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
4장. 돈에는 눈이 없다
머슴밥 두 그릇을 비우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설거지를 도와주자 엄마가 놀랬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고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 정도로 난 전생에(?) 불효자였다.
차마 말하지 못했다.
아들인 내가 십몇 년 뒤에 서울에서 비명횡사 당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돌아온 방안은 다시 봐도 엉망이었다.
“크으! 미친. 냄새 봐라.”
맑은 바깥 공기 마시고 돌아온 방안은 독한 남성 호르몬 냄새로 가득했다.
일단 창문과 방문을 열어 공기를 순환시켰다.
천룡신군 덕분에 쏟아 낸 찌꺼기가 묻어 있는 옷과 이불을 가지고 마당에 있는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싹싹 걸레로 방을 닦았다.
군대 제대 후 반짝했던 청결 정신을 깨웠다.
엄마는 그사이 안채에서 낮잠을 주무셨다.
체력이 별로여서 한낮 땡볕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방을 정리하고 내 상태를 체크했다.
“아무리 주식 정보가 들어차 있으면 뭐 하노. 자본금이 바닥인데.”
아버지는 대출금 문제로 농협에 나가셨다.
이맘 때 몇 달 뒤 논이 채무 연체로 날아갔다.
이때부터 집안이 폭삭 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농약과 비료 없는 유기농 농법으로 사과 농사를 지었다.
잘 될 리가 없었다.
아직 유기농이 전국적으로 유행할 때가 아니었다.
비싼 돈 주고 유기농 사과를 먹는 집이 드물었다.
사과가 실한 것도 아니었다.
상처 나고 쪼그만 사과는 내가 봐도 사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들었다.
아버지가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한때 동네에서 몇 십 년 만에 배출한 인재였다.
고연대 전자학과에 합격해 할아버지가 동네잔치를 열었다는 마을의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IMF의 파도를 넘지 못하고 명퇴를 당한 시대의 비운아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만 남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퇴직 때 받았던 세상의 상처가 컸다.
할머니도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상속 받은 작은 과수원과 두 필지의 논이 전부였다.
대출이 만땅이었다.
4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기에 저축한 돈도 없었다.
어머니 집안은 나도 잘 몰랐다.
의절 상태였다.
난 외가가 어떤 집안인지 듣지를 못했다.
집안의 금기어였다.
아버지 형제들도 결혼한 이후로 잘 찾아오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들과 고모와 우리 집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친척들은 별 볼 일 없는 시골에서 공짜로 받기를 좋아했다.
쌀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먹거리를 천연덕스럽게 요구했다.
한때 아버지는 묵묵히 장남 몫을 해냈다.
할머니가 원했던 바라 고통을 감내했다.
하지만 모든 게 담보로 잡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동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금만 도와달라고 말이다.
그 이후로 거짓말 같이 아버지 형제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사 때도 발걸음이 없었다.
할머니 제삿날 허탈해 하며 퇴주였던 소주를 몽땅 드시고 어머니 품에서 꺼이꺼이 울던 아버지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돈이 없으면 형제도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돈이 문제네. 돈!”
촤라라락 주식 시장 그래프가 머리에 그려졌다.
투자금만 있다면 바로 쌈 싸먹을 주식시장이 나를 애타게 만들었다.
로또 번호는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과거 내가 봤던 대박주 그래프들이 둥둥 떠올랐다.
한두 번 봤을 뿐인데 머리에는 선명하게 남았다.
미치고 환장하도록 주식이 땡겼다.
이것보다 확실한 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머리가 좋아진 거야? 아니면 이건 뭐야?”
난 천재가 아니었다.
적당한 IQ와 노력을 소유한 이 시대의 평범남이었다.
그런 내가 모든 그래프를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아니 말이 됐다.
내가 회귀한 것 자체가 이미 비상식의 끝판왕이다.
방 안을 훑어보았다.
예전과 다르게 머리가 맑았다.
밥 먹고 식후 한판 즐겼던 게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안이 아작 나는 판에 돌아오자마자 게임이나 하는 돌대가리는 아니다.
“고삐리한테 신체 포기각서 받고 돈 빌려줄 사채업자는 없을 것이고, 알바를 뛴다 해도 돈 몇 푼 되지 않는다. 부모님께 종잣돈 얘기를 꺼낼 상황은 안 되고…….”
세상사는 데 돈보다 귀한 것은 별로 없었다.
부모님 빼고 가족 간의 우애도 돈으로 판가름 나는 세상으로 진화 중이었다.
꿈속 할배가 날 돌려보내면서 말했다.
마음껏 세상을 해피하게 살라고 말이다.
살아도 보고 죽어도 보니 인생 진짜 짧았다.
30년 넘게 살다 죽어보니 청춘이 그리 길지 않다는 깨달아 버렸다.
“지금 나한테 활용 가능한 제테크 수단은 저놈 하나네.”
