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57
558. 법정(法廷)
“누구십니까?”
모르는 번호에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였다.
호감 1도 안 느껴지는 오만함이 잔뜩 묻은 말투.
– 나 연대의 전창승 전무.
끝까지 하대다.
아들이 싸가지 없더니 누구한테 배웠는지 알겠다.
“그래서요?”
– ……뭐라고 했나?
어이없는 듯 전창승이 물어왔다.
살면서 이렇게 뻣뻣하게 대응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눈치다.
이럴 때는 팩폭이 제격.
“안 들립니까?”
성질대로 튀어 나오는 신경질 적인 반문.
오는 싸가지가 고와야 가는 싸가지도 고운 법이다.
– …….
잠시 강제 침묵이 흘렀다.
– 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오는 거친 짐승의 웃음.
어쩐지 광기가 느껴졌다.
“할 말 없으면 끊습니다. 바쁩니다.”
이런 놈 한두 번 상대해 본 것도 아니고 시간도 아까웠다.
재벌 3세 금수저로 태어나 온몸에 힘주고 살아가는 개차반.
– 건방진 새끼!
“당신, 나 압니까?”
– 야! 장태산! 이 어린놈의 새끼가!
“호칭! 정정하십시오. 전창승 전무!”
어릴 때 동네 형이 말해 준 적이 있다.
똥 묻은 개는 상대하지 말라고.
– 후우우 후우…….
분노를 누르는 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꼭지가 돌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기분 나쁘십니까? 나도 기분 나쁩니다. 언제 봤다고 하대입니까! 당신 아버님도 내 앞에서 그런 식으로 하면 실례를 범하는 겁니다! 어디서 기업 이름으로 협박질입니까!”
차분하고 조용하게 분노를 와르르 쏟아냈다.
물론 다른 사람이었다면 연대라는 이름 앞에 잔뜩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그리고 당신이 연대입니까? 겨우 계열사 전무 정도로……. 당신 형님 반만이라도 따라가십시오. 그 나이에 계열사 사장 자리 하나 꿰차지도 못하고 아들은 어린 나이에 깡패 짓에 여성 XX이나 하는…… 주제에. 어디다 지금 큰소리치는 겁니까!”
조곤조곤 현실 인성 교육 상황이 됐다.
– 너, 너 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지? 으드득.
정말 이 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 반대 상황은 생각 안 합니까?”
– 뭐, 뭐라고?
“미리 말해 두는데 당신…… 곧 아웃이야. 크크크.”
품격 있는 말끝에 그만 악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뚝.
그리고 종료 버튼을 눌렀다.
속이 시원했다.
아침밥이 소화가 잘 됐다.
“겨우 이 새끼가 보스였어? 전문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것 같네.”
명함을 줄 때 난 전문수가 나올 줄 알았다.
내가 잠깐 쉬는 타임이지만 이런 식으로 무시당할 이름은 아니었다.
그런데 애새끼 하나 컨트롤 못하는 전창승을 앞으로 내보냈다.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 상황판별을 못하는 눈치다.
틱틱.
“번호를 바꿔야 하나.”
스팸 번호로 등록했다.
존중하는 태도로 나왔다면 예의상 한번은 만나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저따위로 상대를 무시하는 고자세라면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우호적일 수 없는 관계였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던 개차반 아들이나 아버지 전창승이나 둘 다 엉망이었다.
견부(犬父) 밑에 견자(犬子)였다.
“그럼 난 계속 증거 좀 모아볼까~.”
계획은 정석대로.
놈들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아픈 곳을 잘 깎은 대바늘로 푹 쑤셔버릴 것이다.
“일단…… 사건은 어그로를 끌어야 제 맛이지. 그리고 이런 건 다 같이 봐야지~.”
머릿속을 연신 스치고 지나가는 사악한 계획들.
입가에는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
와장창창!
“개새끼……. 죽여 버린다!”
열이 잔뜩 받친 전창승 전무는 책상 위를 한 번에 쓸어버렸다.
바닥에 나뒹구는 집기들.
그래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닌 그룹 비서실장을 통해 통보를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자존심은 이미 상할 대로 상했다.
큰조카가 이번 같은 사건에 연루됐다면 아버지는 분명 직접 나섰을 것이다.
자신과 달리 형은 진작 계열사 사장단에 합류했다.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비교당해 왔다.
