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
5장. 작가 골드리버
“어? 이 작품 뭐야?”
퇴근 후 고시원으로 돌아온 대식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다가 깜짝 놀랐다. 면발이 퉁퉁 불어터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모니터를 봤다.
돈 없는 고달픈 사회 초년생인 대식에게는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유일한 힐링 타임이 바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컵라면에 삼각 김밥 하나 들고 판피아에 들어가 신작들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가진 것 없는 자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였다.
“와아! 주인공 이 새끼 뭐야? 찌질한 것 같은데 매력 넘치잖아. 오타에 비문도 없고……. 필력도 괜찮고 스토리도 팍팍 진행되네. 흐흐. 이 작품 대박이다. 요 근래 본 것 중에 제일 재밌네.”
오로지 재미로만 작품을 판단하는 대식은 오래된 골수 장르시장 덕후였다.
딱 한 장만 읽어도 대박 작품을 선별할 수 있었다.
“후루루룩.”
라면을 흡입하며 대식은 빠르게 화면을 읽어 내려갔다.
눈이 화면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오오오! 레드 이 캐릭터 뭐야? 푸하하하하하하! 잡템이 여자보다 소중한 거야?”
평소 취향은 게임 소설이 아니었지만 대식은 대만족이었다.
여자보다도 잡템에 목숨을 거는 레드의 행동은 모태솔로인 대식의 취향에 맞았다.
“순식간에 10편이나 읽었네. 아이디가 골드리버……. 넌 내가 책 나오면 꼭 빌려본다. 일단 선작하고 추천! 그리고 댓글까지 삼종 세트 쏜다!”
귀찮아서 웬만하면 댓글을 달지 않는 대식은 빠르게 자판을 두들겼다.
– 이 작품 대박입니다! 빨리 다음 편 올려주세요!
자유연재란에 있지만 10편 만에 오늘의 베스트 끝자락에 올랐다.
연재하고 겨우 3일째.
– 1타!
– 작가님! 건필요! 제발 다음 편 빨리 주세요!!!
– 뭐지? 주인공 넘 찌질한 거 아냐? 이런 게 먹혀? 이 작품 출판하지 마라. 종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니가 더 찌질하삼. 질투가 쩐다. 너도 작가지!
주루룩 댓글이 줄을 이었다.
아직 ‘삼삼’ 말투가 유행하는 2006년이었다.
잠잠하던 판피아에 던져진 신선한 소설은 서서히 돌풍을 일으켰다.
출판사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작품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출판사 직원들도 빠르게 회의를 시작했다.
“이 대리 정말 확실해?”
“네! 편집장님. 이거 못 나가도 5천 부입니다. 잘만 포장하면 증판도 가능할 게 확실합니다.”
“달랑 10편 올라왔는데 너무 기대가 큰 거 아냐?”
“편집장님도 보셔서 알지만 일단 재미있습니다. 초반 설정도 황당하지 않습니다. 특히, 스토리 끌고 가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기성작가가 이름을 바꿔서 올린 게 확실합니다!”
“흐음……. 재미는 있는데 게임소설보다는 아직 퓨전 판타지 장르가 먹히는 것 같은데…….”
“독자들 취향이 바뀌었습니다. 당분간 게임 소설이 대세일 겁니다. ! 제목도 굿입니다. 제목이 일단 뭔가 있어 보입니다.”
장르 시장 대형 출판사 중 한 곳인 ‘정진’에서 아침 편집 회의가 열띠게 벌어졌다.
“저도 추천입니다. 어제 읽어 봤는데 주인공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편집팀 직원 경란도 추천했다.
7년 차 베테랑 직원이었다.
“편집장님, 컨텍 쪽지를 날려야 합니다.”
“조건은 어느 정도 맞춰야 하지?”
“신인이 아니고 기성이라면 최소 4천 부에 8퍼센트는 보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센 거 아냐?”
“편집장님. 마음 같아서는 5천에 10을 맞춰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상위 기성 작가들 급의 계약을 주장하는 이 대리였다.
편집장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편집장도 느낌이 왔다.
“알았어. 일단 컨텍 쪽지 날려.”
“알겠습니다! 바로 날리겠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먹히자 이 대리가 활짝 웃었다.
요즘 사정이 좋지 않은 출판사였다.
하나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이 작품 좋은 것 같은데. 편집장 생각은 어때?”
