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9
18장. 아름다운 세상
“퇴학시킵시다. 그런 깡패 새끼를 학교 울타리 안에 둔다는 것 자체가 이 학교 이념과 맞지 않습니다.”
“행정실장님……. 그렇지만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칫 퇴학 판정 후에 무죄라도 나오면 어떡하시려고 그럽니까?”
“어허, 내 뜻이 우리 아버지 뜻 아닙니까. 사립학교 주인으로 이 정도 권리도 주장 못 합니까? 그리고 내가 알아보니까 오늘 검사가 그 놈을 잡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지금쯤이면 유치장에 들어갔을 것 같네요.”
“…….”
교장을 비롯해 교감, 행정실장, 학년부장 등등.
학교 고위자가 모여 이번 장주 고등학교 폭력 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비어 있는 이사장실에서 행정실장은 상석에 앉아 느긋하게 자세를 취했다.
늙은 이사장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이 학교의 주인이 될 것이다.
국가에서 선생들 월급을 보조 받지만 임명권자는 자신이었다.
사립학교만이 소유하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그건 안 됩니다. 정확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장태산 학생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학교 징계는 유보되어야 합니다.”
그때 교감이 나섰다.
인망이 두터워 이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허어, 그럼 그 개자식 때문에 떨어진 학교 명예는 어떡합니까! 애들끼리 싸울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경찰에 고소라니요! 지금 내 전화가 얼마나 불이 나는 줄 아십니까? 장주고등학교 총동문회에서도 왜 그 깡패 놈 자르지 않냐고 난리입니다, 난리!”
행정실장 양승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지역 사회가 소란스럽기는 했다.
명문 고등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해마다 한국대에 10여 명씩 입학시키는 지역의 자랑이었다.
그런 학교 안에서 집단 폭력행위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다.
“양 실장님. 일단 결과를 좀 더 지켜보도록 하시지요. 교감 선생님 말씀대로 이 일을 함부로 처리했다가는 학교 명예뿐 아니라 교육청의 감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교육청에서도 이 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교장 선생임 왜 이렇게 우유부단하십니까?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니까요!”
일개 행정실장이 교장을 향해 큰 소리를 쳤다.
이사장 아들만 아니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선생님들 모두 침묵을 지켰다.
홍장혁과 친분 있는 양 실장과 달리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학교 폭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심각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자신들이 학교를 다닐 당시에도 이런 사건은 비일비재했었다.
“난! 결정했습니다. 그놈 오늘부로 퇴학시키세요! 전학 같은 것 안 됩니다! 이 말은 부탁이 아니라 이사장님이시자 제 아버지의 뜻입니다!”
폭언을 퍼붓는 양승곤이었다.
똑똑.
그때 밖에서 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뭡니까!”
양승곤이 신경질적으로 문을 향해 외쳤다.
“시, 실장님 큰일 났습니다!”
문이 열리고 양승곤 밑에서 아부를 떨며 살아가는 행정실 직원이 사색이 되어 들어왔다.
“큰일은 뭐가 큰일입니까? 아버지가 혹시…….”
“그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학교로 기자들 전화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난리요? 전쟁이라도 났습니까?”
직원은 급한 마음에 이사장실 컴퓨터를 이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컴퓨터 스피커로 심각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 이유야 많지~. 없는 새끼들이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싫고~ 돈도 없는 새끼들 아침에 처먹은 김치 냄새나는 것도 싫고~ 공부 못하는 새끼들 돌머리 굴리는 것도 싫고~ 그냥 못난 새끼들 보는 것 자체가 싫어~.
선생님들 표정에 의문이 찼다.
나이가 어린 듯한 남자의 목소리는 악의에 차고 비열했다.
하지만 이게 큰일일 리가 없었다.
– 그래도 우리는 친구잖아. 그런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빼앗는 건 옳지 않은 일이다. 네 아버지 홍장혁 변호사님이 잘나가는 시의원이시지만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지 않지 않겠냐. 아버지 얼굴 봐서라도 너 이러면 안 돼!
– 우리 아버지? 푸하하하. 별 거지 같은 걱정하고 자빠졌네. 신경 꺼 새끼야. 우리 아버지가 그랬어. 못난 새끼들은 지그시 밟아줘야 다시는 고개를 쳐들지 않는다고 말이다.
“……!”
홍장혁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자 행정실장을 비롯해 모두가 놀라움에 빠졌다.
