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563
564장 골칫덩이는 사건을 부른다. (1)
“…….”
전문구는 당황스러웠다.
살면서 이런 경우는 몇 번 직면해 본 경험이 없었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불호령을 내렸던 아버지를 대면할 때.
그리고 국가를 개인 소유물 정도로 여겼던 오만한 독재자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어린 녀석의 패기가 대단했다.
‘아버지를 닮았어. 아니…… 그 이상이다.’
독재 시절에 전문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협박을 몇 번이나 받았다.
선거철마다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정치 자금 규모가 장난 아니었다.
성에 차지 않게 응답했을 경우 아버지와 함께 불려가 쪼인트를 까였다.
대기업의 자산을 자신들의 가용돈처럼 취급했던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
물론 헛공을 들이는 것에 그치지는 않았다.
그만큼의 돈을 던져주면 어느 정도의 편의를 봐주었다.
반복되는 그 꼴을 용납할 수 없어 아버지가 직접 대통령이 되겠다가 나섰다 호되게 당했다.
스스로 강하다고 믿는 자들의 특유 기세를 전문구는 읽을 수 있었다.
눈에 놓인 막걸리를 마시며 자세가 전혀 흐트러트리지 않는 청년.
그 모습을 보다 옛 기억이 소환됐다.
명함만 내밀면 알아주는 재계의 거물인 자신을 상대로 흥정을 시도했다.
“먼저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게. 장 대표 자넨가?”
연대 그룹 전반에 걸쳐 무차별적인 해외 공매도가 시도되고 있었다.
내국인들과 달리 기관과 해외 투자 자본에 상시 열려 있는 주식 공매도.
여유 자금을 밀어 넣고 방어시도조차도 못했다.
자금력에서 상대가 안 됐다.
미국에서 터진 엔진 화재 뉴스가 국내에 상륙했다.
스마트폰을 타고 들불처럼 번진 불길.
뒤에 누군가 있는 게 확실했다.
연대자동차 역시 미국 정치인 창구가 존재했다.
미국에서 자동차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든든한 동아줄이 필수였다.
창구가 돼 주는 그가 은밀히 전해오길 누군가 NHTSA에 손을 썼다고 했다.
내부에서도 알파2 엔진 불량은 극비에 속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연대에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시치미를 떼는 녀석.
눈동자에 흔들림 하나 없었다.
대기업 연대자동차 회장 앞임에도 전혀 위축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로버트 라이언과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네.”
“제 회사 투자자이자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녀석은 뻔뻔했다.
“공매도를 멈춰주게.”
“전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이번 재판 때문에 그런가?”
여전히 씨익 미소만 띠고 있는 녀석.
“조카 창승이는 앞으로 한국에서 볼일이 없을 거야. 문수에게도 알아듣게 말했네.”
안아와 천일을 무너뜨리고 삼룡 자동차 인수 건에까지 개입했다고 전해지는 장태산.
전부터 예의주시하고 있던 녀석이 이제 사법연수원생까지 됐다.
타고난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과 재력이 유착된 재판을 한 번에 뒤집어버린 장태산.
다른 로펌이나 국선변호인이었다면 상대가 연대임을 알고도 그렇게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전문구는 감각적으로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이놈, 연관돼 있다!’
사업가로서의 본능이 소리쳤다.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는 저 젊은 청년이 연대를 뒤흔들고 있었다.
사실 이 자리에서 대면하기까지 긴가민가했다.
누가 봐도 연대는 덩어리가 컸다.
안아와 천일 수준의 기업 몇 개를 합쳐야 연대 정도의 수준을 따라올까 말까 했다.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심이 확증으로 변해갔다.
“제가 존경하는 한 기업가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녀석이 안주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
그 태도가 한껏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이 자리를 준비한 전문구 회장이 차라리 객처럼 느껴졌다.
“‘본인 스스로 나쁜 운이라 생각하지 않는 이상 나쁜 운은 없다’라고 말입니다.”
“!!!”
장태산의 말에 전문구는 내심 깜짝 놀랐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시던 명언 중 하나였다.
“그, 그게 무슨…….”
“외국 자본이 왜 공매도로 공격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그놈들은 승냥이 떼 같아서…….”
“연대가 빌미를 주지는 않았습니까?”
“무슨 빌미 말인가?”
“회장님께서 모르시면 저도 모르죠~. 다만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해맑게 웃는 장태산.
그럼에도 사악한 음모자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설마 모든 걸?’
월가의 승냥이들 뒤에 있는 실세 조종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너무 어렸다.
주식과 환율로 엄청난 재미를 봤다는 건 알지만 월가의 승냥이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배후로까지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는 안됐다.
