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21
420장.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1)
“아빠!!!”
“효주야……. 아픈 곳은 없어? 이제 머리 안 아파???”
“응~ 아빠가 준 약 먹고 많이 나았어. 의사 선생님이 하늘이 주신 기적이래!”
“그래…… 그래……. 다행이다.”
형이 확정되지 않아 미결수 상태인 진광형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하루에 단 한 번 허락되는 면회에 가족들이 찾아왔다.
아팠던 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믿기지 않는 변화였다.
곰이 준 물약을 먹였다.
의사 몰래 가지고 간 물약을 마법의 물약이라 설명하고 딸에게 먹였다.
마지막 선택이었다.
어차피 몇 달을 넘기지 못한다는 시안부 판정을 받은 딸.
아빠가 주는 거라면 다 믿는 눈을 하고 딸은 잘도 받아 마셨다.
그러고 난 뒤 일어난 기적.
물약을 먹고 별 반응 없이 편안하게 잠든 딸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생기를 찾아갔다.
하루 사이에 건강한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의사들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놀라워하며 긴급 체크에 들어갔다.
혈소판, 백혈구, 적혈구, 헤모글로빈 수치가 하루 만에 거의 정상 수치가 나왔다.
의사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딸도 약속했던 대로 비밀을 지켰다.
딸의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진광형은 약속했던 대로 움직였다.
스스로 증거가 되어 천일 그룹의 비리를 낱낱이 까발렸다.
“괘, 괜찮아요?”
아내가 물어왔다.
진광형은 그사이 수척해진 아내를 보며 마음이 울컥했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었다.
연애 시절 그 누구보다 뜨겁게 아내를 사랑했었다.
일찍 부모를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진광형은 가족에 집착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일했다.
아내와 아이에게 더 좋은 집과 부유한 생활을 선물하기 위해 천일 그룹의 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찾아든 아이의 병마.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아내에게 아이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는 병신이라는 막말까지 퍼부었다.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아이와 회사 일로 지쳐가던 시점의 진광형은 아내를 매몰차게 몰아쳤다.
모든 스트레스를 묵묵히 참아오던 아내에게 쏟아 부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 한 장 없이 아내가 사라졌다.
그때 깨달은 그녀의 부재와 그녀 없는 공간이 주는 아픔을 진광형은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부터는 딸 때문에 버텼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다시 그 아내를 만났다.
“당신은?”
“전…… 괜찮아요.”
딸을 무릎 위로 안고 있는 아내는 수척했지만 편안해 보였다.
이렇게 서로를 걱정하는 따뜻한 말을 주고받았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한때는 개성 강한 전문직 여성으로 살았던 아내였지만 자신이 망쳐놓았다.
“미안해…….”
강화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진광형은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딸이 병마와 싸울 때 자신만 괴로움을 감당한다고 생각했다.
열 달 동안 품고 배 아파서 세상에 내보낸 사람이 아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아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살짝 비쳤다.
“저도……. 미안해요.”
그렇게 하기 힘들었던 미안하다는 말이 서로에게서 오갔다.
“…….”
둘 사이에 잠시 따스한 침묵이 흘렀다.
“아빠~ 나 미국 간다~.”
“벌써?”
“응~ 좋은 아저씨가 초청했다는데 다음 주면 갈 것 같아. 거기 병원에 가서 다 치료하고 아빠 데리러 올게.”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내가 편지 쓸게. 나 한글도 다 배웠고 이제 영어 공부도 해~.”
병을 얻은 뒤 병원에 갇혀 지냈던 딸은 미국에 치료 받으러 가는 줄 알았다.
빨리 나아 자신을 데리러 온다는 딸을 진광형은 눈에 가득 담았다.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이었다.
천일 그룹에서 전방위로 로비를 벌였지만 일격에 당한 타격을 피하지는 못했다.
진광형도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접촉했던 이들이 뒤에서 천일 그룹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마음은 차라리 편안했다.
