르르르르르.
“아니라고? 그럼 누가?”
“동생, 내가 불렀어.”
그때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휙 고개를 돌렸다.
“헛!”
보자마자 신음을 토했다.
“나 알아?”
동생이라 부르며 나타난 바람머리에 하얀 새치가 가득 핀 남자는 초상화를 통해 몇 번 보았던 사내다.
“아, 악성?”
“흐흣. 아직 나 안 죽었군. 바로 알아보네?”
세상에!!!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남겼던 베토벤의 명언이 떠올랐다.
– 왜 나는 작곡하는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악은 사람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작곡하는 것이다.
악성(樂聖) 베토벤.
음악의 성인이라 불렸던 그가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다.
고약스럽게 보였던 굳은 이맛살과 뽈따구가 베토벤 얼굴 그대로다.
초상화에 나와 있던 얼굴과 완전 똑같았다.
다만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이제는 귓병 다 나으셨습니까?”
“귓병? 흐흐흐. 다 나았지. 신이 되면 인간의 병은 다 사라지네. 동생.”
동생이라 부르는 베토벤의 웃음이 자애롭다.
성격 까칠하기로 손에 꼽히는 음악계의 거장은 인간사에 남긴 그의 성품과 완전 달랐다.
“그리고 그거 인간이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네?”
“쉽게 설명하면 신병? 그런 거였네.”
“신병이요?”
“동생은 잘 모르겠지만 예술 하는 인간들 대부분 신들과 소통하네. 인간으로 태어나기는 싫지만 인간 세상에서 배웠던 음악이나 미술, 글 따위를 표출하고 싶어 신들은 바쁘네. 개중에 내가 걸려들었던 거지.”
“그게 무슨…….”
“귀는 안 들려도 난 명작을 남겼네. 그게 다 신들과 교감하면서 얻어낸 능력이었어. 내 스승이었던 모차르트도 그랬고 다른 유명한 음악가들 대부분 그랬지. 신과 인간이 만들어 낸 콜라보레이션이지. 친구도 알고 있겠지만 난 한때 자살하려고 했네. 그때 신과 본격적으로 소통이 되며 교향곡 5번부터 쭉 작곡할 수 있었지.”
“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나도 잘 안다.
베토벤은 서른두 살에 죽으려 했다.
나름 인지도 있던 궁정 테너 가수였던 아버지가 베토벤을 돈벌이로 삼기 위해 혈안이었다.
집에 있는 것이 괴로웠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베토벤이었다.
그때부터 반항아가 됐던 베토벤은 하이든, 셍크, 살리에르를 만나고서야 음악적 감성을 전수받았다.
모차르트를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으며 오스트리아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날렸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늘의 시련이라는 귓병을 앓고 그 이후 작곡에 몰입했던 악성 베토벤이다.
그에게 이런 감춰진 비밀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런 점에서 고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림을 그리면 자꾸 귓가에 속삭여지는 말 때문에 귀를 잘랐다고 했다.
“동생은 조심하지 않아도 돼. 나를 만났으니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감히 떠들 신들이 없어. 이곳에 음악에 조예가 있는 신들 대부분이 있으니까.”
베토벤이 친근하고 박력 있게 말했다.
물론 예전 같다면 감동 만 배쯤 받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차르트 대신 나를 소환한 베토벤.
한 눈에 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유니콘으로 분위기를 잡았지만…….
버려진 농장 같은 평지 위에 천막 치고 살 정도면 게임 끝났다.
잘나가는 신들은 이렇게 안 산다.
처음 나를 소환했던 크리스 반스데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촌스럽고 허접하다.
천막도 낡았고 사방을 둘러봐도 인기척이 없다.
유니콘이 눈길을 끌기는 했지만, 저 녀석도 신들 세계에서는 망아지 수준일 것이다.
“모차르트 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베토벤 님의 스승님 맞죠? 한번 뵙고 싶습니다.”
모차르트를 꺼내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모, 모차르트 선생님?”
“네. 신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딱 보니 이곳에 계신 것 같은데 지금 안 계시나요?”
알면서 물었다.
잘나가는 미술계 거장들도 비정규직에 일당직이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도 그렇게 카르마 포인트와는 인연이 없을 것 같다.
둘 다 성정이 괴팍했다.
포인트를 많이 벌어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예술가들이 현실 세계에서도 돈 많이 벌어 사는 경우는 드물었다.
다들 죽어서야 명성을 얻었다.
띠링 띠링~♬.
쿵작쿵작!
천막 안에서는 계속 촌스러운 악기 소리가 들렸다.
클래식 음악가들이 다 모였다는 곳에서 저런 요란한 깡통 같은 심벌즈를 사용했다.
나 돈 없는 뮤지션이라는 걸 알리는 수준이다.
신계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날 너무 몰랐다.
“모차르트님~.”
천막 안에 대고 소리쳤다.
“자…… 잠시 출장 갔다.”
“출장요?”
“저 위쪽에서 연주회 부탁이 있어 나갔다.”
