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1
50장. 대장금
‘설마 그 대장금?’
다시 한 번 장금이라는 여인을 봤다.
요즘 세상과 어울리지 않게 머리에 곱게 쪽을 졌다.
에이프런 안에는 연푸른 한복을 입었다.
하지만 에이프런과 최신식 주방과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천상 선녀급 이상의 신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소환한 거야?’
갑작스러운 소환에 당황했다.
불법과외 전문가 천룡신군이나 동업자(?) 카사노바, 포인트 앵벌이 신 크리스 반스데일과는 다른 소환 방법이었다.
“나를 모르는 거 아니지?”
딱 그분을 닮았다.
많이 봤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장금 여주인공이었던 주영애 배우와 쌍둥이처럼 같았다.
누가 봐도 대장금이다.
“네……, 잘 압니다. 그런데 진짜 그분이세요?”
“인간들이 그렇게 나를 부른다. 그럼 그게 내 이름이다.”
뭐지? 요상한 의미가 내포된 말을 대장금 여사께서 흘렸다.
신의 세계에 대해 알려면 한참 더 공부가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저를 부르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말투가 다른 신과 달리 조심스러웠다.
대장금 신은 뭔가 달랐다.
“네가 원하지 않았더냐?”
“네? 제가요?”
“요리 과외를 받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하늘에 전하지 않았더냐?”
“아, 아니 그게 통해요? 제 뜻이 하늘로 막 통해요?”
헉! 하고 놀랄 일이다.
내가 요리 과외를 받고자 했지만 신급에 있는 분들은 아니다.
그저 라면보다 좀 더 나은 수준의 요리만 만들면 됐다.
난 오늘 밤 그저 매콤한 라볶이만 먹고 싶었을 뿐이다.
“하늘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내 피부 바깥은 모두 다 하늘이다. 그러니 내가 뜻하는 바와 말은 모두 듣게 된다. 특히 나처럼 포인트가 필요한 신들은 주시하고 있단다.”
“네? 포인트요?”
대장금 여사도 포인트 애호가셨다.
도대체 내 포인트가 뭐기에 이렇게 다들 탐을 내는지 모르겠다.
“네가 쌓은 카르마는 신들에게 좋은 거래 물품이다. 나 또한 신들에게 내 재주를 살려 요리로 포인트를 벌지만 인간들이 벌어들이는 카르마만큼 정순하고 강하지 않다. 고로 네 포인트는 모든 신들이 탐을 내는 이유다.”
내 속마음을 알았는지 친절하게도 대장금 여사님이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 난 카르마 포인트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 불가능했다.
“부족한 인간이 쌓은 카르마가 그렇게 훌륭한 거래 물품인지 몰랐습니다. 요즘 제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신이 이렇게 인간과 가까이 있다는 걸 지금껏 왜 몰랐을까요?”
“죽으면 다 안다.”
“네…….”
나도 죽어봤다.
하지만 이 낯설음은 계속 진행형이다.
“넌 신의 제자는 아니지만 하늘과 소통이 열려있다.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보통 신내림을 받는 만신 제자들 수준을 넘었다. 신들의 강신이 아닌 이상 이렇게 특별하게 능력을 배워나가는 것 자체가……, 특혜다.”
“특혜요?”
“흐음……, 아직까지 너에 대해 모르는 신들이 많다. 하지만 조심하거라. 신이라고 해서 모두 믿을 존재가 아니다. 아니, 신은 인간보다 더 계산이 정확하다. 조상들 말고는 모두 다 냉혹한 거래자다. 그런 점에서 넌 조상줄이 아주 탄탄하구나.”
대장금이 아니라 대장군 신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에 대해 조금씩 알려줬다.
“부족한 인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너에게 잘 부탁한다. 이렇게 직접 카르마 포인트를 거래하는 인간은 네가 처음이다.”
“제 포인트가 넉넉합니까? 포인트는 어떻게 쌓는 겁니까?”
말문이 터진 벙어리처럼 질문이 우수수 나왔다.
이런 기회가 쉽지 않았다.
살아생전 신들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카르마 포인트는 선과 악한 행위로 쌓을 수 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가 카르마다. 죽어 정산 받을 것들이기에 쉬이 쌓으면 안 된다. 선한 카르마는 선신들이 좋아할 것이며, 악의 카르마는 악신들이 탐을 낼 것이다. 상대가 진정 원하는 걸 들어줄 때 그때 카르마 포인트가 형성된다. 소원자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는 대신 너도 그가 전생부터 쌓았던 카르마를 얻는 것이다.”
“아…….”
느낌이 확실하게 왔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채워줄 때 카르마 포인트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카사노바 형님이 왜 올림피아 쟁탈배 차차석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사랑을 원했던 여인들의 한을 풀어 준 대가다.
