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27
628장. 태양의 종자
– 의원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일개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나라가 됐습니까? 나이도 어린 놈이 감히 외삼촌인 저를 협박했습니다! 가족의 큰 어른인 저를 모욕한 놈이 변호사에 투자 회사 대표라고 겁박하다니……. 건방떠는 그놈 재산 모두 다 저희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가로채 이룬 겁니다. 직접 좀 살펴 주십시오.
“흐음…….”
전원택은 통화로 하소연하는 주현태의 말을 들으며 짧은 신음만 흘렸다.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애초부터 무리였지만 일단 밀어붙였던 동룡의 대웅 건설 인수.
과거에야 여러 명분을 만들어 특정 기업에 몰아주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해가고 있었다.
똑똑해진 국민들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자체 여론을 형성했다.
동룡의 신용 등급이 강등되자 빗발치게 쏟아지기 시작한 대웅 인수 불가론.
각 포털을 중심으로 올라온 뉴스에 국민들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여당 자체적으로 돌리는 여론 대응 팀에서도 방어가 안 됐다.
거기에 더해 시중 은행들은 앞 다투어 동룡 만기 대출을 회수하는 데 나섰다.
시장에 풀린 동룡의 어음 할인율이 무섭게 치솟았다.
도산 직전에 내몰린 기업의 상황.
주현태의 만나자는 호소에 전원택은 연락망을 대포폰으로 돌렸다.
괜히 나중에 빌미가 될 수 있었다.
– 의원님……. 제가 그동안 회에 서운하게 한 적 있습니까? 이럴 때 도와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아와 천일처럼 버리시면…….
주현태는 뒷말을 잇지는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버리면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무언의 협박.
‘그래. 안아와 천일처럼 모른 척 놔둔다면…….’
주현태로 인해 일송회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을 암중에서 지배했던 거대한 권력의 카르텔이 자칫 흔들리면 안 됐다.
그렇지 않아도 시민들이 깨어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과거처럼 언론을 통한 세뇌가 그때만큼 먹히지 않았다.
작년에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도 겨우겨우 버텨 이겼다.
이것저것 온갖 불법을 동원하고 막판에는 국정원과 경찰, 군조직까지 투입해 얻은 신승.
전원택은 입맛이 썼다.
“주 회장님,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여러 의견을 들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른 기업체였다면 냉정하게 연락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현태는 일송회 중요 회원 중 한 사람.
지금까지 납입해 온 회비가 상당했다.
– 약조를 주십시오. 오늘도 국보은행을 비롯해 각 금융권에서 만기 자금뿐만 아니라 미도래 대출까지 상환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어음은 어떻게 막았지만 한 달 버티기도 힘듭니다. 장태산……. 그놈만 처리해 주십시오! 이 모든 상황은 그놈이 꾸민 일입니다! 그 뒤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주현태는 진심으로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
‘장태산……. 장태산.’
전원택은 주현태가 말한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언제부턴가 자주 귓가에 들려오던 이름 석 자.
이름처럼 무섭게 세를 키우고 있었다.
지난 정권 때도 장만수와 최상득이 멋모르고 장태산에게 덤볐다가 나가떨어졌다.
미국 대통령과 월가를 배후에 두고 있는 놈.
회에서도 위험을 감지하고 리스크 관리 중이었다.
“손 대균 이사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 손 대균 이사를 믿을 수 있습니까?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회장님!”
전원택이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일송회 일반 회원과 상급 회원은 그 역할도 영향력도 달랐다.
하극상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 ……부탁드립니다. 제가 얼마나 답답하면 그런 소리를 하겠습니까.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의원님.
통화가 끝났다.
“기업을 그 따위로 운영하고서도……. 쯧.”
전원택도 짜증이 날 대로 났다.
신용 관리가 엉망이 된 동룡 그룹.
그가 봐도 회생 가능성이 점점 낮아졌다.
“문제는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 하느냐인데…….”
우선 동룡 주현태의 입을 막아야 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성의는 표해야 한다는 것.
틱틱틱.
전운택이 번호를 눌렀다.
“전원택입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룡…… 어떻게 할까요?”
– 그게 참…….
전원택의 전화를 받은 조국일보 반종현도 답답한 듯 혀를 찼다.
받은 돈이 적지 않아 함부로 뺄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이대로 일을 밀어붙였다가는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은 빤한 일.
야당 쪽에서도 빌미를 잡고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
자칫 커넥션이 들통 나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어려워질 게 자명했다.
계륵이 되어 버린 동룡.
“자꾸 장태산을 처리하라고 하는데……. 손대균 이사가 그 자식 컨트롤 못하는 겁니까? 이거 회원들 때문에라도 한 방 쳐야 할 것 같습니다.”
– 일단 기다려 봅시다. 손대균 이사가 만난다고 했으니…….
“장태산에 관한 자료를 준비해 주십시오.”
