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8
17장. 조직은 무섭다
“꾀병 그만 부리고 그만 일어나 깡패 새끼야. 피의자 주제에 어디서 검사님이 방문하는데 앉아있어! 내가 초짜 형사 땐 영감님들이 뜨면 다 기립자세가 기본이었어. 인마! 세상 좋아진 줄 알아!”
박동석 이 자식 목소리는 진짜 컸다.
어른이고 형사지만 처음 본 날 이후부터 나를 인간이 아닌 개로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저 자식이 검사야?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가지고 검사는 무슨.
날도 더운데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안경잡이 검사가 마음에 안 들었다.
어차피 딱 봐도 홍장혁의 사주를 받고 온 놈이 확실했다.
지역사회 변호사면 사시 선배였다.
술도 사주고 용돈도 던져주며 형성된 그렇고 그런 관계가 순수하게 보이면 그게 이상했다.
“영장은요?”
입에 침을 튀기는 박동석과 강경준 검사 앞에 당당하게 영장을 말했다.
“여, 영장? 이 똘아이 새끼가 미쳤나!”
박동석이 당황했다.
찔리지? 넌 오늘로 끝낸다.
“신분증을 볼 수 있을까요?”
“후후. 어린놈이 새끼가 별났군. 김 수사관 보여줘.”
“아오! 똘아이 새끼가 어디서 검사님 앞에서 따박따박 말대꾸야! 진짜 뇌진탕 맛 좀 볼래?”
검사의 지시에 뇌진탕으로 절대안정이라는 내 병명을 알고도 손을 들어 올리는 김 수사관이라는 자.
“자 봐라 새끼야. 검찰청 수사관 김동식이다.”
김동식이 품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
인물 사진과 함께 검찰청이라는 글자가 확실히 보였다.
나에게 이럴 정도면 과거는 안 봐도 뻔했다.
전형적인 악성 공무원이다.
“신분 확인은 됐고 영장은요?”
다시 한 번 영장을 강조했다.
“하아, 이 꼴통 새끼? 너 영장이 뭔지나 알아?”
김동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봤다.
그럼 알지 모르겠냐?
나 전직 사시 수험생이야!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기관에서 개인의 신체, 재산에 대한 체포! 구금! 압수! 수색을! 하려면 반드시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12조와 16조에 똑똑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제 말이 부족한가요? 그럼 12조와 16조 전문 다 읊어드릴까요?”
“…….”
갑자기 방안에 침묵이 쌔하니 감돌았다.
“영장은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발부하는 허가장과, 신청 없이 법관이 발부하는 명령장으로 구별된다. 형사소송법상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발부하는 구속영장과 압수, 수색영장 및 사회보호법상의 감호(監護)영장 등은 모두 허가장에 속하며, 형사소송법상 법관이 발부하는 소환장, 구인장, 구류장, 감정유치장, 공판정 외에서 행하는 압수, 수색영장, 검증(檢證)영장, 신체검사영장 및 소년법상 소년부판사가 발부하는 동행(同行)영장 등은 모두 명령장에 속한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 더 설명이 필요한가요?”
“…….”
2차 침묵이 터졌다.
셋 모두 날 경악에 찬 시선으로 바라봤다.
잘못 걸렸다니까.
니들 오늘 죽었다 복창해라.
“왜 힘없는 피해자인 저를 그렇게 핍박하시는 겁니까? 병실도 엄연히 저에게는 주거 공간과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 대신 이런 구절까지 외워서 대항해야 하는 세상이 정상입니까? 강경준 검사님! 검사님은 좀 더 똑똑하시니 아시지 않나요? 지금 제가 받고 있는 게 법을 빙자한 협박이라는 걸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고등학생이라지만 변호사 조력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오십니까! 검사가 왜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겁니까!”
쩌렁쩌렁 내 목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오! 내공을 살짝 담았더니 대단했다.
밖에 서 있는 간호사들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행동을 취할 게 확실했다.
생각해보니 점점 더 내가 치밀해지는 것 같다.
과거에 배운 것들을 이제 제대로 써먹고 있었다.
이래서 가방 끈 길어서 손해 볼 일은 없다는 말이 도는 거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강경준 검사가 미친 듯 웃었다.
뚝.
그리고 웃음을 순식간에 멈췄다.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저 새끼! 사이코 냄새가 물씬 난다.
“약자? 네놈이? 개 같은 소리 하지 마 새끼야. 난 너 같은 놈들이 제일 싫어 새끼야. 뭣도 모르면서 까부는 새끼들!!! 어디서 내 앞에서 알량한 법조문을 읊고 지랄이야! 넌 새끼야 반드시 구속시켜 콩 밥 먹일 거다! 이 깡패 새끼야!”
아니, 진짜 세상에 이런 검사가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적당하게 법조문으로 날 조질 줄 알았는데 새끼에 개를 찾았다.
와! ……. 열받네.
“저를 강제 구인이라도 할 생각입니까?”
“김 주사, 이 새끼 체포영장 신청해! 이렇게 나불대는데 뇌진탕은 개뿔! 빨리 사무실에 연락해! 법원에도 전화해 놨으니까 바로 나올 거야.”
“넵! 검사님!”
호오, 법원까지 얘기가 끝났어?
