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41
542장. 신벌(神罰)
2011년 3월 11일 14시 40분.
“료히케. 오늘 퇴근 후에 한잔 어때?”
“선배님. 오늘 어머니 기일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미안해. 다음에 한잔하자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일본 기상청 산하 지진산하국 지진화산감시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 료히케는 직장 선배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본 특유의 문화인 손타쿠(そんたく)를 이용했다.
어머니 기일이라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냥 집에 들어가 최근 발행된 만화책을 보며 쉬고 싶었다.
도쿄 대학 지질학과 박사 과정을 밟았을 만큼 수재인 료히케.
요즘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진계를 비롯해 여러 데이터들이 불길함을 안겨줬다.
과학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지진 예지가 정확하지 않았다.
지진 직전에나 분명한 예지가 가능했다.
‘불길해.’
료히케는 분석된 자료를 살폈다.
지도 교수와 취직하기 전까지 연구했던 도쿄 수직 직하 지진 연구에 사용됐던 이론들이 들어맞고 있었다.
미신 같지만 불길함의 징조인 지진운이 최근 들어 많이 관측되고 있다.
깊은 해저에 사는 심해 갈치도 출몰했다.
민감할 수 있지만 진도 1이상의 유감지진이 요즘 계속 감지됐다.
진도 4이상의 지진이 일 년에 수십 차례 발생하는 일본이지만 그 빈도가 잦았다.
지반이 뒤틀리고 있다는 전조증상.
‘위치는 아마도……. 동북지역 해저 같은데…….’
데이터를 통해 산출된 지진 예측 가능지역은 동일본에 위치한 동북지역 해저였다.
“이틀 전 지진이 전조일지 모른다.”
이틀 전인 3월 9일 오전 11시 45분에 산리쿠 해저에서 강도 7.3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해저이고 진앙지가 깊어 쓰나미나 내륙에 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기상청 감시과 직원들은 강진으로 판의 압력이 해소되었기에 당분간 지진이 없을 거라 예측했다.
그러나 료히케는 찝찝함을 떨치지 못했다.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약 이틀 전 지진이 지각판 변동의 일부라면…….”
타다닥.
지진 예측 컴퓨터에 지금껏 모아온 자료들을 수치화해 입력했다.
“헛!”
슈퍼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본 기상청.
산출된 결과에 료히케는 그만 신음을 터트렸다.
“매그니튜드…… 9라니!”
지진 강도의 거의 끝판왕이 터질 거라고 컴퓨터는 말하고 있다.
“하아.”
료히케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지진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일본에서 예측만으로 사람들을 대피시킬 수는 없었다.
진도 9 이상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진도가 1 상승할수록 지진 에너지는 32배씩 증가한다.
진도 6과 진도 9는 무려 32000배의 에너지 차이가 났다.
‘만약 진도 9의 지진이 발생하면…….’
부르르 몸을 떠는 료히케.
삐빅 삐비비빅!
그때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동쪽 해저 지진 감지계의 경고음.
“뭐, 뭐야!”
“갑자기 무슨!”
감시과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놀라 지진계가 표시된 대형 전광판을 바라봤다.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본격적으로 울리는 지진 감지계의 극한 소음.
“지, 지진입니다!!!”
“어디야!”
“진앙지 동북부 해저 10km!”
“규모는!”
“모멘트……. 으아! 9…… 3!”
“뭐라고 9.3이라고!”
지진 경고음과 함께 지진계의 수치를 살피던 감시과 직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며칠 전 7.3 지진과 규모가 달랐다.
“비상을 발령…….”
우르르르르르르르릉.
“으아아아아아아!”
“지진이다!!!”
감시과 상위 근무자가 비상을 발령하려는 순간 본격적으로 지진계에 기록되기 시작한 진앙지의 P, S, L R파!
와장차자자자자장.
와드드드드득.
천장이 사정없이 뒤틀리고 건물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상! 비상!!!”
“쓰나미! 쓰나미 경보 발령해!”
그 와중에 내려지는 명령.
그러나 누구 하나 제대로 지시에 따라 움직이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거대한 자연의 재앙.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은 그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
“오늘도……. 무난하군.”
일본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에 위치한 도큐 거래소.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이은 세계 3대 증권 거래소답게 활기가 넘쳐났다.
“유럽은 오늘도 엉망이군.”
증권 거래소 소속 전략기획부 리스크 관리팀 히로토 과장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엔케리라 불리는 일본 돈으로 흥청망청 돈맛에 빠졌던 유럽은 지금 엉망이었다.
일본이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뿌렸던 엔화 대출금이 세계 경제 둔화와 2008 금융 위기를 계기로 본격 회수됐다.
