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1
40장. 배를 불리다!
딩동댕!
“47번 응시자님 합격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예스!”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다시 따보는 운전면허란 말인가.
회귀하기 전 대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입대 전에 땄던 운전면허다.
학교 동아리였던 자동차연구회 활동 당시 운전면허 따는 걸 지원했었다.
아버지 고물차를 운전해 봤던 실력이 아직 죽지 않았다.
필기시험과 코스, 기능시험, 도로주행시험까지 한 번에 합격했다.
2007년도니까 가능한 일이다.
학원 교육이 필수가 아니다.
운전만 할 수 있으면 면허 취득이 가능했다.
“축하합니다. 잠시 후에 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여경이 친절하게 합격증을 건넸다.
면허증도 바로 발급되었다.
“감사합니다!”
합격증은 묘한 감동을 일으켰다.
이게 뭐라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제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차를 몰 수 있다는 것.
그건 성인들만의 특권이었다.
답답했던 가슴에 숨통이 트였다.
이제 얼마 후면 3학년이 시작된다.
다시 시작되는 고3 수험생 시절이다.
학교 때려치우고 검정고시를 볼 생각은 애초에 없다.
사회에 나가는 순간 다시 보기 힘든 친구들과 10대를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다시 회귀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고 이보다 더 잘 살 수도 없을 것 같다.
먹을 것 앞에 우정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친구들이 좋았다.
그들과 함께 피방에서 한 판 땡기는 맛은 10대 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30대까지 살아봤지만 친구들과 함께였던 이 시절이 힘들 때 가장 그리웠다.
“비가 오네…….”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갑자기 비를 보자 클라라가 생각났다.
그녀는 한국에서 내리는 비가 보고 싶다고 했다.
“클라라…….”
그날 밤이 떠올랐다.
홍콩 앞바다가 보이는 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에서 레드 와인과 함께 정찬을 먹었다.
한 잔, 두 잔, 세 잔.
그녀와 난 잔을 부딪쳤다.
누구도 날 미성년자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 나에게 집중됐다.
내 시답지 않던 농담에도 클라라는 웃어줬다.
분위기도 좋았다.
아쉬움에 2차는 내가 머물고 있는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창가에 서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 클라라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뜨거워지는 숨결.
달달한 와인 향이 방안 가득 퍼졌다.
서로의 눈빛이 부딪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 둘은 키스를 했다.
그녀는 뜨거웠다.
내가 지금껏 경험했던 그 어떤 입술보다 달콤했다.
“하아.”
뜨거운 숨이 나왔다.
딱 거기까지다.
진도를 빼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회귀했다고 하지만 고삐리 신분으로 진도를 빼기에는 양심이 걸렸다.
클라라는 헤어지는 날 공항에서 웃으며 말했다.
절대 부담 갖지 말라고 말이다.
한국 여인들과 다른 사고방식이다.
가끔 문자를 보내왔다.
홍콩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 환영이라고 했다.
나도 답 문자를 보냈다.
클라라가 한국에 오는 날을 기다리겠다고.
아직 카카오통 같은 휴대폰 쳇 기능이 나오지 않았다.
클라라와 그렇게 난 인연이 이어졌다.
생각하면 짜릿한 추억.
친구 놈들에게 까놓고 말하지도 못했다.
어디서 야설 보고 와서 개뻥치냐고 몰아세울 게 분명했다.
“유 팀장님. 부탁한 일은 준비됐습니까?”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법인이 되자 장점이 많았다.
첫째 비용처리를 위해 고가의 차를 마음껏 지를 수 있다.
오늘을 노렸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녀석을 주문해 놨다.
“네. 대표님. 차가 준비됐다고 합니다.”
“보험은 직접 들겠습니다. 사무실 주차장에 입고시켜 놓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차마 오늘 면허를 땄다고 말하지 못했다.
유세라 씨는 내가 대학생은 되는 줄 알고 있다.
서울 사무실은 잘 돌아갔다.
유세라 씨는 총괄팀장의 명함을 팠다.
내가 지시하는 사소한 일들을 처리했다.
일처리는 깔끔했다.
영어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다.
홍콩에서 팩스로 오고 가는 법인 서류들을 분리할 줄 알았다.
“다들 얼굴 한번 보기 힘드네.”
같은 서울 하늘에 있어도 이렇게 사람 만나기가 힘들었다.
예린 선배와 서련이 생각났다.
투자와 법인, 홍콩 출장으로 바빴지만 두 사람은 더 바빴다.
한 달 전 서련이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저녁에 핸드폰을 압수당할 거라며 자기 없는 동안에 바람피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게 서련과의 마지막 통화다.
