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7
26장. 친구란?
타닥 타다다닥.
공간을 울리는 자판기 소리가 참 좋다.
밤이 어느새 찾아왔다.
창문 너머 불빛 반짝이는 시내를 보며 프로그램 입력을 완료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커다란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펜트하우스급으로 설계가 된 최고층이었다.
복층 형태로 천장도 높았다.
통유리 너머로 장주강과 시내가 시원하게 보였다.
투두둑 비가 내렸다.
제법 굵은 빗줄기였다.
창문을 때리는 늦가을의 빗줄기는 정신을 차갑게 식혔다.
디디디 딩 디리리리리리리♪
며칠 전 구입한 진공 오디오 시스템에서 원음에 가까운 선명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빗소리와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악마의 바이올린 연주자라 불리는 파가니니.
바이올린 카프리치오 24번 곡이었다.
바이올린 연주자들 사이에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라 불렸다.
환상적이고 경쾌한 주법은 정신을 맑게 만들었다.
지금 내 인생과 닮았다.
누구에게 영혼을 팔지 않았지만 아찔한 기교를 부리며 인생을 설계 중이다.
“환상이네…….”
기분 좋은 밤이다.
집에서 본격적으로 독립을 했다.
이제 곧 3학년이라 공부에 매진할 때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두말없이 승낙했다.
공부를 위해서는 하숙해야 할 거리였다.
아들이 집을 사서 나가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그 월요일에 아파트 두 채를 얻었다.
한 채는 엄마, 또 한 채는 내 이름으로 구입했다.
나와 어머니 주식 계좌로 벌어놓은 통장에서 가뿐하게 인출해 지불했다.
엄마 차도 사드렸다.
대형 벤츠는 사양하셨다.
동네 사람들 눈치가 있다며 적당한 크기를 고르셨다.
벤츠 E 클래스 W211 모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었다.
벤츠를 운전하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과거 비슷한 종류를 몰아본 흔적을 느꼈다.
운전도 어쩜 그리 잘하는지 깜짝 놀랐다.
중형 외제차는 일반 중년 여성들 같으면 놀라서 벌벌 떨 만도 하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분위기로 차를 지배하셨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여유가 느껴졌다.
차가 생긴 이후로 엄마는 바빴다.
하루에 한 번 엄마는 본인 명의 아파트에 들러 빨래와 밥을 해놓으셨다.
작업하는 내 집에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알려줬지만 작업하는데 방해만 된다고 했다.
예술가의 사적 공간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사과밭이 작아 일이 많지 않았다.
사과도 아버지가 일꾼을 부르셔서 따셨다.
몸 약한 엄마 약값보다 싸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그 기간에 자기 아파트를 꾸미셨다.
혈색이 달라지셨다.
엄마 명의 통장에 넉넉한 금액을 입금해 놨다.
엄마 명의 주식 계좌 이체였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엔틱한 자기 스타일의 원목 가구를 장만하셨다.
그리고 거실에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변신은 무죄였다!
나와 쌍둥이, 그리고 능력 없는 남편을 만나 포기했던 자기 꿈을 서서히 찾으셨다.
그렇다고 가정을 팽개치지 않았다.
좋은 재료를 듬뿍 담아 맛 좋은 요리들을 내놓았다.
쌍둥이들과 가끔 저녁이나 주말에 아파트로 와서 펜션처럼 이용했다.
동생들도 내 집은 들어오지 못했다.
나만의 아성을 구축했다.
킹사이즈 침대, 커피포트, 대형 냉장고, 초고속 인터넷, 커다란 유리 철제 책장을 살림으로 장만했다.
어머니와 달리 유리와 철제 같은 모던 스타일이었다.
컴퓨터만 다섯 대였다.
내 비밀은 스스로 지키는 게 맞았다.
내 집이라는 게 참 기분을 요상하게 만들었다.
두 번 태어나 처음이었다.
등기가 완료되고 집문서를 만질 때 묘한 감동을 받았다.
그게 바로 부동산이 주는 힘이었다.
“돈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무기다.”
요즘 들어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바였다.
현찰이라고 분양 업체에서 1프로 추가 할인을 받았다.
부모님은 사장님과 사모님 소리를 들었다.
마을에서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이웃들이 더욱 친밀하게 말을 건네 왔다.
빚쟁이라 위축되어 있던 아버지 어깨가 활짝 펴졌다.
학교생활도 대만족이었다.
피자 투척 사건 이후로 아이들은 날 영웅시했다.
간식을 가끔 풀었다.
그때마다 최고 칭송을 들었다.
생활이 안정되자 나를 위해 온전하게 시간이 투자됐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수련했다.
뒷산 정기와 집 앞 장주강의 기운이 그대로 내 몸에 흡수됐다.
바닥 방음이 잘 돼 있어 뛰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몸이 더 단단하게 변했다.
학교 가는 시간이 줄어들자 그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됐다.
어차피 첫사랑 예린 선배는 수능 때문에 아빠 차를 타고 통학하고 있다고 문자가 왔다.
