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91
291장. 뉴욕 파티 (2)
‘뭐지? 저 여자는 누구야?’
낯선 남자들에 둘러싸여 대화를 나누던 도도희는 신경이 예민해졌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파티에 잠깐 흥분해 버렸다.
장태산 대표는 예상대로 라이프 스케일이 컸다.
말로만 듣던 뉴욕 상류층들은 다 모였다.
유명 정치인 블룸버그 뉴욕 시장부터 시작해 할리우드 연예인, 내로라하는 예술가, 월가의 펀드 매니저, 실리콘벨리 CEO 등등.
누가 봐도 끝장 스펙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파트너로 함께 참석한 여성들의 미모 또한 대단했다.
보석과 최고급 명품으로 도배한 여성들은 파티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어떤 파티보다 격조 있으면서 감춰진 욕망을 진하게 발산했다.
이곳에서 연결되는 누구라도 서로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드레스 코드도 엄격하게 지켜졌다.
와인은 분위기를 거들 뿐 주가 되지 못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많은 정보들이 교환됐다.
위태로운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해 논의하는 비공식적 정보 통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장태산 대표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월가 투자의 신 로버트 라이언이 직접 파티를 주관해 환대할 정도였다.
김한별에게 농담처럼 자가용 비행기가 대표 소유라고 말했다.
부정하지 않던 장태산 대표.
대표와 로버트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존재함을 도도희는 진작 눈치 챘다.
미국에 와서도 로버트 라이언과 독대 시간이 많았다.
이상할 정도로 로버트 라이언은 장태산 대표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은 마치 부하 직원이 상사를 대하는 태도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뭐야? 아는 여자였어? 흐음…….’
도도희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장태산 대표를 기다리며 옆에 다가온 남자들과 잠시 환담을 나눴다.
김한별과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도희를 남성들은 가만 두지 않았다.
은근슬쩍 개인 정보를 물으며 미래를 타진하려는 남성들의 태도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며 구애를 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국 대학교 재학시절 많은 인기를 누렸던 도도희는 남성들의 시선을 즐길 줄 알았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파티에 참석한 남성들 중에서도 월등한 외모와 스펙, 분위기가 돋보이는 장태산 대표는 눈에 띄었다.
여성들이 바로 관심을 보였다.
와인 잔을 들고 바닷가 쪽으로 향하는 장태산 대표.
뒤를 쫓아가는 여성들의 시선들이 암암리에 뒤엉켰다.
로버트와 함께 등장할 때부터 은밀한 호기심이 사방에서 폭발했다.
“뭐야? 사라 요한슨과 아는 사이였어?”
“저 동양 남자 누구야? 분위기 있는데?”
“리처드 요한슨 상원의원까지 온 건 아니지?”
“딸이 왔으니까 모르지.”
‘리처드 요한슨!’
도도희는 내심 놀랐다.
미국 유학 중에 수시로 들었던 리처드 요한슨 상원의원.
민주당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릴 정도로 정치적 파워가 장난 아닌 상원의원이었다.
대통령감까지는 아니어도 의회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차일드 가문의 방계 혈족이라고 들었다.
끈끈한 유대인들의 지원을 받는 미국의 중요 인사인 셈이다.
그는 중소 국가쯤은 망하게 할 수 있는 정치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딸이 바로 사라 요한슨이라는, 저 여자 같았다.
유력 정치인의 딸이 파티에 등장하는 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문제는 사라 요한슨이 장태산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딱 봐도 뭔가 농밀한 감정이 흐르는 두 사람의 모습이다.
과거부터 알고 있지 않다면 저런 친밀한 느낌이 전해질 리가 없었다.
도도희 이마가 가볍게 찌푸려졌다.
오늘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다가갈 수 없었다.
사라 요한슨과 장태산 대표가 풍겨내는 오붓하고 애틋한 에너지는 주변 모든 시선을 거부하고 있었다.
