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72
171장. 씨앗을 심다
“아빠 무슨 일이세요? 오늘 안 바쁘세요?”
“딸내미와 데이트 하려고 귀한 시간 뺐다.”
“됐어요. 그런 시간 있으면 엄마에게 쏟으세요. 갱년기가 가까웠는지 요즘 매번 잔소리를 막 퍼부어요. 아빠가 신경 좀 쓰세요.”
“엄마 좋아하는 봉투로 해결 중이다.”
“저도 그 봉투 좋아해요~.”
손유리는 기뻤다.
이런 날은 요 근래 없었다.
평소 얼굴 보기 힘든 아빠가 강남 맛집으로 호출했다.
리앤장 로펌 이사로 근무하는 아빠는 주말에도 바빴다.
은퇴하신 할아버지 뒤를 이어 대한민국 제일 로펌을 운영 중이다.
“밥 먹고 두툼하게 하사하마.”
“땡큐~ 파파!”
“누가 보면 아빠가 용돈도 안 주는 쫌생인 줄 알겠다.”
“그 용돈하고 이 용돈은 다르죠. 통장에 꽂힌 것과 손으로 직접 받는 맛이 어떻게 같아요?”
손유리가 손으로 지폐를 만지는 제스처를 취했다.
“유리야…… 난 네가 아빠 품에서 까까 사달라고 조르던 그때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으앙! 까까는 아니죠!”
우는 척하며 손유리는 아빠 표정을 보고 활짝 웃었다.
바쁘지만 언제나 가정적인 분이다.
밖에서는 리앤장에 대해 돈밖에 모르는 법률집단이라 말들 하지만 손유리는 믿지 않았다.
아빠는 자상했다.
가부장적인 권위를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
엄마와도 사이가 좋았다.
일이 많았지만 그건 가정을 위한 헌신이었다.
그 덕분에 손유리와 오빠는 풍요롭게 살았다.
“유리야.”
“네~ 아빠.”
“아빠에게 할 말 없어?”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 전에 손대균이 다정하게 물었다.
“어, 어떤 거요?”
손유리는 당황했다.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가끔 귀신처럼 손유리의 감정 상태를 알았다.
“예를 들어 연애 문제라던가…….”
“에휴! 연애는 무슨! 그런 거 없어요! 네버! 절대!”
손유리는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 아직 없지?”
“네…… 아직은요…….”
손유리는 단호하게 대답하면서도 말이 떨렸다.
아직은 없지만 언제나 준비된 상태였다.
그 남자만 OK한다면.
손유리의 표정 변화를 살펴보던 손대균은 살짝 표정이 굳었다 풀렸다.
딸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딸이 흔들리고 있음을.
“유리야.”
“네~ 아빠.”
“휴학하고 몇 년쯤 프랑스로 유학 갔다 와라. 그곳에서 편입해 대학을 졸업해도 된다.”
“네? 유학요? 지금요?”
“유학 가고 싶다고 말했잖아.”
“그래도 지금은…….”
손유리는 망설였다.
견문을 위해 유학을 원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학과 사무실에 알아보니 중간고사 보기 전까지 휴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
“저 학교생활 좋아요. 유학은 졸업하고나…….”
아빠의 갑작스런 말에 손유리는 놀랬다.
“이건 엄마랑 상의해서 결정했다. 다녀와라.”
강하게 말하는 손대균.
“…….”
아빠의 확고한 음성에 손유리는 당황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처음 보는 모습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조금 엄했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자신의 의견을 존중했던 아빠다.
“아빠 전…….”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
갑자기 변한 아빠의 말투에 손유리는 커다란 눈을 떴다.
아주 어릴 적에나 들었던 아버지의 어조다.
한 번 결정하면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아빠다.
엄마도 저 말투가 나오면 두 말하지 않았다.
아빠만의 권위였다.
“이유를 알 수 있나요? 제가 유학을 가야 할…….”
“좀 더 세상을 경험하고 와. 그리고…… 유학 다녀와서 졸업하고 아빠가 정해준 남자와 결혼하면 된다.”
“아빠!!!”
결혼이라는 말에 손유리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손유리가 학교에서 만나던 남자를 아빠가 알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도 허락하셨다. 혹시나 하는 말이지만 가서 말씀드려봐야 달라지는 것 없다.”
“하아.”
손유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막내 손녀딸 말이라면 모든 걸 들어주는 할아버지다.
늦둥이 아들의 딸이었기에 더 예뻐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든 걸 차단하고 통보했다.
