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28
528장. 연수원에 가다 (2)
“이대로 진행되면 불리합니다. 동지들 상당수가 자본가가 내민 당근 맛에 빠져버렸습니다!”
삼룡차 대한노총 평택 지부실.
삼룡차 노조 수석부위원장 정성동은 불안한 목소리를 냈다.
가득이나 정성동은 요즘 좌불안석이었다.
자본가를 향해 강경하게 투쟁하던 노조원들 상당수가 돌아섰다.
회사가 망해가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사태를 파악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월급이 줄어드는 현실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노조에 등을 돌린 동료들의 배신에 힘이 빠졌다.
모든 것이 그들의 자발적 의사가 아닌 자본가들의 농락으로 보였다.
유년 시절부터 유난히 세상에 불만이 많았던 정성동.
운 좋게 삼룡차에 들어와 인생의 꽃을 피웠다.
노조에 참여하면서 그제서야 인간 대우를 받았다.
아무 것도 없던 정성동은 완장을 차면서 세상 두려울 게 없었다.
내로라하는 잘난 대학 출신의 간부들도 우습게 보였다.
파업 한 번이면 생각지 못했던 각종 선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부터 자본가들은 두들기면 돈을 쏟아내는 물주로 보였다.
회사가 계속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도 정부를 믿었다.
특히 실업률 때문에 대규모 해고를 감행하지 못했다.
약점을 잡고 정부와 사업체를 상대로 파업을 이어가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그것도 적응할 수 없을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빨랐다.
거기에 더해 삼룡차를 인수한 해외 자본이 내민 당근은 엄청나게 구미가 당겼다.
누가 봐도 거절하는 쪽이 바보였다.
“……이게 바로 자본가들의 농락이야! 아파트 제공? 안주하다 보면 죽을 때까지 닭장 같은 아파트를 벗어날 수 없는 거야! 노동자들인 우리는 왜 아파트에만 살아야 해? 정당한 대가를 얻어 해외여행도 다니고 마당 딸린 자가 주택에서도 살 수 있어야 해! 정 부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가 개돼지야? 주는 밥만 먹게!”
대한노총 금속노조 삼룡차 지부장인 황호규가 열변을 토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인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 삼룡차가 제시하는 조건들은 모두 세상 어떤 곳에서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주인 마음대로 처분되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왜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담당하는 우리들보다 사무실에서 앉아서 한가롭게 일하는 놈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아야 합니까? 노동의 가치는 똑같아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노동 세상입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학교를 졸업해 세상에 나온 정성동은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 발상인지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까지 정말 팽팽 놀았다.
PC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청소년기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성인들처럼 담배 피며 당구도 즐겼다.
밤에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를 타고 시간을 때웠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다 살아지는 것 같았다.
어쩌다 맞닥뜨린 어른들도 눈이 마주치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눈에 띄지 않게 사고도 많이 쳤다.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며 겨우 공고 졸업장을 쥔 뒤 마주하게 된 세상이었다.
처음 부딪힌 사회의 냉엄함에 잔득 주눅이 들었던 정성동.
쓸 만한 곳에서는 아무도 자신을 불러주지 않았다.
졸업할 때 거저 주다시피 한 자격증 하나가 전부였다.
다른 동기들처럼 번듯한 곳에는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안일했던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기보다는 세상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며 살았다.
곧 영장이 나왔고 사회 부적응 자처럼 쫓기듯 군대에 입대했다.
그곳에서도 성격은 고치지 못했다.
내무반 생활에서는 특히 학벌 좋은 후임병들을 갈궜다.
제대를 며칠 앞두고 상사에게 부탁해 군생활도 행정반에서 마무리했다.
후임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피했다.
폭력과 협박으로 병장 시절 내내 왕으로 군림했던 정성동이었다.
정성동 군 시절만 해도 아직 군대 내 폭력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회로 돌아온 정성동.
삼룡 노조원이었던 이모부 연줄과 부모님이 마련해 준 현금 2천만 원으로 삼룡차 정직원이 됐다.
삼룡 그룹에서 자동차를 그룹 대표 회사로 키우기 위해 시세를 확장하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았다.
성격이 급하고 생각이 짧고 단순한 정성동을 대한노총에서 포섭했다.
머리는 아둔했지만 그걸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노조 일에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오늘에 이르게 된 정성동.
‘안 뺏겨! 난 자본가의 개가 아니야!’
