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95
295장. 스티븐 (2)
‘보, 보스!’
로버트 라이언은 당황했다.
스티븐이 신경질적인 건 사실이지만 아픈 이에게 대놓고 무덤을 언급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애플의 탄생과 신화의 중심인 스티븐 매튜.
그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월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가장 미국적인 실리콘 벨리 창조적 제조 기업 중 하나로 꼽혔다.
그리고 아이펀은 핸드폰의 패러다임을 바꿔가는 중이었다.
인터넷과 각종 기능들이 본격적으로 융합되어 핸드폰이라는 기기로 응집됐다.
지금도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로버트도 사용해보고 그 혁신에 놀라고 감탄하는 중이다.
투자회사 보고서에도 앞으로의 무궁한 성장 가능성을 점쳤다.
보스 투자 지침서에도 꾸준한 주식 매입 지시가 명시돼 있다.
그런 마당에 직접 대면 중에 보스가 너무 강하게 나갔다.
포드 자동차의 재무 담당 이사 제프에게도 같은 태도를 보였던 보스.
파바밧.
스티븐과 보스 사이에서 사방으로 불통이 튀는 것 같은 환상이 보였다.
“으음…….”
로버트가 신음을 흘렸다.
사자들 싸움에 피 보는 버펄로 신세 같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스티븐이 미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시원한 광소였다.
“???”
이해할 수 없는 스티븐의 행동에 로버트는 또다시 당황했다.
“부럽습니다.”
보스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었다.
애플 신사옥을 첫마디에 무덤이라고 일갈하더니 이번에는 부럽다고 진심으로 전했다.
“친구 마음에 들어~.”
스티븐이 씩 웃었다.
“마찬가지입니다.”
보스도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주먹을 주고받아야 정상 아니야?’
경비원을 불러 쫓아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부럽다고 말하는 보스에게 마음에 든다고 화답하는 스티븐.
둘 다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앉지. 내가 귀하게 구입한 보이차가 있어. 운남 지방 원시림 고목 녹차 나무에서 채집한 첫 잎으로 만들었어. 20년쯤 됐는데 맛이 기가 막혀.”
로버트를 안중에 두지 않고 스티븐은 보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로버트, 앉으세요.”
“그, 그럴까?”
보스가 자리를 권했다.
월가의 거물급 투자자가 된 이후 처음 대놓고 외면을 당했다.
로버트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경건하게 차를 내리는 스티븐 매튜가 물었다.
“누구나 짐작 가능한 상황입니다. 어차피 암은 정복되지 못할 걸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췌장이 망가졌으니 다음 수순은 약물과 과로에 지친 간을 바꿀 것 같군요. 그것도 약발이 안 들면……. 신의 부름에 기꺼이 응해야겠지요.”
담담히 말하는 보스.
“크크크.”
스티븐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죽음을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스티븐이나 보스 두 사람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걸림이 없었다.
‘간 이식 수술을 계획 중인가? 췌장암이 그렇게까지 전이 된 거야? 도대체 보스는 그런 정보를 어디서 얻는 거야?’
로버트는 보스의 끝을 알 수 없는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건 미래를 훤히 보고 예언하는 선지자급이었다.
“그건 아직 비밀이야. 아직 할 일이 많아~ 우리 이사들이 알면 날 당장 자리에서 끌어내 요양병원에 처넣으려고 할 거야.”
“스티븐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 정도로 당신의 파워가 약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그럼요~ 이사들도 알고 있기에 당신이 생명을 갉아 먹어도 닥치고 있는 겁니다. 그들에게 우정이나 친밀은 돈보다 한참 아래에 두는 가치입니다.”
“오! 다니엘 정말 마음에 드는 표현이야. 우리 이사들 앞에서 한마디 해 주겠나?”
“사양합니다. 저도 스티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화끈한 투자자입니다~.”
“……나쁜 친구군.”
오늘 처음 대면하는 자리임에도 까칠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스티븐은 보스와 자연스러운 환담을 나눴다.
언뜻 보면 오랜 친구 같아 보였다.
“그래도 돈 없는 것보다는 좋지 않습니까? 거대한 피라미드를 완성하도록 돕겠습니다.”
“빨리 죽으라는 건 아니지?”