그 이후로 단 한통의 문자나 전화도 없었다.
데뷔 전 아이돌이 어떻게 훈련 받는지 대충 알고 있어 멀리서 서련을 응원했다.
“선배는…….”
예린 선배는 연락이 더 어려웠다.
간간이 문자를 주고받았지만 목소리 듣기가 힘들었다.
최종 합격 후 예비 새내기 모임에 다녀온 이후 연락이 뜸했다.
선배가 변했다.
선배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갔다.
예린 선배를 만나고 싶어 몇 번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선배는 바빴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벌써 고시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예린 선배가 욕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해는 갔다.
“졸업식에서는 볼 수 있겠지.”
며칠 후면 장주여고 졸업식이다.
그때는 바쁜 선배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첫 번째 국가공인자격증 찾으러 가볼까!”
합격 후 20분이면 발급되는 면허증.
난 신상 면허증을 받기 위해 발걸음도 가볍게 움직였다.
***
“슬슬 달려볼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델에서 발매한 최신형 30인치 LCD 모니터 두 대가 넓은 책상 양쪽에 자리 잡았다.
가격이 200만원을 훌쩍 넘었지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IT 기술 가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CRT 모니터를 몰아내고 LCD 모니터가 성장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LED 시대도 올 것이다.
그만큼 나도 바빴다.
틱틱 티디디딕.
미국 증시 계좌를 열었다.
홍콩 투자법인 명의로 외국인 선물 계좌를 열 수 있었다.
HSBC 은행에서 개설해 준 법인이 아니다.
업자에게 구입한 중남미 법인을 몇 바퀴 둘려 새로 합병한 법인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두 단계 법인과 계좌를 폐쇄했다.
한번 사라지면 영원히 자료가 폐기되는 시스템이다.
자금 추적이 불가능했다.
새로 비밀스럽게 개설한 홍콩 명의 이름은 BMJ 인베스트먼트 주식회사다.
장태산의 다른 영어 번역 이름인 Big Mountain J의 약자다.
촤라라라라랏.
화면이 업데이트되면서 익숙한 주가 그래프가 보였다.
사무실은 고요했다.
유세라 씨는 퇴근하고 없다.
지금 내가 도전하는 분야는 선물투자부분이다.
선물옵션은 투자자들에게 영원한 애증의 종목이다.
거대한 수익과 폭렬한 망함을 선물하는 도박계의 끝판왕이다.
하룻밤 사이에 왕자와 거지 신분으로 갈릴 수 있다.
특히 옵션에서는 최고 수백 배 뻥튀기가 가능했다.
선물이 미래의 시간가치를 취급하는 상품이라면 옵션은 내재가치와 시간가치를 사고파는 거다.
한 마디로 앞으로 도래할 주식, 오일, 금 같은 대상을 놓고 그 권리를 사고팔며 운빨을 시험하는 도박장이다.
외국과 거래하는 업체에서는 환율의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서로 반대되는 구매 방법을 통해 위험성을 제거하는 헤지를 이용한다.
나 같은 투기투자자는 대박을 노리고 한쪽으로만 접근했다.
공식 세계적 투기장.
한 방에 깡통이 될 수 있다.
크루드 오일의 레버리지는 15배였다.
미래 가격을 알지 못하면 나도 투자할 수 없는 판이다.
“증거금 결제하고…….”
고도로 집중했다.
숫자 한 번 잘못 눌렀다가는 나도 바로 아웃이다.
내가 노리는 선물의 계약증거금은 한 계약당 3,190달러였다.
그러나 실제 거래는 15배인 47,580달러짜리 계약이다.
“종목은 WTI 크루드 오일이라 불리는 텍사스 경질유!”
영어로 기록된 선물 거래창에서 종목을 선택했다.
현재 오일 현물 시세가 58달러였고 3월물 결제일이 앞으로 20일쯤 남았다.
내가 거래할 오일 선물도 3월 물이었다.
기간이 짧았지만 상관없다.
오일 값은 내일부터 바짝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롤러코스터를 타며 거칠게 추락했다.
3월 청산일이 가까워지자 다음 거래일 거래물이 활발하게 시작되고 있다.
시장가는 소폭 등락을 거듭했다.
아직 상승장에 본격적으로 헤비 투자자들이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후우.”
심장이 떨리자 재빨리 태극오행양의심공을 운용했다.
기를 사용하면 부동심이 유지됐다.
기계적으로 매수 주문을 넣었다.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해외 주식차트와 선물들의 움직임을 믿었다.