이제 뭔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 그래서 선배들과 동기들을 그렇게 패고도 무사했던 거냐? 아버지 빽으로?
– 당연하지~ 우리 아버지 친구가 우리 학교 이사장 아들이자 행정실장님이시다. 웬만한 일은 개 값 좀 던져주면 다 해결돼.
그리고 들려오는 행정실장이라는 말에 모든 모두 사색이 됐다.
선생님들의 시선이 양승곤에게 쏠렸다.
연속으로 재생되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번 사건의 핵심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이, 이게…….”
그에 반해 양승곤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됐다.
언제나 개기름 줄줄 흐르던 낯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양승곤의 격 떨어지는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무의식적으로 들던 양승곤이 손을 덜덜 떨었다.
“아, 아버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 네 이노오오오옴!
얼마나 노했는지 스피커를 타고 쩌렁쩌렁 이사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 네 놈이 사고 칠 줄 알았다. 이 천하의 몹쓸 놈아! 내 명예로운 학교를 네놈이 망쳐놔! 기다려라 이놈! 내 당장 학교로 갈 터이니!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노여움이 극에 달한 이사장의 목소리는 모든 선생님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럼 오늘은 이만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차가운 눈빛으로 멍청해진 행정실장을 바라보던 교장이 회의 종언을 선언했다.
학교에 부는 또 다른 피바람.
이번에는 행정실장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
– 속보 떴습니다. 장주고 일진 놈 애비가 방금 시의원을 사퇴했다고 합니다.
– 흐흐흐. 그 새끼 신상도 다 털렸습니다. 홍성현이라는 잡종자입니다.
– 완전 개 싸가지라고 하던데~
– 그런 새끼는 소년원에 보내야지요.
– 즐~ 감방. ㅋ
– 깡패 새끼 아버지가 시의원에 변호사라니……, 애새끼 인성 교육을 그따위로 시켜놓고 정치질이야! 접시에 코 박고 죽여 새꺄!
다다다 다다다다다.
학창 시절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대학생 윤근혁은 치솟는 분노에 자판기를 미친 듯 두들겼다.
– 이번 일이 묻히지 않도록 회원 여러분들 청와대 신문고 올립시다!
– 당근이지요~. 우리 삼촌이 기자인데 그 동네 경찰과 검찰도 뒤집어졌다고 합니다.
– 그건 무슨 소립니까?
– 그 시의원 새끼가 지역 인맥을 동원해 피해자를 물 먹이려고 했답니다.
– 헐……, 레알?
– 와아! 이 나라가 제대로 미쳐가는구나!
자판을 두드리던 윤근혁은 잠시 손을 멈췄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의 아버지가 경찰이었다.
덕분에 놈은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
“개새끼들……, 다 죽여 버려라!”
놈들은 장난일지 모르지만 당한 자는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한다.
윤근혁은 타오르는 분노를 다시 자판으로 옮겼다.
– 그런데 피해자는 어떻게 됐답니까?
– 영상에 뒷모습만 잡혔는데…….
– 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뇌진탕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맞았으면 그러겠습니까.
– 미친…….
인터넷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그 정도로 장주 고등학교 학교폭력 사건의 사회적 파장은 대단했다.
정권 말기에 접어들며 위기에 봉착했던 정부도 성명을 발표하며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
“태산아~ 오늘은 좀 어때?”
“이 병원에서 가장 예쁘신 간호사 누나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호호. 태산이 너 선수 아니야? 어쩜 말을 그렇게 설레게 하니.”
“에이, 진실은 감추려고 해도 빛이 나는 법입니다. 누나 나이가 다섯 살만 적었어도 제가 대시했을 겁니다.”
“정말? 푸히히. 거짓말이라도 기분 좋다~.”
여자들은 정말 단순했다.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
내 방을 담당하고 있는 소연실 간호사 누나는 말 몇 마디에 자지러졌다.
올해 나이 이십 대 중반인 간호사 누나는 상당히 괜찮았다.
특실 담당은 얼굴을 보고 뽑는 게 아닌가 할 정도다.
성격도 좋았다.
백의의 상징인 간호사복을 입고도 맵시가 장난 아니었다.
170센티미터 정도 되는 키에 모델 급 몸매였다.
의사쌤들도 간호사 누나를 힐끔 쳐다볼 때가 많았다.
나도 싫지 않았다.
아직 어린(?) 나를 귀여워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그냥 좋았다.
어차피 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피자 주문해 놨습니다. 간식들 드시고 하세요.”
