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2
21장. 마무리는 깔끔하게
세상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별 쓸모가 없는 때도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통장 무게가 똑 같은 이치와 같다.
지금의 나처럼.
스포츠카를 사도 탈 수가 없다.
만18세 미만인 난 면허를 딸 수 없었다.
기사가 운전하는 스포츠카는 아무 의미가 없다.
7성급 호텔 요리사도 초빙할 수 있는 재력가였지만 시간도 공간도 없다.
아…… 미성년자 고삐리 딱지는 날 너무 힘들게 했다.
“씨…… 알. 우리 집 개새끼도 이것보다는 잘 처먹는다.”
“우웩! 염병 된장국 같으니라고! 그제는 감자 된장국, 어제는 시래기 된장국, 오늘은 무 된장국! 미친 이제는 된장국 냄새만 맡아도 쏠린다.”
“고기! 고기가 없어…….”
김치 몇 조각에 두부조림 한 덩이, 그리고 시금치에 된장국을 받아 든 친구들이 음식 앞에서 식욕을 잃었다.
분명 공고된 오늘의 점심 식단 주 메뉴는 치킨이었다.
환호성을 지르며 식당으로 돌진하던 어린 양들.
식판에 담겨진 반찬에 넋을 잃었다.
재료 사정으로 식단이 변경되었다는 간단한 공지 하나로 끝이다.
한 끼 3,500원으로 이 따위밖에 못 만드는 영양사가 위대해 보였다.
‘행정실장이 뿌린 적폐가 이렇게 질기네.’
적폐 뽑는 게 이렇게 어렵다.
술집 안주인 같은 여자가 영양사 복장을 착용한 채 식당 앞에서 실실 입을 쪼개고 있었다.
잘생긴 남학생들에게 추파를 뿌리기도 했다.
음식을 다룬다는 여자가 향수 범벅에 손가락은 빨간 매니큐어로 도배를 했다.
행정실장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내가 1학년일 때부터 식단을 초토화 시킨 장본인이었다.
“얘들아 많이 먹어. 된장국이 몸에 좋은 거 알지? 어렵게 구한 집된장이란다.”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요사스럽다.
이게 집된장이라고? 아침에 분명히 봤다.
식당에서나 사용하는 싸구려 깡통 된장이 식자재 차에서 하차하는 걸 말이다.
“새끼들 배가 불렀네. 다들 입맛 없냐 맛만 있구만 왜 그래.”
“돼지 새꺄! 난 요즘 이것 먹고 아침에 고추도 안 서!”
“니 거 성능이 별로야 새꺄. 크크.”
언제나처럼 도중이는 벌써 두 그릇째 식판을 비우고 있다.
잔반처리 기계로 불리는 녀석답다.
대선이 도중이에게 소리쳤다.
사실 난 별 불만이 없다.
서울에서 배고픔이 뭔지 깨달은 내가 음식 앞에서 투정 부리면 개새끼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탁, 수저를 놓았다.
“태산아. 우리 라면이나 하나 먹을까?”
“점심 때 매점 줄 뚫을 자신 있냐?”
“……배고프다.”
내가 수저를 놓자 애들도 같이 일어났다.
밥을 먹어놓고도 친구들은 배가 고팠다.
쌀도 찰진 맛이 하나도 없다.
수입산 쌀도 이보단 맛있을 것 같았다.
“고기 먹고 싶냐?”
“고기 주는 자에게 내 영혼도 팔 수 있다!”
“고기 님을 영접하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나 던진 내 말에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기회는 좋았다.
아들 대신 이사장님이 매일같이 학교에 출근하신다.
병원에 있을 당시 병문안 차 찾아온 이사장님이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이다.
식판을 들고 잔반대로 갔다.
“어머, 잘생긴 학생. 왜 이렇게 많이 남겼어? 그럼 나중에 죽어서 벌 받는 거 모르지?”
입술 빨간 아줌마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눈은 웃었다.
애들이 밥을 안 먹을수록 급식 양을 줄일 심산이었다.
“살아서 벌 받아 본 적 없죠?”
음식물통에 잔반을 버리며 영양사 아줌마에게 시니컬하게 물었다.
“당연하지. 나같이 착하고 예쁜 여자에게 그런 말 하는 거 실례야.”
나에게도 꼬리를 쳤다.
말투가 질퍽한 게 애교가 담겼다.
“그럼 한번 받아보세요. 죽어서 벌 받지 마시고.”
“뭐, 뭐라고!”
대번에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인성이 그래서 어디 안 가는 거다.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눈치 없어요?”
“학생! 지금 말 다했어!”
“행정실장님 잘 계시죠?”
“…….”
한 마디에 아줌마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쿨하게 퇴장했다.
“야! 너 이 새끼!!!”
된장을 좋아하는 된장 아줌마의 질펀한 욕을 뒤로 하고 말이다.
***
똑똑.
“누구야.”
“장태산이라고 2학년 학생입니다!”
“장태산? 아! 들여보내.”
이사장님을 보필하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이사장실에 들어갔다.
이사장님은 방금 식사를 끝낸 모양이다.
집에서 가져 온 간단한 도시락이었다.