한편, 뒤늦게 장르 시장에 뛰어든 나이스미디어 사장은 친구이자 직원인 편집장에게 를 소개했다.
모니터를 보는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어제 나도 봤다. 내용이 좋아. 재미는 확실히 보장될 것 같다.”
“난 필이 딱 왔어. 이 작품 우리가 먹는다. 6천 부에 10프로 보장 쏜다.”
“출판사 사정도 안 좋은데 그렇게 해도 돼? 다른 작가들 알면 기분 나빠할 것 같은데.”
중소 출판사였기에 작가들에 대한 인세가 그리 후한 편이 아닌 나이스미디어였다.
신인에게 보장하는 인세치고는 강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기성 탑급 계약이었다.
근래 들어 부수는 줄어드는데 작가들의 인세가 높아지고 있었다.
출판사에게는 좋지 않았다.
“내가 어제 돼지꿈 꿨다. 이거 1만 부 나갈 게 확실해.”
평소 호불호가 확실한 나이스미디어 최 사장이었다.
에 꽂혀서 입맛을 다셨다.
인세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소속 작가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갔다.
“그 정도는 모르겠지만 대박은 나겠다.”
편집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쪽지 날려. 연락 오면 내가 내려간다!”
“오케이~!”
***
“후우 후우…….”
예전 같았다면 쓰러지고도 남았지만 몸이 버텼다.
숨이 가볍게 쉬어졌다.
장마가 끝났지만 습기 가득한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됐다.
과수원이 있는 뒷산에 올랐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집에서 마음 놓고 태극오행양의심공을 수행할 수 없었다.
뒷산은 동네에 있는 산치고 제법 높았다.
해발 5백 미터 고지 바위산이었다.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어릴 적부터 놀던 곳이라 빠삭했다.
이른 새벽부터 산에 올라올 동네 어르신들은 없었다.
바위가 험하기도 했지만 숲이 제법 울창했다.
“와! 이거 완전 신세계네!”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대주천 시간이 딱 2시간 걸렸다.
불법 과외라 속성으로 소주천을 건너뛰고 대주천을 과외로 입력한 천룡신군이었다.
그때마다 몸에서 구정물이 흐르고 악취가 났다.
탁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대주천이 끝나면 태극오행양의권을 수련했다.
중국 영화에서 많이 봤던 태극권 소련법과 비슷했지만 달랐다.
무려 108가지 동작을 연속으로 펼쳐야 했다.
그것도 태극오행양의심법을 운용하면서 내공으로 진기를 인도해야 효과가 있었다.
이것도 1시간이 걸렸다.
한번 펼치고 나면 온몸에서 새로운 기가 팔팔 넘쳤다.
일주일의 시간이었지만 벌써 내공이 주는 달콤한 맛에 푹 빠졌다.
“개운하다~. 후우우우우.”
길게 숨을 들이쉬며 산위에서 아래를 내려 봤다.
수련을 마치면 마시는 공기를 타고 다시 단전의 기운이 채워졌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밖에 하지 않던 나에게는 장족의 발전이었다.
빨리 태극오행양의심공의 단계를 올리고 싶었다.
이걸로 천룡신군이 우화등선 대상 먹었다.
천룡신군은 강제로 내 몸에 단전을 만들어줬다.
단계는 아직 1성의 경지였지만 효과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몸이 개운했다.
매일 반 권 분량의 책을 써냈지만 어깨가 뭉치지 않았다.
잠깐 운기행공만 해도 몸이 개운해졌다.
여름 무더위가 방을 찜통으로 만들었지만 예전과 달리 땀 몇 방울만 흘렸다.
더위에도 몸이 지치지 않았다.
동시에 태극오행양의권을 수행하자 체격이 좋아졌다.
허리가 쭉 펴졌다.
뼈만 있던 몸에 잔근육이 붙었다.
본래 키가 180센티미터라 작지는 않았다.
운동 부족으로 몸무게는 60킬로그램 정도였다.
그래서 마른멸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척추가 펴지고 근육이 붙자 내가 봐도 괜찮았다.
딱 일주일 만에 봐줄만 한 몸이 돼갔다.
“이제 패자의 인생은 살지 않는다!”
꿈속 할배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는 못했지만 하늘이 주신 기회를 날릴 수는 없었다.
다시 사는 인생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과거처럼 시간을 낭비하며 루저라 불리기 싫었다.
숨을 들이키며 떠오르는 태양을 봤다.
