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60
159장. MoMA에서 (1)
“샴페인 맛이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제대로 샹파뉴에서 제조된 녀석이군요.”
“네?”
로버트는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포도주는 적포도주와 화이트 와인 밖에 모르던 보스다.
취항 파악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보스는 몰랐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문가 냄새가 난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디저트 와인으로 샴페인을 요구했다.
“코르크 마개를 딸 때부터 매력적인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아련한 김까지 피어올랐죠. 유리알처럼 맑은 투명한 기포, 그 지역 흙냄새가 배인 특별한 향기까지 품은 녀석은…… 최고급 스파클링 와인의 생산지인 샹파뉴 산 밖에 없습니다.”
“아!”
로버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상표를 보지도 않고 보스는 엄청난 걸 짐작했다.
와인 테이스팅 자세도 완벽했다.
식사에서 테이블 매너를 숙지하지 못하면 상류 사회에 진출할 수 없었다.
유년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으로 그 사람의 격을 평가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보스는 상류사회에 진출하고도 남을 정도로 자격이 돼 보였다.
글라스에 채워진 와인을 먼저 눈으로 색과 투명도를 확인했다.
그 다음에 코로 향을 흠향했다.
마지막에는 가볍게 입에 한 모금 머금고 맛을 느꼈다.
거의 동시에 나오는 와인 품질 평가.
“콩테 치즈도 숙성이 훌륭합니다.”
‘콩테 치즈까지! 역시 보스다!’
프랑스 3대 치즈인 까망베르, 브리와 함께 콩테는 역사가 깊다.
천 년 전부터 프랑스 알프스 지방 콩테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암소 젖으로 5개월에서 12개월 정도 숙성된 콩테 치즈는 특유의 고소한 호두향과 꽃향이 풍미를 더했다.
매년 생산되는 치즈 중 5프로 정도만 품질 기준을 통과할 만큼 기준도 까다로웠다.
샴페인을 마시며 콩테 치즈로 마무리하는 보스는 와인을 사랑하는 귀족 같았다.
“순수한 백악질 토양 최고 등급의 그랑 크뤼에서 잘 자란 포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우아함과 섬세한 느낌을 보니 샤르드네 품종을 사용한 리저브 와인으로 블렌딩 되지 않는 순수 빈티지 샴페인입니다. 맞나요?”
“……저도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놀람과 감탄에 이어 기분 좋은 충격이 로버트의 뇌리를 강타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마스터 소믈리에 수준이다.
와이너리 집안답게 와인을 공부했던 로버트가 당황할 정도다.
“친환경 포도밭 포도입니다. 인공적인 냄새가 없습니다. 분쇄, 압착, 발효와 여과, 숙성, 병입까지 완벽합니다. 2차 발효 때 리쾨르 드 티라주까지 최고의 적정선을 유지했습니다. 흐음…… 마실수록 좋군요.”
“자, 장 대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같이 와인을 음미하던 조윤태 변호사는 보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장태산이 분위기가 또 변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인 대학생이다.
한국대 법대에 다니는 수재라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이 정도 와인 지식에까지 해박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조윤태도 포도주를 마시지만 이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소믈리에를 만나보지 못했다.
“르뮈아주, 데고르주멍, 리쾨르 덱스페디시옹까지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됐고 당도는…… 드미 섹 수준으로 달콤합니다. 고집스러운 네고시앙이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녀석이군요.”
“…….”
나름 미국 상류 사회를 경험한 로버트는 침묵을 유지했다.
끼어 들어봐야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것 밖에 안 됐다.
이 정도라면 와인의 신이다.
“숙성 기간은 5년, 프레스티지 뀌베 등급입니다. 로버트 이 와인 생산지를 인수하고 싶습니다.”
“네?”
“상파뉴 지역의 샴페인 하우스 몇 곳을 알아봐 주십시오. 그랑 퀴리 등급의 토질에서 생산돼야 합니다. 랑송 같은 이름 있는 하우스라면 더 좋겠습니다.”
보스가 와이너리에 본격적으로 욕심을 냈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의 역사 때문인지 몰라도 와이너리에 자꾸 욕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스의 허락 없이는 투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늘 그 제한이 풀렸다.
“아! 이왕이면 와이너리 전문 투자 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각 대륙별로 명망 있고 특별한 역사와 맛을 소유한 와이너리 구매 목록을 작성하십시오.”
“투자입니까?”
“물론입니다. 팰튼 호텔 안정적 공급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 시장 선점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국 시장요?”
“중국인들이 언제나 백주를 마실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차에서 커피로의 이동뿐만 아니라 술 취향도 와인으로 바뀝니다. 상류층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할 재료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각종 명품, 스위스 고급 시계 개중에서 허영의 부를 상징하는 고급 와인 투자 사업은 블루 오션입니다.”
