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54
354장. 사기의 대명사
떨어져야 하는데 왠지 싫었다.
누가 보면 경기를 일으킬 만한 아린의 얼굴이었지만 난 괜찮았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한쪽 얼굴은 엘프도 울고 갈 만큼 아름다웠지만 또 다른 쪽 얼굴은 악마의 화신 같은 모습.
시기심 많은 마녀가 아름다운 그녀를 질투해 저주를 걸어놓은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정확히 반반이 될 수 없었다.
그녀의 관상이 보이지 않았다.
미래의 운명이 한 치 앞도 짐작되지 않았다.
“하아.”
낮은 숨을 내쉬는 아린.
고서클 마법사가 분명했지만 콧대가 높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지금껏 만나온 그 누구보다도 착했다.
풍기는 향기도 좋았다.
은은하게 품에서 느껴지는 아린의 체취를 맡으면 심신이 평안해졌다.
쿵! 쿵! 쿵!
숨을 갈무리한 아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안 다쳤어요?”
함께 쓰러진 아린이 걱정됐다.
마법사들은 마나만 믿고 사는 경향이 있어 육체는 약하다는 게 이곳 정설이었다.
“네……. 이제 괜찮아요.”
오늘도 얼굴빛이 사과처럼 붉어진 아린.
누가 보면 정말 오해할 장면이었다.
아쉽지만 아린을 일으켜 세웠다.
– 마력 성문이 완성되었습니다.
– 사대 중급 정령의 축복이 성문에 깃들었습니다.
– 화염계 마법이나 불의 정령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 수계 마법이나 물의 정령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 대지계열 마법이나 대지의 정령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 풍계 마법이나 바람의 정령에 대한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 대장장이 경험치가 듬뿍 지급되었습니다.
– 대장장이 레벨이 올랐습니다.
– 정령중급무구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 칭호가 ‘애로영화를 흙바닥에서 찍을 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오오오오! 대박!
아린과 떨어진 아쉬움을 달래주는 알림음 소리에 눈이 절로 커졌다.
예상은 했지만 이번 판도 대박이었다.
정령중급무구 제조가 가능한 대장장이는 대륙에 거의 없다고 했다.
지구에서 가져온 스테인리스나 시계를 팔지 않아도 먹고 살 방법이 생겼다.
“영주님. 성문이 다 식은 것 같아요.”
아린은 얼굴을 붉힌 채 입을 열었다.
성문을 바라보는 척 시선을 피했지만 사실은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난생 처음 남자의 품에 안긴 경험을 한 것 같았다.
그녀의 진정되지 않는 심장 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렸다.
“이제 아린 실력 좀 볼까요?”
옆에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하급 마력석을 꺼내 아린에게 건넸다.
성문에는 마력석을 꽂아야 제대로 방어가 됐다.
단단한 쇠문도 기사들의 마력에 박살이 날 수 있었다.
“네~.”
아린은 대답과 함께 자신의 소지품에서 큼지막한 푸른 병을 꺼냈다.
“마나석이 섞여 있는 은가루입니다. 마력을 증폭시키고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매개 물질입니다.”
아린은 작은 붓 하나를 꺼내 조심스럽게 철로 된 성문에 올라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심히 그 과정을 지켜봤다.
두 눈이 빠져라 시선은 오로지 마법진만 향했다.
다시 볼 수 없는 기회였다.
스윽 스으으윽.
아린은 붓을 들고 정교한 마법진을 완성해 갔다.
마력이 춤을 췄다.
아린의 몸에서 마력이 붓을 타고 빠져나오는 게 눈에 보였다.
아린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흘렀지만 닦아줄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명화를 그리는 거장의 모습과 흡사했다.
여기서 끼어들면 마법진이 망가질 것이다.
정신을 집중해 마법진을 노려봤다.
룬어들과 어울린 숫자들과 크고 작은 마법진들이 그 안에 배치가 됐다.
오묘한 공식처럼 마법진들이 공간을 차지했다.
마법진이 완성될수록 마력의 흐름이 달라졌다.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하아아아…….”
아린이 긴 숨을 쉬며 붓을 놓았다.
덜덜 떨리는 그녀의 손.
심력의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딸깍.
마정석을 성문 안쪽 예정했던 곳에 천천히 박아 넣었다.
숭고한 예식을 보는 것 같았다.
스으읏.
아린이 마지막으로 성문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마법진을 깨우는 마법사의 마지막 행위.
각인된 마법진은 부모라 불릴 수 있는 마법사의 마력으로 깨어난다.
마법사의 마력으로 마법진은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파아아아앗!
강렬한 빛이 성문에서 뿜어져 나왔다.
성문에 각인된 실핏줄 같은 마법진들이 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격한 빛으로 터졌다.
“!!!”
환상이었다.
대낮임에도 마나의 빛들은 선명하고 명료했다.