“이 세계는 보이지 않는 그물들이 서로 얽히고 얽혀 있다. 부디 선한 카르마 포인트를 쌓기를 바라노라.”
날 부드럽게 바라보며 대장금 여사님이 축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악당이 되어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다.
“조언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래, 그건 됐고 이제 거래를 하자꾸나.”
“네.”
“네가 쌓은 포인트가 생각보다 적구나. 다른 신과 맹약한 흔적도 보이고…….”
카사노바 형님과 맺은 1프로 계약을 말하는 것 같다.
신 아니랄까 봐 귀신 같이 알았다.
대장금 여사님 신 레벨이 높은 것 같다.
구중궁궐에서 성공할 정도라면 그 인내심과 능력이 탁월할 것이다.
“찾아오는 신들이 다들 가난하더라고요. 기부 좀 했습니다.”
“잘했다. 하지만 포인트를 남발하지는 말거라. 내가 당장 죽는다면 카르마 포인트가 없어 육도 윤회하는 개나 돼지가 되어 처절하게 포인트를 모아야 할 것이다.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어 사랑을 얻거나 돼지가 되어 육신을 보시하여 얻는 포인트는 생각보다 적다.”
“네…….”
이거 경고가 매우 무서웠다.
머리로 막 상상이 됐다.
하지만 내 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 개량할 수 없어 난처했다.
“지금 소유한 포인트로는 하급 요리사 수준의 능력을 받을 수 있겠구나? 거래를 하겠느냐?”
“그 정도 실력이면 어느 정도 입니까?”
“인간들 기준으로 따지면 살고 있는 지역 명물 맛집 정도는 될 것 같구나.”
“네? 그 정도면 엄청난 거 아닙니까?”
“중급 요리사가 되면 왕의 초청을 받는 궁궐 숙수가 될 수 있다.”
어, 엄청 높은 수준이다.
지역 맛집만 돼도 음식으로 떼돈을 벌 수 있다.
중급 요리사가 된다면 미슐랭 가이드 쓰리스타는 충분히 딸 실력이다.
생각해 보니 노바 형이나 크리스 반스데일 아저씨의 능력도 평범하지 않았다.
인간과 신들의 기준은 확실히 달랐다.
“상급 요리사가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처럼 신들을 상대로 음식 장사를 할 수 있단다.”
“아! 신들요…….”
이건 뭐 넘사벽이었다.
내 포인트가 적은 게 아니라 대장금 여사님 수준이 높은 거다.
그리고 여기저기 포인트 남발로 인해 얼마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선방이다.
“거래하겠느냐?”
“네! 거래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그리고 명심하거라. 요리란 단지 맛있는 걸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육신과 마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명약의 효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녀석……, 지리산 산왕모 후손 아니랄까 봐 씩씩도 하구나.”
“지리산 산왕모가 누구십니까?”
“아직은 알 것 없다.”
빙그레 웃기만 하는 대장금 여사님이다.
나도 모르는 내 조상인 것 같다.
신들의 세계는 복잡하기만 했다.
“자~ 그럼 계약을 이행하자꾸나. 부디 영혼이 치유되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 거라. 감동을 주는 만큼 너도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와의 거래로 넌 새로운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오! 요리로 포인트를 딸 수 있단 말이야? 그런데 새로운 건 뭐야?’
대장금 여사님 스킬이 비싼 이유를 이제 알았다.
다른 신들의 능력과 달리 포인트를 벌 수 있다.
마지막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신들은 비밀을 좋아했다.
“대장금 여신님과 계약을 맺겠습니다. 제 포인트와 요리 하급 능력을 교환하겠습니다.”
“고맙다……, 시간이 나면 불러다오.”
“넵! 가끔 찾아뵙고 문안 인사드리겠습니다!”
파아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보이는 건 내 방이다.
시간의 변화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죽여주는 라볶이 한 번 만들어볼까~.”
속성 요리사 과외를 받고 난 걸음도 당당하게 동생들이 있는 옆집으로 향했다.
나도 궁금한 요리 실력.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
따다다다다다 따다다다다닥.
치이이이이익! 칙!
“주아야……, 너희 오빠 요리사야?”
“아, 아니……, 라면만 겨우 끓여먹는 수준인데…….”
“그럼 저 포스는 뭐야? 냉장고를 털어라에 출현하시는 특급 쉐프님들 같아!”
“……, 태산 오빠 칼질에 내 가슴이 난도질당했어. 나…… 사랑에 빠진 것 같아.”
“미친! 태산 오빠는 내가 찜했거든!”
“흥! 누구 맘대로!”
거실에 앉은 네 명의 소녀들은 각기 다른 착각에 빠졌다.
‘우리 오빠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우리 오빠가 설마……, 외계인?’