“사후를 보장하죠.”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럼요. 알고 왔습니다.”
“…….”
두 사람의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진 로버트 라이언.
그저 귀를 열고 수수께끼 같은 대화의 열쇠를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
– 신의 예비자를 대면했습니다.
– 미량의 카르마 포인트가 그를 위해 축복으로 사용됐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 신의 예비자라니!
그를 처음 본 순간 울린 알림음에 화들짝 놀랐다.
스티븐 매튜에 대해서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의 죽음 직후 자서전 열풍이 불었다.
회사 필독서가 되어 읽어보고 독후감까지 썼다.
그만큼 2008년도에 벌어진 일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2004년 췌장암에 걸린 스티븐은 투병 중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암 중에서 가장 고약하기로 소문난 췌장암을 앓으면서 7년이나 버텼다.
죽기 전까지 일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독설을 뿌렸다던 그.
2009년 간이식을 받았지만 기대했던 만큼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췌장이란 녀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민한 놈이다.
화타가 넘겨 준 지식에 의하면 췌장암은 만성피로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스티븐처럼 머리를 다른 이들보다 몇 배나 더 사용하는 사람들은 각종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치명적인 병으로 발전하게 된다.
인체는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우주 생명체다.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언제나 자동차 라지에이터 같은 신장이 풀가동 된다.
열을 내려주는 신장 능력이 떨어지면 폐가 뜨겁게 되고 식혀지지 않는 피로 인해 간은 독성을 걸러내지 못한다.
그러한 영향들이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자극한다.
스티븐이 다른 미국인들처럼 고기와 탄산음료, 술을 즐겨 마셨다면 죽음은 더 빨리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븐은 일찍 선불교에 심취해 곡물과 채소만 먹었다.
유기농 음식물들이 기를 보충해준 덕에 그나마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된 피로는 에너지 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는 기울 증상을 만들어 냈다.
기울은 혈액 순환에 악영향을 끼치는 어혈로 이어지며 어혈은 인체 에너지를 약하게 만들어 추위를 잘 타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으로 체액이 부족해 음허를 발생시켜 열이 머리 쪽을 치게 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장이 망가져 간다.
동시에 혈이 허해지는 혈허 상태가 되고 불면증이 동반되면서 피부가 건조해지고 눈이 침침해진다.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때 쉬고 치료를 병행해야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만성 피로로 치부하며 때를 놓쳐버린다.
더 나아가 생명 활동의 원천인 선천지기까지 손상을 입는 기허로 넘어가면 면역력이 바닥으로 떨어져 감기를 달고 살게 되고 매사에 힘이 없게 된다.
그리고 무색의 액체인 몸의 진액이 고갈되고 정체되는 수체에 이르면 가장 약한 몸의 기관 중 한 곳이 확실하게 망가졌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지금 스티븐 매튜가 겪는 현상은 이 모든 것의 종합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나를 만난 만큼 아직 기회는 있었다.
화타의 의술이라면 충분히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 신의 축복을 당겨 사용한 자입니다. 치료할 수 없습니다.
– 당신의 생명과 교환 가능합니다. 교환 하시겠습니까?
연속으로 경고음이 떴다.
– 카르마 포인트의 비밀을 미약하게 아는 인간입니다.
– 신들이 선몽으로 그를 각성시켰습니다.
– 여러 신들이 포인트 육성자인 그에게 투자한 상태입니다.
이래서 스티븐이 맞이할 죽음이 부럽다고 말했던 것이다.
신들과 맹약을 맺고 다른 능력을 가져다 사용했던 것 같다.
선불교에 심취했던 그의 삶이 사후의 영역 부분에서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홀로 수련하다가는 자칫 영혼이 무한 확장되고 개방될 수도 있었다.
지금의 스티븐 매튜처럼 말이다.
그가 이런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신들이 그를 찍은 건 확실했다.
앞으로 스티븐이 벌어들이는 카르마 포인트는 투자한 신들과 나눠야 할 것이다.
스티븐이 죽고 신이 된 후 이러한 이치를 알게 된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수도 있었다.
신이 되어도 별것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들이 그에게 능력을 준 것 같았다.
나도 짐작할 수 없는 스티븐만의 능력.
