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04
504장. 신의 대리인 (2)
“나마스테.”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감사드린다는 뜻의 산스크리티어 인사가 건네졌다.
“나, 나마스테.”
유세라 팀장은 갑자기 방문한 인도 거물급 부자의 인사에 같이 합장을 했다.
콧수염이 눈에 띄게 멋있는 중년의 인도 아저씨.
깔끔한 슈트 차림에 입가에는 인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스맛 그룹의 회장이 무슨 일일까?’
유세라는 최근까지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입사 초기와 달리 세계 경제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그 분야에 대해 많이 배웠다.
명색이 투자 회사 총괄 팀장이었다.
모시고 있는 대표의 능력이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다는 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분에게 민폐가 되지 않도록 수준에 맞는 지식을 쌓아왔다.
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증권회사와 주거래 은행 등 거래처에서 고가의 선물들을 보내왔다.
회사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신분도 대단했다.
TS 그룹 회장을 비롯해 대형 로펌 이사도 장태산 대표의 말을 경청했다.
도도희를 필두로 사내 인수팀은 국내 대형 기업들 인수에 뛰어들었다.
최근 진행 중인 삼룡 자동차도 인수 기업 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 예고 없이 찾아온 아스맛 그룹의 회장.
이 인물 역시 거대한 인도 시장에서 상당한 수준의 부를 축적한 기업가였다.
“락슈미 여신이 허락한 불사의 축복을 받으셨군요.”
“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라훌 아스맛 회장의 말에 유세라는 어떤 답을 할 수 없었다.
“당신에게서 신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합장을 하며 한마디 더 붙이는 라훌 아스맛.
“…….”
어쩔 수 없이 유세라도 합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락슈미 여신이 당신에게 수많은 축제의 날들을 허락하셨습니다.”
합장 인사를 받은 라훌 아스맛은 여신이 그려진 황금 동전 한 개를 유세라에게 자연스럽게 건넸다.
“이런 선물은…….”
“당신의 신에 대한 선물입니다.”
‘이 인도 아저씨 뭐야?’
삼룡 자동차 인수에 참여했었다는 아스맛 그룹.
그 일이 장태산 대표로 인해 쫑났다는 걸 유세라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이렇게 찾아와 웃는 얼굴로 황금 동전까지 선사하는 라훌 아스맛 회장.
그와 동행했던 경호원을 비롯해 20여 명의 수행원들이 1층 로비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들을 다 물리고 홀로 사무실까지 올라와 초면에 이런 친절을 베풀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유세라가 물었다.
“감사합니다.”
거절하지 않는 라훌 아스맛.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유세라는 탕비실로 걸음을 옮겼다.
손에는 방금 인도 재벌이 건넨 황금 동전이 쥐어져 있었다.
신이 허락했다는 수많은 인생의 축제의 날 중에 오늘이 포함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신이 이곳에 계시다…….”
라훌은 사무실을 훑어보고 감탄했다.
서울은 중구난방 개발된 뭄바이와 비교 자체가 안 됐다.
갑작스런 산업화로 뭄바이의 공기질은 엉망이 됐다.
그에 반해 서울의 9월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공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도시의 풍경과 공간 활동 자체도 뭄바이와 달랐다.
게다가 이곳은 신성한 결계를 쳐 놓은 듯 신의 손길이 느껴졌다.
방금 커피를 준비하겠다고 저 문 안쪽으로 사라진 여직원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제사장 집안이었던 라훌은 신의 가피 정도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짧게 대화한 여직원에게서 신의 향기를 맡았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특별한 신의 은총을 받았음이 확실했다.
특히 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사무실.
라훌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이곳의 주인을 기다렸다.
삼룡 자동차 인수에 관련한 여러 정보를 수합하면서 알게 된 한국인 장태산.
나이가 이제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투자의 귀재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라훌은 확신했다.
장태산 그가 시바께서 오른팔로 안은 축복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을 때 공간이 분명 공명했다.
신의 응답이 확실했다.
스르르릇.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가벼운 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꽤나 외모가 뛰어난 미남이 등장했다.
“!!!”