걸려있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급 공무원들이 많아 여론이 잠잠해지면 적당한 형량이 정해질 것이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뇌물죄의 공범이었지만 단순 배달자여서 천일 그룹 부회장보다 형량이 높을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변호를 맡은 이가 로펌에 소속되지 않는 검사장 퇴직자였다.
검사들도 조사할 때 최대한 편의를 봐줬다.
곰이 보내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고맙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아내와 딸의 뒤를 봐주고 있는 존재.
천일 그룹에서 손을 떼게 만들어 준 이가 정말 고마웠다.
길지 않게 죗값을 치르고 나면 다시 만나게 될 가족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먼저 가 있어. 금방 갈게…….”
“몸 조심해요. 편지할게요…….”
말을 잇지 못하고 또로록 눈물 흘리는 아내.
마음은 손을 잡아 주고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범죄자.
진광형은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아내와 딸을 바라볼 뿐이었다.
***
“이거 뭡니까?”
“보면 몰라요. 치킨이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이게 왜…….”
“캔맥주 안 땡겨요?”
“…….”
치킨 냄새를 맡고도 흥분하지 않으면 그건 한국인이 아닐 수 있음을 의심해 봐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1인 1닭은 진리다.
그건 해외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치킨 아닙니다. 어렵게 시애틀 한인 통닭집에서 튀겨왔어요. 완벽하게 양념 맛이 살아 있는 녀석입니다.”
꿀꺽.
조영준의 목에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한국에서 식단 재료가 공수된다지만 맛이 똑같을 리가 없었다.
선수촌 식당은 대부분 서양식 위주였다.
경제 위기 여파로 인해 식단이 다채롭지 않았다.
입맛 없을 때는 소울 푸드가 제격.
한국인 중에 양념 치킨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룸메이트 조영준은 캐나다 선수촌에서도 동지였다.
양손에 치킨과 맥주를 들고 그를 찾아왔다.
내일 본격적으로 2010년 동계 올림픽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열렸다.
시애틀에서 아사다와 김유나의 피겨를 마음껏 보고 왔다.
그녀들은 예행연습으로 드레스까지 입고 피겨 프로그램을 점검했다.
김유나 드레스 코드는 완벽했다.
긴 팔다리와 손끝은 전생 TV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감동은 200배였다.
아사다는 부채까지 들고 나와 귀엽고 요염하게 춤을 췄다.
그녀의 경기도 훌륭했다.
다만 나를 볼 때마다 ‘호빠’라고 부르는 게 난감했다.
아사다는 ‘오빠’라고 분명 부르는 것일 테지만 안타깝게도 발음이 샜다.
자칫 다른 한국 사람에게 ‘호빠’라고 불렀다가는 망신을 당할까 걱정이었다.
하지만 고쳐주지 못했다.
나를 보고 초롱초롱하게 눈을 뜬 채 ‘호빠’라고 부르는 그 소리.
묘하게 귀에 착착 감겼다.
그렇게 눈이 호강하는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후 시간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뉴욕이나 와이너리를 방문해 로버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알고 있는 미래 지식이 전부가 아니었다.
과거 알았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로버트가 포착한 정보들 중에 유용한 것들이 참 많았다.
내가 알던 미래와 결합해 세밀하게 작전을 세우고 계획을 짰다.
그중 핵심은 중국 투자.
로버트도 내가 중국에 억하심정이 있다는 걸 알았다.
길게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2018년부터 터지기 시작한 중국의 3대 회색 코뿔소.
트럼프의 공격에 중국은 부동산 거품, 기업 부채, 그림자 금융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으로 흘러간다.
그 이후로도 중국은 제법 버텨보기 위해 힘을 냈다.
공산당 주도로 거대 기업들은 물론 대부분의 사회망을 힘으로 억압했다.
2020년까지 버텨내던 중국.
그 전에 박살을 내고 싶었다.
더 풍성한 거품이 나도록 펌프질을 쉬지 않고 해댈 생각이었다.
“준비 많이 했어요?”
말과 함께 조용히 내 손에 들린 치킨을 챙겨가는 조영준.
비닐봉지 안에 담겨 있는 캔맥주를 보고 입술이 씰룩였다.