거침없는 투자 의견에 로버트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침 식사 후 가볍게 툭툭 던지는 사업 정보가 모두 알찼다.
보스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흘려들을 게 없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진정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금융 위기가 전파되면 괜찮은 와이너리들이 매물로 등장할 겁니다. 그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세계적 1등급 경작지는 소유, 2등급은 호텔 및 시장 공급용, 3등급은 매물용으로 구입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허영과 과시욕이 강한 중국 투자자들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 와이너리를 탐할 게 확실합니다. 걔들이 졸부들답게 머리가 단순합니다. 사모투자 펀드를 이용해 구매하십시오. 몇 년 후에 최소 몇 배 이상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뜻대로 투자하겠습니다.”
‘뜻대로? 도대체 장태산 너는 어디까지가……!’
몇 마디 고급 경영 단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윤태도 눈치가 빨랐다.
투자 자문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임을 감 잡았다.
로버트 이사가 저자세로 장태산을 대하는 모습은 더욱 수상했다.
시칠리아 깡패 두목을 대하는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출발합시다.”
“준비 됐습니다.”
장태산이 움직이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누구도 장태산을 하대하거나 밑으로 보지 않았다.
보스.
장태산은 여기 모인 이들의 리더가 분명했다.
***
슈우우우우웃.
미국은 역시 넓었다.
자가용 비행기가 없었다면 비즈니스를 진행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맨해튼이 위치한 동부 뉴욕까지 거리는 자가용 비행기로 6시간이 걸렸다.
미국 국토를 횡단하는 기분이 새롭다.
환생 전에는 한국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벅찼다.
그랬던 인생이 이제 홍콩에 이어 미국에 깃발을 꽂을 차례다.
“장 대표 어제 와인 공부했어? 밤도깨비랑 거래라도 한 거야? 왜 이렇게 똑똑해졌어?”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조 변호사님이 아침 일에 대해 물어왔다.
자기보다 와인 지식이 없었던 내가 밤새 공부한 줄 안다.
로버트 고조할아버지를 신선계로 보냈다.
앞으로 로버트가 벌어들인 카르마 포인트라면 그곳에서 충분히 부유한 생활을 할 것이다.
그 대가로 난 포도주의 신이 됐다.
코너 라이언은 귀신이어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상의 포도에 대해서 모두 다 알았다.
“뉴욕은 어떻습니까?”
말을 돌렸다.
“뉴욕 참 좋은 곳이지.”
“가 보셨어요?”
“흐흐. 물론이지. 퇴직 기념으로 사랑하는 마누라와 30박 31일을 미국에서 보냈다.”
마누라를 사랑한다는 양반이 여승무원과 그렇게 귓속말을 해?
오늘 밤도 술 한잔 같이 마시자는 말을 건넸을 게 뻔했다.
“한때 수도였으며 미국의 상업, 금융, 무역의 중심지다.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 박물관 등이 있는 미국 문화의 핵심 지위를 가지고 있다.”
누가 엘리트 출신 아니랄까 봐 세세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UN 본부가 뉴욕에 있는 건 알지?”
“초딩도 압니다.”
“장 대표도 들어봤을 거다. 뉴욕은 맨해튼,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스, 스태튼 섬의 다섯 구역으로 이루어졌다. 맨해튼 중심에 우리가 오늘 가는 월가가 있다. 브로드웨이와 할렘가도 맨해튼 구역에 있다.”
“누가 보면 뉴욕 홍보대사인 줄 알겠습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서 뉴욕만큼 도시가 발달한 곳은 없다. 뉴요커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야. 뉴욕은 세계 도시 문화의 중심지다.”
그뿐만 아니라 뉴욕이 최대 항구 도시라는 것과 미국 수입 총액의 반절과 수출의 3분의 1이 대항만을 통한다는 것쯤은 안다.
“오오오! 보인다 보여! 캬아! 자가용 비행기로 보니까 맛이 새롭네.”
조 변호사님이 감탄을 터트렸다.
창밖으로 뉴욕이 보였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출발했는데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3월 둘째 주 썸머타임이 적용되면서 시간이 변경됐다.
2001년 9.11테러로 붕괴된 후 신축되고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작년에 완공된 뉴욕 타임스 타워, 신축 중인 1WTC 빌딩, BOA타워, 그리고 그 유명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미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빌딩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뉴욕에 왔음이 실감났다.
“라과디아 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로버트가 목적지를 알렸다.
“케네디 공항으로 안 가?”
조 변호사님이 궁금한 듯 물었다.
로버트와 포도주 마시더니 친구가 됐다.