한국대 출신인 아버지는 다른 형제 분들과 달리 학벌이 좋았다.
그걸 이용해 할아버지에게서 사업체 하나를 뚝 떼어 받았다.
대우를 받아본 아버지는 유난히 어릴 때부터 학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형 못지않게 전창승도 죽어라 노력했다.
그러나 MBA 유학파 출신인 형과 연지대에 그친 전창승은 비교 대상 자체가 안 됐다.
게다가 사업적으로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기세 좋게 추진했던 사업 몇 개가 큰 손해를 가져왔다.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다.
못난 놈 소리는 그나마 나은 꾸중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무산되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바깥으로 돌며 여자와 술, 골프에 빠졌다.
그나마 스트레스를 푸느라 폭력 대상이 됐던 아내마저 이혼을 하고 떠나버렸다.
내친 김에 꼬리치며 살살 대는 젊은 비서와 재혼했다.
그때도 아버지는 말리지 않았다.
그게 더 전창승을 엇나가게 하고 화나게 만들었다.
세컨드뿐만 아니라 문어발처럼 여자들을 거느렸다.
뒤늦게 고개를 든 반항심이 전창승을 끌고 다니며 활활 불살랐다.
이번에 사고를 친 아들은 할아버지인 전문수 회장을 가장 많이 빼닮았다.
그래서 더 방종을 눈감았다.
그늘이 큰 아버지로부터 늘 억압당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자신은 결코 해보지 못했던 청소년 시절의 금기시 하는 일들을 미리 맛보게 만들었다.
아버지를 향한 옹졸하고 치졸한 복수심의 발로였다.
그룹에서는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승계는 반쯤 포기했다.
그래도 연대라는 그룹명이 사라질 때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보호받을 것을 전창승은 잘 알고 있었다.
연대그룹 3세라는 명함은 대한민국 안에서는 제대로 먹히는 명함이었다.
그런데 새파랗게 어린놈이 대놓고 무시했다.
“아직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새끼야……. 철저히 짓밟아 주겠어!”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 대상을 찾았다.
전창승 눈빛이 집착으로 바뀌었다.
스마트폰을 잡았다.
그리고 익숙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듣기만 해도 느끼한 정치인의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마 의원님, 연대 전창승입니다.”
– 오! 전 전무님 아닙니까. 바쁘신 분이 이렇게 친히 전화를 주시고 감사합니다.
“하하. 공무에 바쁘신 분께 전화를 드려 제가 더 황송합니다.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언제든 애로사항이 있으면 저를 찾아 주셔야죠.
“마 의원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오늘 시간 좀 내주십시오. 차 판사님과 같이 상의 드릴 게 있습니다.”
– 오늘요? 무슨 일인지…….
“애들 사건 때문에 말입니다.
– 으음.
마제국 의원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정치인에게 있어 가족, 특히 자녀들 비리 문제는 아주 중요하게 치부됐다.
전창승의 언급처럼 대형 사고를 친 아들 마형곤.
아직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들이 친 사고가 알려지면 정치인인 마제국에게는 치명적이었다.
– 자리를 마련하고 불러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전창승은 통화를 끝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장태산……. 네놈이 얼마나 잘난 놈인지 신경 안 쓴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시켜 주마……. 이 개새끼. 크크크.”
전창승도 장태산에 관한 정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단 머리가 비상하게 뛰어난 젊은 투자회사 대표.
안아와 천일, 그리고 삼룡까지 장태산 작품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월가의 자본가를 뒤에 업고 숨어서 장난질을 좀 하는 애송이였다.
전창승은 충분히 짓밟아버릴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다.
정작 누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있는지 짐작도 못한 채.
***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아. 오 판사는 어때?”
“매일 똑같습니다.”
“조금만 참아. 배석 판사 시절에 제대로 배워야 나중에 편해.”
“감사합니다.”
“유 판사는 여유 있어 보이네?”
“어제 좀 일찍 잤어요. 남편이 보약도 한 첩 지워줬습니다~. 흐흐.”
“부럽다. 우리 남편은 그런 정성이 없어. 이 인간 주말에 골프 치러 간 거 있지…….”
“그래도 부장판사님 부군께서는 자상하시잖아요.”
“유 판사. 그것도 애 낳기 전 얘기야. 자기도 애 낳기 전에 많이 부려 먹어. 남자들은 와이프가 애 낳으면 다들 잡아놓은 물고기인 줄 안다니까~.”