쌍둥이 큰 동생 주아는 오빠의 활약을 멍하니 바라봤다.
평소에 라면도 대충 끓여먹던 오빠가 아니다.
친구들의 부탁이 아니라면 오빠를 초대하지 않았을 거다.
집에 한 번 왔던 친구가 태산 오빠를 보고 그대로 반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반에 돌렸고 그때부터 난리가 났다.
친구들 오빠들 중에 장주 고등학교 재학생도 많았다.
태산 오빠에 대한 정보가 쫙 풀렸다.
학교 폭력 서클 애들을 한 방에 정리한 전설적 주먹에다가 이사장님과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라 알려졌다.
집도 시내에서 가장 비싼 곳에 두 채나 소유한 부자였다.
거기에 공부까지 전교 1등이었고, 얼굴과 몸매 또한 슈퍼 아이돌 급이다.
주아와 주희는 오빠 덕분에 학교 인기짱이 됐다.
쌍둥이 집에 초대 받으려면 제비뽑기를 할 정도다.
주아와 주희도 오빠의 인기를 즐겼다.
누가 봐도 멋진 오빠였다.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싶었다.
그런 오빠가……, 요리까지 끝내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는 부엌에 들어가 오늘 라볶이를 대접한다고 큰 소리를 쳤다.
오빠의 호기에 네 소녀들은 거실로 물러났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엄마의 에이프런을 쉐프들처럼 허리에 감더니 엄청난 속도로 재료를 손질했다.
라볶이가 쉬운 것 같아도 요리 순서가 복잡했다.
떡볶이 국물이 쫄지 않는 상태에서 라면을 적당하게 익혀내는 게 핵심이다.
오빠는 인덕션 삼구를 모두 이용했다.
빼놓을 수 없는 달걀을 삶았다.
어느새 멸치 육수를 내 떡볶이 베이스로 사용했다.
어머니표 찹쌀고추장과 케첩을 투하했다.
기본 국물이 끓는 사이 양파와 파, 마늘을 다졌다.
번개 같은 칼질은 티비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넋을 잃는 사이 달걀을 식혔고, 따뜻한 정수기 물을 받아 만두와 라면을 끓였다.
한 편의 쇼를 보는 사이 달콤하고 매콤한 풍미가 집안에 퍼졌다.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당장 달려가 요리를 입에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당사자인 오빠는 요리에 푹 빠졌다.
단순한 만두 라볶이인데 대단한 요리를 창조하는 대가의 모습이다.
감히 말도 걸지 못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주아야~ 태산 오빠 원래 저랬어?”
“어? 그게…….”
주아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오빠가 변했다.
지난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오빠는 쌍둥이들이 상상한 이상으로 변신했다.
마른 몸에 언제나 기가 죽어 자신감을 상실했던 오빠.
방학이 끝날 때쯤에는 어깨가 벌어진 남자가 돼 있었다.
책을 집필해 엄청난 대박을 쳤다.
아버지 빚도 갚았고, 집도 사고 차도 샀다.
겨울 방학 때는 서울에 홀로 올라가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다.
순정만화 소설 속 외계 주인공 같았다.
“우리 오빠가 원래 좀 잘났지~ 흐흐.”
막내 주희는 오빠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왈가닥 기질이 넘치던 주희는 오빠에게는 꼼짝 못했다.
“배고픈 아가씨들, 준비가 다 됐습니다~.”
어느새 요리를 끝낸 오빠가 그녀들을 불렀다.
주방 옆 6인용 식탁 위에 세팅된 만두 라볶이.
“와아…….”
“이게……, 라볶이야?”
커다란 홈이 파인 하얀 접시 위에 놓여 있는 만두 라볶이.
식욕을 자극하는 윤기 자르르 빨간 국물로 코팅된 라면과 떡볶이, 대파와 양파, 당근, 달걀, 만두가 조화롭게 자리를 잡았다.
떡은 쫀득쫀득, 라면 면발은 탱탱, 야채는 고유의 색감이 살아 있다.
특히 적당히 쪄낸 만두와 달걀이 라볶이를 장식했다.
매콤하고 달콤한 향이 이중적으로 뇌를 자극했다.
화룡점정으로 깨까지 완벽하게 뿌려졌다.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자, 먹어봐. 오늘 처음 만들어 본 라볶이인데 맛은 어떨지 모르겠네~.”
자상한 오빠가 어느새 준비한 젓가락과 앞 접시를 내밀었다.
“자, 잘 먹겠습니다.”
냄새에 홀린 소녀들이 재빨리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경쟁이 치열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각자 입에 빠르게 넣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아!”
“하아아아아…….”
동시에 터져 나오는 네 개의 신음.
“어때, 맛 괜찮아?”
# 51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