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49
248장. 도장 깨기 (2)
‘어떻게 앨런 튜링의 암호 수학 공식을!’
남궁동호 교수는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앨런 튜링.
영국이 낳은 위대한 수학자이자 불운의 천재.
미적분을 배우지 않고도 고등수학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버린 외골수 괴짜였다.
난해한 아인슈타인 이론을 이해하는 것을 뛰어넘어 아인슈타인 운동법칙을 스스로 추론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자였다.
수치해석과 확률, 통계학, 수이론에 정통했으며 폰 노이만형 컴퓨터 구조에 관한 논문 발표 및 인공지능의 토대를 제공한 튜링 구조를 창시했다.
현대의 컴퓨터 시스템은 튜링의 창시한 보편만능기계의 법칙을 그대로 따랐다.
1966년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을 재정할 정도로 뛰어났고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로 불렸다.
애플의 컴퓨터 로고인 한입 베어 문 사과도 튜링을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말이 정석이었다.
2차 세계대전 시절 독일의 풀리지 않는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격파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렸다.
다만 전쟁 후 동성애를 금기시하던 영국 법원과 사회의 편견에 부딪혀 사과에 독을 주입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앨런 튜링의 암호 해독에 사용됐던 고난이도 수학 해석 방법이 칠판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따딱 따다다닥.
치밀한 계산 능력과 끝없는 수학적 사고.
뛰어난 직관력과 경우의 수를 사용해 수백만의 경우의 수가 탄생하는 에니그마를 격파해 버린 앨런 튜링.
그가 현신한 것처럼 분필은 춤을 췄다.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수학적 사고력이다.
‘정말 저걸 다 이해했다는 말인가?’
남궁동호 교수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미국 유학 박사 시절 풀어봤던 에니그마 해석 수학 공식들은 범인이 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미적분, 기하학, 대함수 등등 모든 수학적 이론에 통달해야만 가능했다.
남궁동호 교수도 박사 동기들과 몇 주를 함께 매달려 풀었었다.
영국의 암호해독반이 몇 년을 고생해 탄생시킨 노력의 합작품이었다.
당대 뛰어나다던 수학자들 상당수가 달라붙었다.
몇 달이 걸렸던 암호해독이 튜링이 완성한 공식으로 단 1시간에 해독이 됐다.
그리고 영국은 독일 잠수함 공격에서 벗어나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난해한 에니그마 해석 수학 공식 풀이 과정이 친절하게 등장했다.
남궁동호 교수도 심지어 처음 보는 해석 방법이었다.
학부생들은 공식을 따라 적으며 머리를 긁적이거나 멍하니 바라봤다.
자신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파격적 해석 방법에 백기를 들었다.
남궁동호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탄성을 터트렸다.
꿀꺽.
마른침이 삼켜졌다.
정말 학생이 저걸 풀어냈다면 박사급을 넘어 교수 자격이 있었다.
다만 처음 보는 학생이었다.
그간 수학과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인재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수학 괴물 같았다.
뚝.
마지막 공식 풀이 답이 적혔다.
예제로 들었던 문제에 대한 답인 것 같았다.
남궁동호 교수도 해답을 따라가지 못했다.
겨우 중간 부분 정도만 이해가 갔다.
학생들이 남궁동호 교수가 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
고요한 침묵에 빠진 강의실.
키가 모델처럼 크고 탱탱한 근육을 자랑하는 청년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응?”
“누구야? 아는 사람 있어?”
“뭐야? 우리 과 선배 아니었어?”
“으으으……. 도대체 누구야?”
강의실에 일대 혼란이 불어 닥쳤다.
정확히 모습을 드러낸 미남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 법학과 장태산!”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뭐라고? 법학과?”
“진짜 법대생?”
“와아아아……. 미쳤다. 법대생이 뭔 대수학이야!”
“저거 교수님이 대단하다 말했던 에니그마 해설 수학 맞지?”
“오늘 나 자퇴할란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
사방에서 탄식을 넘어 절망의 언어들이 뿜어져 나왔다.
“교수님. 잠시 시간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장태산이라는 법대생이 남궁동호 교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의견을 물었다.