라훌 아스맛은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가 등장한 순간 공간을 가득 채운 공기를 뒤흔드는 운명의 수용돌이.
‘카르마…… 의 화신이다!’
***
뭐지 저 인도 아재?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정말 리얼했다.
라훌 아스맛 회장은 인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사업가이자 부자였다.
중국에는 아직 밀리고 있지만 인도가 갖고 있는 잠재적 시장은 그 규모가 엄청났다.
삼룡 인수 건으로 나와의 관계가 편하지 않은 상황인데 직접 나를 찾아 이곳에 왔다.
그에게서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 기업가와는 달랐다.
나와 부딪쳤던 대부분 기업가들은 하나같이 권력이나 깡패를 동원해 나를 억압하려 들었다.
그러나 이 아재…….
“신의 대리인이 당신의 발아래 앉습니다.”
뭐, 뭐라고? 내 발아래?
초면에 이해하기 힘든 인사였다.
대신 영국식 영어 발음은 그의 음성과 만나 꽤 듣기 좋았다.
“당신의 이름이 빈디야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에 메아리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인도 공용어인 힌디어로 인사했다.
반스데일 형님이 좋아라 하는 언어 과목이 산스크리스트어에 근본한 힌디어였다.
“!!!”
눈에 띄게 놀라는 인도 그룹의 회장 아재.
가끔 본 인도 영화 주인공들처럼 콧수염에 꽤 공을 들인 중년 사내였다.
“놀랍군요. 힌디어를 이렇게 완벽하게 구사하는 한국인은 처음 봤습니다.”
언어가 주는 장점이 유감없이 오늘도 발휘됐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적이 아니라 손님이 확실했다.
오가는 대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사무실 공기를 데웠다.
“감사합니다.”
라훌 회장이 웃으며 따라왔다.
대표 사무실 문이 열리고 자리로 안내했다.
“앉으십시오.”
인도 부자들이 머무는 공간에 비해 소소하기만 한 나의 사무실이다.
하지만 라훌은 모를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컴퓨터에 2010년 인도 국민총소득에 버금가는 자금이 흘러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갑작스런 방문에 대해 양해 바랍니다.”
“멀리서 온 친구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나는 선의로 찾아온 자를 박대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힌디어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판자탄트라 같은 우화집이나 타고르의 기탄잘리 시집을 사랑합니다. 문학에 담겨 있는 신들의 언어는……. 그 자체가 우주입니다.”
“오!”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자 라훌 아스맛 회장이 기분 좋은 경탄을 터트렸다.
내가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반스데일이 헐값에 넘긴 지식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도 땡큐! 반스데일!
“대표님. 차 준비 됐습니다.”
유세라 팀장이 커피를 준비해 왔다.
인도도 요즘 서서히 커피로 차 문화가 바뀌고 있었다.
차가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유세라 팀장도 알고 있는 듯 따뜻한 커피로 내왔다.
“흐음……. 블루마운틴 특유의 강한 향미가 느껴지는군요.”
인도 아재 커피 맛을 좀 안다.
나도 아직 감을 잡지 못한 걸 단박에 알아챘다.
“대단한 커피 애호가세요~.”
유세라 팀장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캠브리지 유학 시절 커피 맛에 푹 빠졌습니다. 그룹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도 아재 영국 유학파였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인도는 영국 유학파가 많긴 했다.
“…….”
잠시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학교에서 마시는 커피와 역시 질적으로 달랐다.
조용한 침묵이 흐르는 시간.
“장태산 대표님은 특이한 분 같군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여는 라훌 회장.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신들이 장 대표님을 무척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곳 또한 신전처럼 특별한 신들의 결계가 느껴집니다.”
카르마의 원조 고장 인도 아재 아니랄까 봐 눈치가 빨랐다.
아니 그보다 라훌 회장 풍모 자체에서 신전의 사제 냄새가 맡아졌다.
그렇다면 신과 관련된 자일 것이다.
인도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신을 섬기는 국가였다.
아무려면 인사 자체가 ‘당신의 신께…….’ 라고 인사를 하겠는가.