김치와 고추, 상추, 쌈장이 전부였다.
안타까웠다.
저렇게 소탈한 성격에도 아들 농사에 실패해 노년에 욕보신다.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
“어서 오게.”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직장에 다닐 때 습관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런 나를 이사장님은 흐뭇하게 보셨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아니야. 다 먹었어. 늙으면 많은 밥이 필요치 않아. 거기 앉게.”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인가?”
이사장님의 성격이 보인다. 이런저런 덕담도 오고 갈 만한데 내가 뭔가 할 말이 있어 온 걸 알아챘다.
“고기 좀 주십시오.”
“고기? 고기가 먹고 싶나?”
“아니요. 저 말고 애들요.”
“그게 무슨 소린가? 학생들에게 고기를 주라니?”
“급식 드셔보셨습니까?”
“……난 집사람 밥만 먹네. 바깥 음식은 소화가 안 돼.”
“직접 가서 보시겠습니까?”
“……문제가 있나?”
누가 보면 정말 싸가지 없는 학생이라고 할 것이다.
과거의 나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이사장님이 학교에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전교생이 청소하기 바빴다. 이사장이란 존재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1년에 한 번 훈화 정도만 하는 멀고 먼 분이다.
그런 이사장님께 식당을 가보자고 말하는 싸가지 클래스.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행정실장님 애인분이 영양사로 계십니다. 그리고 1년 전부터 급식이 개밥이 됐습니다.”
“……!”
개밥이라는 내 과격한 발언에 이사장님은 노안을 크게 뜨셨다.
대놓고 아들의 애인이라는 발언에는 심장이 놀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한 끼에 3,500원을 내고 있습니다. 다른 학교는 일주일에 3일 이상 육류가 의무로 제공되고 있고요. 급식비를 지불하고도 된장국만 먹는 학교는 세상에 없습니다. 먹어야 공부를 합니다. 이사장님, 이 일은 급식비리입니다. 정식으로 경찰에 고발해 주십시오.”
제가 고소할 수도 있다는 뒷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학교 아니어도 난 괜찮다.
돈도 많았고 학업성취도도 높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여차하면 학교를 구입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골 학교가 기껏해야 얼마나 하겠는가.
“태산 군…….”
“네. 이사장님.”
“아무리 어려도 말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네.”
“이사장님 말고 다 알고 있는 사실만 말씀드렸습니다. 사익 추구를 위해 개인의 쥐꼬리만 한 권력을 남용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롭고 보배로운 인재를 육성하자’는 학교 건학 이념과 정면으로 위배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식과 연관된 일이다.
이사장님이 여기서 결정하는 바에 따라 내 행동도 달라질 것이다.
홍성현을 처리하는 데 5억이 들었다.
대형 로펌을 움직이는 돈은 결코 작지 않았다.
대신 일처리는 깔끔했다.
여차하면 또다시 학교를 뒤집을 수 있다.
두렵지 않았다.
과거의 ‘슈퍼 을’ 장태산은 더 이상 세상에 없었다.
“…….”
이사장님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봐야 뭐 달라질 게 없다.
이사장님을 마주보며 빙긋 웃었다.
“박 실장!”
“네, 네! 이사장님!”
문밖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비서가 놀라 답했다.
“당장 교장하고 교감 불러와!”
“아, 알겠습니다!”
노기 가득한 이사장님의 호통에 비서가 부리나케 뛰는 소리가 들렸다.
마무리는 확실히 해야지.
“그럼 마무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성 바른 고삐리 모드를 취했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전국 모든 학교의 개밥 같은 급식이 고기반찬 넘치면 되는 것, 단 하나뿐이다.
정말 원하는 게 소탈하기 그지없다.
***
“형님, 담글까요?”
“나에게 피해 없이 조용히 처리할 수 있지?”
“당연하죠. 고삐리 하나 묻는 건 일도 아닙니다. 조직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 난 놈들 있습니다. 걔들 중에 소년범으로 처리될 애들에게 언급만 하면 됩니다. 그 나이 때는 다 욱하는 성질들 있지 않습니까. 형님이 뒤만 봐주신다면 쉽습니다요.”
“그럼 담가라. 큰 거 두 장 주마.”
“아이고 형님. 감사합니다요!”
주점의 은밀한 내실에서 홍장혁은 문신 가득한 사내와 대화를 나눴다.
시를 주름잡는 역전파 두목이었다.
시에서 변호사를 하기 위해서는 권력층뿐만 아니라 조폭들도 관리해야 했다.
얽히고설킨 인맥 속에서 자칫 다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홍장혁은 역전파 두목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역전파 조직원들의 사건을 거의 다 도맡았었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였다.
그리고 오늘 홍장혁은 참고 있던 이빨을 드러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국회의원을 나가기 위해 쌓았던 스펙과 줄이 모두 끊겼다.
평생 꼬리표처럼 아들놈의 일은 따라다닐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돈과 악 밖에 없었다.
‘장태산. 네 놈은 반드시 죽인다!’
독한 위스키를 단숨에 마시는 홍장혁.
자신과 아들을 망가뜨린 어린 고삐리 놈을 생각하며 이를 시원하게 갈았다.
# 2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