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55
154장. 보스는 괴로워.
– 추억들……♫.
달빛은 당신 얼굴에서 빛나고 있네요~♪.
뮤지컬 캣츠의 메인 테마곡인 ‘메모리’가 스피커를 타고 조용히 울렸다.
휘리리리링.
열어놓은 창문으로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쳐왔다.
촤르릇 철썩 촤르르르르 철썩.
홍콩의 바다가 오늘따라 거칠고 요란스러웠다.
– 기억하고 있어요…… 추억들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모두 타버린 연기만 남은 지난 시간들…… 아침은 차갑고 오래된 향기가 납니다~♫.
애절한 가사가 바람과 파도 소리와 섞여 공간을 지배했다.
“흐윽…… 흡…….”
슬픔을 억누르며 클라라는 서럽게 울었다.
침대에 온몸을 묻고 울고 또 울었다.
– 저는 해를 기다려야 해요. 저는 제 새로운 인생들을 기다려야만 해요.
여주인공 캣츠의 노래가 클라라의 심정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노래를 듣고 또 듣고 들었다.
가슴에 알알이 박힌 가시처럼 클라라를 괴롭혔다.
결코 진한 사랑은 아니라 생각했다.
과거 겪었던 만남처럼 청춘열병이라 취급했다.
만남도 길지 않았다.
뜨거웠다 해도 키스마저 몇 번 안 했다.
열정을 불태웠던 스무 살 사랑에 비하면 그 남자와의 추억은 얕았다.
하지만 닥치고 보니 아팠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그의 미소, 넓었던 품, 반짝이는 눈동자 모두 되살아났다.
그가 머뭇거릴 때 클라라도 계산을 했다.
가문의 일과 미래를 짐작하기에 뜨겁게 다가가지 못했다.
고민하는 그 남자를 지켜만 봤다.
손을 내밀어 안아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순간만 사랑하자 말했지만 스스로의 변명일 뿐이었다.
클라라는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을 끝낼 때가 되었다.
내일이면 결혼 상대자가 찾아올 것이다.
갑작스러웠지만 과거부터 아버지는 누누이 말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귀족 가문의 여식이었지만 가문을 위해 홍콩 남자와 결혼했다.
엄마도 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감춰놨던 비밀 편지를 클라라는 봤다.
행복한 척하지만 엄마가 가끔 바다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클라라는 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시작된 사랑은 잘못 채워진 첫 단추와 같았다.
이제 그 길을 클라라도 걸어야만 했다.
– 기억은 홀로 남겨지겠죠……. 제 모든 일을 이해하게 될 거예요.
어느새 노래는 끝나가고 있었다.
클라라의 흐느낌도 잦아들었다.
클라라가 선택한 삶이다.
태어나자마자 정해진 운명의 길이라지만 클라라는 기꺼이 감수했다.
– 보아요.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어요…….
마지막 가사가 끝났다.
클라라 울음도 멈췄다.
이제는 마음에서도 떠나보내야 할 때였다.
“안녕. 다니엘…… 많이 사랑 못해 미안해.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 그때 죽을 때까지 사랑하자…… 영원히.”
클라라는 주문을 외웠다.
한국에 다녀온 이후로 이별을 준비했던 클라라는 이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꿈꿨던 중국몽.
그 꿈을 위해 클라라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랑도 좋지만 아버지는 클라라에게 더 소중한 분이었다.
***
“크흐흐흐. 장 대표 진짜 좋다.”
조 변호사님 입이 찢어졌다.
자가용 비행기가 대기 중인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처음 타 봐요? 애도 아니고…….”
“장 대표! 자가용 비행기는 아무나 타는 게 아니지! 넌 애도 아닌데 자가용 비행기 왜 타냐!”
둘 다 애가 됐다.
로버트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정신없었다.
지시할 일들이 많았다.
하관우 이사에게 나를 믿고 계속 일을 추진하라고 말했다.
