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8
137장. 배신자 모차르트
쿵짝 쿵!
따라라 따라라라♬.
소리가 참 요란도 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서커스 무대 같은 중앙에 10명의 남자들이 정신없이 심벌즈, 낡은 바이올린, 트럼펫 따위를 연주하며 요란을 떨었다.
악기는 후졌지만, 예상외로 귓가에 감겼다.
아니 뭔가 심오함도 느껴졌다.
하늘과 땅, 인간과 우주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카사노바 형님 덕분에 열리게 된 음악적 영감이 발동됐다.
조잡한 악기 사이에서도 놀라운 하모니가 맴돌았다.
악기들의 대립과 조화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악기에서 장대한 대서사적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지 몰랐다.
교향곡은 신과 함께 울리다 라는 심포니라는 그리스어에서 출발했다.
정확히 교향악곡적 해석에 충실했다.
교항악곡의 주목적은 조화였다.
하이든에 창작된 기본 악장을 자유롭게 파괴하는 베토벤 특유의 기법이 감지됐다.
노바 형님이 품고 있는 음악적 소양이 장난 아니었다.
3악장쯤 되는 것 같았다.
전형적인 미뉴에트 무곡 형식 대신 날카롭고 해학적인 스케르초 방식이었다.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같았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음률로 창작곡이 확실했다.
눈을 감고 듣고 있자니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끼이잉. 차아앙!♫.
하지만 공간과 악기가 엉망이다.
다양한 음색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화려함의 극치인 교향악곡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낡은 천막은 소리를 울리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장대한 스케일의 악기들이 필요한 곡인데 10명이 들고 있는 허접 악기는 그런 하모니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아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이걸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금관, 목관, 타악기, 현악기까지 포함된 100명 정도의 대규모 악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듣는다면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라라라라락.
세상에 그런 곡을 허접 아이템인 탬버린으로 연주하다니!
노래방에서 흔들던 그런 탬버린이 악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눈을 들고 그들을 보는 순간 입맛이 썼다.
격조 있는 복식과 장소는 요리에서 화룡점정과 비슷한 접시와 플레이팅 같은 기술에 속한다.
기본이 안 돼도 너무 안 됐다.
삼류 서커스 공연 공간에서 듣는 웅장한 교향악곡은 고속도로 뽕짝만 못했다.
저렇게 허접한데 신들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동생. 잘 들어봐. 비록 악기는 허술하지만 내가 작곡한 99번째 교향곡이야. 어때? 영감이 팍 오지 않아?”
베토벤이 속삭였다.
“99번째요? 9번이 끝이 아닙니까?”
“신이 되니까 머리가 엄청 좋아졌어. 나를 괴롭히던 환청도 사라지니 쭉쭉 뽑아져 나왔네.”
“아…….”
베토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놀라기도 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99곡이 인간 세상에 풀리면…….
대박이었다.
욕심이 안 난다면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쿵짝! 쿵쿵!
그 사이 베토벤 교향곡 99번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엉망인 악기와 환경이지만 명곡은 몫을 해냈다.
속도가 빠른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론도형식이 적용된 음률들은 거친 파도처럼 퍼졌다.
마치 유니콘을 타고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짜장 짱! 짱짱!♪!
갑자기 마주한 폭풍 같은 강렬한 북소리가 울렸다.
쿵! 쿠우웅! 쿵쿵!♬.
폭풍을 향해 날아가는 유니콘.
그리고 찢길 것 같은 날개와 바람과의 저항.
쩌어어어어엉!
그대로 유니콘과 폭풍이 부딪쳤다.
그런데…….
“…… 끝입니까? 이게?”
그걸로 끝났다.
결말이 없는 교향곡의 마무리.
허무했다.
“아쉽지?”
“말이라고 합니까. 마지막 피날레로 성악 같은 합창이 터져 나와야 감동이 극대화될 텐데요.”
“맞아.”
“그런데요?”
“노래 부를 신이 없어.”
“네?”
“여기 있는 신들 중에 성악가는 없어.”
“왜요?”
“걔들은…… 신이 돼도 여기로 안 와.”
“네?”
“배고프고 포인트도 안 되고 미래가 없다는 거지. 휴우.”
“아…….”
서글픈 예술가의 삶이여!
어느새 음악은 끝났다.
