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0
39장. 홍콩 데이트
국내에서 해외 개인 직접 주식 투자는 금지되었다.
외환거래법과 같은 각종 법에 의거해 직접 거래가 되지 않았다.
증권회사를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했다.
높은 수수료에 세금까지 물렸다.
그보다 더한 건 도둑놈 같은 권력이 내 자금 흐름을 꿰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도 떼돈 벌고 있는 날 지켜보고 있을 게 확실하다.
금융감독원은 바보가 아니다.
공무원을 조종하는 더러운 정치권력이 싫었다.
이제 올해 금수강산을 관통하는 대수로를 건설하겠다 망발하는 사기꾼이 대통령이 된다.
부동산 광풍에 눈멀어 대한민국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다.
그는 그 보답으로 국민의 혈세를 탈탈 털어먹는다.
하지만 이 역시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인 것이 안타깝다.
그 모든 사슬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법인과 계좌가 필요했다.
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명의만 존재하는 해외 법인들을 매수하는 방법이 가장 빠릅니다. 중남미 쪽과 코스타리카 쪽 몇 개면 충분합니다. 수수료가 좀 들겠지만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비밀은 보장되겠지요?”
“그럼요. 이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각국에서 많은 기업들이 애용하는 방법입니다. 법인 인수 합병은 항상 있어온 정상적 거래입니다. 홍콩과 같은 텍스 쉘터 지역 법인을 통해 텍스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바하마, 버뮤다, 케이만 제도 등의 법인으로 계좌를 거치면 됩니다. 그리고 발생한 최종 수익은 스위스 계좌로 이체하면 됩니다.”
전문 업자를 만났다.
음지에서 태어나 양지를 지양하는 법인 브로커.
홍콩 본토 태생인 양청이라는 자는 시원스럽게 답변했다.
홍콩에서의 일정은 바빴다.
HSBC 은행에서 2억 달러 대출을 승인했다.
내 법인 명의 통장에 2억 달러가 화끈하게 꽂혔다.
이자율은 21프로로 책정됐다.
놈들은 1프로 더 먹겠다고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쫌생이 같은 놈들에게 쿨하게 사인하고 나왔다.
그깟 1프로가 문제가 아니다.
2007년 4월.
곧 세계적 환란의 시작점을 알리는 사건이 터진다.
그 개막전에 난 보이지 않는 주전이 되어야 했다.
“홍콩 법인 하나당 가격이 얼마나 됩니까? 금융투자나 기업 인수합병이 가능한 투자금용 법인이어야 합니다.”
“고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한 5개면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그 녀석들 다 구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법인도 있지만 다른 법인도 필요했다.
누구도 눈치챌 수 없는 복잡한 돈거래를 원했다.
비밀스럽게 작업했다.
여러 경로로 알아봤다.
가장 확실한 방법인 완성된 법인을 인수하기로 했다.
“텍스 파라다이스 법인과 계좌도 있겠죠?”
“물론입니다. 따끈따끈한 신상 법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법인 거래도 어느 정도 있어 의심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자금을 원하는 기업들과 개인은 넘치고 많았다.
수요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거간꾼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스위스 숫자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직접 가야 합니까?”
“네. 스위스 숫자계좌는 비밀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직접 가셔야 합니다. 자금을 리히텐슈타인 쪽을 한 번 거쳐 가는 게 좋습니다. 그쪽 루트가 안전에는 제일입니다. 각 나라에서 세무 조사가 나와도 이리저리 핑계를 두면 몇 년 동안은 소송만 하게 될 겁니다.”
노하우가 대단했다.
스위스 숫자계좌는 예금주의 이름이 아닌 숫자로 인식하게 되는 비밀 계좌 중 하나다.
중국 부자들에게 루트를 알려주듯 나에게도 양청은 친절했다.
“파라다이스 법인과 계좌도 5개 정도 부탁합니다.”
“며칠만 시간을 주시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금액은 얼마를 지불하면 되겠습니까?”
“한 법인당 미화로 10만 달러입니다. 총100만 달러입니다만……, 80만 달러에 모시겠습니다.”
장사할 줄 아는 남자다.
대충 봐도 50프로 이상은 남는 장사다.
“좋습니다. 착수비로 30만 달러를 현찰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완료되는 대로 지급하겠습니다.”
“오! 역시 대인이십니다!”
쿨하게 쏴도 돈이 남았다.
