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24
524장. 새로운 시작
“대법관님,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서초동 대법원 대법관실.
오승택 대법관이 대법원 재판연구관이자 자신의 라인인 판사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았다.
동그란 인상에 두툼한 안경을 쓴 오승택 대법관은 알아주는 야심가였다.
얼마 남지 않은 대법관으로 공적 경력을 마무리 하고 싶지 않았다.
운 좋게 과거부터 줄을 잘 잡았다.
법원 엘리트 코스도 착실하게 밟아 왔다.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법원행정처를 비롯해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나 검찰청 파견 코스를 차례차례 잘 마쳤다.
수도권 내에서만 자리를 옮겨왔지 지방으로 파견돼 근무한 이력이 없었다.
한국대 법대 졸업에 이번 정권 핵심 출신 지역으로 성분도 좋았다.
청와대 VIP 쪽 라인과 폭넓은 교류와 교감도 형성했다.
차기 대법원장으로 낙점됐다는 소문이 서서히 돌았다.
후배 법관들이 그런 오승택 대법관 밑으로 알아서 줄을 섰다.
그러나 오승택 대법관은 철저하게 사람을 가려 받았다.
자기 라인 관리가 그 누구보다 철저했다.
한국대 출신이 아니거나 특정 출신으로 지역 색이 짙거나 하면 배제했다.
민사소송연구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판사들을 연수원 입학 때부터 선별해 관리할 정도였다.
“흐음……. 올해 쓸 만한 애들이 제법 있네.”
오승택은 자기 취향에 맞는 합격자들의 서류를 천천히 살폈다.
내부에서 비밀리에 작성한 자료들이었다.
출신 지역부터 초중고, 대학교 성적표는 물론 정치 성향까지 자세하게 파악되어 있었다.
“상위권 합격자들 중에 후배들이 많습니다.”
공손한 자세로 먼저 살펴본 정보들에 대해 언급하는 재판연구관.
오승택 라인들 중에서도 핵심 멤버인 인물이었다.
내년에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부장판사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법원 권력의 핵심이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다루는 정치인들이나 그룹 사건에 대한 처리를 손에 쥐는 자리였다.
검찰이 철저하게 준비한 대단한 사건이라도 영장담당 판사 결정에 의해 사건 규모가 축소되거나 확대될 수 있었다.
영장이 기각된 불구속 수사 사건은 증거인멸이나 방어에 엄청 유리했다.
검찰도 영장이 기각되면 김이 빠져 더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징역 10년짜리 사건도 집행유예로 만들 수 있는 첫 번째 고리가 영장담당 판사의 영역이었다.
스윽 스윽.
오승택은 다른 때보다 더 집중해 서류를 살펴보며 평가를 내렸다.
관상도 어느 정도 볼 줄 알아 인상 좋은 합격자들을 착착 선별해 냈다.
“이 녀석들로 하지.”
오승택이 몇 장의 서류를 추려내 던졌다.
선별된 약 20여 명의 최종 합격자 명단 중에서 다섯 명만이 낙점을 받았다.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재판연구관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아부성 짙은 멘트를 자연스럽게 했다.
“강석이 딸이 제법이야. 나이도 어린데 동차 합격이라니.”
오승택은 몇 년 전 자신에게 합류한 후배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딸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대 출신에 성적도 좋고 재판 판결문 하나도 흠잡을 데 없게 작성해 내는 이강석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 내에서 청렴의 상징이자 명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평판이 좋아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그 덕분에 오승택이 특이 케이스로 간택했었다.
처음 몇 년은 이강석이 오승택 라인으로의 합류를 거절했다.
맛을 보여주기 위해 오승택이 힘을 써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을 거쳐 대권을 잡는 것을 마지막 꿈으로 남기는 것처럼 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법관에 이어 삼권분립의 한축인 대법원장이 되는 게 정치인의 꿈 버금가는 판사들의 소원이었다.
결국 좌천되고 난 후 물욕 없던 이강석도 꿈을 위해 굴복했다.
오승택이 내려준 지시를 처리하고 완벽하게 그의 라인에 합류했다.
그리고 이강석의 딸도 착실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성적도 우수합니다.”
“그래야지. 미래의 대한민국 법원을 이끌어갈 동량인데…….”
그 어느 때보다 흐뭇하게 웃는 오승택.
두꺼비 상을 한 그의 눈동자에는 오만한 욕망이 가득 담겼다.
오승택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핵심 축을 대법원이라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국회에서 득실거리는 타락한 정치인들의 목줄은 결국 판사들에 의해 좌우됐다.