“모든 사람이 신 자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역시…….”
고개를 과하게 끄덕이는 라훌 회장.
“스쳐 지나가는 보잘 것 없는 인연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수많은 카르마 속에서 이어지는 신들의 오묘한 법칙을 찬양할 뿐입니다.”
“나의 신께서 당신께 인도했습니다. 당신의 발아래 앉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말이었다.
인도 상류층은 극히 폐쇄적이었다.
카스트 제도에서 외국인은 존재하지 않는 불가촉천민과 다를 바 없이 여겨졌다.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절대 자신들과 동등한 신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짜고짜 찾아온 라훌 회장이 나의 발아래에 앉겠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카르마를 믿는 만큼 본인이 하는 말에 신중을 기하는 인도인들이었다.
신의가 없는 장사치인 짱개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그것도 인도에서 내로라하는 그룹의 회장이 하는 말.
“당신의 신께서 그렇게 하는 걸 허락하셨단 말입니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래도 라훌 회장이 말하고 있는 그 신은…….
– 시바 신이 당신과의 만남을 즐겁게 생각합니다.
맞다! 시바!
“기탄잘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선한 손님에게 나의 삶이 담긴 그릇을 내놓는다. 결코 그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리라.’”
인도인들의 문학적 수준은 그들의 사상을 깊숙 담고 있었다.
시바 신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라훌 회장.
그는 신의 대리인이 확실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신의 음성에 따라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신도 인간들의 선택에는 직접 관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인간도 신이다.
나는 특정 신에 구속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각자가 벌인 선악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우주적으로 차별받지 않는 한 자식일 뿐이다.
“인도에 자동차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라훌 회장이 먼저 제안을 건넸다.
“동업 회사 말입니까?”
“보기보다 인도 시장은 폐쇄적입니다. 총 발행 주식의 50%에 1주를 더 드리겠습니다.”
“???”
경영권을 인정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삼룡 자동차 인수를 포기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 절대 개입하지 않습니다.”
깔끔하게 삼룡 자동차 인수 건에서 빠지겠다고 말하는 라훌 회장.
“자동차 회사 부지부터 시작해 정부 인허가 및 인력, 영업망 등을 제공하겠습니다.”
조건은 미처 생각지 않았던 부분까지 파격적으로 제시됐다.
삼룡차 내에서 감당 할 수 없는 영역이고 규모였다.
인도에는 아직 주력으로 소비되는 소형차 모델이 없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이상의 호조건은 확실했다.
아스맛 그룹을 통한다면 어렵지 않게 인도 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야비하게 뒤에서 머리를 쓰는 중국과는 달랐다.
“삼룡은 볼부와 합작할 생각입니다.”
“오! 좋은 소식입니다!”
라훌 회장이 반색했다.
마치 계약이 체결된 것처럼 기뻐했다.
“투투자동차와도 기술 제휴 및 투자 형태로 묶으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겁니다.”
라훌 회장은 한 수 더 나갔다.
“경영권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신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그 분의 자식들입니다.”
라훌 회장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빙긋 웃었다.
그는 신을 내세우고 그 이름 아래 바짝 엎드렸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지 궁금하겠죠?”
한 기업의 수장인 라훌 회장이 손해만 보자고 찾아온 바보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렇습니다. 이런 조건은 아스맛 그룹에 이익이 되는 제안은 아닙니다.”
“……신께서 당신을 오른팔로 안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왜 저의 신이 당신을 오른팔로 안고 계시는지……. 그리고 당신에게서 맡아지는 이 낯설고 대범한 카르마의 향기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 말입니다.”
역시 평범하지 않은 라훌 회장, 그리고 그의 궁금증.
나에게 감춰져 있는 숨은 비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그의 앞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당당한 나의 모든 것이 꽤나 궁금한 듯했다.
그의 신도 나에 대해서는 깊이 얘기해 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파바밧.
라훌 회장의 눈빛이 연신 나를 향했다.
그리고 난…….
“죽음이 한 번 죽으면…… 더 이상 신에게 속한 죽음이란 없으리라.”
짤막한 시로 대답을 대신했다.
# 50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