인간계에 회귀했다는 소리 다 들었는데 거짓말을 하는 베토벤 아저씨.
거짓말이 익숙하지 않은 듯 표정이 경직되고 땀까지 흘렸다.
“그래요?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베토벤 형님도 좋아하지만 모차르트 아저씨 팬입니다.”
“뭐, 뭘 기다려. 신들 연회는 한번 시작하면 오래 걸린다. 그러니까 필요한 재능 있으면 나에게 부탁해. 하하하. 형 좋다는 게 뭐야! 오늘 처음 볼 때부터 오래된 동생 같았다.”
베토벤이 나보고 형 동생 먹잖다.
나이도 200년 훌쩍 넘는 신선이 인간에게 권할 말은 아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까칠 베토벤이 이렇게 나오겠는가.
푸르르 푸르르르르 푸르르르르.
그때 입구를 지키던 유니콘이 갑자기 울었다.
그리고 날개를 훌쩍 폈다.
“어, 어! 어디 가! 아직 대여시간 남았잖아!”
베토벤이 당황하며 유니콘에게 따졌다.
푸르르르르르르르르.
그러자 거칠게 고개를 젓는 유니콘.
“이런 식이면 신성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할 거야! 대여시간 엄수 몰라? 단기 렌트라고 지금 무시하는 거야? 너 하나 데려오려고 비상 포인트 다 털었어!”
푸르르르르르르르르!
특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유니콘이 베토벤을 봤다.
처음 나를 봤을 때 보였던 그 비웃음 가득한 눈빛도 잊지 않았다.
저 자식 대형 단체 소속인 거 같다.
그리고 유니콘과 대여시간으로 싸우는 베토벤이 불쌍했다.
나를 유혹하기 위해 나름 장치를 한 것이다.
죽는 순간 가난하면 죽어서도 거지꼴 못 면하는 거 같다.
“유니콘. 베토벤 형님이 기다리라잖아. 시간당 얼마야? 요즘 최저시급은 올랐냐? 그걸로 당근 사 먹는 거야? 그래. 열심히 살아라. 형아가 오늘 하루 너 렌트할게.”
푸르르르!
유니콘이 하루를 끊어준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눈치다.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자 먹어.”
파앗!
냉장고에 사놓은 싱싱 제주도 유기농 흙당근을 생각하자 바로 손에 잡혔다.
그걸 유니콘을 향해 내밀었다.
푸르르…….
유니콘 녀석 커다란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갔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긴 혀를…….
스륵 스륵.
몸뚱이에 부비부비 하더니 내 손에 들린 당근을 조심스럽게 받아먹었다.
파아팟.
하루 계약에 해당하는 카르마 포인트가 녀석에게 넘어간 듯 내 몸에서 녀석에게 작은 빛이 이동했다.
신들 세계에 사는 동물들도 신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아작아작 당근을 씹어 먹는 유니콘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과거 내가 회귀하기 전에 노량진에서 컵밥 먹던 장면과 오버랩 됐다.
유니콘도 신계에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뭐라도 벌어야 지상의 당나귀로 환생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 열심히 살아. 포인트 많이 모아서 이런 알바 말고 개인택시 같은 면허 따서 편하게 살아라. 형이 가끔 쏴줄게.”
푸르르 푸르르르르르.
당근 먹던 녀석이 말을 다 알아듣고 그냥 사정없이 나에게 비볐다.
“도, 동생 귀한 포인트 막 쓰면 안 돼. 쟤 알바 시급으로 나보다 더 벌어!!!”
놀란 베토벤이 소리쳤다.
당근 하나와 하루 렌트에 베토벤이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푼돈 가지고.”
“!!!”
푼돈이라는 말에 베토벤 눈동자에 광채가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졌다.
뭔가 봉을 만났다는 눈빛이다.
그런데 어쩌랴 나 그렇게 쉬운 인간 아닌데.
“니콘아. 당근 먹고 놀고 있어.”
베토벤 앞에서 당근 열 개를 소환해 유니콘에게 건넸다.
푸르르르르르르!
감동 가득 먹은 니콘이가 폴짝폴짝 뛰었다.
날 잡아 한 번 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읍.”
베토벤이 당근을 보고 침을 흘렸다.
폼을 보아하니 며칠 굶은 듯하다.
“베토벤 형님. 안에 음악계 신들 계시죠?”
“그럼! 안에 웬만한 음악 신들 다 있다.”
“앞장서 보세요. 다들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래. 동생 따라와. 오늘 인간들은 볼 수 없는 신들 마음껏 보여줄게!”
성큼 한걸음 앞장서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베토벤.
날 초짜로 안다.
“니콘아. 너보다 더 불쌍한 신들 이곳에 왜 이렇게 많니?”
유니콘 뿔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착한데 돈도 없는 신들.
안타까운 저들의 재능을 싼값에 후려칠 수밖에 없는 이 운명…….
너무 좋다.
흐흐흐흐.
# 13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