지원 영장담당 판사까지 연결된 커넥션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돈이 없다면 어떻게 됐을까?
홍성현 하고 쌈질 한 번 했다고 조그만 도시 권력이 모두 움직였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 넌 끝났어. 새끼야. 어디 어린놈의 새끼가 검사님 앞에서 개겨. 썅!”
박동석 경위가 누런 금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씨익.
나도 모르게 피식 입술이 뒤틀렸다.
“진짜 썩어도 너무 썩었네. 형사랑, 검사랑, 검찰 직원에 이제는 판사야? 와아……, 진짜 나라가 돌아가는 게 용하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기가 차서 병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세상이 이 정도로 막장이구나 하고 제대로 인식했다.
조근영 대통령과 주순자가 대한민국을 휘젓던 밑바탕은 이미 과거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새삼 2020년이 그리웠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사회가 이 정도 상식 막장은 아니었다.
“닥쳐 새끼야! 어디서 주둥아리를 나불거려! 이 깡패 새끼가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강경준 검사가 다가와 손을 치켜들며 다가왔다.
이걸 발라버려?
잠깐 고민에 빠졌다.
마음만 먹으면 죽사발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드르르륵!
문이 거칠게 열렸다.
“지, 지금 환자한테 뭐하는 짓입니까!!!”
응급실에서 나를 봐줬던 의사쌤이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레지던트 신분인데 용감했다.
“비켜요! 지금 공무집행 중인 거 몰라요!”
“당장 나가요!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빨리요!”
“경찰에 신고? 의사 양반. 레지던트 같은데 조용히 꺼져 있어요. 이 깡패 새끼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도주 우려가 있어 체포영장 신청해 놨으니까!”
강 검사의 눈깔이 돌아갔다.
검사가 아니라 어디서 약 빨다가 온 미친놈 같았다.
안타까웠다.
지금 모든 게 생생하게 녹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병실 사람 모두 몰랐다.
“안 돼요! 어떤 사람이라도 병원에 오면 의사 책임입니다! 그러니까 물러나요!”
의사쌤 감동입니다!
당신이 세상의 빛입니다.
“아악!”
그때 난 머리를 부여잡고 악을 썼다.
이제 다시 연기를 시작할 때였다.
내공을 살짝 역류시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엿 되는 수가 있어 나도 조심했다.
그러자 바로 얼굴이 붉어지고 눈알이 충혈됐다.
“왜, 왜 그래. 태산아 정신 차려! 수간호사, 수간호사! 쇼크처치 준비해!”
연기력이 오늘 만땅을 찍을 것 같다.
의사를 비롯해 모두 패닉에 빠졌다.
후후훗. 좋았어.
그럼 다음 마무리 등장이요~.
“강경준!”
화장실에서 대기 중이던 조윤태 변호사가 나오며 병실이 폭발할 듯 강 검사 이름을 불렀다.
“허억!”
비명을 지르며 놀라는 강경준.
쫘아아아악!!!
조윤태 변호사가 그대로 손을 펴 강경준 귀싸대기를 날렸다.
콰다다다당.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강경준이 바닥으로 날아갔다.
“조, 조 차장님!”
김문식이라 불리는 수사관이 벌벌 떨며 지옥의 사신이라도 본 듯 조 변호사님을 봤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이 새끼들아! 니들이 양아치 깡패들이냐!!!”
사자처럼 포효하는 조변호사님.
퍼억!
가차 없이 조윤태 변호사님의 주먹이 수사관의 얼굴을 때렸다.
“아악!”
수사관은 반항도 못하고 맞았다.
“넌 검사의 수치야!”
퍽퍽퍽!
그리고 이어 쓰러진 강 검사를 구둣발로 작살나게 밟아버렸다.
실눈 뜨고 보는 내가 움찔 놀랄 정도였다.
헐, 진짜 저 조직 살벌한 곳이 확실했다.
“…….”
의사도 처치를 멈추고 멍하니 벌어진 사태를 바라봤다.
띠리리릭.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조 변호사님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아이고 선배님. 어쩐 일이십니까. 퇴직하시고 통 연락이 없어서…….
“야! 고영찬이! 너 이 새끼 내가 애들 제대로 키우라고 경고했지!”
– 서, 선배님 갑자기 무슨 소리를…….
“니가 강경준 저 새끼 병원으로 보냈지? 야! 이 돌대가리 같은 새끼야! 지청장이라는 놈이 그렇게 할 짓이 없어! 고삐리들 싸움에 검사를 동원해? 너 이 새끼 내 손에 죽어 볼래!”
– …….
조 변호사님 핸드폰이 어찌나 좋은지 통화 내용이 똑똑히 병실에 퍼졌다.
지금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직 지방검찰청 차장검사가 부장검사가 맡고 있는 작은 지청장을 말로 조지고 있었다.
아~ 세상은 역시! 다시 살 만한 곳이 분명했다.
돈이 조금 들어서 문제지 이 얼마나 환영 받아 마땅할 사건의 전개 방식인가.
이제 나도 살살 다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여기서 멈추면 연기가 탄로 날 수도 있었다.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기쁜 마음을 담아 목청껏 악을 질렀다.
온 병원 사람들이 다 구경 올 수 있게 말이다.
# 1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