달러당 120엔까지 치솟았던 엔화가 90엔 대로 강세를 보였다.
그 때문에 돈을 펑펑 써대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칼이 돈을 빌리지 못해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싼 맛에 사용했던 일본 돈이 본격적인 대출 회수를 시작하면서 강세로 변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에도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등도 엔화를 빌려 원유와 금속 선물을 구입했다 마진콜을 당했다.
세계적 금융 위기 뒤에 일본의 치밀한 전략이 자리잡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일본의 금융대부의 손에 의한 농락.
그 조직에 속해 있던 히로토 과장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장기적 전략에 의해 환율이 조작됐다.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될 엔화 강세장.
모든 건 계획대로 흘러갔다.
중국에 의해 작년에 3위의 경제 대국으로 주저앉았지만 전세계 GDP의 10%인 5.5조 달러를 차지했다.
순대외채권이 270엔이 넘고 개인 보유자산이 1500조 엔이 넘는 금융 부국이었다.
과도한 재정수지 적자가 문제였지만 국가채권 대부분을 충실한 신민들이 구입했다.
외채로 운영되는 미국이나 다른 국가와 달랐다.
“돈에는 자비가 없다는 걸 알아야지. 흐흐.”
기분이 좋은 히로토 과장은 느긋하게 평화로운 시간을 즐겼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의 오후.
주말에 친구들과 골프 약속이 있던 히로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난 뒤에 스윙 자세를 취했다.
그런 그 때.
우릉 우르르르르르릉.
건물 바닥이 대책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직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장차자자자장.
유리창이 터지며 박살이 났다.
“아아악!”
히로토도 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책상 밑으로 몸을 숨겼다.
일 년에도 무수히 경험하는 지진.
방금 전까지 거만했던 자세는 어디로 사라지고 겁에 질린 한 인간이 책상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우르르르 우르르르르릉.
그렇게 몇 번의 여진이 계속되었고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격한 흔들림이 멈췄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에에에에엥.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
“속보입니다! 방금 전 동북부 산리케 해역에서 진도 9.0이 넘는 강진이 발생하여…….”
속보가 전해졌다.
“즈, 증시는!”
히로토는 정신을 차치고 증시 게시판을 살폈다.
“!!!”
결과는 예상대로 급락을 의미하는 파란색 그래프로 바뀌어 속속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진짜 해일 무섭다.”
“어머! 저기 사람이 타고 있는 차가 있어!”
“세상에……. 저 엄청난 쓰나미 어쩔 거야.”
금요일 오후 강의가 모두 끝났다.
강의실 밖으로 나오던 연수원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속보를 확인하며 놀랐다.
“몇 천 명은 목숨을 잃었겠어.”
“그래도 지진 대비가 확실한 일본인데 그 정도까지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이 정도 해일 규모면……. 해안가 도시는 몇 개는 난리가 나겠다.”
“일본은 싫어도 사람이 죽는 건 안타깝다.”
“약해지지 마. 저 자식들 강점기 때 무고한 한국 사람들 얼마나 죽었냐? 위안부부터 시작해서 전쟁터에 수많은 청년들 끌고 갔잖아. 우리 할아버지도 그때 사이판 갔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오셨어.”
“그렇긴 하지만 죄는 미워해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자. 그건 하늘이 판단하겠지.”
“신에게 벌 받은 거야. 신벌!”
할아버지가 일본 국가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여자 연수생이 강단 있게 내뱉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신벌이 내려졌다고 여겼다.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이 일본 동부 지방을 강타했다.
그토록 지진 대비에 철저한 일본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엄청난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평화로웠던 마을을 집어삼켰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3만 명이 넘는 대참사.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알고 있는 과거이자 현실.
일본을 이끌고 가는 정치인들과 보이지 않는 권력자들의 농간은 혐오스러웠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그렇듯 일본인들 중에도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정치인들로 인해 청산하지 못한 업에 대한 재앙이 덮쳤다.
하늘의 벌을 받은 격이었다.
신벌(神罰).
하늘의 이치를 주관하는 신들이 내리는 벌.
개인이 아닌 국가적 재난은 조상신들도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일본을 보호하는 뱀신도 침묵해야 할 업보였다.
스스로 뽑은 타락한 정치인들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순간 그들을 선택한 국민들의 업보로 분산돼 저장된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대다수 양심이란 것이 없었다.
정경유착은 기본이고 서슴없이 야쿠자와도 손을 잡았다.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 다음 세뇌당한 노년층을 표밭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은 상류층들만의 단단한 성을 지키는 병사가 됐다.
정작 그들에게 별 관련이 없는 자들임에도 부자와 권력자들을 자처해 엄호했다.