남궁동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모르는 신 해설 내용을 듣고 싶은 갈망에 숨이 막혔다.
잠자던 학자로서의 욕망이 꿈틀거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해설 수학에 입안이 타들어갔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법대생.
“안녕하십니까. 이번 학기 수학특강을 듣게 된 법학과 08학번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렸다.
“08학번 신입생?”
“으으으. 쩐다. 쩔어…….”
“어머……. 진짜야?”
다시 한 번 신음이 줄줄 터졌다.
법대생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충격인데 1학년 신입생이란다.
“오늘 갑작스럽게 신성한 강의실 칠판을 점령하고 흥을 쏟아낸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미소 짓는 법대생의 저음의 강렬한 목소리에 여학생들은 얼굴을 붉혔다.
누가 봐도 엄청난 미남이었다.
법대생이 잘생기고 키도 큰데 수학 실력까지 겸비했다.
반하지 않으면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었다.
“여기 있는 공식과 풀이는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인공지능과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의 암호 풀이 특기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에 연합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도저히 암호를 파악할 수 없는 독일군의 최첨단 암호체계인 에니그마, 그리스어로 수수께끼라는 녀석 때문이었습니다.”
장태산은 교수라도 되는 양 떨지도 않고 강의를 시작했다.
목소리에 묘한 매력이 있어 빨려 들어갔다.
“에니그마는 타자기처럼 제작된 암호기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녀석이 아니라 그 안에 8개의 회전체가 들어가 있어 타이핑되어 나오는 경우의 수가 100만 가지가 넘었습니다. 컴퓨터도 없던 당시에는 일일이 수학자들이 암호를 해독했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 바뀌는 암호를 해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몇 달씩이나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튜링이 고안한 기계인 ‘봄베’를 통해 경우의 수를 제외하면서 암호 해독에 성공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전쟁 이야기에 수학과 강의생들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수학자와 연관된 역사의 한 토막이었다.
“이때 사용된 해독의 수학공식은 첫 번째로 합성함수의 방식으로 정의된 함수 f(x)…….”
그리고 이어지는 친절한 수학 해설의 시간.
“아!”
“그런 방식이구나…….”
사방에서 수강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얼굴을 밝혔다.
너무나 쉽게 풀이되어지는 난해한 방정식과 함수들.
그 어떤 교수에게 들었던 강의보다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저건……. 아직까지 활용되지 않은 방식인데…….’
남궁동호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수학 강의보다 어렵건만 전혀 어렵지 않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를 소유한 법학과 신입생.
그의 몸에 앨런 튜링의 모습이 투영됐다.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의 현신.
남궁동호는 대선배이자 존경하는 그의 강의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자신이 오늘 수업을 맡은 전담 강사라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
“이제 하다하다 수학 강의야?”
고개를 저의며 수학과 강의실을 빠져 나왔다.
3시간짜리 강의 시간 내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담당 교수를 비롯해 수학 좀 한다는 학생들이 나와 수학의 난장판이 열렸다.
신이 났다.
나를 소환했던 앨런 튜링이라는 수학자가 나에게 빙의되었다.
능력을 얻게 된 첫날 어느 때보다 강렬한 느낌과 함께 신들이 찾아왔다.
큰 사고 치지 않기에 잠시 몸을 빌려줬다.
신들은 신들보다 살아 있는 인간들과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게 확실했다.
흥미진진한 논쟁의 연속이었다.
특히 소문을 듣고 온 수학과 교수들까지 참여한 마지막 1시간은 불꽃이 튀겼다.
수학 도장을 확실히 박살냈다.
모두 다 K.O!
신들도 공부한다는 건 나만 안다.
천재가 신계에서도 수학만 팠다.
노바 형님 수학 지식은 앨런 튜링과 비교하자면 중학교 수준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수없는 인간들을 살린 덕분에 마음껏 중급 신계에 머물 수 있었다니……. 그걸 부러워해야 해? 말아야 해?”
2차 세계대전의 한 획을 그었던 U튜브 박살의 주인공이 된 앨런 튜링.
암호 해독 덕분에 연합군 전함뿐만 아니라 상선들도 보호가 됐다.