그런 권력에 흠뻑 취해 살아온 오승택.
앞으로도 그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장태산이라고, 이 녀석 잘 챙겨. 학교에 남아 있는 선후배들이 적극 추천했다.”
“저도 소문은 들었습니다. 아주 대단한 녀석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국민이 아닌 엘리트 출신 법관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오승택이었다.
“물건이야, 물건…….”
오승택은 따로 빼놓은 한 장의 서류를 다시 한 번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먹잇감을 노리는 날카로운 시선이 그의 눈빛에서 보였다.
회에서도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오승택이 가장 튼튼하게 잡고 있는 연줄인 일송회.
그는 대법관으로 오르는 동안 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일송회에서는 무조건 오승택을 밀 수 밖에 없었다.
내년에 대법원장에 선출되면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사건에 오승택 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이 녀석을 제일 먼저 만나봐.”
“확실하게 포섭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답하는 재판연구관.
“곧 좋은 날이 올 게야. 그 날을 위해……. 우리들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썩어 빠진 대한민국은 우리 없으면 안 돼.”
오만하다 못해 광오하게 말을 뱉는 오승택.
눈동자에서 꺼지지 않는 욕망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
“동네 경사라니까~ 장 회장, 축하해~. 우리 동네를 빛낸 위대한 집안이야. 아버지는 고영대 출신이고, 아들은 한국대 법대에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사시를 다 패스하다니…….”
“장 회장 술 한 잔 받아~”
“장 회장! 우리 막내딸 봤지? 얼굴이 날 닮아서 아주 미인이야~.”
“뭔 소리야! 우리 조카딸 주기로 진작 약조가 돼 있어!”
“이 사람들아~ 김칫국 그만 마셔. 장 회장 아들은 우리 큰손녀 사윗감이야~.”
“뭐라고? 이제 유치원 다니는 자네 큰손녀 사위라고?”
“세월 금방 가~. 우리 큰손녀 크는 걸로 보아 중학교만 졸업하면 시집 갈 수 있어~.”
“허허. 이 노친네 노망이 났나. 예끼!”
“하하하하. 그만들 하십시오. 제가 술 한 잔씩 올리겠습니다.”
이미 거나하게 술을 드신 아버지가 불콰하게 달아오른 안색으로 술병을 잡았다.
아버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사법시험 합격이 집안의 최고 경사였다.
2010년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뜨거웠던 여름휴가의 추억도 빛바랜 사진처럼 벌써 변했다.
로리아나를 비롯해 사라와 비비안까지 한자리에서 만났던 지난 여름 휴가.
세이셀에서 4박 5일 동안 세상 근심 모두 잊고 완벽할 정도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요트를 타고 스노쿨링을 비롯해 각종 해양 스포츠를 다 즐겼다.
식사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술도 빠지지 않았다.
태어나 가장 많은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감미로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연주도 몇 곡 이벤트로 연주해 줬다.
마지막 날 밤에는 직접 요리를 해 함께한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다.
헤어질 때 눈물을 보이던 사라와 비비안.
그와 달리 야훼의 고급 상품이었던 로리아나는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신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그녀는 내적 갈등에 빠진 듯했다.
야훼의 2차 공격은 없었다.
야훼는 공격과 수비의 묘미를 잘 아는 전술가였다.
그렇게 화려했던 휴가는 막을 내렸다.
2학기 학교생활은 평탄하게 흘러갔다.
사법시험 2차도 합격했고 교수들과의 협약도 잘 지켜져 강의 출석 제한은 없었다.
가을도 금세 깊어갔다.
남쪽까지 내려갔던 단풍 소식이 끝날 무렵 사법시험 최종 명단이 나왔다.
당연히 합격.
시골집에서 잔치가 열렸다.
나에게는 별 대수로운 사건이 아니었건만 부모님 입장은 달랐다.
동네방네 소문이 크게 났다.
말릴 겨를도 없이 잔치가 벌어졌다.
다행히 부모님이 제일 좋아하셨다.
“아이고~ 우리 영감님 잘 생겼네~.”
“동서. 요즘 세상에 누가 영감님이라고 불러.”
“형님~ 그런 말씀 마세요. 한국대 출신에 성적도 우수한 채로 합격하면 바로 판검사 되잖아요. 그러면 영감님이죠.”
“둘째 형님 말이 맞아요. 우리 조카님 이제 영감님이죠. 호호호~.”
주말에 벌어진 합격 축하 잔치에 멀리 지내던 친척들까지 모두 출동했다.
평소에 일면식도 없던 5촌에 6촌까지 찾아왔을 정도다.
