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386
385장. 조상님이 도우실 겁니다
– 부촌장님 실망입니다. 그런 일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리앤장 이사와 TS 그룹 회장이 찾아오는 바람에…….”
– 변명은 됐습니다. 우리 도련님이 불편한 일 처리하라고 부촌장 만들어 드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실망하게 되면……. 촌장까지 가는 거 어렵습니다.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십시오! 절대 이번에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부촌장 맹동엽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천일 그룹 비서실장이었다.
오늘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들어 준 이들이었다.
천일 그룹의 도움으로 체육회에서 보잘 것 없던 자신이 부촌장이 됐다.
서로 목적이 있었기에 무사히 이 자리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일이 틀어졌다.
천일 그룹의 후계자 천민재가 부탁한 일을 처리하지 못했다.
촌장이 장태산을 감싸고 돌았다.
천일 그룹보다 서열이 높은 TS 그룹이 뒤에 버텼다.
리앤장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승진이 문제가 아니라 밥 벌어먹는 자리에서 잘리게 생겼다.
천일 그룹은 업계에서도 일처리가 차갑다고 소문난 기업이었다.
노조에 가입하면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직원을 쫒아냈다.
어용노조만 존재했다.
오너들의 냉혈 경영에 직원들도 수시로 잘려 나갔다.
부촌장 맹동엽 한 사람 바꾸는 건 일도 아니었다.
– 도련님이 국가대표로 있는 동안 잘하십시오.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네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 그럼……. 좋은 소식 기다려 보겠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처리하겠습니다!”
뚝.
인사도 없이 통화가 끊어졌다.
“아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다들 마음에 안 들어!”
콰앙!
맹동엽은 애꿎은 책상만 주먹으로 후려쳤다.
쉽게 처리될 줄 알았다.
아는 코치들을 동원해 허준원 허파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멍청한 놈이 예상대로 사건을 쳤고 모든 일이 수순대로 진행됐다.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들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 일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반드시 자른다! 어차피 녀석은 사고를 칠 게 분명해. 놈은…… 선수촌과 안 어울려. 흐흐흐.”
맹동엽은 눈치가 빨랐다.
장태산이라는 한국대생이 결코 이 조직과 화합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곧 터질 사태.
코치들뿐만 아니라 질투심 많은 선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
“어디 간 거야?”
조영준은 늦은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는 룸메이트를 기다렸다.
오늘 하루 선수촌을 발칵 뒤집어 놨다.
아침에 코치와의 시비 문제로 징계위원회까지 열리게 만들었던 룸메이트.
다른 선수들 같았으면 가벼운 경고로 끝났을 사소한 일이 예상 외로 갑자기 커졌다.
점심 시간 내내 화제에 올랐다.
다들 장태산이라는 한국대생이 쫓겨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달리기 실력으로 육상 선수들을 발라버리고 생존한 장태산.
한순간에 선수촌의 영웅이 됐다.
“시비 거는 놈들 많을 텐데…….”
김유나와의 동석 식사가 반향이 컸다.
김유나에게 직접 말을 못 붙였지만 다들 마음 속 연인으로 상상하는 남자 선수들이 많았다.
그만큼 장태산에 대해 호감보다 반감을 품게 된 이들이 상당했다.
자존심이 강한 선수들인 만큼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로 시비를 걸 것이다.
“코치님은 누가 오는 거야?”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력 없는 허준원 코치가 잘렸다는 것이다.
은근히 고급 술 같은 걸 잘 먹는다고 상납을 바라던 허준원.
없는 살림에 조영준도 몇 번 상품권과 술을 갖다 바쳤다.
더럽고 치사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훈련으로 사람을 혹사 시켰다.
그런 골칫덩어리 코치가 사라진 만큼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하룻밤 방 같이 썼다고 그새 정이 든 것 같았다.
빈 침대가 허전했다.
끼리릭.
그때 문이 열렸다.
“왔어…….”
조영준은 말을 하다가 멈췄다.
들어서는 장태산의 양손에 익숙한 비닐봉지가 보였다.
“짠~. 치킨 기다렸죠?”
장난스러운 장태산.
“아니……. 그건!”
“세상에 몰랐어요. 후문으로 이렇게 치킨 배달이 다 되다니~. 흐흐흐.”
“그걸 벌써 아셨어요?”
“제가 한 눈치합니다.”
조영준은 어이가 없었다.
태릉에 어제 입촌한 한국대생은 어둠의 루트를 바로 꿰찼다.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배달 음식을 받아서 먹었다.
워낙 칼로리 소모가 극심해 선수촌에서도 비공식적으로 봐주는 일이었다.
야식도 제공됐지만 배달 음식의 달콤함은 따라올 수 없었다.
“두 마리죠?”
조영준도 입맛이 돌았다.
저녁에 치킨 먹자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출출하던 참이었다.
“당연하죠. 닭은 일인 일닭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음흉한 표정과 함께 장태산이 몰래 꺼내 보인 캔맥주 두 개.
꿀꺽.
조영준의 목울대가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선수촌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마신 적 없는 맥주였다.