그 연계로 상선에 실린 보급품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구했다.
그게 다 포인트가 되어 저장되었다는 앨런 튜링.
다른 신 같으면 여신들 포인트 쏴주고 흥청망청 신의 일상을 즐겼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소환된 곳은 사과 밭이 딸린 아담한 농가였다.
유럽식 나무판자 집에서 얼굴이 마른 앨런 튜링을 만났다.
중급 신이라 기대했건만 첫 인상은 영 아니었다.
눈빛은 음울했다.
미소는 거의 짓지 않았으며 피부는 하얀색이었다.
인간들에게 엄청난 것들을 남긴 천재지만 마지막 죽음이 그를 따라 다녔다.
“동성애자라지만…… 걸리면 여성호르몬 주입이라니……. 영국이 결코 신사의 나라는 아니야.”
앨런 튜링과 갓 따온 신계 유기농 사과를 먹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당시 시대상과 어린 시절까지 보름 정도를 신계에 머물며 대화했다.
결론은 불쌍한 신이라는 거다.
전혀 신계가 즐겁지 않단다.
사과에 청산가리를 넣어 베어 먹고 자살했음에도 넘치는 포인트로 인해 신계에 머물러야 한다는 앨런 튜링.
능력을 주고도 포인트를 받지 않겠단다.
그 대신…….
“나와 다르다고 틀렸다는 말은 하지 말고 살아달라니…….”
동성애로 차별 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능력을 주는 대신 부탁을 받았다.
날 만나기 위해 다른 신들에게 포인트를 나눠줬단다.
가위, 바위, 보를 이겨버리는 무식한 포인트 질.
신이 되어서도 포인트 빵빵한 갑부신은 달라도 뭐가 달랐다.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한 앨런 튜링의 요구는 당황스러웠다.
원하는 바는 하나였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마주할 수많은 인간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봐주라는 거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부탁이다.”
거의 성인급 인간이 되라는 말 같았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화를 낼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용서하고 다 받아줄 준비는 안 됐다.
앨런 튜링이 요구하는 것도 그거였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언제 신들 한 번 모아서 놀러가 줘야겠어. 포인트도 기부하고 외로움도 날리면 얼마나 좋아.”
신계 가서도 외로운 신들 보면 마음이 안 좋았다.
극상의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신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조만간 신들을 위해 조촐한 파티 한 번 열어보고 싶었다.
아는 신들만 불러도 꽤 됐다.
투두둑 투두두두둑.
갑자기 비가 내렸다.
화창했던 아침과 달리 몰려온 먹구름이 한바탕 심술을 부렸다.
타다닥.
빠르게 차에 올랐다.
점심 때문에 오고가는 학생들이 금세 사라졌다.
쏴아아아아아아앗.
그리고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는 늦여름 비.
거칠게 자동차와 지면을 팼다.
시원한 광경에 시동을 켜지 않았다.
빙의 후에 찾아오는 나른함을 즐겼다.
담당 교수가 앞으로 수업에 자율권을 부여했다.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했다.
다만 가끔 나와 학생들을 자극해 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승낙해줬다.
수학과 학생들이 보이는 열정이 제법이었다.
한국대가 공짜로 명성을 얻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보았다.
“파전에……. 동동주가 생각나네.”
유리 선배가 떠올랐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미대 누나.
어느 하늘 아래서 잘 지내고 있을 그녀가 문뜩 그리웠다.
그리고 생각나는 뜨거운 밤.
비에 젖었던 손유리의 심장은 어떤 불덩이보다 더 뜨거웠었다.
“연락 한 번 없네.”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았건만 손유리는 연락이 없었다.
손대균 이사에게 뭔가 단단히 약속 한 것 같다.
“나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손 선배도 그렇게 지내요…….”
하늘에 마음의 메시지를 띄웠다.
텔레파시가 있다면 그녀가 받을 것 같았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그때 빗소리를 뚫고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응?‘
한국 번호가 아니었다.
“33이면 프랑스?”
설마 하는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
대답이 없다.
“손 선배?”
– ……나야 다니엘.
“!!!”
# 249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