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0
49장. 배가 고픈 밤
“룬어라……, 룬어.”
크리스 반스데일의 룬어라는 말이 현실 세계에 와서도 궁금증을 일으켰다.
내가 아는 룬어는 소설이나 게임 속 마법에 사용되는 언어다.
정확하게는 게르만족이 주술에 사용했던 언어였지만 그 신비함이 마법으로 둔갑되었다.
그런데 크리스 반스데일 신은 인류가 잃어버렸다던 고대 언어가 룬어라 했다.
뭔가 촉이 왔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보아 대박이 확실했다.
“설마 진짜 마법 언어는 아니겠지?”
합리적 의심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세상에 마법이라니…….
“이집트에 마술사들이 많았다던데……, 막 나무를 뱀으로 둔갑시키고 불을 만들기도 했다고는 하는데…….”
성경에도 마술에 대해 나온다.
하지만 그래 봤자 진짜 내가 상상하는 마법은 아닐 것이다.
“곧 불러준다고 했으니 기다려보면 알겠지.”
카르마 포인트가 아쉬운 건 크리스 반스데일 신이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여기는 학교다.
3학년이 되면서 5층 교실로 이동했다.
3학년 4반.
2학년 친구들 중 상당수가 다른 반이 됐다.
그렇다고 우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문과라 한 층에 모두 몰려 있다.
소란스러운 점심시간이 지나고 느긋하게 봄이 오는 학교 전경을 눈에 담았다.
굵은 플라타너스에 생기가 들어찼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다.
인생에 다시없을 아름다운 시절이다.
다시 살고 있지만 이렇게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간은 처음이다.
홍가 놈이 사라지고 찾아온 학교의 변화였다.
“아, 아니 나무가 왜 이래! 이거 이사장님이 아끼시는 소나무인데!”
“약을 탄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바짝 마르다니……, 이걸 이사장님께서 아시면…….”
1층이 소란스럽다.
교장 선생님 이하 학교 고위 관계자들 안색이 노랗게 변했다.
내가 크리스 반스데일 신 마당에 심었던 소나무의 원형이 하룻밤 사이에 고사됐다.
이사장님의 동상과 함께 학교를 상징하던 소나무.
마지막 봤을 때까지 쌩쌩하던 녀석이 완벽하게 미라가 됐다.
“…….”
괜히 양심에 찔렸다.
내가 그렇게 만든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난 그저 이미지만 상상했을 뿐인데…….
왜 저 소나무는 죽고 지랄이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인간계와 신계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마치 제물처럼 기가 빠진 소나무.
인간 세상에서 벌레와 농약 처바르고 사느니 신들의 정원에서 행복하길 빌어줬다.
“뭘 그렇게 보냐?”
“봄이 좋아서.”
“새끼, 봄 타냐? 가슴에서 막 열기가 치솟아? 소개팅 한 번 때릴래?”
첫 번째 생에서는 나와 친하지 않았던 강현수가 다가왔다.
전교에서 탑을 달리던 녀석이다.
얼굴도 잘생겼고 성격도 시원시원해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은 팔방미인형이다.
시내 대형 교회 장로님 아들이라 교회 여자 인맥이 장난 아니었다.
“됐다. 애도 아니고.”
“고3이면 아직 애다. 우리는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다.”
“곧 중간고사다. 2학년 초반까지 내신 개판 쳐놔서 만회해야 한다.”
“쭉 전교 1등 찍어도 1등급 안 나오냐?”
“2등급 나올 것 같다.”
“한국대 갈 거지?”
“아마도.”
“흐음……, 올해는 학교 추천 4명까지 지균이 가능하다고 하던데……, 아쉽겠다.”
“너나 봐라 지균. 난 정시 보면 되지 뭐. 발표난 거 보니까 정시는 2등급까지 내신 만점 처리한다고 하더라.”
“오오! 정시, 자신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나 장태산이야~.”
올해 한국대는 한 학교에 지역균형발전 모집 4명을 인정했다.