홍콩에 있는 동안 놀지 않았다.
수중에 들어온 2억 달러.
2007년 1월 환율로 달러당 900원과 1,000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이 당시 고환율로 국가 경제가 파투난다고 대한민국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대충 잡아 2,000억 가까운 돈으로 난 미국 증권 계좌를 텄다.
자본금이 넘치는 법인의 대표가 되자 계좌 열기는 쉬웠다.
아쉽게도 미국 주식 공부는 과거에 2007년 4월 모기지 사태가 터진 이후로만 저장되어 있었다.
대신 각종 선물 지수들이 머리에 남아 있었다.
특히 하늘로 날아가는 크루드 오일이 내 먹잇감이었다.
‘2006년 연말부터 오펙이 감산한 오일이 2007년 2월 1일 또 하루당 50만 배럴까지 감축한다. 딱 지금이 적기다. 지금 가격이 57달러……. 한번 출렁이다가 2008년 7월 3일 145달러를 찍고 그대로 쭉 바닥으로 내려간다. 모든 원자재들이~.’
오래 투자할 먹거리가 생겼다.
사방에서 날 잡아 드세요 노래 부르는 먹잇감들이 널렸다.
4월 2일 미국 증시는 화끈한 파티 날이다.
맛있는 녀석이 배 째라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놈만 생각하면 침이 고였다.
그때까지 나는 안전한 선물에서 자산을 늘릴 생각이다.
상승장에서 선물 롱 포지션 투자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이 가능했다.
여기에 옵션 콜 매수와 풋 매도를 곁들이면 완벽한 신의 한 수다.
앞으로의 변화를 아니, 롤 오버 투자도 과감하게 지를 수 있다.
오로지 나에게만 위험한 투자가 가장 안전했다.
아직 나비효과는 없었다.
본가에서 벌어졌던 동네 정화사업의 파장은 작았다.
증시에서 내가 벌어들인 돈도 기업이나 국가, 세계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여기 있습니다.”
이럴 줄 알고 현금을 찾아왔다.
30만 달러는 100달러 지폐 묶음 30개였다.
은밀한 거래여야 했다.
자금 이체는 기록이 남을 수도 있다.
“제가 인수한 법인 기록은 바로 삭제 가능하죠? 이후 관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인수와 동시에 저희는 모든 기록과 서류 일체를 폐기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대인 감사합니다!”
“필요한 서류는 문자로 알려주십시오. 팩스로 넣어드리겠습니다.”
인사를 정겹게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걸음을 빨리했다.
어느새 퇴근 시간 무렵이다.
그녀와 홍콩에서의 데이트 시간이다.
오늘 하루 못 봤다고 생각이 난다.
그녀의 가지런한 치아가 드러난 시원한 미소가 보고 싶다.
어린 여학생들과 다른 성숙한 성인 여성만이 풍길 수 있는 매혹의 향기.
오늘도 달달하게 취하고 싶었다.
몸은 고삐리인데 정신연령이 30대인 남자의 부작용이다.
택시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침사추이역 앞으로 부탁합니다.”
“홍콩 분이세요?”
“아닙니다. 한국 사람입니다.”
“정말요? 그런데 광둥어가 왜 이렇게 자연스럽습니까?”
그거야 특별 과외의 힘이죠~.
광둥어는 중국 보통어 사성조에 비해 두 배 정도의 성조를 품고 있다.
바닷가 특유의 거친 언어다.
나도 모르게 홍콩 택시 기사의 말에 자연스럽게 광둥어가 나왔다.
“아시는 분이 광둥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요? 정말 멋진 분을 지인으로 두셨습니다. 광둥어가 쓰다 보면 정감이 착착 붙는 말입니다. 흐흐.”
부산 사투리와 체감되는 느낌이 유사한 광둥어.
유쾌하게 택시 기사와 말을 나누며 침사추이로 향했다.
중국 본토인들이 많이 건너와 집값이 올라 힘들다고 투덜댔다.
차마 앞으로 집값이 두 배 정도 더 뛸 거라는 말은 못했다.
희망을 꺾기 싫었다.
세계적 저금리가 세상을 점점 오염시키고 있다.
장장 10년 이상을 눌려 있다가 한 방에 펑하고 터질 금리의 축배.
아직은 오랜 시간 천천히 끓어오르는 휴화산에 불과했다.
***
“비가 오네…….”
홍콩에 겨울비가 내렸다.