한국 선수들은 이곳에서도 엄격하게 통제됐다.
기자들도 많아 걸리면 엿 되는 수가 있었다.
국가대표가 해외에 나가 술을 마셨다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되는 한국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예외였다.
기자들이 우리 옆에 없었다.
메달을 딸 가망성이 아예 없다고 판단해 프로필 사진 하나만 찍고 사라졌다.
메달 유망주들은 훈련 영상에 이것저것 많이도 찍어 댔다.
암암리에 차별이 심했다.
“운동도 평소 실력으로 승부 보는 겁니다.”
“……가끔 재수 없는 거 알죠?”
“잘난 제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둘 다 말을 놓지 않았다.
형, 동생 하기에는 우리가 그렇게 친밀한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농담이 많이 세졌다.
딸깍 치이익.
맥주를 땄다.
미국산 버드와이저 빅 사이즈 맥주.
식어버린 양념 치킨이었지만 물엿에 코팅 된 자태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마셔요.”
딴 맥주를 조영준에게 건넸다.
“애도 아니고…….”
말과 달리 맥주를 받아 든 조영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빴어요?”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달렸습니다.”
“코치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실력이 많이 늘었지만 메달 가능성은…….”
내 덕분에 체력을 비롯한 여러 가지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동유럽 선수들에 비해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인터뷰 연습해 놔요.”
“네?”
“금메달 따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 놨어요?”
“금메달요?”
닭다리를 뜯다 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된 조영준.
“제가 신기가 있는데 이번 경기…… 뭔가 촉이 와요.”
“푸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조영준.
“왜요?”
“제가 메달 따면 태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흐흐흐. 약속한 겁니다.”
“넵! 부모님 이름 걸고 맹세합니다.”
이거 팔자에 없는 나이 든 동생 하나 두게 생겼다.
“많이 먹어요. 오늘이 형 아닌 동료로 먹는 마지막 치킨이 될 테니까요~.”
“…….”
대꾸 대신 맥주를 마시고 닭다리를 뜯는 조영준.
그에게 메달의 저주가 반드시 임할 것이다.
***
“어디?”
“한국.”
“멋진데~.”
“그런 소리 들어.”
“방금 노르웨이어 사용한 거야?”
“응.”
“와우! 너 정말 대단하다. 난 소피아라고 해.”
이거 뭐지?
치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운동 한다고 조영준도 나갔다.
국가에서 지급한 운동복을 입고 선수촌을 걸었다.
그때 장신의 푸른 눈동자를 소유한 금발 미녀가 다가왔다.
올림픽 기간에 선수촌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통제가 됐다.
테러 첩보라도 받은 듯 곳곳에 총을 든 경찰과 군인들까지 눈에 띄었다.
문제는 선수촌 보안이 아주 철저하다는 데 있었다.
3000명에 가까운 피 끓는 청춘들이 겨울의 추위를 꺾었다.
잠들지 못한 남녀 선수들이 곳곳에서 산책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곳곳에 보이는 무료 콘돔 부스.
남녀들이 스스럼없이 콘돔을 챙겼다.
재미있는 시선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한 여성이 다가왔다.
키가 180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거의 나와 같은 키로 9등신에 가까운 그녀가 호기심을 보였다.
국적을 묻기에 그녀의 복장에 새겨진 국기를 보고 노르웨이어로 대답했다.
감동하는 소피아.
조명빨이 장난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미인이 무슨 일로?
“종목은?”
“크로스컨트리 프리.”
“오! 정말? 나도 그래! 그런데 왜 우리 한 번도 못 본 거야?”
어쩐지!
하긴 소피아 누님 허벅지가 대충 봐도…… 상당하다.
“처음 출전이야.”
“그래?”
소피아가 나에게 급 흥미를 보였다.
파바밧.
그녀와 나 사이에 순식간에 오가는 묘한 분위기와 스파크.
그것도 바로 옆은 대회본부에서 준비한 무료 콘돔 배부 장소였다.
이럴 때는…….
“다니엘…….”
응? 누, 누구???
# 421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