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2
31장. 특별 과외
막장은 이래서 막장인 거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상황 전개가 펼쳐지면 그게 막장이다.
지금이 딱 그렇다.
“예, 예린 선배!”
왜 내 입술이 떨리는 거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들어서는 예린 선배 눈치를 봤다.
클럽에서 놀다 애인에게 걸린 기분?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나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모양이 좀 그랬다.
아직도 내 이마에 손을 얹고 있는 서련이의 부드럽고 가느다란 손.
살며시 내 손으로 치웠다.
예린 선배 눈동자가 그 손에 꽂혀 있었다.
‘꽃밭은 꽃밭인데……. 이건 아니라고!’
예린 선배 손에도 꽃이 들려 있었다.
장미 세 송이가 섞여 있는 수수한 안개꽃 다발.
서련이 가져온 꽃다발은 그냥 붉은 장미꽃 다발.
둘의 성격이 보였다.
그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우 예린 좌 서련의 조합은 월등한 미모로 눈이 부셨다.
이것도 회귀한 나에게 주는 복인 게 확실했다.
하지만 복이 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찌릿찌릿.
병실에서 보이지 않지만 스파크가 튀었다.
참나……, 시간 좀 다르게 오면 얼마나 좋을까!
“괜찮아? 아프다며?”
“네? 네에…….”
“선배 오셨어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귀한 시간을 빼셨네요~.”
“그럼. 아무리 바빠도 태산이가 다쳤다는데 와봐야지~. 수능이 대수니.”
와아……, 웃으면서 어떻게 저런 살벌한 눈빛을 보낼 수 있는 거지?
두 여인의 불꽃 튀는 신경전에 땀이 났다.
난 아무 죄가 없다.
회귀해서 내 짝사랑 그녀에게 친절했을 뿐이다.
그러다 서련이 나에게 꽂혀 사단이 난 거다.
여기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그것도 억울했다.
아직 내 공식 애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로 난 잠정적 솔로다.
“다들 앉아요. 꽃은 탁자 위에 놔두세요. 제가 잠시 후에 꽂겠습니다. 냉장고에 음료수 있습니다. 각자 취향대로 한 캔씩 하세요.”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이 상황이 우습기도, 재밌기도 했다.
몸은 고삐리지만 누적된 삶의 경험치는 30대였다.
여고생들의 불꽃 튀는 경쟁에 웃음이 나오는 게 정상이었다.
‘난 아재다! 난 아재다!’
주문을 걸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난제를 타계할 방법이 없었다.
두 여자, 아니 소녀들은 내 말에 냉장고에서 각자 취향대로 음료수를 꺼냈다.
우 예린은 아침에 오렌지 주스, 좌 서련은 탁 쏘는 코카콜라.
그런데 누가 환자 방에 콜라를 사온 거야?
“태산아, 너는?”
“전 마셨습니다.”
예린의 배려 점수가 1점 상승했다.
“바쁜 시간 쪼개 둘 다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난 환자였다.
침대 위에 누워 둘을 차분하게 지켜봤다.
여기서 나까지 흥분하면 진짜 막장드라마 되는 거다.
“오빠야가 아픈데 당연히 와야지~ 알면서~.”
“그래. 당연히 와야 할 일이지.”
예린 선배는 차분하게 답했다.
애교를 팍팍 떠는 서련과는 대비됐다.
교복도 확실히 비교됐다.
같은 학교 교복 임에도 풍기는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짧게 무릎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간 서련의 교복은 섹시미가 강조됐다.
발육이 남다른 가슴과 키는 교복으로 커버하기에 무리였다.
그에 반해 예린 선배 교복은 투피스 정장 같았다.
커리어우먼의 복장처럼 정갈하고 산뜻했다.
“서련이 너 서울 갈 때 안 됐어? 소속사 계약 아직이야?”
“어! 오빠가 어떻게 알아? 내가 얘기했어???”
서련이 깜짝 놀랐다.
“소문 다 났어.”
“아!”
이때쯤 서련은 소속사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연예계로 뛰어든다.
학교도 서울로 전학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배는 수능 준비 잘 돼요? 수시 봤죠? 결과 나왔어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질문을 던졌다.
“응…….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수시 2학기 합격했는데 논술이 문제야.”
내신을 비롯해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학교 생활기록부가 빵빵한 예린 선배였다.
당연히 수시에 합격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논술이었다.
2007년에 난 장주여고에서 예린 선배 합격 현수막을 보지 못했다.
“무슨 과 지원하셨어요?”
“……법학과.”
선배가 부끄러운 듯 답했다.
“오오! 멋져요!”
“피이, 선배 그럼 판사나 검사되는 거예요?”
서련은 세상모르는 순진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대 법학과와 사법고시와는 천지차이다.
고시에 합격해도 성적이 좋아야 판검사에 임용된다.
예린 선배 성격이나 학업 성취도를 보니 고시도 무난히 패스할 것 같다.
그런데 왜 떨어졌을까?
한국대 법학과 수시에 합격할 정도로 뛰어난 선배다.
문제는 논술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해법을 알고 있다.
재수시절 논술 준비할 때 봤던 내용이다.
‘이걸 말해줘?’
갈등이 일었다.
아무리 짝사랑이자 첫사랑 예린 선배라고 해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자칫 천기라도…….
‘무슨 천기! 예린 선배 같은 분이 판검사 해야지!’
내가 언제부터 천기에 신경 썼다고 별 걱정이다.
첫사랑에게 그 정도 아량은 베풀 줄 알아야 남자다.
이런 걸로 흔들릴 천기라면 천기도 아니다.
“선배, 저도 논술 준비하는 중인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벌써 논술을?”
“네. 제가 욕심이 많아요.”