“어쩜 태산이는 매너도 좋니~.”
“돈도 많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진짜 나 너에게 확 들이대고 싶다.”
워워. 그건 아니죠.
제가 정신연령은 삼십 대이지만 몸뚱이는 낭랑 18세랍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답답하지 않아? 매일 뭐 하니?”
“할 일 많아요.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알바도 하고 바쁘답니다.”
“그래. 돈 많이 벌어라. 살아보니까 돈이 전부더라.”
“네, 조언 감사합니다.”
“수고해.”
“누나 사랑해요.”
“피이, 말만?”
“네. 말만요~.”
소연실 간호사가 내 농담에 피식 웃으며 퇴장했다.
오늘 하루 내가 주식시장에서 돌린 금액이 수백억이 넘고 수익이 20억이라는 걸 저 간호사는 모른다.
알았다면 저렇게 쿨하게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좋다! 좋아.”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창밖을 봤다.
특실은 최상층에 위치해 있어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이었다.
뇌진탕이란 참 좋은 병명이었다.
검사가 찾아와 난리친 이후 내 입원실은 나와 의사의 허락 없이는 가족도 면회가 금지됐다.
최적의 환경이 됐다.
각 증권회사 계좌를 모두 열었다.
몇 개 증권회사 계좌로는 내 수익률이 드러날 것이기에 대비를 했다.
모든 증권계좌는 각각 다른 종목을 거래했다.
누가 봐도 내 수익률은 미친 것이다.
자본금이 대충 2백 억이 됐다.
주식의 장점이 아낌없이 발휘됐다.
주식은 세금이 없다.
쥐꼬리만 한 거래세 말고는 보유세 개념조차도 없었다.
직장 생활에서 이렇게 벌었다면 어마어마한 세금이 물렸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한 달하고 보름이 넘었다.
사건은 대부분 종결됐다.
내가 원하는 바대로 처리가 됐다.
“잘 가라. 홍성현. 형이 바빠서 인사도 못했다.”
검사를 뒤지라고 팬 조윤태 변호사가 나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원하냐고 말이다.
그때 난 주저 없이 말했다.
밟을 때 확실히 밟아 주길 원한다고.
핸드폰 증거를 넘겼다.
그것을 보고 조 변호사님은 알았다고 답변했다.
잠시 후 증거가 공개되면서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아주 원만하게 처리됐다.
홍성현은 입원실에서 체포됐다.
경찰이 문 앞을 지켰다.
아버지 홍장혁은 여론 때문에 시의원을 사퇴했다.
물론 홍성현은 퇴학을 당했다.
경찰이 찾아와 피해 학생들의 증언을 수집했다.
놈을 따르던 녀석들 상당수가 퇴학, 강제 전학, 정학을 맞았다.
이사장 아들인 행정실장도 학교에서 쫓겨났다.
강직한 이사장이 행정실장의 싸다구를 날렸다고 애들이 말했다.
덤으로 나에게 찍힌 강경준 검사도 사표를 냈다.
동행했던 강력계 경위 박동석과 수사관도 잘렸다.
그리고 며칠 전 지청장도 옷을 벗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노트북에 저장된 내용을 복사해 간 조윤태 변호사가 내 뜻대로 처리했다.
그것까지 세상에 까발려지면 검찰에 흑역사가 될 거라는 걸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나는 다만 보관만 했다.
혹시 모를 보험용으로 말이다.
“세상이 달라지진 않겠지.”
기득권과 결합한 기레기들의 언론조작과 참모들의 정치미숙으로 주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참패를 당한다.
그 이후 벌어질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두 정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주식으로 돈 좀 만져도 기득권들이 볼 때 난 개미 새끼일 뿐이다.
이번 사건도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처리했다.
조 변호사님을 통해 피해자인 내 인적사항이 알려지지 않도록 손을 썼다.
그저 피해 학생이라고만 나왔다.
“내일 퇴원하면 딱이겠군.”
바깥일은 정리됐다.
홍성현은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
학교폭력과 금품갈취로 고소가 되어 학교는 이제 안녕이었다.
홍장혁도 끈이 떨어졌다.
미래가 박살 난 그를 위해 쉽게 손을 내밀 자는 없었다.
돈이 부리는 요술이었다.
만약 돈이 없었다면 난 찌질한 찐따로 살다가 저번 생처럼 죽었을 것이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야~.”
창밖으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 낸 환상 같은 그림이다.
지금 도깨비 같은 상황의 나처럼 말이다.
# 19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