“큼큼. 전 그런 남자 아닙니다.”
“호호. 미안, 오 판사는 절대 그런 남자 아니지~.”
재판이 있기 전 부장판사실에 잠깐 모인 동부지법 형사합의부 부장판사와 좌우 배석판사 두 사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사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재판이 쉽지 않다는 걸 모두 직감하고 있었다.
지은재 판사 외에도 배석 판사 모두에게 압력이 들어왔다.
대놓고 재판에 개입하려 드는 윗선들의 동향.
웃는 얼굴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다들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오늘…… 재판 깔끔하게 마무리 하자.”
판사 생활이 가장 오래된 지은재 부장판사가 먼저 운을 뗐다.
세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넵!”
“전 부장판사님 뜻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각자 의견을 개진해서 판결해야지. 우리가 검찰 애들처럼 조폭도 아니고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심 판사 의견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다.
부장판사가 내리는 판결에 한참 후배들인 좌우 배석이 끼어 들 여지는 별로 없었다.
“솔직히 오늘 재판 부담스럽습니다.”
우배석인 오 판사가 숨기고 있던 심경을 토로했다.
“왜?”
“……선배들 몇 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랬구나.”
“저도 왔었어요.”
좌배석 유 판사도 넌지시 입장을 비쳤다.
“나도 받았어. 그것도 직접적으로.”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며 지은재 판사도 입장을 밝혔다.
“…….”
지은재 판사 말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침묵했다.
주심 부장판사에게 압력이 들어올 정도라면 이 사건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오늘 재판을 놓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두려워하지 마. 재판하면서 이런 일 한두 번 겪을 거 아니니까.”
선배로서 현실을 직시하길 바라는 마음과 격려를 해주고 싶은 지은재.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만 잊지 마. 우리는 판사야. 동족인 인간에게 벌을 주는 신의 대리인…….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대리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것에 떳떳할 수 있는가를 항상 반문하며 재판해. 그럼 너희가 해야 할 대답은 간단해.”
지은재 판사 말에 배석 판사 두 사람은 가만히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로라하는 직업에 늘 우러러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판사도 결국 공무원이고 직장인이었다.
특히 조직 특성상 상부 명령을 거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번 사건처럼 정재계와 같은 법원 고위급 인사까지 연관된 사건 앞에서는 판사도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법리대로 검토하겠습니다.”
“양심의 추 움직임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둘 다 똑똑하니까 잘 아네. 판사는 오직 판결문으로 말해. 그게 발자취이고 여생의 증거야.”
며칠 동안 생각이 많았던 지은재는 결단을 내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 심리는 공정하게 할 것이다.
똑똑!
그때 급하게 누군가가 판사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와요.”
덜컥 문이 열렸다.
“파, 판사님. 큰일 났습니다!”
지은재 판사 합의부 실무를 담당하는 법원 공무원 계장이 얼굴이 노랗게 뜬 채 호들갑을 떨었다.
“네? 큰일요?”
“……지금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게 무슨…….”
인터넷과 재판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그야말로 뜬금없는 소리였다.
“오늘 소년 사건 재판에 관련된 공범들에 대한 신상 자료가 쫙 풀렸습니다!”
“네! 시, 신상요!”
지은재 판사가 가장 우려하던 바였던 부분이었다.
급기야 지은재 판사가 말까지 더듬었다.
“지금 방청석에는 기자들 쫙 깔렸습니다. 법정 경위가 일부 막고 있지만…… 터져 나갈 것 같습니다.”
계장의 말에 지은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부, 부장판사님…….”
“어떻게 이런…….”
평소 재판처럼 방청 제한을 두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만 이 일이 터졌어도 긴급하게 방청 제한을 명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틀렸다.
인터넷에 신상이 풀렸다는 건 여론의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징조.
이제 이 사건에 관련한 재판은 판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
잠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스윽.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지은재 판사.
“시간 됐군요……. 가죠.”
법(法)이라는 한자가 박혀 있는 검은 가운을 걸친 그녀가 앞장서서 걸었다.
어느새 무심할 정도로 표정이 침착해진 얼굴.
정의로운 개작두 판결로 이름을 떨친 판관 포청천이 강림한 듯했다.
잠깐 사이 돌변한 지은재 판사의 눈동자.
그 어느 때보다 거센 불길로 활활 타올랐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