“그래 뭐 먹고 싶어? 오늘은 아빠가 다 사줄게~.”
웨이터가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는 손대균.
그 미소에 손유리는 말을 잊어버렸다.
오늘 따라 낯설게 느껴지는 아빠다.
우두둑 마음 속 믿음의 벽에 실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
“일송회…….”
창밖 봉은사 새순의 녹음이 짙어져갔다.
꽃망울들도 여러 곳으로 번져갔다.
한껏 찾아온 봄이다.
그런데 해골이 복잡했다.
도 회장과 밤새워 술을 마셨다.
참치 라면도 끓였다.
소주는 열 병을 훌쩍 넘겼다.
늦은 밤 초청부터 수상했다.
찾아오는 조건이 과속으로 차를 몰며 요리조리 여러 길을 돌아서 오라했다.
절대농지지구로 묶인 낚시터에서는 라이트를 켜고 다가오는 차들이 모조리 파악됐다.
007 작전 저리 가라였다.
그리고 실내 낚시터 안에서 들었던 친일파와 일송회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도 회장은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수십조 추징금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가 정치권에 뿌린 돈 때문이라고 했다.
용돈 푸는 걸 아끼지 말라고 했다.
동시에 정치인과 정치꾼을 구별하라고 팁을 줬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이를 말한다 했다.
정치꾼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인생을 거짓 포장한 자들이라 말했다.
돈을 줘보면 안다고 했다.
“정치인만 한 칼이 없다고? 그건 인정.”
돈으로 되는 건 많지만 돈으로 모든 일이 성사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재벌들이 그래서 정치장학금을 뿌렸다.
탈세와 수천억대 횡령도 집행유예로 풀리는 이유가 다 거기 있었다.
“사업은 과감하게 앞만 보고 달리라고? 그건 탈락.”
IT 발달로 기존 세계 재벌들이나 사업체 순위가 바뀐다.
도 회장님이라고 미래 경제 흐름을 다 아는 건 아니다.
적절히 충고를 듣고 걸렀다.
20세기와 다르게 21세기는 모든 게 변한다.
3차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이 뒤섞여 쏜살처럼 흐른다.
기술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진화했다.
덩치를 키운 공룡기업들이 국가를 뛰어 넘었다.
인공지능이 인간 영역을 파고든다.
과거 경영 방식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안타깝게 2020년까지 밖에 정보가 없다.
그 전에 완벽하게 성을 구축해야만 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철옹성을 세워야 한다.
“되도록 금융권 돈을 끌어내 사업하라고? 그건 더더욱 탈락.”
넘치는 게 돈이다.
해외에서 지금도 잭과 콩나무 못지않게 쭉쭉 크고 있다.
이 부분은 나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 없는 조언이었다.
“일송회가 무서워 도망가신다고…… 다음에는 차비 좀 챙겨드려야겠네.”
일송회고 이송회가 나는 안 무섭다.
걸리면…… 밟고 부숴 버릴 것이다.
도 회장은 오늘 아침 바로 해외로 출국한다.
과거 일송회 정보를 얻다가 정보원들 10여 명이 사라졌다고 했다.
유럽에 자기를 도와 줄 엄청난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언제 시간 되면 소개시켜 준다는 말을 꺼냈다.
평범한 자들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를 보내고 나도 집으로 왔다.
도 회장의 경호원이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내공 한 바퀴 휙 돌리면 알코올 따위는 모두 날아간다.
잠은 자지 않았다.
“그런데 누굴 보낸다는 거야?”
떠나기 전 손을 꼭 붙잡고 도 회장은 취직을 청탁했다.
조만간 자신의 성을 가진 아이가 갈 것이니 반드시 옆에 두고 가르쳐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도 회장도 도깨비 같은 양반이다.
삐이이이이.
“대표님. 조 변호사님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조 변호사님을 불렀다.
자동문이 열리고 조 변호사님이 웃으며 들어왔다.
“장 대표.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보고 싶어서 부른 건 아닐 테고 밤새 사고 친 건 아니지?”
사고는 미국에서 진작 쳤다.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똑똑한 우리 장 대표가 나 같은 변호사에게 물을 일이 뭐 있을까?”
말과 달리 조 변호사님은 호기심을 보였다.
자리에 앉았다.
“리앤장 로펌은 어떤 곳입니까?”
“리앤장?”
“네…… 리앤장. 겉으로 드러난 것 말고 속 깊은 얘기 좀 해주십시오.”
“흐음…… 리앤장이라.”
조 변호사님이 인상을 썼다.
“일단 무서운 곳이다.”