2007년 1월 당시 국내에는 선물시장이 이제 발돋움하던 시절이다.
개인들은 5월부터 이 시장에 접근했다.
국내 선물 시장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다.
그러나 해외 선물 시장 흐름은 빠삭했다.
이 당시 중국의 부상으로 원유를 비롯해 원자재가 본격적으로 폭등했다.
현물인 오일이 계속 급등할 걸 알기에 투자에 과감했다.
선물은 현물의 그림자라는 말이 있다.
현물뿐만 아니라 선물의 흐름까지 꿰찼다.
선물 시장에는 웩더독이라는 말이 있다.
가상상품인 선물이 실재하는 현물을 조종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현물 시세를 알고 있는 나는 그림자인 선물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띠링 띠링.
거래 알림창들이 울렸다.
해외선물거래는 국내와 달리 기본예탁금이 없다.
거래증거금만 요구됐다.
화끈한 미국 형님들이 주도하는 시장답게 레버리지가 환상이다.
“나 지금 손 떨리는 거야?”
가격창이 상승을 알리며 빨갛게 변했다.
내가 주문을 넣는 사이 시장 가격이 올라갔다.
“모래알처럼 녹아내리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내 거래는 조용히 사라졌다.
무려 6시간에 걸쳐 오일 선물을 적정한 평균가로 매수했다.
바다에 합쳐지는 강물 수준이다.
오늘 총 투자금은 47,850,000달러였다.
매수 계약은 15,000개.
총 현물 투자 환산액은 713,000,000달러가 넘었다.
하루에 10프로만 빠져도 7,130만 달러가 날아갔다.
“다음은~ LOR도 배 좀 불려볼까.”
내 증권계좌도 열었다.
단위가 수천억 단위가 넘어가자 숫자로만 보였다.
그동안 놀고만 있지 않았다.
정교하게 주식 투자를 세팅했다.
하루에 투자되는 종목만 수십 개다.
자금이 많아지자 국내에서는 수익 창출하는 게 점점 쉽지 않았다.
상한가도 자칫 내 자금을 빼는 순간 하한가가 될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돈이 돈을 뺨 싸대기 때려 끌고 왔다.
어느새 총 주식 자산이 7,500억을 찍었다.
주가 대세 상승기라 급등주가 코스피 코스닥 가릴 것 없이 하루에 100종목 이상 터졌다.
그렇기에 가능한 수익이다.
금융감독원도 상승기에는 작전주들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실패할 수가 없었다.
개중에 난 4,000억을 털어 내 법인 계좌로 옮겼다.
일명 법인 자본금 확충.
HSBC 은행 법무팀의 허락을 받았다.
엄청난 수익률에 그들은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며 계좌 동결을 풀었다.
“이 녀석은……, 안전한 주식에 투자한다.”
단위가 4,000억이다.
이런 거액을 투자하기에는 우리나라 주식 시장보다 미국 나스닥에 투자하는 게 편했다.
괜히 눈총을 받고 싶지 않았다.
증권사 쪽에서 날 눈여겨볼 게 뻔했다.
보이지 않는 시기와 질투의 기운이 감지됐다.
몸을 감출 때가 됐다.
“딱 맛있는 놈이 있지~.”
나스닥 증권에서 표적물을 찾아냈다.
내 예상대로 놈의 몸값은 횡보합 상태.
이놈도 며칠 후면 널을 뛰기 시작할 것이다.
85달러 몸값이 8개월 후 700달러를 찍었다.
무려 8배의 수익.
수익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이 주식은 공식적 투자금이다.
나중에 이놈은 나의 또 다른 비장의 무기가 될 것이다.
“하늘도 날 돕고 말이야~.”
국가가 이때쯤 달러를 퍼내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1996년 해외증권투자 전면 자유화가 됐다.
IMF로 잠시 주춤거렸던 해외증권투자.
놀란 가슴에 달러를 쓸어 모아 이제는 국고에 달러가 넘쳤다.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2007년 1월에 파격적으로 3년간 한시로 해외투자수익 비과세 정책을 취했다.
비과세가 아니면 총 15.4프로의 세금을 지불해야 했다.
회귀한 나에게 돈방석을 깔아주는 고마운 정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줘도 못 먹으면 등신이다.
“구글아, 조금만 참아라. 형아가 간다!”
각 증권계좌에서 투자법인 통장으로 자금 4,000억을 옮겼다.
거래 무제한으로 풀어놓아 가능한 이체 금액이다.
내일 아침…….
증권회사들이 한바탕 난리를 치를 게 훤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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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