***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다니엘…….”
부드러운 사라의 목소리.
날 향한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없이 반짝였다.
“사라도 그대로입니다.”
놀람을 넘어 당황스러웠다.
꿈처럼 하룻밤을 보냈던 사라.
그녀가 로버트가 주관하는 파티에 나타날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유명 인사들만 허락된다는 파티였다.
MoMA의 큐레이터 신분인 사라가 참석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자리였다.
뭔가 숨은 사연이 있는 듯했다.
로버트가 입구에서 걸러내지 않고 파티에 입장시킬 정도라면 신분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사실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다만 금발의 정직하고 착한 몸매를 소유한 사라 요한슨이 주변 여성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수많은 미녀들 사이에서도 사라 요한슨은 홀로 뜬 별처럼 당당한 매력을 물씬 풍겼다.
딱 꼬집어 말 할 수는 없지만 격이 달랐다.
MoMA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짝퉁 그림으로 인해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벌였다.
그리고 실력으로 짝퉁을 증명해 보였다.
거짓말 같은 증명과 반전의 연속이었던 우리 둘의 만남.
그리고 맛있는 저녁 식사와 와인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뜨거운 밤…….
이번 생에 첫 순정을 바쳤던 사라가 그대로 잊혀졌다고 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계속 인연을 이을 기회가 없었다.
연락처도 없이 새벽에 떠나 버렸던 사라.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다시 이렇게 나타났다.
빙긋 그녀가 웃었다.
와인 잔을 들고 서 있는 사라의 긴 금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화폭에 담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보고 싶었어요.”
사라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백하듯 말했다.
그 동안의 촉촉한 그리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
원나잇을 원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보고 싶었다는 사라의 말에 진심이 가득했다.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이 순간 느껴지는 느낌을 그대로 전달했다.
와인이 담겨 있는 잔을 내밀었다.
사라를 허락한다는 의미.
팅!
맑은 와인 잔의 울림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며 그녀와 나를 이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은 이때 사용하는 것 같다.
“그림은 안 그려요?”
“학생신분이라 학교 수업 소화하기도 벅찹니다.”
“와아아……. 그건 신이 주신 재능 낭비입니다. 다니엘은 그림을 그릴 때 완벽한 남자였어요. 대책 없이 섹시하다고나 할까?”
뭐지 이 분위기?
사라의 마지막 섹시라는 말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밤을 새다시피 한없이 뜨거웠던 열정적인 그녀다.
등이 시원하게 파인 블랙 원피스를 입고 있는 그녀가 위험한 폭탄처럼 느껴졌다.
매끄럽고 새하얀 피부는 그 날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들었다.
눈빛이 도발적이다.
누가 봐도 이건 유혹이다.
로버트가 새삼 고마웠다.
찌리릿 도도희의 눈빛이 한쪽에서 감지 됐다.
애써 무시하고 사라에게 집중했다.
사라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갔다.
“유혹입니까?”
도발적인 질문이 나갔다.
세상에 쉬운 만남은 없었다.
더욱이 남녀 간에 인연은 더욱 그랬다.
진하게 남겨진 흔적처럼 서로를 영혼 깊숙이 기억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부정해도 언젠가 다시 떠오르는 포맷되지 않는 영구 기억장치에 저장된다.
“다니엘은 저 생각한 적 없어요?”
여러 의미가 함축된 질문이다.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네???”
이번에는 사라가 놀랐다.
그녀의 질문에 역공을 시작했다.
그날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떠나보냈지만 이제는 달랐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연락처를 남겼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더군요. 까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 날은 미안해요……. 그때는…….”
사라의 푸른 눈동자에 미안함이 감돌았다.
당시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는 의미 같았다.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원나잇을 즐기고 떠나버린 사라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순수한 여인이었다.
그림을 사랑하던 열정 넘치는 큐레이터 사라 요한슨.
그녀가 다시 내 마음의 문을 노크했다.