베토벤의 한숨에 기대를 품은 눈빛으로 다가오던 이들이 걸음을 멈췄다.
신들 세상에도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이 많았다.
인간계나 신계나 낙오자들은 언제나 불쌍했다.
“신들이 왜 이런 명곡을 안 듣습니까? 이 정도면 엄청 훌륭한데 말입니다.”
“이곳에는 노래하는 영물들이 많아. 그들에게 밀렸다.”
“노래하는 새요?”
“천상조라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신통하게 노래도 잘 불러. 그리고…… 요즘 누가 클래식 듣냐. 유행이 지나서 밥 빌어먹고 살기 힘들다.”
베토벤의 한탄이 가슴 깊이 박혔다.
신계도 지상의 인간 세상과 비슷한 속도로 진화하는 건 확실했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들이 인간계에서 사라지는 것과 비슷하게 신계도 그랬던 것이다.
“인간들에게 강림해서 명곡을 알리셔야죠. 그렇게 되면 유행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해봤어. 그런데 안 돼.”
베토벤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왜요?”
오늘따라 참 의문이 많이 생겼다.
“우리들이 우리 발을 찍었다.”
그때 콧대가 높은 까칠해 보이는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누구십니까?”
“쇼팽.”
“…… 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렸던 그 쇼팽.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환상곡, 야상곡, 왈츠, 협주곡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해냈다.
하늘의 시기를 받는 천재적 예술가답게 폐병으로 3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낭만적 기질과 폴란드 전통 민중 서정성, 고혹의 선율, 격렬한 격정, 아름다운 화성과 깊은 고뇌는 여전히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제2의 모차르트라 불렸던 피아노 신동의 표정이 어두웠다.
“인간들에게 접신해 새로운 곡에 대한 영감을 줘도 금세 사라졌다.”
“인간들이 따라오지 못한 겁니까?”
“아니 그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완성했지만…….”
“과거의 우리가 남겼던 이름과 명성에 밀려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없었다.”
멋들어진 빵모자를 둘러쓴 중년의 사내가 나섰다.
이 분도 한 고집하게 생긴 얼굴이다.
“그 말씀은…….”
“후대 인간들 누구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인정하기보다 과거 명사들이 남겼던 발자취만 따르려했다. 더 이상 개척은 하지 않고 과거에 안주해 버렸지.”
“아!”
이해가 퍼뜩 갔다.
새롭게 클래식 협주곡이나 교향곡을 만들어도 과거 대가들과 비교되어 사장됐다는 소리다.
여기 있는 베토벤과 쇼팽만 하더라도 그들을 기리는 콩쿠르나 국제대회가 많았다.
신곡이 판을 뒤엎기에는 이들의 이름이 너무 컸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바그너.”
“네…….”
리하르트 바그너, 그다.
재능이 넘쳤지만 빚도 많이 지고 스캔들을 수없이 일으켰던 대작곡가이자 사상가.
독선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인물로 유명했다.
평화로운 시기도 있었지만 드레스덴 혁명에 가담돼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인생 최고의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역시 창작자들은 배고플 때 역작을 탄생시키는 모양이다.
교양 음악수업을 위해 한 번 읽었던 클래식 역사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다른 음악가들과 달리 인생 후반에 꽃을 피웠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초연되는 극장이 건립되어 헌사 될 정도로 바그너는 인정받았다.
하지만 죽어서 신이 된 그의 모습을 보니 죽으면 다 별수 없는 것 같다.
입고 있던 연미복 단추가 짝짝이다.
비쩍 마른 몸뚱이는 며칠 굶은 몰골이다.
“우리 좀 도와주시오.”
간절한 눈빛을 보이며 선 굵은 이미지의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누구십니까?”
“난 보잘 것 없는 허명을 떨쳤던 라흐마니노프라고 하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세상에 내가 손으로 직접 연주했던 작품의 원작자가 눈앞에 서 있다.
이곳에 있는 신들에 비하면 허명이라고 해도 이상치 않았다.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그와 함께 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손에 들린 악기가…… 탬버린이다.
노래방에 어울릴 것을 손에 든 라흐마니노프를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려 했다.
딱 봐도 여기서 막내다.
라흐마니노프도 파란만장하게 살았다.
낭비 귀족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스탈린을 피해 미국 망명가로 살다 죽었던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큰 왕코를 자랑하며 자신을 알렸다.