스티븐은 죽음을 기다리는 순례자 같았다.
그가 죽음은 삶이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격찬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충분한 대가를 치르고 21세기 천재 찬사를 받았으며 죽어서도 신으로 예약된 스티븐.
스티븐 매튜는 천재 개발자가 아니라 기획자였다.
자신의 생각을 여러 인재들을 투입해 완성해 나가는 S급 상인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티븐.
그의 눈빛은 은하계에 뿌려진 반짝이는 별을 닮았다.
유리알 같이 맑은 두 눈이 진실로 부러웠다.
죽어봤지만 나는 다시 죽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눈앞의 천재는 전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한때 자신이 낳았던 딸을 부정하는 못난 모습도 보였지만 역시 한때였다.
인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버린 아이펀의 발명.
스티븐으로 인해 IT 산업은 지각 변동을 일으켰고 인간은 신의 영역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됐다.
“오늘 저녁 시간 비었지?”
“물론입니다.”
“내가 근사한 당근 요리를 제공하지. 콩 수프에 넣어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혀.”
“제가 요리를 해도 되겠습니까?”
“요리도 할 줄 알아?”
“신들이 주신 재능입니다.”
“……오! 정말 부러운 재능이군! 나도 한때 요리사를 꿈꾼 적이 있어. 빌어먹을 설탕 덩어리와 방부제 고기로 인간을 병들게 하는 놈들에게 자연의 요리 맛을 멋지게 선물하고 싶었지! 하지만 신들이 나에게 요리 재능을 주시지 않았어. 엿이나 먹을 신들 같으니!”
신들을 욕하는 스티븐의 욕설이 찰졌다.
죽고 나서 그가 어떤 신이 될까 궁금했다.
“무덤은 멋지게 완성해 드리겠습니다.”
“부탁해. 돈 많은 돼지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 나 그거 죽어서도 반드시 필요해.”
찡긋 눈을 감는 스티븐 매튜.
나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하지만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살아서 신이 되려는 스티븐의 욕망이 존경스러웠다.
스티븐은 피라미드를 통해 카르마 포인트를 쓸어 담으려는 계획 같았다.
모든 비밀을 알고 추진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신계 카르마 포인트 거래 비밀을 알았다면 죽음 직전까지 일에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았다면 벌어들인 돈으로 자선 사업한다고 난리가 났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인트는 쏠쏠하게 벌어들일 것으로 보였다.
아이펀 시리즈는 내가 살았던 2020년까지 계속 출시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인간들은 정보를 마음껏 취합해 역 제공할 수 있었다.
막대한 몰입 시간 같은 부작용도 동반됐지만 인류 생활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었다.
누구나 손바닥 안에서 미술과 음악 같은 예술을 맛보고 세계 곳곳을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과학과 의료와 결합하여 더 혁신적인 제품들이 연동해서 탄생했다.
인류의 공평한 발전과 미래를 위한 도구였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지휘하게 될 커맨드 센터 같은 애플 신사옥.
포인트 앵벌이 창고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탐이 났다.
그러나 내가 스티븐 것을 탐할 만큼 욕심꾸러기는 아니었다.
다만…….
“공짜는 아닌 거 아시죠?”
“뭘 원해?”
“주식을 가져가겠습니다.”
“……무상 증여는 못 해. 내가 죽고 나면 바로 재혼할 여자지만 아내와 자식들도 먹고 살아야지.”
“…….”
진짜 무서운 스티븐의 예지력이다.
스티븐이 죽자마자 그녀의 아내는 활짝 웃으며 재혼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능력껏 취득하겠습니다. 말리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아내 분과 자식들은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애플 주식은 대주주들에 의해 취득이 제한됐다.
스티븐의 허락 없이는 일정 이상 지분 취득이 가능하지 않았다.
“하하하. 고맙네. 다니엘~. 자네 제안을 적극 환영하는 바이네!”
손을 마주 잡았다.
뜨겁게 느껴지는 스티븐 매튜의 손.
살아생전 내가 희대의 천재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전생에도 꿈꿔보지 못했다.
이런 게 회귀의 참맛이었다.
생각보다 더 인간적인 남자 스티븐 매튜.
전설적인 그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이번 생이 너무 좋다.
# 29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