자신의 성격이 삐뚤어진 것도 자본가들 탓이라 생각했다.
매일 노조원들과 정치판 얘기를 안주 삼아 술에 취한 채 세월을 보냈다.
어쩌다 집에 들어가면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해 폭군이 되어 가정 폭력을 행사했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선을 보고 결혼까지 했던 정성동의 아내는 그런 그를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아이를 데리고 이혼했다.
그러면서 정성동은 더 세상을 원망했다.
억울한 자산의 삶이 이렇게 안 풀리는 건 모두 자본가와 사회 탓이라 여겼다.
그런 정성동에게 있어 노조 활동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자 욕망의 분출구와 같았다.
“정 위원장. 동지들 모아봐. 이대로 끌려가면 안 돼.”
“그럼 어떻게…….”
“한바탕 뒤엎어야지! 어차피 자금이 투자돼서 발을 못 빼. 이럴 때 우리 권리를 쟁취해야만 해.”
“알겠습니다! 열정이 남아 있는 동지들이 많습니다!”
“그래. 우리 한 번 해보자고! 평택은 우리들의 피와 땀이 흐르는 삶의 터전이야! 반드시 사수해야 해! 반드시!”
정성동에게 말하면서 황호규도 스스로 의지를 굳히며 다짐했다.
금속노조 지부장인 황호규는 누구보다 절박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부장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특혜.
회사에서 받은 뒷돈과 주식으로 집안이 번듯하게 일어섰다.
젖과 꿀이 흐르는 지부장 자리를 빼앗기는 순간 다시 배고픈 시절로 돌아가야 했다.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데모와 회사를 상대로 삥 뜯는 재주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부장님만 믿겠습니다!”
“우리 끝까지 함께 가는 거야!”
이해타산이 맞은 두 사람이 뜨겁게 악수를 나눴다.
손을 잡고 각자의 욕망 계산기를 두들기며 이윤을 계산했다.
나중에 일이 마무리 되면 몇 배로 회사를 상대로 기필코 받아 내리라 마음먹었다.
한 번 맛봤던 양심을 팔아 획득한 타락한 뇌물의 맛.
죽어서도 끊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한 특급 아편 같은 것이었다.
***
“법무부는 부당한 검찰 인원 선발을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
강아린 선배로 인해 연수원 입소식은 빠르게 마무리됐다.
잔치에 흥이 식었다.
입소생과 학부모들이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입소생 수백 명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으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대강당에서 나온 내 주변 이들은 하나같이 놀란 눈빛을 보였다.
저렇게 상류층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연줄에 다들 목을 맸다.
검찰은 판사보다 퇴직 후 재사용하기 쉬운 명함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는 사회 문제 등에 깊은 고민도 안 해 봤을 이들이 전문 시위꾼처럼 행동했다.
안 가르쳐 줘도 자기 밥그릇 앞에서는 누구나 강성 노조가 됐다.
그들의 부모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들 딸 옆에 서서 묵묵히 동조 의사를 밝혔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이런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문제 대해서는 연수원장님을 비롯해 정부에서 따로 대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입소식을 원활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연수원에 근무하는 법원 직원이 난처한 듯 말렸다.
“철회하라! 철회하라!!!”
막무가내 시위 현장을 만들어 버린 사법연수원 42기 입소자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주먹을 움켜쥐고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집단이 되고, 집단은 반드시 이기주의로 흐른다는 어느 사회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내 시선은 냉정했다.
이미 윗선들의 합의가 끝난 상태다.
저런 시위로 해결될 단계는 지나 버렸다.
사회 기득권층의 딜과 합의는 완성단계에 가 있었다.
분명 경력직 판사 임용은 문제가 될 게 확실했다.
현대판 음서제도의 부활.
시위하는 입소생들의 힘으로 흐름을 막기에는 기득권의 힘이 너무 막강했다.
조금 전 단상 위에 앉아 바라보던 고위직들의 시선은 이들을 가소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바로 각자가 가진 힘의 차이였다.
아무리 자본이 많아도 한 개인이나 힘없이 개인 집단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회 권력.
다시 한 번 여론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정치는 대중의 관심으로 먹고 사는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로스쿨생들도 먹고 살아야지. 애들이 양심이 없어. 쯧쯧.”
아린 선배가 혀를 찼다.
“선배는 검사 관심 없어요?”