집중해서 주식 투자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오늘 하루 내 수익금이 70억을 돌파했다.
내일은 90억 정도가 수익으로 들어올 것이다.
돈이 돈을 물어왔다.
증시 활황은 계속됐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상한가가 터지는 장에서 난 쓸어 담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정교하게 다음날 장에 대한 세팅을 마쳤다.
학생 신분이었기에 주식 개장시간에는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프로그램으로 투자했다.
선물과 옵션은 아직 손대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선물과 옵션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종잣돈 단위가 틀렸다.
하루에 15프로씩 미수금 풀로 땡겨 버는 주식시장 벌이만으로도 충분했다.
“곧 때가 온다…….”
내가 기다리는 타이밍이 곧이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 전에 완벽한 바닥 작업이 필요했다.
2007년 전조증상을 보이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금융위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가파르게 상승하는 해외 원자재와 격변했던 통화선물시장.
난 그때를 노렸다.
***
“야! 장태산!”
누구야? 누가 날 이렇게 친절하게 불러?
학교에서 퇴근하는 길이다.
직장 생활을 경험해서 그런지 규칙적인 학교생활은 꼭 출퇴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과거에는 돈도 없고 찌질해서 불행했다.
학교 일진 놈들에게 눈치 보는 것도 지겨웠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해피데이였다.
중간고사 만점자라는 위치는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게 만들었다.
이사장과 독대도 가능했다.
친구들은 간식 때문에라도 나에게 충성을 다했다.
친구들의 순박함이 사랑스러웠다.
다시 다니는 고등학교.
생각보다 맛깔스러웠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애들과 농담과 욕을 따먹고 하교하는 길에 누가 날 불렀다.
“저 자식들 뭐야?”
“산업고 애들이잖아…….”
“양아치들 같은데.”
같이 하교하던 친구들이 쫄았다.
우리 학교는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다.
뒷산도 있고 주변에 아파트 몇 동만 존재하는 청정구역이다.
타 학교 애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나를 부르는 놈들이 있었다.
원, 투, 쓰리.
정보화산업고 애들이었다.
인상부터 남달랐다.
정예들인 것 같았다.
“누구시던가? 친구들, 나 알아?”
옛 선인들 진짜 똑똑하다.
이런 날 쓰라고 문구도 만들어 주셨다.
내자불선선자불래(來者不善善者不來).
오는 사람은 착하지 않고 착한 사람은 오지 않는다.
아마 이 격언을 만드신 분이 사채를 많이 땡긴 분 같다.
아니면 돈이 많아 돈 빌려달라고 오는 분들이 많은 갑부이거나 말이다.
“친구? 미친 새끼.”
“너 따라와 새꺄.”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다.
벌건 대낮에 남의 학교 앞에서 나를 픽업하려고 했다.
건들건들 침 찍찍.
아주 행동이 가관이었다.
그렇게 침 뱉고 눈깔에 힘주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나이다.
안타까웠다.
“침 그만 뱉어라. 혓바닥 뽑아버리기 전에.”
나 착한 탈 벗은 지 오래다.
활짝 웃으며 경고를 날렸다.
새끼들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와! X발 새끼. 제대로 돌았네? 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냐?”
“너 이 새끼 아가리 찢어버린다!”
과거에는 저 말에 쫄았을 게 확실하다.
하지만~
“안 쫄리니까. 적당히 이빨 털어 새끼들아. 그리고 시간 나면 니 아가리부터 찢어줄게. 어디냐? 시끄럽게 말고 앞장서라. 니들 눈에는 우리 학교 애들이 핫바지로 보이냐?”
공부 잘한다고 쌈을 못하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나름 유명인사인 나와 시비가 붙자 애들이 주변을 둘러쌌다.
숫자가 대충 봐도 수백 명이 넘었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밟혀 죽을 수도 있다.
다들 피가 끓는 혈기가 넘쳤다.
지금도 산업고 애들에게 살기가 팍팍 꽂혔다.
“……, 따, 따라와 새꺄!”
놈들이 앞장섰다.
그 뒤를 따라갔다.
“태, 태산아 같이 가!”
“저 새끼들 오늘 조져버리자!”
피방에 가려고 같이 움직이던 친구들이 합세했다.
그래 너희들도 양심은 있구나.
피자와 학교 매점 털어서 키운 친구들의 우정이 새삼 든든했다.
“그런데 태산아…….”
언제나 배고픈 도중이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왜?”
흐뭇하게 친구를 봤다.
도중이가 활짝 웃었다.
배가 뽈록 튀어나온 저질 몸매가 오늘따라 더 듬직했다.
자기만 믿으라는 그런 멋진 말을 할 것 같다.
아……, 이 친구들이 정말 좋다!
“같이 가주면 오늘도……, 피자 쏘는 거지?”
뭐, 뭐라고?
헐. 이런 끈적한 저질 인공 치즈 토핑 같은 친구 놈 같으니라고!
# 27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