11월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날도 추운데, 굳이 마당에서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
조상님들께 고하고 인사를 드려야 한다며 꼭 집을 고수했다.
대문 앞에는 ‘축! 사법시험 합격! 장태산!’이라는 대형 현수막까지 걸렸다.
쪽팔림은 잠시였다.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에 모든 걸 감내했다.
그런데…….
“화환 배달 왔습니다.”
“이번에는 어디야?”
“TS 그룹 회장!”
“어머……. 세상에 청와대뿐만 아니라 군대, 로펌, 국회의원, 시장님에 이어 그룹 회장이야?”
“장씨 집안 인물 났네~.”
“내 살다 살다 사법시험 합격 잔치에 저렇게 많은 화환이 오는 거 처음 봤어.”
“이 집 아들이 워낙 잘났잖아.”
옆 동네에서 온 아주머니들이 나를 한 번 더 훑어보며 숙덕거렸다.조용히 잔치가 끝나기를 바랐지만 어떻게 알고들 화환까지 배달돼 왔다.
대충 세어 봐도 수십 개가 넘었다.
거래하던 은행부터 시작해 증권사까지 합류한데다 약속이나 한 듯 나와 연관 있는 곳들 대부분 축하 화환을 보냈다.
썩소를 지으며 표정을 관리 했다.
오늘은 온전히 부모님을 위한 자리였다.
평소 술을 즐겨 마시지 않던 엄마도 볼이 발그레 해졌을 정도로 술을 드셨다.
“오빠. 완전 대박!”
“우리 오빠…… 진짜 멋있다~.”
쌍둥이들도 내려와 축하해줬다.
팰튼 호텔 연회팀이 음식을 비롯해 모든 부수적인 것들을 준비하고 세팅했다.
대형 노래방 기기 풀 세트도 전형적인 시골 행사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의 수준이었다.
대충 훑어봐도 모인 인원만도 수백 명.
“저분 시장님 아니셔?”
“양 의원도 같이 왔어.”
그 사이 얼굴이 익은 몇몇의 인사들이 다가왔다.
“감축 드립니다. 장 회장님.”
“아니 시장님이 이런 곳까지…….”
낙점 받아 다시 당선된 안효근 시장이 아버지께 먼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동네 영농회장이 시장보다 끗발이 쌨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유력 인사들의 축하에 기쁨을 감추지 않는 아버지.
효도하는 게 어렵고도 쉬웠다.
“장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안효근 시장이 동네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이 양반 넉살이 아주 좋아졌다.
요즘은 뇌물을 멀리하고 시정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관상이 바뀌었다.
3선까지 충분히 시장직을 역임해도 될 것 같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두 분 다 왜 그러십니까. 저 아직 학생입니다.”
합격생 1,000명이 넘어가는 사법시험 축하 잔치에 과한 방문이었다.
“저분들이 다 유권자 아닙니까. 눈도장 찍으려 겸사겸사 찾아왔습니다~.”
“흐흐. 맞습니다.”
양우석 시장 말에 안효근 시장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다 안다.
주민이 아니라 나와 눈도장 찍고자 찾아온 거다.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안 시장~ 이리와요. 술 한잔합시다.”
“유 의원도 이리 오쇼~.”
아버지와 같은 각 동네 영농회장과 이장님들이 시장과 국회의원을 불렀다.
아직도 시골 분위기가 남아 있는 장주시였다.
“네네!”
“하하. 제가 술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를 옮겼다.
그 틈에 밖으로 나왔다.
멍멍.
그때 나를 따라 나오며 짖는 개돌이.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 태어난 녀석이었다.
진돗개 잡종.
달랑 한 마리가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다.
녀석은 눈치도 빨랐고 하는 짓도 영리했다.
식구들 중에서도 나를 가장 따랐다.
전생에 나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산책 가자.”
멍멍멍.
목소리가 우렁찬 녀석이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따랐다.
개돌이와 함께 동네를 돌며 산책했다.
연구소 공사는 주말이라 멈췄다.
공사장도 철저하게 주 5일제를 준수했다.
공사 현장은 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기초 공사가 끝나고 하나둘씩 본격적으로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설계대로 다 완공되면 이곳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바꿀 혁명적 기술들이 탄생할 것이다.
사랑~♫ 그 무엇보다 소중한 ~♬.
그때 울리는 스마트폰 벨소리.
모르는 번호였다.
장난 전화는 아닌 것 같았다.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통화 버튼을 누르며 상대의 신원을 물었다.
– 장태산. 나 고인태 부장판사다.
# 525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