그 말에 그는 두말하지 않았다.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저것 따지는 부류는 나와 맞지 않았다.
인생 다시 사는 나에게 기업실적이나 펀드멘탈 주가 방향을 논한다면 공자님 앞에서 천자문 논하는 것과 같다.
투자방향성은 명확했다.
조언자가 아닌 손발이 필요할 뿐이다.
“장 대표. 나야 비즈니스라지만 월요일부터 학교 땡땡이야? 법학과 교수님들 깐깐한데 괜찮냐? 학생은 공부가 본분인데…….”
이 양반 날 까는 것 같다.
학생 고용주 앞에서 자기는 뻔뻔하게 비즈니스란다.
슬쩍 걱정하는 척하며 ‘학생 주제에!’ 라고 강조했다.
“모르셨군요. 저 수업 면제입니다.”
그러나 안 통했다.
“뭐! 수업 면제! 그런 게 어디 있어! 교수님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게 가능해?”
나만 가능했다.
미대와 음대 교수들이 면제권을 내놓았다.
미대 교수들은 각종 미술대전에 출품할 작품 세 개를 제시했다.
완전 땡큐다.
집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품들이 100점이 넘는다.
심심하면 붓 잡고 그림 그리는 맛이 괜찮았다.
음대 피아노와 바이올린, 작곡가 교수들에게 친절하게 악보 하나씩을 선물했다.
피아노과 야울 라이헤르트 교수에게는 라흐마니노프의 30분짜리 피아나 소나타를 던졌다.
악보를 훑어보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 열정에 불이 붙게 만들어줬다며 인생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애처럼 울던지…….
라이헤르트 교수가 존경하던 라흐마니노프가 이름이 길다고 돌쇠로 개명한 건 모르는 것 같다.
진이 누님 클럽에서 돌쇠가 요즘 핫하게 잘 나갔다.
이름이 찰지고 귀엽다나?
그걸 본 다른 신들이 마당쇠, 껄떡쇠, 변강쇠로 이름 바꾸겠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유행 한참 지난 이름들이 다시 회자됐다.
신계 트렌드가 복고라던가?
팁 포인트에 다들 웃겨 죽었다.
그러한 신들의 현재를 모른 채 라흐마니노프의 재림이라며 재림한 신 보듯 악보를 경배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얼마나 속으로 혀를 찼는지…….
바이올린 교수에게도 쌈빡한 슈만 형님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하나를 건넸다.
거기도 경악과 찬양은 마찬가지였다.
차신우 교수에게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악보를 건넸다.
그걸 받아들고 차신우 교수가 벌벌 떨었다.
베토벤이 클래식을 버리고 유흥업계에 투신했다고 말을 못했다.
환상을 깨는 나쁜 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약이다.
믿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컴퓨터 공학과 수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앱 하나 개발하면 바로 학점 보장이다.
“전부 A+ 받기로 약조 받았습니다.”
“장 대표. 구라 치지마. 한국대 교수님들 자존심이 얼마나 높은데 A+? 나도 겨우 평균학점 B-로 졸업했어!”
학교 졸업한 세월이 한참인데 아직도 교수님이란다.
그런데 학점이 B-?
조 변호사님 갈굼 목록이 최신 버전으로 갱신됐다.
“그래요? 학교 참 성실하게 다니셨습니다.”
흠칫.
그제야 실수를 알아챈 조 변호사님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기억 속에 조 변호사님은 B- 대학생이다.
“법, 법대생들은 사시를 보잖아. 학점이 뭐가 중요해. 패스하면 끝인데…… 하, 하하하.”
웃음이 나오나?
검사라는 양반이 밑장을 잘못 깔았다.
“학생은 공부가 본분이라 하지 않았나요? 평균 B- 학점이 공부를 논하기에는 모순 같지 않습니까?”
“우리 때는 학점이 진짜 엄격했어!”