“그럼 옆에 있는 분들은…….”
“푸치니라고 하오.”
“베르디.”
“슈만이오.”
“브람스라오.”
“차이콥스키요.”
“생상이라네.”
“…….”
오늘 진짜 대박이다.
고흐나 고갱 신들도 환상이지만 음악계의 거장들과의 만남도 특별했다.
이걸 어디 내놓고 자랑 못 할 뿐이지 영광스러운 자리다.
다만 티를 내지 않았다.
감탄의 찍소리도 흘릴 수 없었다.
“다들 한때 쟁쟁한 분들이로군요.”
무심한 척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한때라는 말을 강조했다.
이곳에서는 내가 갑이다.
장사 한두 번도 아니고 여기서 고개 숙이면 비싼 값에 거래가 된다.
“동생, 우리 좀 도와주게.”
베토벤이 동생이라 부르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생전에는 고집불통의 대가가 이제는 사는 법을 알아버렸다.
“제가요?”
놀라는 척 물었지만 이미 정해진 수순이다.
베토벤을 비롯해 지구 음악사에 획을 그은 분들이 모두 날 봤다.
“우리…… 이제 포인트 다 떨어졌네. 며칠 내로 여기 임대료 못 내면 바로 지상계로 추락이야.”
아! 불쌍한 월세 신세. 그 기분 잘 안다.
마음이 살짝 약해졌다.
“제법 남았던 포인트를…… 싹싹 긁어 그분이 가져가지 않았다면…….”
베토벤이 누군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분이라니요! 도적놈이죠!”
“세상에! 본인이 금방 포인트 불려올 테니 걱정 말고 믿어달라고 눈물까지 흘렸던 가증한 자입니다!”
“아우! 배신자! 잘 먹고 잘 살아라!”
다단계 사기에 당한 것 같은 억울함이 음악 신들 사이에 퍼졌다.
“혹시 모차르트…….”
“맞아!”
“우리 포인트 쪽 빨아서 자기만 인간으로 환생하다니!”
“지가 그렇게 해서 잘 되면 손을 횃불로 지진다!”
원망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때 스승이라고 베토벤만 거들지 않았다.
“도망갔어요? 인간으로?”
“…… 그분도 배고파서 그랬을 거야. 포인트 다 떨어지면 짐승으로 살아야 하니 두려웠을 거야. 미래가 불안하니 어쩔 수 없었지.”
“자기만 떨어지나? 우리도 짐승 안 되려고 피땀 흘려 일했습니다!”
“만나기만 해봐! 그냥…… 알을 깨버릴 테야!”
살벌한 폭언도 이어졌다.
모차르트 다시 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개고생하던 전우들을 버리고 인간계로 도망가다니.
“다들 조용히 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베토벤이 버럭 호통쳤다.
그러자 입을 닫는 신들.
베토벤 파워가 남달랐다.
“동생, 우리 좀 도와주게!”
완전 불쌍한 베토벤과 그 휘하 음악 신들의 눈동자가 날 향해 꽂혔다.
아우! 나 마음 약한 걸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드려요? 제 포인트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여러분들 다 도와주기에는…….”
“내 재능을 사가게!”
브람스 아저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 재능도 팔겠네! 아주 싸!”
“피아노 소나타가 100개도 넘네!”
“교향곡! 실내악! 합창곡! 말만 하게! 원가 아니 몽땅 99프로 할인!!”
“난 99.9프로!!!”
포인트 얘기가 나오자 신들 눈이 돌아갔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지만 경쟁이 치열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팔 물건은 넘치는데 매입자가 나뿐이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함은 시장의 법칙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고 서 있는 베토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싸게 후려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신들과 내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노바 형님처럼 장기 계약 맺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다.
내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그건 역량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재능을 가져다 사용하기에는 클래식 업계 판이 작았다.
그렇다면…….
갑자기 떠오르는 번뜩이는 생각 하나.
“저기요~.”
선택을 받기 위해 초롱초롱 크게 눈을 뜬 음악의 신들이 날 봤다.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작곡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이용하면…….
“다들 알바 안 하시렵니까?”
“아, 알바?”
“그게 무슨…….”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 신들을 바라보며 나와 인연 있는 신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진이 누님~. 바쁘세요? 잠깐 저 좀 봐요.”
파아앗!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에서 빛이 터졌다.
# 13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