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
1장. 2020년 그 어느 날
– 야야~ 그만 쳐 자고 일어나면 안 될까?
귓가에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 구수한 할배 목소리는?
– 태백의 정기를 이어받은 지리산 산왕모의 아들놈이 왜 이리 허접해? 빨리 일어나! 다른 새끼들 눈치 까기 전에 후딱 정신 차려!
고막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입만 열리고 몸뚱이는 꼼짝도 안했다.
거미줄에 꽁꽁 묶인 것 같은 이 엿 같은 기분.
– 아직은 알 것 없고. 빨리 깨어나 이 썩을 놈아! 그렇게 쳐 잤으면 일어나야지! 벌써 해가 뜨고 있잖아!
언제 봤다고 호통질이었다.
– 그래도 보기보다 장하다. 지 목숨 던져서 커다란 선업 하나 쌓았다. 흐흐, 니 목숨 판 대가랑 퉁 쳐서 상제님의 역천의 거울을 열나게 문질러 널 깨웠느니라.
‘역천의 거울?’
이해가 가지 않는 말들이 귀에 울렸다.
‘헐! 나, 나 죽은 거 아니었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몽롱한 와중에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을 떠올랐다.
끼이이이이이이익 콰앙! 뻑!
브레이크 잡는 굉음.
타이어 타는 고무 냄새.
사람들의 째지는 비명.
파삭 하고 깨지던 돌머리까지 너무 생생하게 기억났다.
저녁 무렵 컵밥 곱빼기로 배를 채우고 노량진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서기 2020년 그해 7월, 노량진은 시대를 대변했다.
머리도 며칠째 감지 못한 칙칙한 청춘들이 영혼 없이 학원을 향해 좀비처럼 걸었다.
2020년의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각박했다.
중동, 미국, 유럽, 중국의 파벌 싸움은 더 강렬해졌고, 첨예한 각국의 이해관계와 무역 보복이 심해지며 수출 창구가 막혀갔다.
가계부채는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며 안전 자산 부동산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제2의 IMF를 맞았다는 말들이 인터넷이며, 뉴스며 사방에서 떠돌아 다녔다.
거대,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미국의 세이프 가드가 더욱 심해졌고, 한국을 잡아먹기 위한 중국의 무역 장벽 또한 거대했다.
그 사이에 낀 대한민국은 샌드위치 신세나 다를 게 없었다.
나무아미타불 아멘…….
그리고 또 젠장!
내가 다니던 증권회사가 망했다.
제2의 IMF 같은 상황에 회사가 쫄딱 망하면서 나도 망했다.
정규직이 눈앞이었는데!!!
직장을 다시 잡고자 노력했지만 기업들이 햇빛에 녹아나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세상이었다.
청춘 난민들 수용소라 불리는 노량진에 정착했다.
9급 공무원이라도 되고자 했지만 이미 수준이 사법시험 저리가라였다.
배가 고파 남은 돈을 털어 컵밥 곱빼기를 사 먹었다.
다 먹고 한강에 가서 마지막으로 서울 전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내일이면 시골에 내려가야 했다.
알바 자리도 씨가 마른 서울이었다.
마지막 서울 만찬.
하루에도 수십 명씩 다이빙하는 한강에 나 하나 더한다고 달라질 세상이 아니었다.
낯선 배부름을 즐기며 쓰리빠 찍찍 끌며 길을 걸었다.
내 앞에서 저학년 초삐리가 앞장서며 걸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은 만화 주제가를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게임에 빠져 있었다.
참 좋을 때다~.
백수인 나와 학생이 직업인 녀석은 너무 대비됐다.
나 같은 놈 되지 말라고 행복을 빌어줬다.
녹색 신호등이었다.
나와 꼬맹이 둘이 사이좋게 건넜다.
꼬맹이는 핸드폰을 보면서도 정확하게 신호를 지켰다.
그때 난 봤다.
신호를 무시한 붉은 스포츠카가 한 달 굶은 시베리아 붉은 곰처럼 빠르게 돌진해왔다.
와! 진짜……. 영혼이 탈탈 털린 것처럼 몸이 석회처럼 굳었다.
번호판이 보였다.
5882.
썩을! 오빠 빨리 뒈지라는 뜻 같았다.
노랫소리가 끊겼다.
초삐리 녀석도 나처럼 돌진하는 차를 보고 얼음땡 놀이에 빠졌다.
꼬맹이가 위험했다.
나야 살만큼 살았지만 이 녀석은 아니었다.
몸을 날렸다!
길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캬아~ 날렵하게 꼬맹이를…….
개뿔!
영화에서 몸뚱이가 번개처럼 움직이는 건 구라였다!
발이 강력 본드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멍하니 지옥행 스포츠카를 바라보며 몸뚱이가 의지를 거슬렸다.
초딩과 같이 저승 동기동창생이 될 위기의 순간.
거짓말처럼 발이 떨어졌다.
컵밥 먹고도 힘이 불끈 솟았다.
아이를 오른손으로 휘감았다.
이미 둘 다 피하기는 늦었다.
반동을 이용해 던졌다.
꼬맹이가 길가로 튕겨 나갔다.
끼이이이이익!
늦은 브레이크 파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콰아앙!
폭죽이 터졌다.
그리고 새처럼 하늘을 날았다.
숨이 턱 막혔다.
신기하게도 몸뚱이가 하나도 안 아팠다.
영혼 이 새끼가 나보다 먼저 몸뚱이를 버렸다.