잠자던 어둠을 물리치고 땅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났다.
눈이 시원했다.
산들이 어깨를 이루며 듬직하게 마을을 감싸는 게 보였다.
동네가 있는 마을 앞으로는 평지가 쭉 이어졌고 냇가도 흘렀다.
어느새 두둥실 아침 해가 떠올랐다.
“예상대로 장르 쪽 5대 출판사에서 컨텍 쪽지가 왔군. 1차 성공!”
요 며칠 판피아에 접속하면 몇몇 출판사에서 컨텍 쪽지가 와 있었다.
성급하게 답장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작품은 발로 써도 뜬다는 말은 판피아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탄생시킨 명언이었다.
가 2020년까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시간을 건너뛰어도 먹힐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
는 미국에 번역해서 출판할 정도로 인기였다.
다만 한국적 해학 코드를 미국에서 소화하기 힘들었다.
히어로가 정서상 대세인 미국에서 주인공은 이해받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에게 중요한 것은 종잣돈 마련이었다.
“기성 작가 급의 최고 대우를 해준다고? 만나기만 하자고? 날 바보로 아나.”
작품이 망한 친구를 통해 출판사들의 처세가 어떤지 대충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도 출판사 직원에게 홀려 계약서를 작성하고 후회하는 작가들의 후기가 많았다.
난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우선권을 나이스미디어에 주었다.
본래 는 나이스미디어의 출판물이었으니까.
***
“아들. 갑자기 무슨 데이트야?”
“오늘 아들이 풀 코스로 확실하게 쏘겠습니다.”
“아들이?”
엄마가 큰 눈으로 날 봤다.
이해가 가지 않을 거다.
공식 용돈이라고는 한 달에 10만원이 다였다.
버스 카드 충전하고 남는 돈은 기껏해야 몇 만원이었다.
애들하고 초코파이 몇 개 사먹으면 사라질 허망한 돈이다.
그런 내가 한턱 쏜다고 엄마를 모시고 나왔다.
주룩주룩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두 쌍둥이들은 아침부터 보충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갔다.
고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방학 보충수업이 있었다.
아버지는 새로운 유기농 농사법 강의를 듣기 위해 어제부터 자리를 비웠다.
딱 기회가 잡혔다.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젠장, 미성년자 신분이 내 발목을 잡다니.’
오늘 나이스미디어 출판사 사장이 직접 내려오기로 했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쪽지로 대략적인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하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난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는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없다.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거나 법정대리인이 법률행위를 대리해야 한다.
다만 미성년자라도 일정한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단독적으로 할 수 있는 예외가 민법에 규정되어 있긴 하다.
미성년자의 법률행위 중 단순히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를 면하는 행위는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미성년자는 범위를 정해 처분이 허락된 재산의 처분을 단독으로 할 수 있었다.
소설 계약은 권리만 얻는 계약이 아니었다.
계약금이 오가고 위약금이 존재하는 법률행위였다.
오늘 계약에 있어 어머니의 도움이 절실한 이유였다.
아버지에게는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다 왔습니다. 내리십시오. 어마마마.”
“아들, 요즘 썰렁 유머가 늘었다?”
피식 웃으며 엄마가 버스에서 내렸다.
“커피 한잔 하시죠.”
“커피? 네가 커피 맛을 알아?”
“그럼요. 이런 날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딱이죠.”
몇 달 전 오픈한 스타박스가 정류장 바로 앞이었다.
‘핸드폰부터 하나 장만해야지. 정말 불편하네.’
집안 사정 때문에 핸드폰도 없었다.
유일하게 아버지만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엄마. 아들 믿죠?”
“그럼. 죽는 날까지 엄마는 아들 편이지.”
엄마가 내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스타박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찍도 와 있네.’
한눈에 봐도 알 것 같은 풍채 좋은 출판사 사장과 직원 한 명이 창가에 앉아 있었다.
약속한 시간은 11시였지만 일찍 와서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일단 합격.’
그들 앞에 다가갔다.
“나이스미디어에서 오셨습니까?”
말투가 정중하게 나왔다.
증권 회사 재직 당시 고객들 상대하던 버릇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고, 골드리버 작가님?”
이름대신 아이디로 날 불렀다.
“네. 제가 골드리버입니다.”
“아!”
탄성을 터트리는 두 아저씨.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던 두 사람은 당혹스럽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 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