클라라는 차가운 비에 살짝 발을 뒤로 물렸다.
눈이 내리지 않는 아열대 기후라 비가 내렸지만 겨울에는 공기가 몹시 차가웠다.
회사에서 퇴근한 클라라는 한 남자를 기다렸다.
비서실 직원들이 그 남자 정체를 놓고 수군거렸다.
정체 모를 한국 남자가 이사와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흘렀다.
정확한 내용은 비밀이다.
며칠 동안 그와 동행했다.
회사에서 특별하게 모시라는 지시가 있어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그는 무척 유쾌한 남자였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흠뻑 보고 즐겼다.
클라라를 통해 홍콩 맛집들은 다 섭렵하고 다녔다.
듬직했지만 나이는 자신보다 어린 게 확실했다.
그러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말투는 정중했고 지식도 해박했다.
언어 능력도 탁월했다.
길가에서 헤매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길을 가르쳐줬다.
며칠 만에 홍콩 주민이 다 된 것처럼 길을 다 알았다.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는 기본이 된 남자다.
클라라는 남자 친구와 휴가를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을 맛봤다.
그와 함께 웃고 떠들다 보니 요즘 받았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것 같다.
가끔 미니스커트를 입은 자신의 다리를 훔쳐는 봤지만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도리어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이 순수해 보였다.
오늘 하루 회사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비서실에서 근무하지만 금융투자에 대한 일도 겸하고 있다.
그가 시시때때로 그리웠다.
그 남자만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올해 스물여섯 살의 클라라.
홍콩 출신이지만 미국 시카고 대학 경영학과 출신이었다.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시카고학파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곳에서 석사 코스를 마치고 홍콩상행 은행에 입사했다.
살면서 몇 번의 연애 경험은 있다.
클라라를 두고 남자들끼리 난투극까지 벌어진 사건도 있었다.
석사 과정과 회사 일에 치여 3년 동안 연애를 못했지만 요즘 가슴이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남자의 눈은 맑았다.
가끔 멍하니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서는 세월의 흔적 같은 게 묻어났다.
어리지만 또 어리지 않은 남자.
그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비가 내렸다.
코트 위로 비 몇 방울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홍콩도 하늘이 맑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릴 때와 많이 변했다.
중국과의 합병 뒤 홍콩에 깃들었던 자유주의가 퇴색해갔다.
집값은 오르고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점점 홍콩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비가 내리는 순간만큼은 코로 스며드는 공기가 신선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홍콩 겨울비 냄새가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 냄새가 비와 섞여 있었다.
“늦은 오후의 빗소리만큼 심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치유 음악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던 남자가 옆으로 다가와 서며 말했다.
낮지만 맑은 중저음이 듣기 좋았다.
“네……. 특히 바다에 내리는 빗소리를 좋아했어요.”
홍콩에 살았던 클라라는 유독 바다 빗소리를 좋아했다.
답답하면 자전거를 타고 해안가로 나갔다.
“비 내리는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곳에서 멋진 만찬을 즐겨보실 의향은 없습니까?”
남자의 말투는 정중했고 입가는 미소가 보였다.
“기대할게요. 다니엘.”
본래부터 시끄러운 파티를 싫어하던 클라라였다.
프랑스인인 어머니 영향으로 부드럽고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좋아했다.
클라라는 남자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비 오는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
모든 직장인들은 이날만큼은 긴장의 끈을 놓고 맛있는 요리와 한 잔의 술을 간절하게 원했다.
오늘 붉은 와인에 온몸을 적시고 싶었다.
위험하지만 뜨거운 예감이 들었다.
클라라는 고개를 돌려 남자를 봤다.
그가 미소 지으며 자신을 따뜻하면서 뜨거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몸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갈까요?”
남자가 팔을 내밀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우산은 하나다.
클라라가 남자의 팔에 팔짱을 꼈다.
팔이 단단했다.
그때 자연스럽게 남자의 팔이 클라라의 가녀린 허리를 살포시 잡았다.
좋은 체취가 느껴졌다.
강력한 유혹이 가득한 페르몬 향.
클라라의 피가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본능.
오늘 밤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 같았다.
남자의 강인한 팔에 클라라의 몸이 더 밀착됐다.
툭툭툭.
굵은 빗방울이 우산에 튕겼다.
말이 없는 두 사람.
그들은 뜨겁게 천천히 비 내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걸었다.
# 4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