그리고 퍽!
머리통이 파삭 깨졌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돌머리 소리 때문에(?) 바로 죽지 않았다.
고통은 없었지만 빨간 선지가 바닥에 흐르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찢어지는 사람들의 비명과 타이어 타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길고 긴 암전이 찾아왔다.
– 똑똑히 들어라~ 지 새끼 귀한 줄만 아는 여와와 황제의 뱀 같은 자식들 조져버려! 우리 형님 불을 쌔벼가서 뱀과 붙어먹은 나기와 나미의 자식들도 뽀셔버려! 내가 조용히 있었더니 이것들이 날 만년 핫바지로 봐버린다! 아우! 진짜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을…… 콱!
분노에 찬 참신한 헛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어라? 그런데 나 아직 안 죽었어?
냄새도 고통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웅웅거리는 목소리만 참으로 시끄러웠다.
‘누구세요?’
난 정체 모를 그 분에게 물었다.
입은 안 열렸지만 텔레파시는 통하는 것 같았다.
– 넌 장자다. 그 새끼들에게 장자의 위엄이 뭔지 단단히 보여줘야 돼! 알겠지?
‘장자요? 우리 집 장자는 맞는데……. 저 아세요?’
처음 듣는 할배 목소리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 어릴 적에 일찍 세상을 하직하셨다.
– 아오! 간악하고 음흉한 뱀과 그림자의 새끼들 때문에 내 속병 터진다. 야! 니들은 기껏 하늘 자손들로 만들어줬더니 옆집 개들에게 꼬리나 흔들어? 이웃집 개새끼들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잖아!
벼락같은 할배의 고함이 고막을 쩌렁쩌렁 울렸다.
살아 있는 듯 생생했지만 해석 불가능한 말들이었다.
뭔지 모르지만 무지 열 받은 건 확실했다.
성격도 장난 아니고 말이다.
– 야야……. 오늘 일은 결코 잊어버리지 마라. 예수나 부처처럼 절대 크고 넓은 오지랖으로 병신 같이 성자 흉내 낸다고 원수들 용서해 주지 말라고!
네네~ 저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입니다.
그런 오지랖 오래전에 팔아서 라면 사먹었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나왔다.
친하거나 잘 아는 것 같았다.
– 한 번 안 되는 새끼들은 영원히 개과천선이 안 되는 거야! 꼭 명심해라! 뱀과 그림자 새끼들 확 조져서 다시는 까불지 못하게 해라! 내가 수천 년 쌓았던 화병 화끈하게 정리해! 그렇지 않으면……. 넌 나한테 반만 년 간 뒤질 줄 알아!
할배 협박 솜씨가 꽝이다.
죽은 내가 다시 죽을 리도 없었다.
– 그럼 이만 간다.
혼자 북치고 쇼 하던 할배가 간다했다.
뭐 아쉬운 건 전혀 없었다.
머리만 정신없었다.
– 아! 그리고 가기 전에 선물 하나 넣어 놨다.
가? 어디를? 선물은 또 뭐야?
아무래도 사기꾼 같았다.
저승사자도 보이스 피싱하는 거야? 라는 의심이 팍 들었다.
머리에 수많은 의문들이 스치고 사라졌다.
– 원래 안 되는 건데 하도 니 능력이 지랄 맞게 짧아서 넣어 놨다. 야! 그래도 지리산 산왕모 새끼가 쪽팔리게 애들한테 얻어 터져 삥이나 뜯기고……. 잘 살아 임마! 인간세월 하루살이 코털 같이 짧디 짧은 백 세 시대야. 그러니 마음껏 풍악을 울리고 누려라~ 내가 지시한 것만 처리하고 꼴리는 대로 마음껏 살아라~ 인생 그거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헐!
저 할배 미친 거라 확신했다.
머리통 바싹 깨진 내가 살아날 확률은 제로였다.
죽어도 마음은 뿌듯했다.
살아생전 선행을 베풀 기회도 없던 내가 큰일을 해냈다.
꼬맹이도 살리고…….
주행 중 횡단보도 사고니 부모님께 짭짤하게 보험금도 남겼다.
부모님 앞서 가는 불효자식이지만 매년 제사상에 피자하고 치킨 부탁드립니다!
여유 되시면 캔맥주 대신 생맥주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무지무지 감사했습니다.
못난 아들 장태산 올림.
머릿속으로 마지막 전상서를 가슴 벅차게 올렸다.
눈물이 찔끔 났다.
어? 뭐지? 지, 지금 느껴지는 이 뜨겁고 찝찝한 물기는???
때르르르릉! 때르르르릉!
갑자기 머리맡에서 자명종 굉음이 맹렬하게 터졌다.
“허억!”
끔찍한 지랄발광 소음에 비명을 토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번쩍 떠졌다.
“……?”
어라? 몸이 움직이네?
시끄럽던 불도저 할배 목소리도 사라졌다.
눈에 빛이 들어왔다.
사물이 천천히 망막에 들어왔다.
여기는 아주 익숙한 공간이…….
이건 뭐지?
코딱지만 한 작은 방이다.
고등학교 시절 거주하던 시골집 건넛방이다.
때 묻은 벽지와 흙냄새가 물씬 풍기던 좁고 좁은 내 방.
낡은 컴퓨터 한 대, 옷걸이…….
책상 옆에 걸려 있는 대형 농협 달력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2…… 006년 7월???”
# 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