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1
20장. 모범시민의 꿈
“받아요. 단기 암기에는 당이 최고예요.”
“…….”
난 손을 내밀었다.
내 손에는 과거에는 몇 번 맛보지 못했던 페레로로 시작하는 초콜릿이 들려 있었다.
예린이 내 손과 나를 번갈아 봤다.
갈등하는 그녀의 마음.
“어머, 쟤 예린 언니 좋아하는 거야?”
“쳇……, 이쁜 건 알아가지고.”
주변 여학생들이 수군거렸다.
32번 버스는 딱 세 대만 학교 통학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특히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첫차는 정해진 학생들이 이용했다.
요즘 들어 나를 보고 시그널을 보내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가방을 가져가며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 얘들이 건네주는 쪽지를 받기는 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그건 내 첫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고마워요.”
예린의 얼굴이 처음으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저 나이 때 초콜릿 싫어하는 여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선배님인데 편하게 말 놓으세요.”
“…….”
눈앞의 내 첫사랑은 나보다 1년 선배다.
올해 고3이다.
수능이 끝난 어느 날부터 그녀는 버스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마음이 바빴다.
예린의 큰 눈동자가 토끼가 됐다.
이렇게 들이대는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 성격도 완벽하게 개조됐다.
매일 심법을 운용하자 세상이 달라보였다.
적극적으로 기를 움직이는 자만이 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몸도 마음도 지갑도 빵빵해지자 자존감이 높아졌다.
동시에 세상을 당당하게 보게 되었다.
꿈속 할배가 그랬다.
인생은 짧으니까 멋지게 살다 오라고 말이다.
“어머…….”
“멋있다.”
“히잉……, 나도 초콜릿 좋아하는데.”
예린이보다 주변이 더 난리다.
여학생들이 예린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표했다.
사실 나도 이게 먹힐 줄 몰랐다.
과거라면 아마 상상만으로 끝냈을 일이다.
“그래. 잘 먹을게.”
‘어라? 이건 또 무슨 반전?’
당황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예린이 당차게 맞받아쳤다.
여자의 변화무쌍함을 남자는 절대 모른다더니 사실인 것 같았다.
내가 놀랄 정도로 표정변화가 빨랐다.
“시험 잘 봤어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성심리학 강의 시간 때 교수님이 그러셨다.
여성과 대화를 하며 10초 이상 침묵하는 남자는 연애할 생각을 말라고 말이다.
“그럭저럭. 그러는 넌?”
듣기로 예린은 전교 1등이라고 했다.
통학을 하고 과외도 받지 않으면서 그녀는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들었다.
“저도 잘 봤습니다.”
헐,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나는 예린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뭐야. 표정이 만점자라도 되는 것 같은데?”
“아마도요.”
“지, 진짜?”
학생에게 성적표만큼 자신을 보증하기 좋은 방법은 없었다.
예린이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주여고와 쌍벽을 이루는 장주고에서 만점이 무슨 의미인지 예린도 나도 안다.
“쌤들이 이번 시험을 쉽게 출제하셨나 봐요.”
아니 쉬운 게 아니라 내가 똑똑해진 거다.
양의심법의 공능으로 몸 안의 적폐들이 줄줄이 퇴출됐다.
머리에 낀 기름도 제거되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이 좋아졌다.
“그렇구나…….”
공부 잘하는 예린은 그 한 마디로 끝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납득해 버리는 예린이었다.
역시 1등의 사고방식은 달랐다.
“핸드폰 있어요?”
“어?”
“가끔 응원 메시지 보낼게요. 곧 수능이잖아요.”
예린이 납득할 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우리 안면 튼 지 일 년 반이 넘었잖아요.”
난…… 10년을 훌쩍 넘어 당신을 안답니다.
기대에 찬 시선으로 예린을 봤다.
잠시 갈등하는 예린.
“010-3277-XXXX.”
예린이 손으로 머리칼을 넘기며 빠르게 말했다.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말했지만 난 귀신 같이 알아들었다.
“전화번호 교환하나 봐?”
“벌써?”
주변에 포진한 여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더해졌다.
쪽팔리지 않았다.
보았노라! 물었노라! 알았노라!
그렇게 버스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나와 예린은 서로를 알아갔다.
끼이이익.
버스가 멈췄다.