가끔씩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술 한 잔의 유혹이 현실로 찾아왔다.
“그, 그거…… 안 되는데…….”
말과 달리 조영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성적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치맥은 중독 같은 거절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안 돼요? 다들 사가지고 가던데?”
장태산이 탁자 위에 치킨을 올려놨다.
그 옆에 놓인 악마의 마실 것이 웃고 있었다.
“이거 마시고 내일 또 죽도록 달리면 됩니다. 인생 살아보니까 별거 없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휴식 시간입니다~.”
“뭡니까? 나이도 어린 친구가……. 애 늙은이도 아니고~”
조영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만만한 친구로 보이지 않았다.
동생이 아니라 형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그것도 군대에서 얻은 좋은 선임처럼 친숙했다.
그래서 쉽게 반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간장? 아니면 반반?”
“전……. 반반요.”
“치킨은 항상 선택장애를 일으키는 요물입니다. 반반이 그럴 때는 현명한 답이죠. 그래도 오늘은 난 간장~ 이게 중독성이 쩝니다.”
반반치킨 한 마리가 조영준 책상 앞에 옮겨졌다.
치이이익.
그리고 경쾌하게 소리내며 따지는 맥주캔 소리.
꿀꺽꿀꺽.
장태산은 거침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미, 미성년자는 아니죠?”
“민증 까줘요?”
“그건 아니고…….”
조영준의 눈이 맥주에서 떠나지 않았다.
치킨보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이 더 당겼다.
“마셔요.”
장태산이 씩 웃으며 맥주를 넘겼다.
“……이거 비밀입니다.”
“네~”
조영준은 맥주캔을 소중하게 잡았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시원한 느낌에 위장이 난리를 쳤다.
치이익.
경건하게 캔을 땄다.
알싸하게 맡아지는 맥주 특유의 향과 알코올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목젖을 열고 붓기 시작한 맥주.
“크으으으.”
조영준은 감동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맛.
와삭.
“오! 역시 간장은 고촌!”
장태산이 간장 치킨을 야무지게 뜯었다.
조영준의 손도 반반치킨을 향해 전투적으로 돌격했다.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가 어우러진 반반치킨.
조영준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반달이 됐다.
***
“꿈이 뭡니까?”
“……당연히 메달 따는 거죠.”
“그래요?”
“쉽지 않지만 국가대표입니다. 메달을 따는 게 꿈이 아니라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죠.”
군대 말고 오랜만에 옆에 남자 사람을 두고 잠을 잤다.
치킨 한 마리 다 뜯고 맥주로 시원하게 입가심했다.
방 안에 치킨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선수촌에서 먹어서 그런지 더 개꿀맛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야밤 토크.
남자들도 수다 떠는 거 좋아한다.
주 내용은 역시 메달 이야기였다.
국제 기록보다 몇 분이나 뒤지지만 옆 침대 조영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지켜본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했다.
방 안에 시큼한 땀 냄새가 밸 정도였다.
나와 다른 진짜 국가대표였다.
조영준뿐만 아니라 대부분 선수들은 진짜 죽을 듯 맹렬히 훈련했다.
선수촌은 또 다른 치열한 삶의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
“도와드려요?”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뭘요?”
무슨 말인지 조영준은 갈피를 못 잡았다.
“메달 따는 거요.”
“메달요?”
“네~ 금, 은, 동. 말만 하세요.”
약장수 신선처럼 조영준에게 선택지를 건넸다.
“……말은 고맙지만 제 능력을 압니다. 태산 씨와 다르게 여러 면에서 실력이 뒤쳐집니다.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알기에 더 괴로울 것이다.
체격 스펙이 다르니 노르딕 스키는 국제대회 참가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조영준이 메달을 따는 것도 괜찮았다.
명종 형님이 말하기를 성적이 바닥 치던 선수가 메달을 따면 보너스가 확 뛴다고 했다.
태릉 멀티 확장을 부탁하면서 이것저것 비밀스러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보너스부터 시작해 태릉 귀신들의 경쟁심에 대해서 알려줬다.
귀신들도 보너스 받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부터 있던 알력이 죽어서도 작용한다고도 했다.
산자나 죽은 자나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사회였다.
나도 보너스 포인트를 노렸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은 상황.
한번쯤 동계 올림픽에서 노르딕 스키도 메달 따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좋은 꿈꾸세요……. 조상님이 도우실 겁니다.”
“조상님요? 푸웃.”
조영준이 믿지 못하고 웃었다.
조영준은 몰랐다.
그가 나와 함께 한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라는 걸 말이다.
한 방에서 치킨 같이 먹을 수 있는 이 생의 인연이 작지 않았다.
조영준은 성격과 인성이 괜찮았다.
허준원 앞을 막아서고 말려주던 모습이 복 받을 자격을 증명했다.
겉모습과 달리 내면이 따뜻한 조영준.
아마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조영준은 또 다른 세계를 맛볼 것이다.
그깟 메달.
사기 캐릭터와 함께라면 금메달 따는 건 일도 아니었다.
# 38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