지역 명문이라 우리 학교 출신들은 지균 모집에 대부분 합격했다.
따 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난 내신에 밀려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2학년 2학기부터 만점 때리고 1등 해도 쌓아 놓은 바닥이 일천했다.
“태산아. 너 요즘 많이 변했다. 3학년인데 떨리지 않냐? 왜 이렇게 자신만만해?”
“내가 가진 게 좀 많아.”
“짜식 건방져~ 우리 아버지도 좀 살거든!”
그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게 진짜 많다고!
외국 통장에 5조 꽂혀 있다고 생각해봐.
누구라도 그냥 자신만만해지는 거다.
띠리리 띠리리리~♬.
5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웠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난 잘 알았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이 순간의 기억들이 소중했다.
***
“아직 배가 고프다…….”
학교가 끝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에는 쉬지 않는 세계 각국의 선물, 주가, 환율 그래프들이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저 선들 하나에 작게는 몇 백 원에서 많게는 몇 조까지 단위가 움직였다.
5조 대박을 터트렸지만 저 거대한 흐름 앞에서 난 아직 작았다.
2010년 발표 기준 약 21조 달러가 조세피난처에 숨어 있었다.
한화로 2경 4,200조.
2007년이라고 달라질 게 없다.
나의 5조는 거대한 자금의 세상에서 한낱 종이배였다.
여기서 멈춰도 됐다.
평생 죽을 때까지 돈 지랄하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건 죄였다.
죽었다 살아난 나에게 하늘이 준 기회다.
꿈속 할배가 그랬다.
장자의 힘을 보여주고 마음껏 살라고 말이다.
아직도 그 말씀이 생생했다.
“올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역사적 인물을 뽑겠군.”
2007년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고 있다.
훗날 국민들에게 유일한 마음 속 대통령이라던 주무형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공직 사회는 새로 탄생할 정권의 눈치를 봤다.
최병박의 적수가 없다.
여론과 기득권에 주무형 정권은 철저하게 당했다.
설익은 과감한 정책들은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외면을 받았다.
당파 싸움에 여념 없는 여당 국회의원들도 한몫 했다.
국가보다는 개인과 조직, 나아가서는 집단과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최악의 대통령을 뽑게 된다.
세계적 저금리를 타고 부동산 광풍이 휩쓸었다.
IT나 차세대 먹거리 대신 삽자루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사기꾼이 대통령이 된다.
환율 조작으로 대기업들을 키웠다.
낙수 효과를 주장했지만 배가 부른 대기업들은 국민의 돈으로 내수를 버리고 중국과 베트남 같은 타국에 투자를 한다.
파면당한 조근영 대통령까지 이제 대한민국은 10년 암흑의 시대에 들어간다.
보고 있는 게 즐겁지 않았다.
인간들의 욕심과 과거의 향수가 불러온 최악의 대통령들의 당선.
그러나 필요악이었다.
부패한 권력의 무서움을 깨닫기 위해서는 선택된 악은 선이었다.
타닥 타다다닥.
정치를 머리에서 지웠다.
한참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어설픈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강해지면 됐다.
오늘도 세계 경제 시장은 바쁘게 흘렀다.
수많은 그래프들 속에 세상의 흐름이 보였다.
모든 곳에서 요동을 쳤다.
본격적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이 거대한 금융의 댐에 구멍을 냈다.
임시방편으로 내가 사냥했던 곰을 파산시켜 버렸다.
세상은 아직 금융위기의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원유를 비롯해 각종 원자재가 쭉쭉 가격이 올라갔다.
2008년 8월에 시작되는 거대 거품의 파열.
그때까지 세상은 넘치는 돈의 축배를 즐겼다.
IMF가 터지기 전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랬듯 말이다.
하지만 어둠 속의 설계자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적은……, 바로 그들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무리 들어도 익숙하지 않은 저질 화음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주아야, 무슨 일 있어?”
여동생 주아였다.
“오빠~ 바빠?”
“아니, 왜?”
“우리 야식 좀 만들 건데 오빠도 올 거야?”