장주여고 여학생들이 먼저 내렸다.
예린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아, 가는 뒷모습조차 어찌 저렇게 고울까?
교복이라 더 그런가? 흐흐.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 버스.
“야!”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강력한 주파수를 보냈다.
고개가 돌아갔다.
‘뭐지 이것들은?’
진작 내렸어야 할 산업고 애들이 뒷자리에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명백한 시비 가득한 눈동자였다.
마치 제2의 홍성현을 보는 것 같았다.
“너 이리와.”
뒤쪽 중앙에 앉아 있던 덩치가 곰만 한 놈이 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익히 나도 알고 있는 놈이다.
산업고 씨름부다.
이름이 최혁찬이었지.
지역 신문에도 몇 번 나왔던 놈이 나를 불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몇 학교 학생들이 이 상황을 놀란 도끼눈으로 지켜봤다.
저벅저벅 놈들에게 다가갔다.
불량한 자세로 일곱 놈이 나를 째려보았다.
“왔다.”
쫄릴 것도 없다.
“왔다? 이런 개새끼가 봐줬더니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클클. 혁찬아. 어떻게 할까? 끌고 내릴까?”
산업고 놈들이 침을 찍하고 버스 바닥에 뱉으며 겁을 줬다.
유치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놈들이 숨을 쉴 때마다 담배 냄새가 훅하고 풍겼다.
해장 담배 맛을 아는 고삐리들이었다.
“예린이는 내가 찜했다. 전화번호 내놔.”
홍어찜도 아니고 찜은 개뿔.
그리고 뭘 내놔?
“싫다.”
“이 새끼가! 예린이는 내 거라고!”
버스가 떠나가라 고함을 치는 최혁찬.
이런 곰탱이 같은 새끼가 여자를 물건 취급한다.
예린이 의사는 전혀 상관없는 전형적인 짝사랑이었다.
물론 이 버스를 타고 있는 머스마들 대부분 그러겠지만 말이다.
“돼지 시베리아에서 숭늉 찾고 자빠졌네.”
욕은 찰져야 맛이다.
요즘 애들하고 놀았더니 욕도 공부 실력처럼 늘었다.
“이 미친 새끼가!”
휘익!
내 옆에 있던 놈이 주먹을 날렸다.
비겁하게 경고도 없이 내지른 주먹이었다.
양아치들에게 정면대결을 바라는 게 미친놈이다.
터억!
그대로 날아오는 주먹을 오른손 손바닥을 펴서 잡았다.
“……!”
놀랍지?
이게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도 난 흔들리지 않고 두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움켜쥐었다.
“아아아아악!”
새끼돼지의 멱을 따는 비명이 울렸다.
가볍게 친구 돼지 쪽으로 밀었다.
우당탕 놈이 넘어졌다.
미안하다. 요즘 형이 힘이 넘친다.
벌떡 놈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워워. 긴장들 풀어. 오늘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다. 사정 좀 봐주면 안 될까? 짱돌 같은 네놈들이야 시험이 상관없지만 난 아니거든~ 조용한 날 잡아서 멱따자. 혁찬아 알았지?”
나 요즘 완전 착해졌다.
돼지 혁찬을 보며 빙긋 웃었다.
친절함이 철철 넘쳤다.
멱을 따자며 날 잡자고 하는 이 부드러운 잔인함.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피가 뜨겁게 끓었다.
감히 내가 죽음을 건너 만난 첫사랑 그녀를 물건 취급해?
오늘 땄는데 문자도 못해본 따끈따끈한 번호를 넘겨?
뇌 주름을 다리미로 밀어버린 놈 같으니라고!
“어이! 학생들 지금 뭐하는 거야!”
버스 기사 아저씨가 룸미러를 보고 호통을 쳤다.
이때만 해도 어른들 말씀이 먹혔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했다.
이 돼지들이야 공공장소의 소중함을 모르지만 난 모범시민이 꿈인 학생이다.
적당히 용돈용으로 강남 빌딩 몇 개하고, 여름에 휴가갈 수 있는 제주도와 해외 별장 몇 개, 조금 더 여유 있으면 자가용 비행기나 한 대 굴리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런 내 평범한 꿈을 빼앗아가려는 자.
쌩똥의 저주가 임할 것이다!
# 21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