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2
41장. 지나간 밤의 후폭풍.
“티, 팀장님!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뉴욕 빌딩이라도 무너졌어???”
증권사에서는 IMF보다 2001년 미국 테러를 두려워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아마겟돈 같은 시간이었다.
“사라졌습니다!”
“뭐가? 구체적으로 말해봐!”
“주식의 신이 자금을 뺐습니다! 그것도 1,000억이나 말입니다!”
“뭐야, 1,000억!!!”
증권회사의 아침은 늘 분주했다.
감사팀은 시스템 감시까지 맡아 8시까지 출근이다.
개운한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던 카움증권의 감사팀 팀장 전영국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주식의 신은 카움증권의 개인투자자의 전설이다.
단 반년 만에 몇 천만 원의 종잣돈으로 1,000억을 벌었다.
투기장인 선물 옵션 시장에서도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수익률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
투자 패턴을 연구해봤지만 어떤 불법 행위도 감지되지 않았다.
들쭉날쭉 오르는 종목만 기가 막히게 찍었다.
무당 빤스를 입었다는 말이 진담처럼 여겨졌다.
정확한 가치투자와 미친 듯한 운빨.
그래서 그를 주식의 신이라 불렀다.
“어디로 옮긴 거야? 언제? 어제까지 아무 문제없었잖아!”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주식의 신이 투자 중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를 밖에 알리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가 대부분의 자금을 빼버렸다.
“새벽에 연동 계좌를 통해 LOR이라는 투자법인 계좌로 옮겼습니다.”
“은행은 괜찮아?”
“새벽에 1,000억 단위 이체가 거의 없던 일이라 주거래 은행이 자금에 구멍이 날 뻔했다고 합니다.”
은행 시스템도 잠을 자는 시간에 벌어진 대참사(?).
카움증권뿐만 아니라 연동 계좌 은행도 새벽에 비상이 걸렸었다.
“빨리 LOR 투자법인에 대해서 알아봐! 어서!”
“네! 팀장님!”
주식의 신이 도망가면 안 된다.
그가 보여준 개미의 신화.
팀장 전영국에게도 그는 신이었다.
“신이시여! 저희 카움을 버리시나이까!”
***
“어라? 대표님 오늘도 날 샌 거야?”
비밀번호를 누르고 회사에 출근하던 유세라는 대표실에서 살짝 새어 나오는 빛에 놀랐다.
대표님은 항상 바빴다.
요즘 야근하는 날도 많았다.
홍콩 출장도 일주일 이상 다녀왔다.
뭘 하는지 짐작도 안 갔다.
홍콩에서 법인에 관련된 서류들이 속속 도착했다.
법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로펌에서 근무했던 유세라는 잠시 의심도 했었다.
다수 법인은 다단계나 사기꾼들이 이용하는 루트다.
하지만 이내 의심을 지웠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HSBC 은행 법무팀이 몇 번 방문했다.
올 때마다 커피나 빵 같은 간식거리를 사 왔다.
대표님에게 얼마나 깍듯하던지.
소개한 조윤태 변호사님에게 대표에 대해 물었다.
빙긋 웃으며 들은 대답은 잘 모시라는 거다.
대한민국의 목을 잡고 흔들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고 했다.
유세라는 믿기로 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해볼까~.”
넓은 회사에서 유세라는 자유로웠다.
휴식도 자유, 공부도 자유다.
상사라고는 대표밖에 없기에 눈치 볼 것도 없다.
하지만 단 하나 제약이 있다.
허락 없이 대표실 문은 함부로 열면 안 됐다.
절대 대표님이 나오기 전까지 건들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대표실은 청소도 금지다.
아무도 출입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유세라는 드립커피를 내려 자리에 앉았다.
간식비가 무제한이었기에 최고급 에티오피아 자연 재배 커피 원두를 구입해 마셨다.
상큼하고 뒷맛이 깔끔한 게 일품이다.
오늘도 바쁠 것 없는 하루.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며 일과를 시작했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유세라는 깜짝 놀랐다.
아침부터 사무실로 전화가 온 건 처음이다.
“LOR 투자법인입니다.”
유세라는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카움증권의 고객 담당 상무이사 이용찬이라고 합니다.”
“네? 카움증권요?”
“그렇습니다. 실례지만 대표님과 통화가 가능하겠습니까?”
“대표님요?”
“네! 반드시 대표님과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뭐야? 카움증권 상무이사?’
요즘 잘나가는 인터넷 증권회사 상무이사가 대표를 찾았다.
“대표님이 바쁘십니다. 용건을 말씀하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실망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저희 카움증권에서 실수한 일이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연락을 주시면 꼭 찾아뵙고 싶다고 말씀드려주십시오.”
“네?”
유세라는 당황했다.
상무이사라는 임원의 간곡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알겠습니다. 대표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 직통 번호는 02-987-77XX입니다.”
“네, 메모했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전화가 끊겼다.
“뭐야? 대표님이 카움증권에 고객 불만의 소리라도 접수하신 거야? 그런데 왜 상무이사가 전화야?”
아리송한 유세라였다.
오늘 뭔지 모르지만 바쁠 것 같다는 촉이 왔다.
띠리리 띠리리 띠리리.
전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LOR 투자법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국보은행 여신담당 전무 양승찬이라고 합니다.”
“네? 국보은행요?”
대한민국 서열 3위 안에 드는 대형은행 전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귀사의 대표님과 통화가 가능하겠습니까?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야! 우리 대표님 밤새 무슨 사고를 친 거야!’
