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13
513장. 투사 요한처럼
“주군!!!”
“하하하. 어서 오게, 카를 경!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주군의 명을 받잡게 되어 영광입니다!”
단단한 체격의 카를 백작이 고개를 짧게 숙였다.
카를 드 바스몬 백작.
올해 나이 40대 중반의 귀족이었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마력 호흡법과 검술이 뛰어났다.
정치적 수완은 다소 뒤떨어졌지만 갖춘 무력만큼은 최고였다.
카를 백작은 아라돈 후작의 든든한 오른팔이었다.
쥬넨 가문이 왕국으로 선포되는 순간 가문의 오랜 숙원이었던 후작 가문을 하사받기로 약조가 됐다.
“더 강건해진 것 같군.”
“최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오! 정말인가!”
아라돈 후작은 반색했다.
후작가의 가신 중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카를 백작이 깨달음까지 얻었다면 그건 좋은 징조였다.
아라돈 후작의 여동생이 카를 백작의 아내였다.
혈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는 다른 귀족들과 차원이 달랐다.
후작 뒤로 인사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십여 명의 귀족들.
그리고 수백여 명에 달하는 마력 갑옷을 착용한 정예 기사들이 아라돈 후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2천여 명의 기마병들과 10만 명의 일반 병사들이 아라돈 후작과 함께 전쟁에 나가기 위해 줄을 이었다.
일개 영지를 공격하러 가는 병력이라고 보기에는 과했다.
물론 아라돈 후작이 동원할 수 있는 전 병력을 모은 것도 아니었다.
그가 제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수십만 병사들을 더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병력 규모가 이번 출정에 필요했고 그만큼 공을 들였다.
영주들의 충성심을 시험함과 동시에 주변 영지들에 세력을 과시하고 싶었다.
베르샤 백작성 공격은 아라돈 후작의 큰 그림을 위한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 전쟁에 합류하기를 거절한 귀족들에게 따로 협박을 날릴 것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본보기가 필요했다.
아라돈 후작은 쥬넨 가문에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번에 똑똑히 보여줄 참이었다.
“선봉에 세워주십시오!”
“자신감이 보기 좋군.”
“주군께 승리의 기쁨을 제일 먼저 선물하고 싶습니다.”
“고맙다. 카를 경은 역시 나의 충실한 오른팔이다.”
카를 백작이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어서 아라돈 후작이 힘을 받았다.
따르는 귀족들 누구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아라돈 후작과 카를 백작이 힘을 합치면 다른 귀족가문의 전력보다 월등히 강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을 할 것이다. 준비하라.”
기분이 좋아진 아라돈 후작이 야영 장소를 정하며 명했다.
카를 백작이 끌고 온 병력 중 정예 기사들만도 수십 명이 넘었다.
독립된 정치 체계를 보장받는 백작급 귀족만 셋.
그들 무리가 넓은 평원 위에서 야영을 시작했다.
상단도 뒤따랐다.
노예 상인들과 드워프 물건이 영주 성에 가득하다는 정보를 받고 따라나선 일반 상인들도 수백 명.
곳곳에서 모닥불이 피워졌다.
곧 하늘에는 달과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전쟁터가 아닌 소풍을 나온 듯한 평온함마저 감도는 야영장.
누구도 베르샤 백작성 공격이 실패할 거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하하하하…….”
“주군 그래서 말입니다…….”
귀족들 막사에서도 술잔이 돌고 웃음꽃이 피었다.
오랜만에 만난 귀족들은 그간의 소식 이야기로 회포를 풀며 긴장을 해소했다.
자신들의 목을 노리고 있는 누군가는 이 밤 한참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다.
***
– 레벨업 하셨습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연달아 들려오는 레벨업 소식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폭렙이었다.
회귀했다고 인생이 한순간 게임처럼 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말이 됐다.
지구에서보다 이곳 이계에서의 레벨업이 월등했다.
단숨에 50레벨이 넘었다.
곳곳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
7서클 마법사에 올라섰을 때보다 더 심하게 움직였다.
레벨업의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무엇을 위해 나를 이런 시스템 한가운데로 인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 고룡 하르케우스가 당신을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하르케우스……. 저 드래곤도 문제다.
