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6
35장. 세상을 훔칠 도적
“여기 법인 등록증 나왔다.”
“고맙습니다. 조 변호사님.”
“비싼 나를 알바로 써줘서 내가 고맙지. 법인 등록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앞으로 자주 보게 돼서 좋습니다. 조 감사님.”
“녀석…… 넉살도 좋다. 하하.”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조 변호사님을 만났다.
그동안 많이 친해졌다.
조 변사님이 말을 놓았다.
‘법인 등록은 끝났고.’
법인 등록을 마쳤다.
미성년자도 법인의 발기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일이 쉽지 않고 답답한 점이 많았다.
미성년자라 인감증명서 발급도 부모님 동의를 받아야 했다.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첨부되어 자본금 10억짜리 법인을 만들었다.
5억 이상의 자본금의 법인은 3인 이상의 이사와 1인의 감사가 포함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발기인이 7인 이상이어야 했지만 2001년 상법이 개정되면서 1인도 가능했다.
부모님에게 이사라는 명함을 만들어 드렸다.
감사는 조 변호사님에게 부탁했다.
조 변호사님은 흔쾌히 승낙했다.
소속된 로펌에서 고위 공무원 검사 출신이라 허용해 줬다.
매달 월급 300씩 지급됐다.
그 정도면 용돈 수준의 비용이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엄청났다.
감사라는 이름으로 이제 지검 차장검사 출신 조 변호사님과 유대 관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이제 다 밥이야!’
이제부터 난 법인 뒤에 숨을 예정이다.
법인의 장점을 최고로 살릴 생각이다.
개인 투자자는 노출이 쉽지만 법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법인 이름이 특이한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L.O.R 투자법인의 약자가 궁금하다.”
“별거 없어요. 레전드 오브 로열이라는 뜻입니다.”
“왕가의 전설? 이름이 너무 거창한 거 아냐? 너 왕족이냐?”
“에이, 왜 그러세요. 우리나라 민족들 따지고 보면 다들 왕족 출신이잖습니까. 별 의미 없습니다.”
‘진짜 이름의 약자는 레전드 오브 리턴입니다!’
회귀의 전설(Legend Of Return)!
난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회귀자였다.
전설이 되고 싶었다.
꿈속에서 호통치며 분개하던 할배의 소원대로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할 전설이 될 것이다.
“그래. 너라면 그럴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고등학생이 자본금 10억짜리 법인 설립이라니……. 그 나이 때 난 상상도 못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조 감사님.”
“너 법인 자금 삥당 치면 알지? 바로 횡령이나 배임이야~.”
“우리 사이에 그러시면 안 되죠. 조 감사님~. 적당히 봐줄 건 봐줘야죠. 제가 고용주 아닙니까~.”
“푸하하하하하하하.”
조 변호사님이 개운하게 웃었다.
저 분도 대단했다.
어린놈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검사로서는 끝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순수함이 느껴졌다.
정의감도 직접 눈으로 봤기에 안심이다.
“회계사도 알아봐 주십시오. 일단 강남에 사무실을 열어뒀지만 상주 직원이 없습니다. 직원으로 고용할 믿을 만한 분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그래? 그럼 우리 로펌에서 퇴직한 여직원 하나 있는데 추천해도 되나?”
“물론입니다. 신원보증 해주시는 조건이면 바로 오케이입니다!”
“너 고등학생 맞아? 왜 이렇게 깐깐하고 치밀해?”
“그래야 먹고 살죠. 제 밑으로 어린 쌍둥이 여동생들에, 세상 물정 모르시는 부모님도 계십니다. 잘못되면 큰일 납니다.”
“걱정하지 마. 더러운 변호사들 찝쩍거리는 거 못 견뎌서 때려치우고 나간 아가씨지만 실력 하나는 끝내준다. 경영학과 출신이지만 법무적 감각도 탁월하고 비서 재능도 뛰어나다. 내가 능력만 있었다면 변호사 사무실 개업할 때 채용하려고 했다.”
