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
3장. 엄마
“아…….”
정신이 멍하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 같았다.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동시에 시큼하고 더러운 국물도 배어 나왔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와. 진짜…….”
할 말이 없었다.
태극오행양의심법을 진짜로 배웠다.
신선헬스케어 원장쌤의 불법과외로 등판과 앞판의 혈도가 팡팡 뚫렸다.
죽는 줄 알았다.
입은 작은데 커다란 김밥을 억지로 쑤셔 넣는 기분을 혈도로 맛봤다.
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지만 천룡신군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에 눈물콧물이 앞을 가릴 때 그는 말했다.
아픈 만큼 후딱 큰다고.
헬스케어 원장이 아니라 불법 시술소 원장이 확실했다.
아혈을 집혀서 말도 못하고 장장 며칠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효과는 만땅이었다.
온몸에서 누런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소주천을 돌 때마다 핏줄은 단단해지고 넓어졌다.
근골은 좋지만 워낙 썩은 세상에 살다보니 내 몸뚱이도 동반성장으로 썩어 있었다.
그렇게 고통의 소주천이 끝나자마자 난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내 방 안.
분명 해가 뜨고 지는 걸 몇 번이나 봤는데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이거 말이 돼? 안 되는 거 맞지?”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허망함의 탄식을 뱉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다만 소주천의 결과로 아랫배에 은근하게 내단이 느껴졌다.
입고 있는 면티에 누런 액체가 잔뜩 배어 있었다.
꿈과 현실이 다 하나였다.
머릿속에서 태극오행양의심법의 운행방법이 각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라고 태극오행양의권이라는 무공도 가르쳐 주었다.
오직 태극오행양의심법을 운용하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했다.
수련하면 주먹뿐만 아니라 손에 들린 모든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이용 가능하다 했다.
범상치 않은 것들에 나는 물었다.
어디 출신이냐고?
그러자 천룡신군이 씨익 웃으며 물었다.
태극하면 떠오르는 거 없냐고?
내가 눈을 껌벅이자 조용히 개폼 잡으며 말했다.
“전직 무당파 장문인 출신에 마교 교주를 3박 4일 동안 싸워서 골로 보낸 무림맹주이며 동시대 3,233회 옥황상제배 우화등선 대상 먹었다고? 참나…….”
거짓말 같은 이력이라 확인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실력은 확실했다.
고액 불법과외는 효과가 엄청 뛰어났다.
이래서 고액 과외를 강남에서 먹어주는 것 같았다.
“아우. 이게 다 내 몸 안의 적폐들이야?”
하얀 면티와 츄리닝에 묻어난 악취 쩌는 액체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락스로 빨아도 걸레 밖에 안 될 상태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구라로 점철된 세상이었지만 현실감은 100퍼센트였다.
꿈이라도 좋았다.
다시 회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정말 가난함이 벽지로 도배됐구나.”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배정 받은 허름함의 극치 사랑방이었다.
녹슨 양철 지붕 아래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고드름 얼던 이 방.
오래된 컴퓨터 한 대와 아버지가 인강 들으라고 설치해 준 4M 속도의 KT 인터넷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가 아니라 농촌이었기에 전화선으로 연결된 인터넷이었다.
그것도 한 달 전에 깔렸다.
“셀러론 500에 램이 64메가, 그래픽 4메가, 하드는 10기가에 불법으로 깔린 윈도우 98과 한글 97……. 하아, 이런 고조선급 유물이라니…….”
저장된 기억 데이터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모니터도 볼록한 17인치였다.
내게 가장 값나가는 귀중품이었다.
컴퓨터를 보자 다시 현실감이 들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방은 덥혀지기 시작했다.
방학은 했지만 보충수업은 없었다.
학교에 근무하시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반발로 이 때 처음 방학 보충수업이 폐지된 것이다.
“일단 씻고 시작하자.”
몸의 찝찝함이 더했다.
구리구리한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옷을 챙겨들고 방문을 잡았다.
“태산아~ 아침 밥 먹어야지~.”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엄마…….’
평생 들어도 가슴 따스한 엄마의 목소리를 죽다 살아나서 다시 들으니 더없이 반가웠다.
사법 시험에 실패하고 서울에서 낭인 생활할 때도 나를 버리지 않으셨던 분이다.
아침저녁 문자로 밥 꼭 챙겨먹어라 말씀하시던 엄마.
목소리만 들려줘도 고맙다 말하던 엄마였다.
과거 어린 시절 방학 때 엄마의 목소리가 잔소리 같았다.
늦게까지 소설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다보면 아침이 귀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네~ 어머니. 씻고 갈게요.”
사랑채에 따로 딸린 간이 욕실이 있었다.
사춘기 쌍둥이 여동생들이 본채에 있기에 아버지가 설치해 주셨다.
“밥이다~ 밥! 엄마밥!”
서울에서 때우던 컵밥이나 재료가 하급인 식권밥이 아니었다.
텃밭에서 정성으로 키워낸 엄마표 사랑밥이 나를 불렀다.
기억이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허름한 욕실로 들어갔다.
“키도 큰 거야? 그 사이에?”
믿기지 않았지만 꿈속에서 불법과외 받고 나왔더니 키도 살짝 커졌다.
대주천의 영향인지 어깨도 더 벌어졌다.
욕실 유리창에 보이는 내 모습이 살짝 낯설었다.
“캬아~ 피부 탱탱한 것 봐라.”
두툼하게 묵은 살이 올랐던 죽기 전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그 당시와 다르게 뽁하고 찌르면 통하고 살이 튀어 올라왔다.
특급 콜라겐이 가득 찬 몸뚱이는 탄성을 자아냈다.