“무서워요?”
“로펌이란 돈을 받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 집단을 말한다. 하지만 리앤장은 그 범위를 넘는다.”
“정치와 재계의 커넥션 고리를 말씀하십니까?”
“그건 당연히 포함되고 다른 게 있다.”
“뭐가 말입니까?”
“콕 찍어서 말할 수 없지만 리앤장은 다르다. 공식적으로는 1970년대 초반 이영문과 장순철이라는 변호사가 설립했다. 법무법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엄밀하게는 조합 형태의 법률사무소다. 그리고 이영문과 장순철 말고 실질적 주인은 손국중이라는 변호사 선배다.”
“손국중 대법원장 말씀입니까?”
“알고 있었어?”
“저도 법대생입니다.”
법대생이라 아는 게 아니라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겨우 찾았다.
놀랍게도 일제 시대 법관을 지낸 양반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간도특설대 장교출신이었다는데 흔적이 없었다.
와세다 대학 법학과 출신의 인재였다.
독립 후 몇 년 동안 쥐죽은 듯이 있다가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승승장구했다.
유신 시절 신군부에 유리한 판결을 선사하며 대법원장에 올랐다.
“은밀하게 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손국중 대법원장이 리앤장의 주인이란다. 아는 똘마니 변호사들을 내세워 로펌을 등록하고 엄청나게 밀어줬단다. 당시 리앤장이 승소 못하는 민형사 사건은 거의 없었다. 대법원장이 까라면…… 다 알아서 깠다.”
엄청난 특혜다.
지금도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는 법관들의 뒷거래 과거 버전이다.
“그리고 손국중 대법관 아들 손대균이 이사로 있다. 한국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사법고시 합격 후 판사로 근무했다. 부장판사까지 재직하다 리앤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사가 됐다. 대충 그림 그려지지?”
확실히 그려졌다.
상장 회사도 아니고 조합이라면 지분 관계를 공시할 필요가 없다.
안에서 자기들끼리 헤쳐 먹기 딱 좋았다.
“건들면 안 되겠네요?”
“당연하지. 솔직히 말하지만 우리 삼우도 걔들한테는 번번이 깨진다. 그래서 웬만한 로펌들은 리앤장과 안 붙는다. 이 새끼들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공격하는데…… 정말 기가 막힌다.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 자료나 전문가들도 끌어들인다.”
“수임료가 비싼 이유가 있네요.”
“당연하지. 나도 뭔 일 터지면…… 리앤장 애들 부르고 싶을 정도다.”
“안아에서 당연히 리앤장에 의뢰하겠네요?”
“아마도. 그래서…… 준비 철저히 했다. 지금 대법원장이 그나마 강직한 인물이라 괜찮은데…… 정권이 바뀌면 판사들도 눈치를 본다. 고등법원 판사 이상으로 승진하려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야 한다.”
현 강용호 대법관과 달리 희대의 정치꾼이 대법원장에 오른다.
법원행정처를 동원해 판사들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법을 좌지우지하려 했던 고승택 대법원장.
2008년 4월 다음 달이면 제18대 총선이 실시된다.
한국자유당이 155석으로 81석의 합동민주당을 시원하게 개박살 낸다.
국민들 투표율도 고작 46.1프로였다.
나도 미팅하느라 투표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합동 민주당.
그에 반해 한국자유당은 153석을 차지했다.
비슷한 자주선진당이 18석, 친조연대가 14석을 가져갔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
희대의 사기꾼이 대통령이 됐다.
그가 임명한 정치꾼이 대법원장으로 임명된다.
국회는 여대야소로 난장판으로 변한다.
자기들끼리 회쳐먹고, 튀겨먹고, 물 말아 먹었다.
삼권분립이 유명무실 엉망이 된 대한민국.
사기꾼이 금수강산을 반 토막으로 만들어 물길을 내겠다고 나섰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이 땅은 두 갈래로 갈라진 섬이 되었을 것이다.
돈 귀신 사기꾼은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조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노하셔서 2018년에 이자 쳐서 뺨 싸다구 날렸다.
“장 변호사님 저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내가? 그래 뭐든 시켜줘! 장 대표 위해서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한다!”
자가용 비행기 효과는 아직도 유효했다.
“씨앗을 좀 심어야겠습니다.”
“씨앗? 뭐? 농사지을 거야?”
언제나 상상력이 순박한 조 변호사님이다.
농사 맞다.
다만 땅이 아닌 사람.
본격적으로 내 사람 좀 사방에 심어야겠다.
# 17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