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7
146장. 플랜 B가 있다.
잊고 있었다.
아니 잊고 싶었다.
만약 내가 회귀하는 지점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군 제대 후 첫날을 찍었을 것이다.
회귀했지만 군대는 끔찍했다.
나 때만 해도 화장실에서 처맞았다.
잘난 놈, 못난 놈, 이상한 놈, 신기한 놈들이 모여 사는 이상한 나라의 꿈동산 같은 곳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우정과 동료애, 존경과 헌신을 경험할 수 있지만 싫었다.
군대는 지난 생 한 번으로 족했다.
자유가 없는 24개월.
얼마나 지독했는지, 여자 친구와 첫 키스를 했던 날보다 더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제대 날이었다.
“대표님, 신검이…… 뭐요?”
또 잊고 있었다.
내 앞에 유 팀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동안 나이를 철저히 숨겼다.
비행기 표를 예매해도 최종 결제는 내가 했다.
호텔 예약도 마찬가지였다.
유 팀장에게는 나이를 속였다.
언제가 들통날 일이지만 왠지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의도치 않게 일이 발생했다.
엄마와 통화는 잘 끝냈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이 신검 날짜라고 일찍도 알려줬다.
주소가 집으로 되어 있어 부모님이 받은 것이다.
대한민국 남아라면 꼭 다녀와야 하지만 결코 두 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검 통지서 나왔다고 합니다.”
감추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이제 눈치 빠른 유 팀장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 신검요.”
유 팀장이 쿨하게 말했다.
뭐지? 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은?
“대표님은 1급 나올 것 같아요. 딱 봐도 해병대나 특전사 가시면 어울릴 것 같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1급을 말하는 유 팀장.
순간 벙쪘다.
“…… 유 팀장님, 혹시…….”
“나이를 어떻게 알았냐고요?”
고개가 저절로 끄덕였다.
나름 감춘다고 했는데 들킨 모양이다.
“푸흐흐. 대표님이 아직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관심이 있으면 여자들도 남자 못지않게 정보를 엄청 모은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잖아요. 남자가 여자를 꼬시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남자에게 꼬리를 먼저 치는 거라고 말이에요.”
그 조언 들어서 안다.
“대표님이 수상하기는 했어요. 비행기 표나 호텔 예약만 부탁하고 직접 결제하셨잖아요. 그리고 무슨 피자와 부식비가 달에 수백만 원씩 나오나 의심도 했어요.”
“아!”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만 회사에 출근하는 것도 충분히 의심받을 일이었습니다.”
“…….”
이거 완전 허점투성이다.
나만 완벽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대 법대 다닌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검색했죠. 사시는 지역은 대충 아니까 고등학교 검색해보니…… 딱! 장주고등학교 자랑스러운 건아 한국대 법학과 합격!”
끝났다.
요즘 느끼는 게 많다.
여자들은 어쩜 저렇게 다 알고도 태연할 수 있을까. 유세라 팀장을 보면서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이제 갓 스물이라는 걸 알고도 대표님이라 부르며 얼마나 깍듯하게 대했던가 말이다.
“하, 하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미안합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의였습니다.
“제가 어리다고 놀릴까 봐 그러셨어요?”
“비슷합니다.”
“피이~ 여자들이 얼마나 계산적인지 모르죠? 이런 회사 대한민국에 없어요. 대표님이 중학생이라고 해도 저 이 회사에 남았을 겁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유세라 팀장님은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하죠. 저 이 회사에 뼈 묻을 겁니다. 대표님도 좋아요.”
눈웃음을 짓는 유세라 팀장이 오늘따라 무섭다.
회귀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유세라 팀장은 전생의 여자 친구들보다 레벨이 훨씬 높았다.
아니 내가 쪼렙이 확실했다.
“대표님 군대 가셔도 저 고무신 거꾸로 안 신어요. 편지뿐만 아니라 다달이 면회 가도 되죠? 나이 많다고 구박하면 안 되는 거 알죠?”
뭐지 나 군대 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의미심장한 말투는?
유세라 팀장이 날 보고 웃는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고 그 마음은 태평양보다 깊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온시은은 유세라 팀장에 비하면 참 순수했다.
“면회 안 와도 됩니다.”
유세라 누나 착각도 자유다.
나 장태산이다.
활짝 웃었다.
군대 따위에 쫄 내가 아니라는 걸 유세라 팀장은 몰랐다.
“네? 제가 싫어요?”
그건 아니다.
유세라 팀장은 충분히 매력 있는 인재다.
전생 군대 유경험자로 예상해 본다면 유세라 팀장 정도면 사단 병사들 정도는 줄 세울 수 있다.
“저 군대 갈 생각 없습니다.”
“네? 그럼…… 도망가시려고요? 사법시험 패스해도 장교로 가야 하는데…….”
유세라 팀장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다.
대한민국에서 병역 미필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켜보십시오. 절대 군대 안 갈 겁니다!”
플랜 B는 언제나 가동 준비 중이다.
회귀한 첫날 이미 난 모든 계획을 세웠다.
후후훗.
***
“그 새끼 고향에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있습니다요.”
“흐흐. 그렇다 이 말이지.”
“어떻게 할까요?”