내 몸이지만 내 몸 같지 않았다.
“이거 다 몸 안의 찌꺼기야?”
탱탱한 피부 위에 누렇고 까만 액체가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꿈속의 불법과외 효능이 끝내줬다.
촤아아아아아앗.
차가운 물을 몸에 뿌리고 비누로 빡빡 씻었다.
얼마나 독한 놈인지 비누칠을 몇 번이나 했다.
제대로 물이 시원했다.
지하수라 정신이 번쩍 들 정도였다.
그렇게 경건하게 목욕을 마쳤다.
그리고 면티에 반바지를 입고 본채로 향했다.
“아! 좋구나~.”
10대 조상님들이 터 잡은 종갓집이었다.
집 뒤와 좌우로 넉넉한 품의 산이 보였다.
백 년은 족히 넘을 낡은 기와집과 어머니가 정성으로 가꾼 잔디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에 어릴 때 등목 하던 수돗가가 날 반겼다.
대문 옆에 세워진 아버지의 경운기도 정겨웠다.
뜨겁게 일렁이는 땡볕은 여름의 절정을 말했다.
“하아아.”
길게 손을 쭉 뻗어 숨을 들이켰다.
텁텁하던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 공기가 아니었다.
폐부가 시원하게 씻기는 기분이었다.
이 맛에 시골 사는 거다.
예전에는 몰랐던 고향의 매력에 듬뿍 뼈져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
“아들. 어디 아파?”
“네? 아뇨~ 그냥 햇살이 좋아서요.”
“얼른 들어와. 국 식는다.”
“네!”
엄마가 보였다.
이른 아침 과수원에 다녀오신 듯 지친 모습이었다.
그런 엄마가 나를 보고 웃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부모 엄마들 중에 가장 예뻤던 엄마.
지금도 단아한 모습은 시골아줌마 같지 않았다.
“엄마!”
엄마를 부르고 달려가 힘껏 안아줬다.
평소에 없던 애교질에 엄마가 놀랬다.
“뭐야~ 다 큰 녀석이~ 징그럽게~.”
이제는 나보다 키가 작은 엄마가 놀리듯 말했다.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뻐~.”
말투가 저절로 애가 됐다.
“피이, 너희 아빠만 눈이 삔 게 아니구나.”
주름진 눈가로 웃는 엄마.
한때 미모로 이 마을과 면에서까지 이름 날리던 엄마도 세월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미인이었다.
“몸도 약한데 너무 무리하지 마요. 아무리 봐도 엄마는 시골 체질이 아니에요.”
대한민국에서 미대 탑을 달리는 홍인대 회화과 출신이라 했다.
시골에 오기 전 풀 한 포기 뽑아본 적 없다는 엄마가 이제는 농부가 됐다.
힘든 일을 하면 며칠씩 앓아 누웠다.
“체질이 어딨어. 농부가 있으니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거야.”
“와아! 아빠는 무슨 복이 이렇게 많아요? 엄마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거죠? 아버지가 세상을 구했을 리는 없고…….”
“뭐? 호호호호. 그래 내가 나라 팔아먹은 낙랑의 공주다.”
유쾌하게 엄마가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엄마. 이제부터 꽃길만 걷게 해줄게.’
과거라면 이때 착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고기도 없는 반찬이라며 매일 밥상머리 앞에서 짜증을 냈다.
풍족하지 않은 용돈에 툭툭거렸다.
부모님 일하는데 공부한다는 핑계로 농사일에는 손 하나 보태지 않았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 한가득이었다.
“아들. 아무리 엄마가 좋아도 이제 밥 좀 먹자.”
“아! 죄송합니다. 아버지 허락도 없이 엄마를 꼭 안고 있었네요.”
“호호. 맞다. 네 아버지 질투가 장난이 아니지~.”
그렇게 엄마와 난 밥상에 앉았다.
시원한 뒷바람이 불어오는 대청마루였다.
머슴밥 같은 밥 한 공기에 구수한 우렁된장찌개, 그리고 시원한 콩나물 김칫국, 아침에 갓 딴 오이와 고추장, 마른 멸치, 익어가는 열무김치가 밥상의 전부였다.
눈이 황홀해졌다.
‘이게 얼마나 귀한 밥상인가…….’
머리통 깨지고 향냄새 맡을 뻔한 나였다.
갑작스러운 회귀라는 로또를 잡지 못했다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엄마의 정성이었다.
시원한 콩나물 김칫국을 숟가락 가득 담아 입에 넣었다.
“와아아! 엄마 진짜 맛있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게 해장으로는 완전 죽음이에요! 엄마 농사 말고 식당해 보는 거 어때요? 콩나물국밥집 하나 차리면 대박이겠어요.”
“해장? 술도 안 마셔본 녀석이 그 맛을 어떻게 알아?”
“에이. 아들 다 컸어요. 술 맛을 왜 몰라요.”
“아들. 뻥은 아빠를 닮아 제대로다.”
‘뻥 아닌데…….’
대학교 때 나름 술꾼으로 인정받는 나였다.
세월을 되돌려왔지만 난 해장맛을 아는 30대였다.
‘그런데 이 집안은 왜 이리 가난한 거야?’
오래된 고택을 대충 개조한 부엌을 비롯해 마루가 눈에 들어왔다.
죽기 전까지 시골에 내려갔을 때 봤던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궁상의 극치였다.
엄마가 시집올 때 구입했다는 20년 가까운 소형 냉장고와 낡은 밥솥부터 손에 쥔 젓가락까지 온전한 새것은 없었다.
이제야 들어오는 집안 꼴.
눈물이 앞을 가리려했다.
‘돈 좀 땡겨야겠는데…….’
# 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