“강남에 출퇴근 가능하죠?”
“강동구에 사니까 문제없다.”
“좋습니다. 바로 채용하겠습니다.”
“뭐야? 면접도 안 보고?”
“감사님 눈을 믿습니다.”
“고맙다. 믿어줘서.”
훈훈하게 대화가 오고 갔다.
사람 사는 게 이런 맛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너무 깐깐해도 피곤할 뿐이다.
“그래도 시간 남는데 한 번 보고 결정해라. 나에게 좋다지만 너와 상생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가 처음이자 끝이라는 걸 알게 된다.”
“네! 알겠습니다.”
“저녁에 시간 괜찮지? 연락처 알려줄게.”
“네. 한동안 서울에 머물 생각입니다.”
“잘 곳은 있고?”
“파크 하얏트 조선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거기 비싼 곳인데……, 스위트룸은 아니지?”
“맞는데요.”
“……좌우지간 부러운 청춘이다.”
사업 준비가 간단하지 않다.
법인 사업체 주소를 강남으로 잡았다.
대한민국 사업 중심지는 누가 뭐라 해도 강남이다.
“부모님이 말리지는 않아? 공부하라고 말이다.”
“전교 1등에 모의고사 만점 맞았습니다.”
“대단하다…….”
오늘 조 변호사님이 많이 놀랐다.
아직 정식으로 내 밑천을 모르니까 저 정도였다.
내가 주식에 깔아 놓은 자본금이 수천억이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봐야 자라나는 새싹 같은 고등학생입니다. 조 변호사님 같은 훌륭한 어른들의 보살핌이 각별히 필요합니다.”
“됐다. 아부는 이미 날 진작 넘어섰다. 그 정도면 밥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다.”
“어떻게 밥만 먹고 살아요. 가끔 스테이크도 썰고 육회 먹고, 다금바리 회도 먹어야죠. 조 감사님. 우리 같이 먹어요~.”
내 말에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조 변호사님.
봐야 소용없습니다.
내 안에 능구렁이가 이무기 급으로 급속 성장 중입니다!
***
“불야성이네…….”
서울 강남에 밤이 찾아왔다.
조 변호사님과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왔다.
5성급 호텔답게 깔끔하고 품격이 넘치는 공간이다.
뷔페를 예약했다.
스위트룸 장기 투숙객이라고 창가 자리를 잡아줬다.
그것도 공짜!
폼 잡는다고 이탈리아 식당이나 일식당을 예약하지 않았다.
미성년자라 술도 한 잔 못 마시는 나에게 그런 공간은 허세였다.
와인 한 잔 없는 요리는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내 눈에 서울 야경이 들어왔다.
겨울이라 낮이 짧았고, 밤은 길었다.
면접자를 기다렸다.
시간이 애매해 호텔로 잡았다.
저녁 한 끼 먹자고 밤거리를 헤매고 싶지 않았다.
뷔페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다.
호텔 뷔페를 이용하는 강남 사람들은 뭔가 옷차림이 남달랐다.
내가 살던 시 사람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같은 대한민국 하늘이고 그 아래 사람인데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우리 시에 있는 뷔페는 결혼식과 돌잔치 행사로 정신없었다.
하지만 호텔 뷔페는 정신없는 행사장과 달리 조용했다.
듣기 좋고 편안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이 고급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또각또각.
나를 향해 직선으로 다가오는 정확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서 시선을 돌렸다.
한 여인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일단 늘씬했다.
딱 봐도 170은 넘는 것 같았다.
무릎 위로 10센티는 올라간 회색 투피스 정장.
상의 안쪽에 검은 블라우스가 보였다.
손에는 반짝이는 은빛 문양이 들어간 큰 지갑이 들려 있었다.
왼팔에는 가느다란 메탈 시계를 찼다.
얼굴은…….
‘대박!’
갑자기 조 변호사님의 시커먼 속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았던 30년 삶 속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미녀다.
주변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아직 꽃피지 못한 예린 선배나 서련이와는 달랐다.