돈과 권력은 언론들에 재갈을 물렸다.
힘으로 양심 있는 자들을 잠재웠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업이 터졌다.
우주의 카르마 포인트 계산법은 언제나 정확했다.
일본을 보면서 가장 큰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지난 수천 년 세월 동안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고 피로 물들인 죄가 가볍지 않다.
지금도 돈질로 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금융 질서를 어지럽혔다.
싸게 빌려주고 환율 기술로 몇 배의 이익을 벌어들였다.
싼 맛에 돈을 썼다가 유럽 국가를 비롯해 미국 대형 금융 기업들이 낭패를 봤다.
돈은 원하는 대로 벌어들일지 모르지만 일정 한도의 업이 쌓이면 어떤 식으로든 터져 나왔다.
동일본 대지진도 그랬다.
차고 넘치는 업이 자연 재앙인 지진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았다.
내가 행사한 주권 한 표가 결국 업이 된다.
선량한 자를 뽑는 자들은 선량한 선업을 쌓게 된다.
타락한 줄 알고도 내 이익을 위해 양심을 파는 순간 악업을 쌓게 된다.
직접적인 피해가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상관없는 것 같지만 그건 어리석고 무지한 소리다.
타락한 놈들끼리 연줄이 되어 자기 사람들을 좋은 자리에 앉힌다.
정당하게 공부한 이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인 것이다.
검찰과 경찰 인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도 보란 듯이 빠져 나간다.
2019년 까발려진 연예인들의 패륜적 단톡방과 강남 클럽 파이어썬 사건은 그 예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다.
자기들끼리 뭉쳐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사고팔았다.
피해는 평범한 시민들의 몫이 됐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정치인들은 누가 봐도 티가 났다.
그들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행위도 타인을 위한 선행이었다.
함부로 타락한 정치인을 뽑으면 나중에 본인과 형제, 자식이 그 해로운 판 위에서 살게 됨을 생각 못했다.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
지금 현재도 나를 지켜보는 신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는 걸 안다면 절대 함부로 악행을 일삼을 수 없고, 그런 자들을 두둔하지 못할 것이다.
“행님요. 쪽바리들 지금 난리 났음니더!”
덕수가 최근 바꿔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덕수야.”
“넵!”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착하게 살아라. 그래야 죽어서도 부모님과 조상님들 뵐 면목이 있는 거다.”
“하모요! 지는 법 없이도 삽니더!”
띠리리리리리.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 보스 접니다.
“로버트 지금 새벽 아닙니까?”
금요일 오후 5시는 뉴욕 시간으로 새벽 4시였다.
– ……밤새 잠을 못 잤습니다.
로버트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많은 생각이 목소리에 이미 담겨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 보스……. 보스는 진짜 신이십니까?
“…….”
대답하지 않았다.
일본 대지진을 예상하고 환율과 일본 주가 선물에 자금을 투입했다.
세상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나만의 투자법.
평범한 인간인 로버트는 아직도 감당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로버트. 정신 추스르고 다음 계획을 진행하십시오.”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함을 유지했다.
– 보스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되겠습니까? 극비 정보에 의하면 지금 일본 원자력 발전소 몇 개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분명 일본 경제에 치명적 타격이라 엔화가 계속적으로 급락할 게 뻔합니다. 그런데 엔화 상승에 베팅이라니요…….
오늘 환율 시장에서 엔화가 급락했다.
그러나 다음 주가 되면 순간 엔화는 강세로 전환된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세계에 뿌려졌던 엔화들이 본국으로 귀환한다.
그게 바로 일본이 진짜 무서운 이유였다.
타락한 정치인들을 알면서도 본능으로 선택할 만큼 일본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계산적이었다.
눈앞의 돈만 밝히는 중국인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유대인과 비슷하게 넓은 이재(理財)에 밝은 인간 집단이었다.
“따르십시오. 그게 로버트가 할 일입니다.”
지시는 명확했다.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 죄송합니다……. 잠시 주제 넘었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로버트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껏 기적 같은 내 능력을 직접 보고 경험했음에도 인간적인 계산으로 의심을 품었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이었다.
“내가 신은 아니어도……. 신을 믿는 것처럼 그대로 따라와 주십시오.”
– 보스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보스.
안정을 얻은 로버트와의 통화가 짧게 끝났다.
통화를 끝낸 그때 옆에서 느껴지는 두 시선.
존경심 가득한 덕수와 호기심에 눈빛을 반짝이는 팔미호.
“회장님~ 회원 면접자들 다 준비됐습니다. 바로 가시면 돼요~.”
그녀의 붉은 입술이 오늘도 역시 요염한 나비 날갯짓처럼 나풀거렸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