“그래……, 물어봐. 아는 범위 내에서 대답해 줄게.”
‘선배. 이 과외 지금 어떤 과외에 얼마짜린 줄 아세요?’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가지고 비밀 논술 학원을 차린다면 난 인당 최소 1억은 챙길 수 있었다.
한국대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위치다.
합격만 하면 신분이 달라졌다.
‘당분간 볼 수도 없으니 딱이네.’
언제 다시 예린 선배를 만날지 몰랐다.
수능이 끝나면 논술을 위해 서울입시 학원에 갈 게 뻔했다.
면접까지 끝나고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을 때까지 그녀와의 만남은 이게 끝이다.
그렇기에 나도 보따리를 푸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나를 찾아와 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다.
“호동왕자가 낙랑국을 멸망시키고 돌아와 계모인 왕의 본부인에게 질시를 받습니다. 예로써 대하지 않았다고 모함을 했고 왕은 아들을 벌하려 했습니다. 이때 호동은 자신의 결백을 밝히면 어미가 죄를 짓게 되는 불효를 짓게 되고 아비인 왕께 근심이 된다 하여 자살합니다.”
“뭐야? 호동왕자가 그렇게 멍청했어? 죽긴 왜 죽어! 어떻게든 왕이 돼서 계모를 확 쫒아내야지!”
콜라를 마시던 서련이 통통 튀는 답변을 내놨다.
저런 전투적인 성향이 있어 연예계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런데 후에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호동을 비난했습니다. 진정한 효는 부모의 큰 불의를 밝히는 게 대의라 말했습니다. 선배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상충한다면 어떤 논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김부식 선생 똑똑하네. 남자라면 그래야지.”
서련은 김부식의 비난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서련과 같은 심정이었다.
계모의 음모를 알고도 자살한다는 것은 친모나 아비에 대한 죄였다.
“흐음……, 어려운 문제네. 효(孝)와 의(義)가 핵심 주제일 것 같고…….”
예린 선배는 역시 똑똑했다.
고민할 것도 없이 단숨에 핵심 키워드를 잡았다.
“어떤 선생님이 낸 문제야? 난이도가 높은데?”
동시에 놀라기도 했다.
“아시는 분이 제게 냈던 문제입니다.”
“이걸 호동왕자와 김부식의 의견에 대비해서 풀어나가야 하는 것 맞지? 그렇다면……. 이걸 설명할 공통의 주제가 필요한데…….”
예린 선배는 고민에 빠졌다.
“흐음…….”
그 모습이 심히 귀여웠다.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맑아졌다.
10대 소녀만이 풍길 수 있는 저 순수함.
맑은 피부는 로션 하나로도 커버가 됐다.
딱 소설 속 이팔청춘의 여주인공이 그녀였다.
“공통 주제는 딱 봐도 하나네.”
그때 서련이 거침없이 말했다.
뱉는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쳤다.
“서련이는 공통 주제가 뭐라고 생각해?”
자신만만한 서련의 대답에 내가 물었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아직 서련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것도 연예인을 꿈꾸는 소녀였다.
이런 논술에는 약할 게 확실했다.
“뭐긴 뭐예요. 그만한 일을 할 가치가 있냐는 게 핵심이잖아요. 오빠는 날 바보로 알아! 히잉~.”
‘헐……. 대박!’
서련이 저렇게 똑똑할 줄은 난 몰랐다.
감각이 탁월했다.
2007학기 한국대 2학기 논술 문제 핵심을 짚었다.
“가치?”
“네! 호동 왕자의 행위가 가치 있는 행동이었는지 물어야 하는 거잖아요. 과연 자살할 만큼 이 일이 가치가 있는 지가 문제예요. 저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는 김부식 할아버지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해요. 효와 의가 상충되는 상황이라면 그 가치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내려야 할 현명함이 필요한 거 아니에요? 계모의 술수에 목숨을 내놓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 제 답은 노노~ 입니다!”
서련의 대답이 똑 부러졌다.
예린 선배 물음에 줄줄 대답했다.
그리고 정답에 가까웠다.
짝짝짝.
진심으로 힘껏 박수를 쳤다.
서련이 다시 보였다.
피자집에서 필 받아 나를 찍던 왈가닥 소녀가 아니다.
핵심을 꿰뚫는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
이건 타고나야만 가능했다.
“그래……, 가치의 문제다. 죽음을 놓고 판단할 가치의 문제.”
예린 선배도 핵심을 알아챘다.
다시 한 번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예린 선배.
아마 논술 문제를 받아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전설의 족집게도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나 과외 선생 체질인가?’
과외가 생각보다 쉬웠다.
정답을 알고 있는 나에게 이건 껌을 씹는 것보다 쉬웠다.
“오빠, 내가 질문 맞춘 것 같은데 선물 없어?”
“선물?”
“으이잉! 배고프단 말이야~.”
쌍둥이 여동생들도 서련처럼 나에게 애교를 부리지 못했다.
볼을 살짝 부풀린 서련이 귀여웠다.
“우리 피자 먹을까? 선배, 어때요?”
“그래. 나도 좋아.”
“그럼 잠시만 밖에서 기다리십시오. 환복하고 나가겠습니다.”
“오빠~ 우리 사이에 그냥 갈아입어.”
서련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봤다.
눈빛이…… 소녀 같지 않았다.
안 돼! 이번 생에 난 아직 순수한 영혼이야!
“나가자.”
예린 선배가 서련의 손을 잡았다.
“선배는 태산 오빠 몸매 궁금하지 않아요? 딱 봐도 상당히 멋진데~.”
“…….”
서련의 말에 예린 선배는 볼을 붉혔다.
서련아……, 너만 궁금하냐?
나도 궁금하다고!
# 3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