한껏 자신을 뽐내고 있는 미래의 고물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노가다를 뛰기에는 위험이 많았다.
노력에 비해 얻는 것도 경제적이지 못했다.
부모님이 아시기라도 하면 걱정만 끼칠 뿐이다.
“주식이 딱인데.”
입맛만 다셨다.
아쉬움은 배가 됐다.
정보를 알고 있어도 써먹을 수 없는 이 기분은 홍길동 아저씨만 알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길동이 아저씨와 주식을 주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내 심정이 똑같았다.
미성년자는 주식 계좌를 마음대로 열 수도 없었다.
당연히 신용거래도 불가능했다.
단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촤라라랏 수없이 많은 돈 버는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아! 맞아!”
그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기똥찬 방법이다.
“흐흐흐. 미안합니다. 장희재 작가님.”
급히 컴퓨터를 켰다.
이 시절 난 용돈이 생길 때마다 친구들과 책방 품앗이를 했다.
재미있는 만화 소설을 빌려 돌려가며 봤다.
그리고 돈이 없을 때는 무료로 소설을 볼 수 있는 판피아라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소설을 보는 일이 책방에서 인터넷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는 변화의 시대였다.
신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연재를 하는 게 가장 빨랐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면 바로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다.
나도 한때 작가가 되기를 꿈꿨지만 글발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서와 창작의 간격은 천지 차이였다.
친구 놈 중에 한 녀석도 연재를 시작해 작가가 되기도 했다.
물론 몇 권 쓰지 못하고 완결해 폭망했지만 짭짤한 용돈벌이는 됐다고 했다.
“제목은 !”
제목을 생각하자 심장이 쿵쾅 뛰었다.
“첫 출간일이 2007년 1월. 작가 장희재. 완결……. 2020년에도 미완! 장 작가님 미안합니다. 그래도 14년 간 집필은 아니지 않습니까!”
난 양심을 팔았다.
하지만 절대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빙뢰도와 함께 대한민국 2대 마공서로 불리던 .
2020년에도 59권까지 책이 나왔다.
그것도 미완결이었다.
애증을 넘어버리고 득도의 심정으로 를 봤다.
내 청춘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재미는 끝까지 보장됐다.
다만, 장희재 작가보다 내가 먼저 죽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독자가 품고 있는 애증의 칼날을 돌려줘야 할 때였다.
“제목은 그대로 ! 선점하는 자가 먼저다!”
타닥거리며 한글 창을 띄워놓고 제목을 입력했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것 같은 집중력이 발휘됐다.
“주인공 이름은 레드! 여주인공 이름은…… 주예린! 집안은 홀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쫄딱 망한다. 사채 상속이 이뤄져 주인공은 게임으로 돈을 벌지만 사채업자에게 빼앗긴다! 배고픈 쌍둥이 여동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짠돌이 주인공 레드는 인공 게임에 우연히 접속하고…….스토리 죽이고~.”
시놉시스가 기가 막히게 뽑아졌다.
놀랍게도 내가 읽었던 소설의 모든 내용이 떠올랐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두 재생됐다.
타다다다다다닥.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췄다.
그리고 미친 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귀 보너스 덕분에 내용이 그대로 한글 창에 재생됐다.
너무나 재미있던 가 내 손에서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워낙 명작이었기에 손볼 곳이 없었다.
“흐흐흐. 재밌네! 재밌어!”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판타지는 다시 써도(?) 퀄리티가 보장됐다.
글이 진행될수록 내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복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거지같은 현실에서 찌질함을 달리는 주인공.
딱 지금의 나와 같았다.
그렇게 빠르게 글자들이 화면을 채워나갔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잊었다.
신선놀음과 비슷했다.
단숨에 연재분 두 회가 모니터에 가득 찼다.
글이 이렇게 쉽게 써지나다니, 처음 알았다.
잠자던 작가의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일단 자유연재란에 올린다! 그리고 폭참!”
애타는 독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판피아에 접속했다.
2020년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화면에 정보를 입력했다.
판피아에 연재되는 작품들을 보자 과거 읽었던 몇몇 작품이 보였다.
대박과 쪽박 작품이 구별됐다.
어린 시절 미친 듯 날 끌어들였던 소설들을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참 재미있었는데.”
입맛을 다시며 아이디를 만들었다.
아이디는 골드리버.
황금이 흐르는 강이 내 눈에 환상처럼 보였다.
딸각 마우스 소리와 함께 두 꼭지가 올라갔다.
“아. 뿌듯해. 이 맛에 작가하는 거구나!”
미래에서 훔쳐 온 장희재 작가의 명작이지만 나의 가슴 속에는 희열이 넘쳤다.
소설에서 주인공 레드가 했던 명대사가 생각났다.
“돈에는 눈이 없는 법!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푸하하하하!”
# 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