성문에 당당하게 각인되어 빛을 뿜어내는 마법진.
파스스스스스스.
분명하게 탄생을 알리더니 어느 순간 성문과 하나가 되며 사라졌다.
자신이 존재함을 당당하게 각인된 마법진으로 표시했다.
“아…….”
아린이 긴 한숨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그녀.
아린 또한 마력 방전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한 번이 어렵지 역시 두 번은 쉬웠다.
나의 품 안에서 몸을 떨며 마력을 가다듬는 아린.
손수건으로 그녀의 맑은 땀을 닦아주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완성된 강화 마법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머릿속에서 재정비되는 마법진.
수없는 마법진들과 룬어, 숫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린이 펼친 회심의 마법진에는 마법진의 정수가 녹아 있었다.
– 5서클 마법진의 정수인 강화마법진을 견식했습니다.
– 고룡 하루케우스의 축복으로 5서클 강화마법진을 습득하셨습니다.
– 마법진의 이해도가 대폭 증가했습니다.
– 고서클 마법진의 해석으로 습득한 마법과 결합한 5서클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완성되었습니다.
– 5서클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연달아 터지는 축복에 할 말을 잃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버프였다.
역시 마법은 위대했다!
나도 쉽게 부술 수 없는 성문의 자태를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일상생활에 너무나 유용한 마법진이었다.
“!!!”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에 심장이 떨렸다.
강화마법진의 무궁무진한 효능이 미친 듯 떠올랐다.
자동차가 탱크가 될 수도 있었다.
연약한 물질들이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하는 건 기본이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원했던 유기 태양열 전지의 내구성에 획기적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마력진은 아무리 같은 모양이어도 똑같은 마력을 방출하지는 않아요. 마법사의 마력응용력과 친화력, 그 날의 육체적 상태와 감정, 마력 양 등에 따라 마법진의 능력이 결정된답니다.”
품에서 벗어난 아린이 성문을 바라보며 설명을 곁들였다.
“고서클 마법사가 제조한 마법물품들이 가격이 비싼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 마력 안정화가 높기 때문이죠.”
이어지는 아린의 설명.
“마법무구만 만들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마법사들은 대장장이를 천하게 보기 때문에 망치를 들지 않습니다. 대형 마탑이 아니면 마법무구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가 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마탑에서는 마법대장장이를 계획적으로 육성하니까요.”
그건 이쪽 세상 이야기다.
자존심 때문에 돈 벌 기회를 날리면 그건 어리석은 짓이다.
“아린……. 정말 당신은 내 인생의 보물과 같습니다.”
“네?”
보물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아린.
세상 맑은 아린의 푸른 눈동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측은해 보였다.
그 두 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나에게 전해졌다.
***
깡! 깡! 깡!
아린의 조언을 생각하며 망치를 두들겼다.
대마력호흡법을 사용하여 마력을 망치에 담았다.
파앗! 파앗!
망치에 일어나는 마력의 빛이 강렬했다.
왼손에 잡고 있는 집게를 통해 검의 형태를 갖춰가는 쇳덩어리에도 마력이 깃들었다.
마력과 검이 하나가 된 듯 보였다.
제대로 된 마력검을 만들고 있었다.
중급 대장장이 기술이 온전하게 펼쳐졌다.
마력이 유통되는 마력검.
치이이익.
땀방울이 검신에 닿으며 수증기가 됐다.
“화룡아! 힘 좀 써!”
평범한 마력검을 원하지 않았다.
화르르르.
불의 정령의 뜨거운 입김이 검날에 불어넣어졌다.
– 중급 불의 정령의 가피가 검에 깃들었습니다.
깡깡깡!
손길이 더 빨라졌다.
정령의 가피가 깃들자 검에 남아 있던 불순물들이 우수수 바닥에 불똥을 튀기며 떨어졌다.
“흙저씨!”
대지의 정령이 가진 효용은 엄청났다.
부름에 불쑥 튀어나온 대지의 정령이 제조하고 있는 검날을 입에 물었다가 뱉어냈다.
“!!!”
집게를 타고 느껴지는 단단함.
대지 정령의 축복으로 검은 더할 나위 없이 단단해져 갔다.
– 중급 대지 정령의 가피가 깃들었습니다.
“인어야!”
성문을 제조하고 난 뒤에 정령의 힘을 한곳에 통합하는 능력을 습득했다.
무려 네 짝을 제작했다.
영지민들은 성문이 완성되자 축제를 벌였다.
바람의 정령의 힘으로 성문을 들고 이동하는 내 모습에 영주 찬양가로 환호했다.
무거운 거대 철문이 둥둥 떠가는 광경을 보면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장장이 통합 능력을 확실히 깨달았다.
마법과 사대 정령의 힘이 깃들 수 있는 무구의 제작.
오직 나만이 가능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잇.
인어가 나타나 시원하고 차가운 물줄기를 뿜었다.