“야식?”
“만두 라볶이가 갑자기 막 먹고 싶잖아. 고등학교 올라왔더니 왜 이렇게 배가 고파? 오빠도 지금 막 배고프지? 그렇지?”
성격이 활달해진 주아가 수다를 떨었다.
바로 옆집이건만 내 집은 절대 출입금지다.
작가의 집필실은 언제나 고요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 이후로 어머니만 드나들었다.
그것도 내가 없을 때 가끔 거실 청소하러 오는 게 전부다.
뭔지 모르지만 내 변화를 어느 정도 눈치 채고 계신 유일한 분이다.
아버지는 더 묻지 않았다.
자신이 상상하는 한계 이상의 자금을 융통하는 나에게 할 말이 없으신 거다.
그저 가끔 나에게 미안한 눈빛만 보냈다.
여동생들은 그저 내가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고만 생각했다.
아직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몰랐다.
“집에 누가 왔어?”
“헤헤. 아인이하고 혜슬이~.”
여동생들은 옆집에서 학교에 통학했다.
저녁 시간에는 아버지가 바쁘지 않으면 두 분이 오셔서 같이 밥을 먹었다.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봄이 되자 농사일로 바빴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잠깐 돕거나 고택 작업실에서 그림이나 시를 창작했다.
집안 모두가 평안해졌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쌍둥이들도 학교생활에 원만하게 적응해갔다.
미술에 재능 있던 주아는 엄마에게 특별 과외를 받았다.
수의사가 꿈이던 주희는 목표가 한의사로 바뀌었다.
쌍둥이들의 운명이 과거와 달라졌다.
여동생들은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친구들이 오면 쌍둥이들은 나를 불렀다.
내가 녀석들의 인맥 형성에 지대한 공헌자가 됐다.
‘쌍둥이들 음식 솜씨는 형편없는데…….’
매콤한 만두 라볶이가 머리에 그려졌다.
나도 배가 고파지면서 침이 고였다.
하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아직 요리 비법을 전수 받지 못한 쌍둥이들이다.
내가 요리하기도 그랬다.
나도 라면이나 겨우 끓여 먹는 수준이다.
“오빠~ 올 거지?”
주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 녀석들은 여동생이 악마라 말했지만 나는 아니다.
과거와 달리 쌍둥이들은 나를 존중했다.
오빠가 집안 소년 가장이라는 걸 잘 안다.
“재료는 준비했어?”
“응. 오빠는 와서 먹기만 하셔. 요리사 여동생들이 다 알아서 할게~.”
“알았어. 갈게.”
“오빠, 고마워.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키키킥.”
주아는 만족한 듯 사랑을 남발하고 끊었다.
약속했지만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매콤함 대신 느끼한 맛이 가득할 게 뻔한 주아와 친구들의 만두 라볶이.
“누가 나 요리 과외 좀 해주면 안 되나?”
가끔 새벽에 일하다가 출출할 때 라면 말고 다른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조미료 범벅 편의점 음식은 사양하고 싶었다.
전생 서울 생활 때 질려버렸다.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살이 쪘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요리사가 생각났다.
시간 되면 요리학원이라도 다녀야 할 것 같았다.
파아아앗!
그때 갑자기 내 눈앞에 빛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두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했다.
“헛!”
갑자기 내 몸이 쑥하고 낯선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상한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는…… 어디?”
엄청나게 커다란 부엌이다.
호텔 주방 부럽지 않게 광택 빨 가득한 고급 스테인리스 프라이팬부터 시작해 뒤집개, 주걱 등등 각종 요리 기구들이 정갈하게 가득 들어차 있다.
딱 봐도 대단한 요리사의 공간이다.
그곳에 화려한 꽃무늬 에이프런을 곱게 두른 단아한 중년 여인이 나를 보고 웃는다.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처럼 낯이 익다.
“어서 오너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목소리에 반가움이 깃들었다.
“누구세요?”
“장금이다.”
“네? 자, 장금이요!!!”
# 50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