처음에는 정체를 몰랐던 존재였지만 아린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됐다.
하르케우스는 크로얀 제국의 수호룡이었다.
지금은 죽어서 현실 세계에서 사라졌지만 신이 되어 나를 축복했다.
고룡으로 인해 얻은 마법의 기초인 마나 감응력이 엄청났다.
물론 공짜가 아니었다.
죽어서도 크로얀 제국을 위해 하르케우스는 노력했다.
그래서 제국의 황녀인 아린과 내가 엮인 건지도 몰랐다.
그것 말고도 뭔가 또 다른 비밀도 있었다.
알파닥! 내 짐작이 맞지?
– …….
알파닥은 요즘 들어 조용했다.
최근에 벌어진 모든 사건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촉이 왔다.
하지만 정보가 부족했다.
때가 되면 언젠가 다 알게 되겠지만 찝찝한 현재의 이 순간.
“방금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아라돈 후작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속 기사단뿐만 아니라 휘하 귀족들의 기사들 상당수, 마법사와 정령사, 1000 단위가 훌쩍 넘는 기마병에, 10만 명의 일반 병사들까지 합류했다고 합니다.”
후작성에 마련된 회의실에는 원탁이 있었다.
과거 왕국으로 명성을 떨쳤던 성답게 고풍스런 맛이 여전히 흘러 넘쳤다.
내가 살고 있는 백작성과는 럭셔리함 자체가 달랐다.
한눈에 봐도 대단한 화가가 그렸을 명화 장식부터 시작해 곳곳에 비싼 마법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유백색 원탁의 돌도 마법처리를 해 매끈했다.
벽에 걸려 있는 품위용 갑옷과 검, 도끼, 활 따위도 번쩍번쩍한 게 비싸보였다.
그 회의장 중앙에 아린이 앉았다.
후작이 앉던 권좌를 차지한 아린 옆에는 물론 내가 자리했다.
카이루 후작과 나와 겨뤘던 다벨 자작이 전면 쪽에 자리했다.
다벨 자작이 수집한 정보를 알려왔다.
10만 단위 병력이라는 말은 감이 안 잡혔다.
군대 시절 함께 뛰었던 훈련병들도 저 정도 숫자는 아니었다.
사단급 숫자만 해도 대단했었다.
그런데 10만 병력이 코딱지만 한 영지 하나를 노리고 일어섰다.
아라돈 후작……. X새끼!
“카이루 후작 가문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얼마나 되나요?”
아린이 차분하게 물었다.
“……황실이 무너진 후 많은 귀족들이 독립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자작 가문이 넷, 남작 가문 일곱이 남았습니다.”
카이루 후작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적었다.
후계와 미래가 불안정한 카이루 후작을 등지고 벗어난 귀족이 많은 것 같았다.
“후작가의 기사단 소속 기사는 모두 1백여 명이며 다른 귀족 가문까지 합쳐도 마력 기사는 2백 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리고 6서클 마법사를 비롯해 정령사까지 합쳐 10여 명의 특수 능력자들이 후작가의 성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병사는 농민병을 제외하고 후작 가문의 병력이 2만, 휘하 귀족 가문의 병력이 3만입니다.”
병사도 확실히 적었다.
아린이 생각에 잠겼다.
내 영지 성에 있는 병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병력 수준이지만 아라돈 후작군에는 확실히 밀렸다.
“그럼 모든 병력들을 소집해 베커성 구원을 위해 신속히 파견…….”
“전 반대입니다.”
아린이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내가 나섰다.
“???”
세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누가 봐도 가장 반겨야 할 입장이 나였다.
그러나 난 확실히 반대를 표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영주성이 위태롭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카이루 후작이 물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어찌…….”
황실 수호 공작 신분이 되었기에 서로 존칭을 사용했다.
“다들 제가 어느 곳에서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곳 대륙 출신 기사는 아닙니다. 전……. 북쪽 대륙의 투사 가문 출신입니다.”
“역시!”
카이루 후작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했던 크로얀 제국 시절에도 감히 점령하지 못했던 미지의 북쪽 대륙.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많은 전사들이 사는지 아직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곳으로 위장전입했다.
