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489
489장. 나를 구해줘 (2)
“하아……. 답답하네.”
29연대 연대장 조건우는 한숨만 하염없이 토했다.
소장이 명을 내렸지만 딱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육사 후배들과 달리 자신을 찍어내기 위한 소장의 술수라는 걸 알면서도 당해야 했다.
“여기서 끝나는 건가.”
몇 년 후면 계급 정년이었다.
내년까지 줄을 잡지 못하면 한직으로 밀려나 재기 불능이 된다.
지방 출신, 그곳도 현 여당이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지역의 지방대 출신 학군 장교가 많이 올라왔다.
대령까지 오면서 학군단 동기들 대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같이 임관했던 동기들 중에 살아남은 수가 손에 꼽혔다.
그 수천 명 동기들 중에 잘해야 한둘 정도가 별을 달 것이다.
아버지가 북파 공작원이었다.
비밀을 감추고 고향에서 농사꾼으로 평생 살았지만 조건우는 아버지의 애국을 잊지 않았다.
비밀의 조직 켈로 부대 생존자였다.
조국을 위해 뼈를 깎는 훈련을 견디고 북한까지 다녀왔던 분이다.
그걸 알고 뒤늦게 군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조건우.
하지만 고등학교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고 사관학교 입학에 실패했다.
다행히 학군단이 설치된 지방 국립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뒤늦은 학구열과 열정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장교에 임명됐다.
하지만 초임 장교 때부터 일이 꼬였다.
대한민국의 육사가 어떤 곳인지 뼈저리게 알아버렸다.
실력보다는 학연과 출신 지역이 우선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특전사까지 부임해 실력을 배양했지만 원하는 자리에서 서서히 밀렸다.
몇 배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겨우 경쟁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그 끝이 보였다.
“의무경찰이나 의무소방대가 아닌 일반 보충역들은 훈련에 한계가 명확하다. 신체가 허약한 그들을 어떻게 일반병으로 만들어. 그것도 4주 안에…….”
몰아붙이다가는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아직은 가벼운 부상 정도로 끝나고 있지만 훈련을 정석대로 행하면 큰일이 날 것은 뻔했다.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그럼 연대장인 자신이 대부분을 책임진다.
소장은 이곳에서 조건우가 옷을 벗기를 원하고 있었다.
전임 전출지에서 육사 출신 휘하 중령의 건방짐에 쪼인트를 깠던 게 원인이었다.
그때 이웃 연대장이 언질 해줬다.
그 중령 집안이 대대로 별을 배출한 육사 출신 집안이라는 얘기였다.
“내가 책임진다. 훈련병들은 사회에 복귀할 자들이다. 굳이 여기에서까지 자원을 낭비하는 건 국가적 손실이다.”
조건우는 훈련을 본래대로 돌릴 생각이었다.
밑에 부하들도 훈련이 너무 강하다고 계속 건의해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삐이이잇.
조건우는 직통 전화기를 들었다.
– 통신보안! 대대장 황찬성. 전화 받았습니다.
“연대장이다.”
– 넵! 연대장님!
“오늘부터 훈련 내용을 평소 보충역 수준으로 돌려.”
– 연대장님……. 소장님 지시로…….
“내가 책임진다. 그대로 실시해.”
– 충!
명령이 하달되면 따라야 하는 곳이 군대였다.
훈련소라고 다르지 않았다.
딸깍.
수화기를 내려놓은 조건우 대령.
“하나! 둘!”
창밖을 내다봤다.
오늘도 국가를 위해 2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하는 대한민국의 희망들이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그들의 훈련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조건우의 심장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
연대장 조건우 대령 입에서 흘러나오는 육군 복무신조.
“하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둘…….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지상전의 승리자가 된다. 셋…….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천천히 읊는 복무신조의 내용.
“넷. 우리는 명예와 신의를 지키며 전우애로…… 굳게 단결한다!”
마지막 복무신조를 읊조리는 조건우 대령.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
“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훈련소 입소 7일 차.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생방 훈련이 실시됐다.
열두 명씩 들어가는 화생방 훈련소를 뛰쳐나온 앞 조 훈련병들이 악을 쓰며 눈물을 흘렸다.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수통으로 눈을 씻어내고 바람에 눈물을 말려! 이 바보 같은 놈들아!!!”
훈련 교관이 덩달아 악을 썼다.