대지의 정령의 가피가 임한 상태라 부러질 염려가 없었다.
세상 어떤 대장장이가 도전한다 해도 같은 재료로 나만큼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 중급 물의 정령의 가피가 검에 깃들었습니다.
연속 울리는 알림음에 흥이 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껏 소유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무기의 완성이 목전이었다.
사대 정령의 가피가 함께 하는 중급정령검!
“바람아~ 네 능력을 보여줘!”
정령의 친화력이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파앗!
부름에 바람의 정령이 나타났다.
과거보다 좀 더 커졌고 똘똘한 눈망울이 먼저 보였다.
중급으로 진화한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했다.
소환자의 취향에 어느 정도 맞춰서 나타나는 것 같았다.
휘리리리리리링.
차갑게 식은 검에 바람의 축복이 임했다.
– 중급 바람의 정령의 가피가 검에 깃들었습니다.
그리고…….
“완성이다!!!”
롱소드 형태의 검이 완성되었다.
중급 정령들의 가피가 가득 들어찬 검은 오묘하게 섞인 네 가지 빛을 은근히 뿜어냈다.
푸르고, 붉고, 황금빛에, 하늘빛이었다.
휙휙 검을 손에 쥐고 휘둘러보았다.
“완벽해~.”
중급 대장장이 기술이 접목되어 형태뿐만 아니라 무게 중심까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제대로 된 비밀무기였다.
– 사대 정령의 사랑 가득한 능력을 현실에 실현한 당신께 정령왕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 정령왕들의 가피가 검에 깃들었습니다.
– 모든 정령들은 정령왕의 축복이 깃든 이 검을 보기만 해도 기가 죽습니다.
– 모든 마나에 대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현격하게 증가했습니다.
– 대장장이 경험치가 듬뿍 주어집니다.
– 정령왕들이 마나 포인트를 선물로 증정했습니다.
– 레벨 업 하셨습니다.
“……사기네.”
연속으로 울리는 알림음에 어안이 벙벙했다.
버프는 쉬지 않고 몰아쳤다.
정령왕의 축복이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게 이상했다.
성문 제조 시에는 정령왕의 가피가 임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면 또 아무 때나 터지는 게 아닌 것도 같다.
“진짜……. 죽인다.”
정령왕의 가피까지 더해진 검이라는 말을 듣자 자신감이 급상승했다.
어지간한 마수들은 오줌을 지릴 게 분명했다.
감동이 몰려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성된 검을 바닥에 놓았다.
아린에게서 분양해 온 마법물품을 꺼냈다.
도전 과제는 마법주문 각인.
“이 검은 마법지팡이를 대신해야 한다!”
마법사의 상징인 마법사 지팡이.
딸깍.
검 손잡이에 마력석을 끼워 넣었다.
루벡 남작의 보물금고에서 획득한 두 개의 중급 마력석을 활용했다.
간식용 빼고는 이제 중급 마력석은 남아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주변에 이런저런 적이 너무 많았다.
비장의 한 수가 꼭 필요했다.
마법진 제작용 붓을 들었다.
마력을 불어 넣으면 뾰족한 검처럼 변하여 쇠에 각인할 수 있었다.
재료들이 조금 아쉽긴 했다.
아린은 미스릴 용액으로 제작된 마법진을 최상으로 친다고 했다.
“흐음.”
아쉬운 대로 자세를 잡았다.
검신에 각인될 마법진.
대지의 정령왕의 축복으로 부러질 걱정 없는 검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자칫 한 순간이라도 집중하지 못하고 삐끗하면 마법검은 물 건너간다.
오류가 난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마법검은 폐기물이 되는 것이다.
마법액체를 촉촉하게 적신 붓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스으으윽 스으윽.
그리고 시작된 집중의 시간.
아린을 통해 습득한 마법진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나의 요구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마법진을 가르쳐 주던 아린.
그녀에게 빚이 많았다.
다른 마법사였다면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마법사에게 있어 마법공식은 목숨보다 소중했다.
하지만 아린은 날 의심하지도 않았다.
단 한 번 보고 마법진을 습득할 수 있는 이는 세상에 없을 거란 믿음도 있어서다.
마법의 조종이라는 드래곤이나 마족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조용하고 무겁게 흘렀다.
심력을 다해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 되고 뻑뻑해졌다.
성문을 제작한 아린의 노고가 새삼 고마웠다.
온몸의 마력을 쏟아 붓기를 몇 시간째.
“흡…….”
마력이 방전되는 걸 느끼며 붓을 놓았다.
모든 과정이 끝났다.
“…….”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마법사만 알아볼 수 있는 기하학적 무늬와 수학적 기호가 빼곡하게 검신에 들어찼다.
하지만 알림음의 반응이 없다.
– 넌 대가리에 알고리즘은 깔고 사냐?
그것도 잠시 갑자기 알파닥의 까칠한 목소리가 들렸다.
# 35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