“그곳은 이착륙이 복잡해. 라과디아 공항이 맨해튼에 가장 가까운 공항이야. 자가용 비행기는 대부분 그곳을 이용해.”
기체가 지상에 조용히 착륙했다.
“타십시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리무진이 대기 중이다.
로버트가 돈 쓸 줄 안다.
“숙소는 팰튼 호텔로 잡았습니다.”
당연한 일이다.
팰튼 호텔을 비싼 돈(?) 주고 구입한 이유는 여행지 숙박용이다.
콘도 그 이상 의미는 없다.
아는 분들 해외여행 인심 쓰기 딱 좋다.
조만간 항공사도 하나 인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우수수 진흙바닥에 떨어지는 세계적 대기업들 천지였다
리무진은 빠르게 맨해튼으로 진입했다.
금요일 저녁 러시아워가 막 시작될 즈음 운 좋게 호텔에 도착했다.
“스위트룸으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잠깐 가볼 곳이 있습니다.”
“네?”
“장 대표 어디 가려고?”
로버트와 조 변호사님이 약속이나 한 듯 물었다.
갑작스런 행선지 변동이 궁금한 것 같았다.
“금요일이라 MoMA가 오후 8시까지 개장 시간이라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입니다. 걸어서…… 몇 분이면 됩니다. 보디가드들과 동행하십시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총 맞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로버트도 쉬십시오.”
“MoMA라면 뉴욕 현대 미술관? 장 대표 그림에도 관심 있었어?”
관심이 아니라 신의 능력을 카피한 도적이 아는 체하는 수준이라고 하자.
“취미생활입니다.”
“오! 와인에 이어 그림이라…… 인생 혼자 멋지네! 제대로야!”
멋진 게 아니라 그림 신들의 진정한 혼이 담긴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일당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승진한 여러 그림 신들.
그들의 작품이 뉴욕 현대 미술관에 있었다.
“필요하시면 바로 호출해 주십시오.”
“수고했어요. 로버트.”
“장 대표 나 먼저 쉰다. 이제 나이를 먹어 장거리 여행은 무리네.”
속 다 보입니다! 조 변호사님!!!
자가용 비행기 승무원들도 뉴욕에 도착했다.
늦게 배운 도적질이 참 무섭다.
도어맨이 차문을 열었다.
허드슨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뉴욕 공기에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내일 아침에 보도록 하죠.”
“장 대표. 뉴욕엔 미녀가 많아! 여자 조심해!”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저으며 길을 나섰다.
맨해튼 지도가 머리에 떠올랐다.
호텔 옆으로 미국 경제 심장을 상징하는 고층 빌딩들이 불을 밝혔다.
휘황찬란 그 자체다.
거리에는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붐볐다.
퇴근 시간이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들이 대화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아메리칸 패션의 메카 뉴요커들의 분위기가 신선했다.
그들에 섞여 MoMA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도보 2분 거리였다.
건물은 길가에 위치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금요일 저녁 시간이라 미술관은 사람들로 복잡했다.
줄을 서 있다 표를 끊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다.
“고, 고객님…… 전속 큐레이터로 모시겠습니다!”
이런, 로버트가 줬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를 꺼냈다.
표를 끊던 여직원이 몹시 당황했다.
맨해튼에서도 블랙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됐습니다. 혼자 구경하고 싶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맨해튼에서도 블랙카드는 먹혔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대단히 친절한 직원에게 미소를 짓고 미술관에 들어갔다.
그림 신선들의 작품은 5층에 있었다.
걸음도 가볍게 걸어서 올라갔다.
그리고…….
“음!”
눈에 딱 들어오는 고흐 신선의 별이 빛나는 밤.
직접 보니 감동이었다.
그림 파일이 아닌 실제 눈으로 보게 된 고흐 신선의 역작.
그림에 담긴 기가 가슴에 확 꽂혔다.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웠다.
고흐 신선의 인간계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
그림 왼쪽의 검은색 사이프러스는 무덤과 애도를 의미했다.
고흐는 죽음을 불길하게 여기지 않았다.
고갱과 다툰 뒤 귀를 자르고 생레미 요양원에서 그린 역작이 바로 이 작품이다.
비영속적 동적 붓질로 완성된 굽이치는 붓놀림은 영혼을 빨아들였다.
–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고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격렬한 환상적 율동은 강렬한 색과 어울려 오감을 자극하고 감정을 빨아 들였다.
스승으로 모셔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고흐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투영돼 보였다.
“아름다운 작품이죠……. 샛별과 별들의 폭발은 언제 봐도 매혹적인 것 같아요.”
그때 옆에서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여인의 향기가 눈앞의 그림을 흐리게 만들며 영혼을 파고 들어왔다.
# 16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