국보은행 전무도 대표를 찾았다.
유세라는 궁금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나 조용했던 사무실.
밤새 대표님이 대형 사고를 쳤다는 걸 직감으로 알아챘다.
***
“사람들이 돈 좀 뺐다고 이렇게 난리야. 내 돈 가지고 내 마음대로도 못해?”
사무실에서 날을 샜다.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겨울 일출을 보며 태극오행양의심공을 운기 했다.
대주천 한 바퀴 돌리자 몸이 개운해졌다.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유세라 누나가 울상을 지었다.
아침나절에 걸려온 전화가 10여 통이 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각 증권회사와 은행에서 날 찾았다.
수백억에서 천억 단위가 움직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무시하라고 전했다.
“대한민국은 너무 좁아.”
시간이 날 때마다 용돈을 빼고 법인계좌로 자금을 이체할 생각이다.
해외 주식에 묻어놓으면 조용할 거다.
그게 바로 주식의 장점이다.
세금도 없는 나의 비자금 파라다이스였다.
“법인 몇 개를 더 세워야겠어.”
금융감독원이 대규모 자금 흐름에 눈뜨고 보고 있을 게 뻔했다.
절대 탈세할 생각은 없었다.
잠시 주식에 묻혀 흔적을 지울 뿐이다.
부우우우우웅.
“엔진음이 예술이네. 이래서 사람들이 명품, 명품 하는 거야~.”
법인 명의로 뽑은 내 첫차.
그 이름도 아름다운 포르쉐 911 카브리올레 4S.
4인승 스포츠카로 6기통 엔진에 5단 자동변속기를 단 3,824cc의 명차.
그릉거리는 기분 좋은 엔진음과 배기음의 하모니가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2020년식에 비하면 여러 편의장치와 출력과 속도에서 좀 딸렸지만 슈퍼카는 명품이 확실했다.
발을 살짝 가져다 놓기만 해도 기똥차게 반응하는 속도와 브레이크.
올 블랙의 맵시는 수컷의 향기를 강하게 풍겼다.
더 밟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난 생에 타봤던 아버지 똥차와 친구들 차하고는 비교도 안 됐다.
생생하게 온몸에 전해지는 차의 넘치는 힘은 피를 끓게 만들었다.
외제 슈퍼카를 타고 도로에서 질주하는 인간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알았다.
내 차 주변으로 다른 차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끼이익.
아쉽지만 목표한 곳에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가까운 우리들 은행 서초지점에 들렀다.
법인 계좌를 튼 곳 중 하나다.
지하주차장에 파킹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지점으로 들어갔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청원경찰이 찾아온 목적을 물었다.
“외국 주식에 투자하고 싶은데 우리들 은행에서만 미루증권 해외 계좌를 열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잘 찾아오셨습니다. 번호표 뽑으신 후 기다리시다 상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나이도 젊은 청원경찰이 참 친절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대기인은 다섯 명.
느긋하게 손님용으로 제공되는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마셨다.
사탕도 있어 입가심용으로 하나 챙겼다.
공짜는 괜히 기분 좋았다.
띵동!
숫자번호판에 내 대기표인 38번이 떴다.
담당 직원 앞으로 다가갔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여직원이 생긋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해외주식 투자용 미루증권 계좌를 열고 싶습니다.”
“거래 통장 가져오셨나요?”
“네. 그 계좌에 연동해서 열어 주십시오.”
2007년 5월이 되어서야 각 증권회사에서 HTS를 통해 해외 주식 온라인 거래가 가능했다.
지금 가능한 방법은 딱 하나.
우리들 은행을 통해 미루증권 계좌를 열고 직접 찾아가 해외주식을 구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통장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단정하게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직원은 내 통장을 받아 단말기에 꽂았다.
“잔액이 충분하시면 바로……, 헉!”
모니터를 보고 있던 여직원이 갑자기 헉하며 큰 소리 비명을 냈다.
“무슨 일입니까?”
청원경찰이 바로 달려왔다.
나를 경계의 눈초리로 살폈다.
옆 창구에 있던 여직원도 놀라 담당 여직원에게 다가왔다.
“그게…….”
놀라는 손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는 내 담당 여직원.
명찰 이름이 고아린이었다.
“어머!”
옆 창구 여직원도 놀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켰다.
그리고…….
“고, 고개님. VIP실로 모시겠습니다. 응대에 무례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무례라니요. 그냥 간단하게 주식 계좌를 열어주시고 연동만 시켜주시면 되는데…….”
어젯밤 바쁜 마음에 우리들 은행 법인 통장에 4,000억을 입금한 일이 커졌다.
대기업도 하룻밤에 현금 4,000억을 입금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만 가능한 무지막지한 현금 동원력이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이 은행 지점장 고일동이라고 합니다. 지점장실로 모시겠습니다.”
50대 초반의 깔끔한 양복을 착용한 지점장이 어느새 나와 90도로 인사를 했다.
정말 빨랐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며 나를 봤다.
나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은 못했다.
말로만 듣고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던 은행 VIP 응대 장면이다.
“그럼 처리할 동안 차 한 잔 부탁합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이래서 은행에서 VIP를 따로 모시는 것 같다.
그렇게 난 지난밤의 후폭풍을 제대로 맛봤다.
겨우 4,000억 움직였을 뿐인데 난리가 난 대한민국 금융권.
‘역시 남자는 지갑에 돈이 빵빵해야 해!’
다시 한 번 돈의 소중함을 화끈하게 깨달았다.
# 42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