머리에 입력한다고 해서 바로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눈이 매워지자 본능적으로 훈련병들은 뛰쳐나와 눈을 마구 비볐다.
그리고 벌어진 사달.
“아아아악! 내 눈! 내누우우우운!”
화생방 훈련이 저래서 무서운 거다.
눈을 비빈 훈련병이 급기야 땅바닥을 뒹굴었다.
“손 치워!!!”
숙달된 조교가 달려가 수통의 물을 전부 부어주었다.
“으으으…….”
“흐윽.”
대기하고 있던 우리 분대원들은 바짝 쫄았다.
일주일 동안 훈련을 받았더니 그 사이 사회물이 조금 빠졌다.
기상과 동시에 취침까지 타이트한 시간이 흘러갔다.
군대 2회 차인 나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훈련병 시절은 자대와 달리 융통성이 떨어졌다.
선임들의 갈굼은 없지만 훈련 내용은 지옥 같았다.
땅개라 불리는 일반 소총병들의 자대 생활은 생각보다 편했다.
최전방 GP만 차출되지 않아도 살 만했다.
이병에서 일병이 되면 세상이 달라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상병쯤 되면 두말 하면 잔소리, 여유가 생긴다.
병장은 말 그대로 병장.
제대 날짜만 세면서 숨만 잘 쉬어도 됐다.
하지만 훈련병의 일상은 그들과 달랐다.
하루하루가 쉴 틈 없이 죄어왔고 언제나 배가 고팠다.
갈수록 짬밥은 더 엉망이 돼가고 있었다.
야식이나 간식으로 지급되던 음료수나 빵 역시 횟수가 줄거나 저급 제품으로 바뀐 채 제공됐다.
누군가의 농간질이 제대로 판을 벌이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음식 맛이 떨어지자 먹는 양이 줄고 병사들 체력도 떨어졌다.
게다가 여름이라 기본적인 식욕도 없었다.
개도 먹을 것 같지 않은 음식들이 삼시 세끼 나왔다.
짬밥을 실어가는 업자들만 신났다.
군대의 모든 사업에 브로커가 존재했다.
지난 인생 일반병 시절에도 눈으로 보고 들었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군용차 기름부터 시작해 피복 같은 의류, 음식 재료비 등이 행보관의 농간질로 중간에 사라졌다.
깐깐한 연대장이나 대대장 같은 장교가 존재하지 않으면 중대는 한순간 엉망이 된다.
그걸 제대 때까지 몇 번이나 봤다.
윗물이 흐려지면 바로 아랫물까지 금세 똥물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곳 훈련소처럼 말이다.
지난 생에 훈련소는 이 정도까지는 엉망이 아니었다.
이 말은 현 소장이 돈만 밝히는 놈이라는 의미였다.
행보관과의 사이에 뭔가 있을 게 확실했다.
“다음 조. 준비!”
“아우……. 살 떨려.”
“난 저기서 죽일지도 몰라.”
나이 많은 의대를 졸업한 보충역들이 인상을 썼다.
“형님……. 안 죽겠죠?”
쫄아 있는 건 장동구도 마찬가지였다.
“걱정 마. 우리 조는 확실하게 편할 거야.”
“네?”
“호흡기 질환자 없나?”
“…….”
“방독면 착용!”
조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호흡기 질환자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빠르게 진행됐다.
처저저적.
살기 위해서 모두들 방독면을 재빨리 착용했다.
“입실!”
가스실 안으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혔다.
치이이익.
조교가 CS라 불리는 캡슐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공간에 가득 퍼지기 시작하는 연기.
“모두 정화통을 벗긴다. 실시!”
“시, 실시!”
“군가를 부른다. 만약 고통을 참지 못하고 본 조교를 밀고 밖으로 나가면 다시 원점부터 시작한다. 알겠나!”
“넵!”
“빨리 분리하라. 군가는 언제나 ‘멋있는 사나이’!”
조교의 명령에 정화통을 분리하는 훈련병들.
조교는 코스 대로 군가를 시켰다.
조교는 멋있는 사나이 성애자가 확실했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멋모르고 훈련병들이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웩! 엑!”
“어억!”
숨이 짧은 훈련병들은 벌써 잔뜩 오염된 공기를 들이켜고 비명을 질렀다.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로 사악하게 웃고 있는 조교의 눈빛.