“경호업체 애들은 안 따라갔어?”
“혼자 가고 있습니다.”
“그럼…… 잘 따라가라. 그놈들 보낼 테니까.”
“알겠습니다.”
“들키지 마라. 그 새끼 주먹 좀 쓴다고 하더라.”
“형님. 걱정 마십시오. 설마 애새끼한테 처맞겠습니까. 저 혁수입니다! 최혁수!”
“조심해 임마. 회장님께서 광주한테 실력 좀 보이고 싶어 하시니까.”
“흐흐. 저만 믿으십시오.”
“그래 알았다. 쭉 따라가면서 연락해라.”
“넵! 형님!”
강남하나회 상무 한동철은 핸드폰 종료 버튼을 누르고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회장 구광필의 지시에 따라 그놈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광주가 회장을 찾아와 울며불며 억울함을 토했다.
소속사 계집 하나가 사고를 치고 잠수를 타더니 급기야 스폰 받아서 계약서를 털었다고 말이다.
구광필은 이광주가 필요했다.
언론사와 정재계의 연줄이 모두 이광주를 통해 관리됐다.
불법적인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도움이 많이 필요했다.
적당한 사건 같은 경우는 밑에 애들 몇 감방에 보내고 끝낼 수 있었다.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 이광주를 도우라 명했다.
어차피 공짜는 아니다.
사건 처리가 완료되면 이광주가 심심치 않게 서비스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녀석 신변에 청부가 들어왔다.
목표는 제거.
상당한 금액을 불렀다.
회장 몰래 한동철에게 개인적으로 들어온 사주였다.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어린놈이 대단한 이들을 적으로 두고 있다.
“장태산…… 이 새끼 묘한 놈일세. 어린놈이 사업체도 소유하고 있고 주먹질도 잘하고…… 한국대 법대까지 다녀? 운발 끝장나는 놈이네.”
한동철은 정보력을 동원해 획득한 정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서울에서는 놈을 칠 기회가 없었다.
학교, 집, 회사만 뺑뺑이를 돌았다.
가끔 술자리를 갖기도 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으로만 다녔다.
가장 믿을 만한 부하를 붙였다.
이광주가 톡 찍어서 장태산 아킬레스건을 끊어 달라고 요구했다.
거기에 더해 다른 쪽은 목을 원했다.
“네 운발도 이제 끝이다. 고향이 묻히기에는 딱이지. 흐흐흐.”
힘 좀 쓴다는 사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애들로 준비했다.
결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화끈하고 뜨거운 놈들이 장태산의 목을 노릴 것이다.
장태산의 마지막 가는 길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곧 원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될 것을 한동철은 의심하지 않았다.
***
“오빠아아아아!”
“너무한 거 아냐? 이 깜찍하고 귀여운 여동생들 보고 싶지 않았어?”
“깜찍이 아니라 끔찍 아닌가?”
“꺄아아악!”
“와아아아아…… 우리 이제 현실 남매 되는 거야! 사랑이 식은 거지!!!”
농담 한마디에 여동생들이 난리가 났다.
하루가 다르게 쌍둥이들은 여자가 됐다.
내 여동생들이지만 참 미인이다.
엄마를 닮아 키도 크고 날씬했다.
“공부는 잘 돼?”
“뭐야? 동생들 보자마자 공부가 잘 되냐고?”
“건강하냐. 누가 괴롭히는 놈은 없냐? 이런 걸 물어야지.”
주아도 성격이 많이 활발해졌다.
주희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했다.
“장주시에서 우리 쌍둥이 건드릴 멍청한 놈은 없을 건데? 오빠 친구들이라면 모를까~.”
“오! 오빠 똑똑한데?”
“오빠 친구들 왜 그래? 아버지 일 도와주면서 다들 사위라고 하고 다녀.”
친구 녀석들 참 욕심도 많다,
“누누이 말하지만 내 친구들은 안 돼! 절대!”
“왜 안 돼? 되게 착한 거 같은데?”
“속으면 안 된다. 그 녀석들 심장에는 못된 음란마귀들이…… 수십 마리나 들어 있어!”
“꺄아악! 꺅!”
“오빠아!!!!”
아직은 순수한 여동생들의 영혼에 내 친구들에 대한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물론 그 나이 때 다들 그러겠지만 같은 길을 걷던 동료(?)로서 절대로 안 됐다.
내로남불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쌍둥이들은 피를 나눈 형제였다.
“저녁에 친구들 불러. 오빠가 맛있는 거 해줄게.”
“으헤. 정말?”
“오빠!!! 짱짱!”
내 요리 실력을 아는 녀석들 표정이 대번에 풀렸다.
“이따 보자.”
“응. 오빠~.”
신검 받으러 장주시에 왔다.
부모님은 저녁에 아파트에 오기로 했다.
여동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 집으로 왔다.
“흐음~ 좋다.”
서울 집과는 달랐다.
도도하게 흐르는 장주강이 시원하게 보였다.
“으갸갸갸.”
힘껏 기지개를 켰다.
고향에 오면 묘하게 긴장감이 풀어졌다.
파아아앗!
“어? 어어어어!”
갑작스럽게 신들이 나만 부르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 14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