“절대평가라 학점 남발할 때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 출석만으로도 B-는 먹고 들어갔다 들었습니다. 아닙니까?”
“……우리 때는 안 그랬다니까……”
팩트 증거에 조 변호사님이 꼬리를 말았다.
항복의 표시.
이때는 적당히 받아줘야 했다.
중년 아재 기죽여서 하등 쓸데없다.
“다른 직원들은 출발했습니까?”
“걔들은 인천공항에서 비즈니스 탔다. 아주 입이 찢어졌다. 나 때만 해도 미국행이라면 이코노미 좌석도 감지덕지였다.”
앞으로 미국 담당 삼우 로펌 변호사들은 일반 항공기를 이용했다.
임원급도 아닌 변호사들을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해줬다.
아깝지 않았다.
직원들 복지가 쌓여 행복하면 그게 다 포인트다.
“그런데 비행기 언제 오는 거야? 정말 오는 거 맞지?”
“지금쯤이면…….”
그때 입국장 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를 발견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다니엘 님!”
로버트 라이언이 다가와 고개를 깊이 숙였다.
평등한 인격을 추구하는 아메리칸 문화와 달랐다.
그 사이 많이 변했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완성한 회색 슈트가 멋졌다.
구두부터 시계까지 액세서리가 완벽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CEO 포스다.
돈이 사람을 만든다는 가설이 증명됐다.
처음 만남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모든 걸 잃고 한강에 입수해도 이상할 것 없던 중년 사내가 이제는 매력 뿜뿜 아재가 됐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병풍 둘.
키가 나보다 컸다.
검은색 슈트에 선글라스를 꼈다.
누가 봐도 힘 좀 쓰는 보디가드다.
최종 면접은 내가 봤다.
관상은 외국산과 국내산을 가리지 않았다.
그린베레 출신에 훈장까지 받았던 입지전적의 용사들이다.
“로버트, 직접 왔군요.”
“다니엘 님을 뵙고 싶어 직접 찾아왔습니다. 다들 인사드려. 목숨으로 지켜야 할 회사의 VVIP님이다.”
밖에서는 보스라 부르지 말라 명했다.
동양인에 나이 어린 내가 보스라 불리면 누가 봐도 수상했다.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VVIP!
어감이 귀에 착 달라붙었다.
병풍 보디가드들이 고개를 숙였다.
흡족했다.
로버트는 처음 그대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마음이 흐뭇했다.
인재를 키우는 맛이 이런 것 같다.
로버트가 벌어주는 포인트도 만만치 않았다.
2008년 미국은 백수들이 사방에 넘친다.
그들을 채용할 때마다 포인트가 따박따박 저축됐다.
난 돈으로 포인트를 벌고 포인트는 신들의 능력을 쪽 빨아오는 미끼가 됐다.
포인트 교환소장 자리는 앞으로도 못 내놓을 것 같다.
모차르트를 통해 배웠다.
포인트로 인간이 될 수 있는 환생 기회도 구입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장 대표…… 이분들은.”
깜빡 잊고 있었다.
조 변호사님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해외 사업 파트너인 로버트 라이언 이사입니다.”
내 앞에서만큼은 로버트도 이사 신분이다.
하관우 대표에게 제대로 배웠다.
조직은 위아래 기강이 제대로 서야 한다고 말이다.
“로버트 인사해요. 한국 법률파트 책임자 변호사 윤태 조입니다.”
조 변호사님도 기본 영어는 할 수 있기에 간단하게 소개를 마쳤다.
“반갑습니다. 로버트 라이언입니다.”
“조윤태 변호사라고 합니다.”
둘은 손을 잡았다.
그런데 두 사람 뭐야?
손에 왜 저렇게 힘을 주는 거야?
이마에 핏줄이 반짝 일어날 정도로 아귀에 힘을 주는 두 사람.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부들부들 손이 떨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과도한 충성 경쟁~!
보스는…… 괴롭다.
# 15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