만약 장태산이 그 배후자라면…….
꿀꺽.
속이 바짝 타는 전문구.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모. 여기 막걸린 한 주전자……. 아니 두 주전자 주십시오.”
“회장님, 오늘 너무 급하게 마시는 거 아냐?”
전문구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주인장이 술을 내오며 한마디했다.
주르르륵 꿀꺽 꿀꺽.
전문구는 막걸리를 따라 거침없이 마셨다.
‘때가 좋지 않을 때는 더 죽어라 노력하라고 하셨지. 그래야 그 시기를 지나 나쁜 결과는 예방할 수 있다고 말이야.’
전문구는 아버지의 경영 방식과 인생철학을 존경했다.
아버지가 평소 입에 달고 살던 말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다시 묻겠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무슨 의미인지 말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국민들?”
“부품으로 내수차별하지 않고 안전에 투자하시고~ 원감 절감한다고 연식 바뀔 때 싸구려로 부품 바꾸지 마십시오. 요즘 소비자들 똑똑해졌습니다. 과거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장사하시면……. 언젠가는 큰 코 다칩니다.”
“장 대표, 말이 좀 심하군!”
감출 수 없는 진실을 콕 찌르자 전문구 회장의 목소리가 격양됐다.
드러내놓고 밝힐 수 없는 치부.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인정사정 보지 않고 되묻는 장태산.
“존경하는 사업가께서 이런 말도 하셨습니다. 사업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사람이 한번 신용을 잃으면 끝이라고 말입니다.”
피 흘리는 자리에 난도질하는 것도 거침이 없었다.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공연히 내수 시장을 차별해 왔다.
A/S기간이 다른 만큼 부품 질도 달랐다.
계열사 소속 부품 납품 업체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3년쯤 지나면 잔고장이 나기 시작하는 국산 제품.
그에 비해 수출 물량은 내구성이 좋았다.
“엔진도 그러면 안 되죠~ 몸뚱이가 부실한데 막 퍼 먹이고 달리라고 하면 그게 말이 됩니까?”
‘다…… 알고 있다! 이놈은!’
내부 극비인 알파2 엔진 문제에 대해 서슴없이 까발리는 장태산.
전문구는 말 그대로 기로에 선 상황이었다.
적이냐 아군이냐의 판단이 필요한 시점.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과거처럼 연대는 잘 헤쳐나갈 겁니다. 회장님 능력이 탁월하시지 않습니까.”
병 주고 약 처방까지 하는 장태산.
전문구는 시름 깊은 시선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회장님, 인연이란 게 가벼운 말이 아닙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어차피 한두 번 볼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술 한 잔 받으십시오. 이렇게 만나 뵙기 어려운 어르신을 뫼시고 마시는 술이 답니다.”
전문구는 장태산의 말에 잔을 내밀었다.
아직은 섣불리 결정할 때가 아니라는 걸 녀석이 먼저 말했다.
일단 일 보 후퇴.
“하하. 나도 마찬가질세. 장 대표처럼 젊은 사업가와 대작하며 마시니 오늘따라 술이 더 달아~.”
단 게 아니라 사실 쓰디썼다.
하지만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좀 더 면밀히 알아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겠지.’
여러 가지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던 오늘의 만남.
장태산을 요주의 인물로 등록했다.
“아! 그리고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
“재계에 제가 인두겁을 쓴 괴물이라는 소문이 돈다고 하셨는데……. 그 소문 틀리지 않습니다.”
장태산의 눈빛이 요사하게 변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무고한 저를 해하려는 자들은…… 제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 갈기갈기 물어뜯어 버릴 겁니다.”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고 내뱉는 누군가에 대한 경고.
순간 막걸리 잔을 잡고 있던 전문구 회장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
쉬이이익.
입질이 온다 싶었는데 그 순간 줄이 늘어졌다.
바로 낚싯대를 당겼다.
철컥.
손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긴장감.
대물.
낚싯대를 위로 세우며 힘을 줬다.
피비비비빙.
팽팽하게 낚싯줄이 당겨졌다.
10월의 어느 날 푸른 물결이 인상적인 통영의 앞바다.
낚싯배를 타고 휴일 토요일의 여유를 한껏 즐겼다.
“장 대표님, 또 문 겁니까?”
“아마도요~.”
“그 녀석도 암컷인가 봅니다……. 얼굴 보고 물었어요.”
잔뜩 심술이 난 목소리다.
“용왕님이 뭘 아시는 거죠~. 대한민국 정치인은…… 물고기도 싫어합니다.”
“아! 그건 아니죠!!!”
두둥실 소형 배를 띄우고 낚시를 했다.