신분 세탁으로 그곳만큼 안성맞춤인 곳이 없었다.
“엘프들의 여왕과 친분 있는 분이 제 스승님들 중 한 분이셨습니다.”
“오! 엘프들의 여왕!”
“아…….”
아린도 전혀 모르고 있는 나만의 스토리.
노바 형님을 스승으로 둔갑시켰다.
“드워프들의 신들께 축복도 받았습니다.”
질소 포장은 계속 됐다.
“잃어버린 북쪽 왕국의 왕께 마법도 배웠습니다.”
솔로몬 왕도 팔았다.
거짓은 진실과 함께 포장될 때 가장 맛깔 나는 법이다.
모두 다 나의 말을 순순히 믿었다.
“그 북쪽 대륙에 투란이라는 종족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창조된 투란 종족.
“투란에는 아주 용맹한 투사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요한. 몸은 갑옷을 입은 듯 튼튼했고, 그의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으며, 그를 따르는 투란의 용사들은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뜻을 이뤄냈습니다. 누구나 패배할 거라 의심하는 순간에도 요한과 용사들은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투란의 투사 요한을 소환했다.
대한민국을 떠나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위대한 ‘스타 파이터’ 게임의 승부꾼 이요한 플레이어.
그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 세 사람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투란족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종족은 조그족들입니다.”
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나도 깊이 빠져 들어갔다.
“그들은 마물의 축복을 받아 인간보다 적게 먹으면서도 많은 종족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를 전쟁에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영악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
아린이 동그란 눈을 한껏 치뜨고 날 봤다.
“그런 조그족들은 물량으로 수없이 주변 종족들을 공격했습니다. 신성한 종족인 프라투스도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투란족만은 달랐습니다.”
초기에 뽑혀 나오는 조그족 개 떼들은 모든 종족들에게 두려움이었다.
나도 종종 당했던 초반 러시 수법.
그때를 회상하며 감정을 한껏 담았다.
가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은 찰라였다.
“신이 투란족에게 투사 요한을 선물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요한 투사는 신기에 가까운 전략으로 조그족들을 몰아붙였습니다. 요한은 투란족 용사들과 단단한 요새에서 무식하게 달려드는 적을 향해 화살을 난사하고 마법을 퍼부었습니다. 투란족 성직자들의 축복을 받으면 용사들은 무적이 됐습니다. 적의 선봉이 끝나면 돌격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용감했습니다.”
메딕과 함께 돌격하는 투란족 병사들은 조그족에게는 저주였다.
연사되는 총알에 박살나는 조그족과 건물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좌중을 둘러봤다.
“오늘 전 그 요한이 사용했던 전술 한 가지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아니 반드시 실행하고자 합니다!”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요한을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뛰었다.
세월이 흘러 역사 속에 묻힌 영웅이 됐지만 아직도 나는 그를 기억했다.
과거 생 중 중고딩 시절 요한은 모두의 우상이었다.
요한이 발로 컨트롤해도 나 같은 유저들은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그를 이번 전쟁을 위해 소환했다.
“어떤 방법인가요?”
아린이 물어왔다.
눈치가 빨라 앞으로 내조는 걱정 없을 것 같다.
손발이 맞아야 사기도 치는 법이다.
“투사 요한은 말했습니다. 적이 내 심장을 노리는 그때…….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한 반격의 시기라고 말입니다.”
아직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
“영지 방어를 위해서는 나의 말을 목숨처럼 따를 마력 기사 50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으로…….”
“…….”
회의장은 나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깊은 침묵에 빠졌다.
“쥬넨 후작 본성을 공격하십시오!”
“허억!”
“후, 후작성을 말입니까?”
“아!”
세 사람의 입에서 일순간 놀람의 탄성이 터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적이 공격할 때 방어가 아닌 공격을 퍼붓는 전술.
나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 중 하나가 바로 절묘한 컨트롤을 바탕으로 한 적의 본진 털이.
그 한 방이면 됐다.
투사 이요한처럼 내 땅을 노리는 아라돈 후작에게 지옥의 똥침을 화끈하게 한 방 선물로 남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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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