“나도 미안합니다. 먼저 연락처를 묻지 않은 제 실수입니다.”
사라와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절절한 사랑의 관계는 아니라는 걸 둘 다 안다.
조금씩 알아가야 하는 단계지만 그 보다 조금 더 친밀했다.
소개팅 첫날 키스 이상의 진도를 빼버린 관계 같았다.
아메리칸 스타일은 말보다 행동이었다.
“그 실수 이제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
사라가 활짝 웃는다.
아!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광고 카피 문구가 떠올랐다.
어쩔 수 없으면 즐겨라!
이 상황에 날 위한 제대로 맞춤형 자위 문장이었다.
***
“아가씨는?”
-로버트 라이언 파티장에서 그린 레벨의 타깃과 대화중입니다.
“다니엘 장이라는 한국인인가?”
-맞습니다.
“흐음…….”
차일드가의 방계인 요한슨 가문을 지지하는 코미어는 가드와 통화를 하며 신음을 짧게 흘렸다.
그린 레벨로 하향해도 될 만큼 위험 지수가 내려간 다니엘 장.
아가씨와 밤을 보낸 걸 알아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후 다시 만나거나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코미어가 아는 한 사라 요한슨은 가문의 이름에 누가 되는 짓을 하지 않고 성장했다.
녀석과의 만남도 아주 짧았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로버트 라이언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다니엘이라는 자와 다시 만났다.
-어떻게 할까요?
사라를 보호하는 가드가 조치를 물어왔다.
“일단……. 지켜본다. 일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연락하라.
사라가 경고했었다.
자신의 사생활에 너무 깊게 관여하지 말라고 말이다.
아직까지 큰 사건은 없었다.
굳이 미래의 주인이 될 수도 있는 사라와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문제가 된다면 그깟 놈 하나 해결하는 건 일도 아니다.
CIA를 비롯해 미국 권력 핵심부에 포진한 손과 발들이 많았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다니엘 장……. 내가 우려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로버트와 그냥 푼돈이나 만지며 살아라. 그게 서로 편할 것이야.”
조용히 뉴욕 하늘을 바라보며 경고를 날리는 코미어.
차일드 가문은 보이지 않는 전쟁에 돌입했다.
세계 경제 위기도 그 한 면이었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엄청난 부와 권력을 움켜진 차일드 가문.
승자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돈이 대리자가 되어 세계 각국에서 전쟁을 벌였다.
이런 와중에 한낱 외국인 따위에게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일순간의 일탈과 불장난은 젊은 친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
‘그래……. 이 남자였어…….’
사라는 다니엘 장이 입국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맛봤다.
물론 스치는 바람이었을 뿐이라고 외면하며 잊으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MoMA 지하실에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려 증명했던 다니엘 장.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왔던 날것 그대로의 체취는 사라를 마법의 포로로 만들어 버렸다.
시간일 지날수록 다니엘이 더 보고 싶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깊이가 남달랐던 그림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순간 달아올라 함께했던 하룻밤은 생각만으로 다시 얼굴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한국으로 직접 찾아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가문 차원의 중요한 일이 진행 중이었기에 인내로 참았다.
자칫 일이 틀어지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권력 투쟁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이 참석 예정인 로버트의 파티에는 결코 빠질 수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 남자를 다시 보고 싶었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호감은 품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남자를 보는 순간 사라는 확신했다.
자신의 감정을 흔들리게 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한 남자라는 사실을.
“오늘따라 와인 맛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다니엘이 담담하게 웃었다.
셔츠 사이로 보이는 날렵한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생생히 기억나는 다니엘의 모든 것.
길었던 기다림을 오늘 끝내고 싶었다.
사라는 결심했다.
“다니엘…….”
그의 이름을 더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리고…….
“오늘 밤……. 저와 와인 한 잔하실래요?”
그 날 밤을 달궜던 유혹의 언어들이 사라의 입에서 달콤하게 흘러나왔다.
# 29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