“난 절대 검사 안 해. 거기 가면 나 같은 미모의 여검사는 표적이 돼. 윗선에 포진한 옛날 검사들 무식한 거 다들 모르지? 아는 여 검사 선배들 말 들어보니까……. 장난 아니야. 억지로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 먹여서……. 으으으 생각만 해도 토 나온다.”
농담이 아닌 듯 몸서리를 치는 강아린 선배.
미래에 가서 떠들썩하게 터지는 사건에 대해 선배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쉬쉬했지만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다들 파티 해야지?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고 선배들이 그러더라. 내일부터 2년 동안 입시 지옥이 펼쳐질 거래.”
예린 선배가 술잔 든 손목을 꺾는 액션을 취했다.
대학원보다 더 빡센 사법연수원.
연수를 마칠 때까지 2년 동안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판사나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적이 월등히 우수해야 했다.
도서관에서 처박혀 세상에 나오지 않는 이들이 다수라는 소문이 돌았다.
합격 성적이 상위권인 예린 선배도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길 건너편 웨스턴 돔에 괜찮은 술집 많다고 합니다~.”
강현수가 정보를 캐왔다.
“대낮부터?”
어이가 없어 물었다.
하긴 연수원 입소 첫날은 강의가 없었다.
강현수와 예린 선배는 기숙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술을 먹자고 제안해 왔다.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니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술은 낮술이 최고지! 우리 이제 다시 고삐리 시절로 돌아가야 하니……. 오늘 달리자! 아린 선배님도 좋죠?”
“흐흐. 나야 당연히 콜!”
아린 선배도 술자리 생각에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들만 모였다.
입소식에 찾아온다는 부모님을 겨우 말렸다.
쌍둥이들과 여직원들의 동행도 물론 거절했다.
떠들썩했던 동네잔치로 충분했다.
다른 연수원생들처럼 판사나 검사 임용에 목숨 걸 것도 아니었다.
동행한 연수원생 부모님들은 들뜬 얼굴로 사진을 찍으며 자신들의 아들딸들의 성공가도에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2년 뒤면 이곳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승자와 패자가 결정 된다.
대한민국에서 날고뛰는 수재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진검 승부를 펼칠 것이다.
그게 끝은 아니다.
이 안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해도 판사나 검사에 임용된 후 또 다른 난관이 기다렸다.
추려진 수재들 사이에서 계속 경쟁은 불붙을 것이고 그것으로 승진의 기회를 잡는다.
눈치 빠른 자들은 정치 판사나 검사가 되어 승승장구의 길을 걷게 된다.
그에 반해 원하는 것을 쟁취하지 못하는 순간 뒤로 밀려나며 참혹함을 맛본다.
욕망을 거두면 앉은 곳이 다 피안이라는 말을 대다수가 모를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경쟁하고 승리를 쟁취해 왔던 이들.
그들의 앞날에 조용히 건승을 빌어줬다.
“뭐야? 장태산. 너 우리 아빠 같은 눈으로 동기들을 본다. 제일 어린 주제에~.”
“강 선배님. 제가 태산이보다 몇 달 더 어립니다. 하하하.”
이번 기수 최연소 타이틀은 현수가 가져갔다.
신문에서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장주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자존심 강한 경상대에도 플랭카드가 걸릴 정도였다.
현수는 착하게(?) 생겼다.
얼굴 마담으로 그만이었다.
신앙인의 아들로서 그쪽 계열 인사들이 좋아할 만한 인재상이었다.
현수가 말했다.
오승택 대법관 쪽에서 접촉이 있었다고 말이다.
합류하라고 승낙했다.
키워준다는 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적의 심장부에 내 사람을 심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수도 인생을 나에게 걸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책임져 주기로 약속했다.
내 능력을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기에 현수는 주저하지 않고 나와 계약을 맺었다.
이번 사법시험 10위권 성적도 모두 내 덕분에 이룬 성과였다.
아린 선배와 예린 선배, 그리고 신림동 공부팀 모두 20위권 안쪽에 안착했다.
그 중에 예린 선배와 현수가 오승택 라인의 부름을 받았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곧 대법원장에 취임하는 오승택은 크게 몸집을 불릴 것이다.
인재가 필요한 그들에게 예린 선배와 현수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이제 남은 건 시간뿐이었다.
앞으로 흘러갈 2년.
그동안 이곳 사법연수원에서 조용히…….
“나도 그 자리에 합석하면 안 되나?”
갑자기 들려온 중년 남성의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감청색 슈트를 멋지게 빼입은 중년의 사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아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