좋냐?
뜻대로 당하고 빌빌 댈 내가 아니었다.
“클린 포이즌.”
조용히 마법 시동어를 외쳤다.
파스스스슷.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짧은 빛이 타오르며 CS의 독기를 희석해 버렸다.
“응?”
“어???”
눈물을 흘리고 이제 광분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분대 훈련병들이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많이 놀랐다.
“바로 내가 사나이다! 멋있는 훈련병~♫”
군가는 끝까지 불렀다.
“뭐, 뭐야?”
예상치 못하게 평온한 상태의 훈련병들 모습에 놀란 조교.
“나가도 됩니까?”
내가 물었다.
독기가 빠진 가스실은 그저 안개 낀 방과 다를 바 없었다.
“나, 나가.”
조교의 허락이 떨어졌다.
혼자만 방독면 착용하고 누려왔던 오래된 조교의 즐거움은 가볍게 깨졌다.
그렇게 나온 바깥.
“화생방 뭐 이리 쉽노?”
“저 새끼들 우리 놀리려고 오버한 거야?”
“좌우지간 군대는 다 개뻥이라고 하더니…….”
내 덕에 지옥에서 빠져나온 줄 모르고 의기양양하게 분대 조원들이 투덜거렸다.
훈련소 7일 차.
그렇게 무사히 화생방 훈련이 끝났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두.
그때 머리 위를 지나가는 몇 대의 군용 헬기.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빠르게 훈련소 본부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
“그래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고?”
“네……. 장교 분들과 선배님들이 잘 해주셔서……. 괜찮습니다!”
“왜 이렇게 긴장하고 그래? 딸 같은데 편하게 있어.”
톡톡.
용창호의 손이 하사관의 어깨를 두들겼다.
“!!!”
앳된 얼굴의 여자 하사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중사나 상사만 되도 높은 신분이지만 별 2개 소장은 거의 하늘같은 존재였다.
그런 소장이 어깨를 두들기니 꼬투리 잡기 애매했다.
소장 용창호는 새로 부임한 여자 하사관을 소장실로 불렀다.
명목은 고충 상담.
본래 이런 상담은 대대장이나 연대장이 담당했지만 용창호는 직접 처리했다.
행정실에 새로 부임한 여자 하사가 연예인 수준으로 예뻤다.
“그래 아버지가 편찮으시다고 하던데 괜찮아? 휴가 많이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은근한 목소리로 배려인 듯 협박을 하는 용창호 소장.
“네……. 많이 편찮으십니다.”
소장의 목적을 전혀 의심하지 못한 여 하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구……. 그랬구나. 아빠가 아프면 딸이 슬프지.”
슬쩍 옆으로 더 다가가 앉으며 여 하사 어깨를 토닥였다.
“!!!”
마음과 달리 딱딱하게 온몸이 굳어버린 여 하사.
떨치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직업 군인 대출을 받아 아버지 수술비를 댔다.
만약 선임의 말처럼 여기서 쫓겨나면 가족 모두가 거지꼴을 면치 못할 처지였다.
“내가 말이야 딸처럼 여겨져서 말하는 건데……. 용돈 좀 받아 볼래?”
“네? 요, 용돈요?”
“그래~ 용돈. 월급 말고 내가 부를 때 심부를 좀 해주면……. 용돈을 좀 벌 수 있는데……. 최소 월급 수준으로 말이야.”
은근하게 미끼를 던져보는 용창호.
필수적으로 작성하게 되어 있는 가정상황표를 면밀히 살피고 던지는 마수였다.
“소장님 그건…….”
“왜? 돈이 적어? 말만 잘 들으면 진급도 빨리 하고 집이 있는 후방으로도 보내줄 수가 있는데…….”
마치 악마처럼 속삭이는 용창호 소장.
부르르르.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떠는 여 하사.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소장님 전…….”
탕탕탕!
그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럽게 울리는 노크 소리.
“뭐야!”
잔뜩 신경질이 난 용창호 소장.
“소장님! 큰일 났습니다!”
부관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무슨 일이야!”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고 부관을 불렀다.
덜컥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들어서는 부관의 얼굴은 새카맣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상담 중인 거 안 보여!”
용창호 소장은 부관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소장님…… 지금 연병장에…… 군단장님과…… 한미연합사 사령관 및 부사령관님이…….”
“뭐,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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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