화장으로 자신을 꾸밀 줄 아는 나이다.
거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온 자신감이 보였다.
걸음걸이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가끔 얼굴은 미인인데 걸음걸이가 꽝인 여자들이 있다.
여자의 걸음은 그녀의 마음 자세를 대변한다는 심리학자의 얘기가 생각났다.
차분하게 어깨 위를 덮은 갈색머리칼은 웨이브를 탔다.
“장태산 대표님?”
“네. 제가 장태산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중하며 무례하지 않았다.
“조윤태 변호사님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된 유세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앉으십시오.”
가볍게 악수를 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럼.”
짧게 목례를 취하고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은은한 향수가 기분 좋게 맡아졌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싸구려도 아닌 기분 좋은 향이다.
“미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도……. 동안에 훈남이십니다.”
동안이 아니라 그냥 어린 겁니다.
조 변호사님이 나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나를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보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많이 듣습니다.”
미소를 보였다.
그녀의 인상은 100프로 합격이다.
조 변호사님이 신원보증을 장담할 정도라면 말이 끝났다.
“면접 자리가 특이한 것 같아요. 호텔 뷔페에서의 면접은 처음입니다.”
“앞으로 제 회사 면접은 모두 다 호텔 뷔페에서 볼 예정입니다. 식사 하면서 상대를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딱딱하게 면접관 앞에 두고 사무적인 대답을 주고받으며 면접자를 평가하는 방식은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파격적이세요.”
“4차 혁명도 가까운데 인간도 변해야죠.”
“네? 4차 혁명요?”
아차차!
아직 2007년도 1월에는 스마트폰도 출시되지 않았다.
4차 혁명을 논하기에는 아직 때가 멀었다.
이 당시 댓글이 갑자기 생각났다.
누군가 휴대폰 액정이 4인치가 넘고 카메라에 엠피쓰리 기능, 어학사전에 내장 메모리가 수십 기가를 예상하는 글을 올렸다.
그때 댓글들이 가관이었다.
휴대폰에 차라리 노트북을 넣으라는 둥, 앞으로 100년 뒤 미래 사회에서나 가능한 헛소리라는 둥 반응이 팽배했다.
하지만 스티븐 매튜 형님이 내놓은 혁명적 휴대폰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IT 사회에서 고리타분한 방식은 사라져야 할 과거의 유물입니다. 제 회사가 추구하는 이념과 맞지 않습니다.”
“아…….”
유세라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하시겠습니까?”
“네에……. 대표님 면접 방식이 그렇다면 따라야죠.”
유세라는 웃었다.
내가 봐도 이 면접은 이상했다.
하지만 어쩌랴.
난 이게 편했다.
그렇게 유세라와 난 식사를 했다.
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야채샐러드로 시작했다.
하지만 곧 본전 뽑자는 생각에 와규 스테이크부터 시작해 대게까지 푸짐하게 요리를 즐겼다.
역시 특급 호텔다웠다.
요리는 100점 만점에 90점을 받아도 될 정도다.
“잘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셨다.
유세라는 보기보다 식성이 좋았다.
고기도 가리지 않았고 회 종류를 특히 잘 먹었다.
“만족스러웠다니 다행입니다.”
아……. 고삐리와 어울리지 않는 이 느끼한 대사.
하지만 난 30대 정신연령으로 버텼다.
우리를 보고 다른 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봐도 환상의 커플이다.
“그럼 이제 면접 시작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요.”
“네?”
“합격입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십시오.”
“아니 이력서도 안 보셨잖아요?”
“퇴직한 로펌 똑똑한 임직원들이 다 확인했을 거 아닙니까? 굳이 더 이력서를 볼 필요가 있나요?”
“…….”
유세라의 큰 눈이 나를 봤다.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다.
“대표님……. 뭐 하시는 분이세요?”
유세라의 물음.
빙긋 웃음 한 번 날려주고~.
“세상을 훔칠 도적입니다.”
# 3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