이번 달 들어 팔자가 늘어졌다.
대법원은 치졸하게 복수를 해왔다.
더 이상 사고치지 말고 지내라며 검찰 실무연수를 통영으로 지정했다.
통영이 작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멀다 보니 한직으로 치부됐다.
그러다 보니 판사나 검사들에게는 유배지 같은 이미지가 팽배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개꿀.
진심으로 조용히 살고 싶었다.
통영 발령 소식에 바로 소형선박조종면허를 획득했다.
생각보다 취득은 쉬웠다.
작은 낚싯배를 빌렸다.
지도검사 옆에서 사실조회 및 자료송부요청을 하거나 예비군 훈련 불참 아저씨들에게 소환장을 날렸다.
참으로 태평하기 그지없는 세월.
쉬는 날마다 고기를 잡았다.
앞으로 몇 달만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공무원 생활도 끝난다.
국방부 시계처럼 연수원 시계도 멈추지 않고 잘만 돌았다.
촤아아아앗!
70센티미터 급 감성돔이 튀어 올랐다.
“와아아! 이놈도 대박이네!”
주말을 이용해 조용히 내려온 양우석 의원이 뜰채로 고기를 챘다.
파닥파닥 뛰는 감성돔 손맛이 기가 막혔다.
“회 뜨고 탕 끓이죠.”
“흐흐.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아침부터 60센티미터 급 물고기를 세 마리나 잡았다.
이 정도면 준수한 성과.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시미를 들고 물고기를 해체했다.
푹!?
감성돔 대가리에 칼을 찌르고 힘주어 눌러 토막 내 피를 빼냈다.
– 남해용왕님에게 어복 대가로 카르마 포인트를 지급했습니다.
물고기도 공짜가 아니었다.
멧돼지는 산신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바다의 대형 물고기들은 달랐다.
양우석 의원은 꿈에도 모르는 용왕님과 나만의 계약(?).
꾼들도 쉽게 잡을 수 없는 월척이 몇 차례나 걸리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이곳에 오면서 용왕님과 계약을 맺었다.
스으으으윽.
순식간에 감성동 껍질이 벗겨졌다.
두툼한 살점이 손에 잡혔다.
사악 사악 사악.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회를 떴다.
“……장 대표님 도대체 못하는 게 뭐가 있습니까? 이 정도 수준이면 노량진 선수급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다 감탄하는 양우석 의원.
탁탁탁.
남은 뼈와 살점을 버너 위 냄비에 넣었다.
준비한 고추장과 고춧가루, 무, 마늘, 미나리, 파 등을 넣고 바글바글 끓였다.
“한잔하시죠.”
“당연하죠. 선장이신 대표님은 콜라 드세요~.”
아직 선상 음주는 선장에게만 불법이었다.
준비한 시원한 소주를 땄다.
또로로록.
양우석 의원 잔에 소주를 채워줬다.
“이번 국정감사도 크게 한 건 하십시오.”
“……워낙 털 게 많아 뭘 먼저 털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이제 2선 의원이었기에 품은 뜻만큼 포스가 달라졌다.
당에서도 중량급 직무를 맡을 수 있는 급이 됐다.
“그리고 적당히 공격하십시오.”
“적당히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힘을 모으십시오.”
지금 시절 야당들은 여러 계파로 나뉘어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때 무리하게 힘을 쓰는 건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다.
꿀꺽.
나의 말이 뜻에 안 맞아 답답한 듯 잔을 비우는 양우석 의원.
“대선은 어떻게 보십니까?”
누가 국회의원 아니랄까 봐 회를 즐기면서도 은근히 정치 성향을 물어왔다.
“큰 무당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대표님이라면 알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흐흐.”
“알아도 모릅니다……. 천기누설입니다.”
“끙.”
국회의원에서 총선과 대선은 중요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바꿀 수 없는 미래의 운명.
청와대를 비롯해 국정원, 경찰, 군인까지 동원해 불법적으로 댓글을 달고 여론을 호도했지만 무조건 적으로 믿는 눈 뜬 장님들이 많았다.
그들 덕분에 앞으로 몇 년 동안 나라는 더 개판이 된다.
가진 자들에 의해 눈 뜨고 수탈당하지만 도리어 부자를 걱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넘쳤다.
국민이 깨어나는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조용히 쫀득한 회 한 점을 음미하며 삼켰다.
살랑 불어오는 가을 바닷바람.
무수한 강줄기가 합류해 이루는 넓은 바다.
그 위에 출렁이는 푸른 파도.
입안을 맴도는 향긋한 회 한 점의 맛.
그리고 저기 두둥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어? 허어억! 저, 저건!!!”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