– 모아놓은 게 좀 있습니다. 쫙 뿌리면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날 겁니다. 그럼 정부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미국 쪽에서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 흐흐. 그래봤자. 그놈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시민권이라도 취득해 이민을 가기 전까지는 이 꼴 저 꼴 다 봐야죠.
여론전의 고수인 조국일보.
아무리 큰소리치던 사람이라도 한 순간 보내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일단 기다리도록 하죠. 어떻게 처리할지…….”
– 그래야죠. 젊은 놈인데 기회는 줘야죠. 흐흐흐.
두 사람의 대화는 동룡 사태에서 장태산에게로 옮겨졌다.
그동안 쏠쏠하게 도움이 돼 왔던 장태산의 투자 능력.
이번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대우가 달라질 것이다.
***
“야경이 좋습니다.”
“앉아라.”
“네.”
오늘따라 뭔가 분위기가 다른 손대균 이사.
한강과 서울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로얄 서울 호텔의 일식집 룸.
밀폐된 공간이었지만 대형 유리 밖으로 시야가 훤히 열려 있었다.
아직 나도 몰랐던 인싸 장소.
척 봐도 고가인 참치 뱃살 부위가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술은 오늘도 와인.
사케가 어울릴 것 같은 참치회였지만 손대균 이사는 자신의 취향을 놓지 않았다.
레드 와인도 나쁘지 않았다.
“소주가 생각나는 안주입니다.”
“……여기는 취급 안 해.”
“그러게 말입니다. 사케는 개인적으로 맛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왜? 쪽바리 술이라?”
“……취향 차이죠.”
유난히 손대균 이사 목소리에 날이 서 있다.
얼굴도 평소와 달리 경직돼 있는 게 보였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크게 있었던 것 같다.
또로로록.
잔에 와인이 채워졌다.
꿀꺽.
나의 잔을 채워준 뒤 건배도 권하지 않고 혼자 붉은 와인을 마시는 그.
굳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세상 살다보면 다들 자신만의 고민을 떠안고 사는 법.
특히 손대균 이사 같은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라면 더할 것이다.
속사정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가 안고 있는 괴로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동룡……. 어디까지 끌고 갈래?”
“피를 보자고 했으니…… 목은 따야죠.”
명색이 외삼촌이라는 작자가 먼저 나의 목을 노렸다.
금도를 넘은 자에게 자비는 사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핏줄이다.”
“조카의 목숨을 노리는 외삼촌이…… 핏줄입니까?”
“독한 놈.”
“성인군자는 못됩니다.”
“태산아…….”
와인 한 잔을 다 비우고 나를 한 번 부르는 손대균 이사.
시선은 창밖 한강 야경을 향해 있었다.
“네. 선배님.”
“내가 널 만나고……. 참 괴롭다.”
여러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손 이사의 고백.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진정 내가 알 수 없는 손대균의 삶.
대표적 친일파 아버지를 둔 자식으로서의 괴로움에 대한 해답은 진작 줬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답을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난파선에 올라 탄 듯 제대로 키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마음 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의 보이지 않는 주인으로서 온갖 권력과 부를 움켜쥐고.
어느 누구의 삶도 부러워하지 않게 멋지게 살았을 인생.
양심을 깨어나기 시작한 만큼 괴로울 것이다.
그의 성품과 맞지 않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운명이 손대균 이사를 옥죄었다.
나 또한 다른 인사가 불렀다면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친일파들이 벌인 짓으로 인해 몇 년 후면 대한민국은 일본과 경제 전쟁을 벌이게 된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땜질하고 넘어가려 했던 친일파들이 남긴 잔해.
대한민국을 이용해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된 일본 정치인들과 타협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넌 뭐가 그렇게 쉽고 편하냐? 네가 벌인 일이 벌집을 쑤신 건 알고 있는 거냐? 동룡 뒤에는…… 일송회가 있다. 그리고 일송회는 지금의 권력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 거대한 조직이다. 네가 아는 게 다가 아냐. 너……. 진짜 죽을 수도 있다.”
동룡 주현태가 일송회 멤버인 건 이미 안다.
핵심 인사까지는 아니지만 돈줄 역할은 톡톡히 했을 것이다.
안아와 천일도 마찬가지.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던 일송회 기반 기업들이 하나둘씩 정리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쪽에서도 바짝 경계 태세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선배 선에서 막아 주기…… 힘들 정도입니까?”
“아직은…….”
“그럼 막아 주십시오.”
“……넌 날 믿는 거냐?”
손대균이 고개를 돌려 날 봤다.
인생의 괴로움을 다 끌어다 담고 있는 듯한 짙은 눈동자.
영혼까지 아파하는 게 보였다.
부모가 쌓아 놓은 업의 굴레 때문에 괴로워하는 불쌍한 인간.
대한민국에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아파하고 있었다.
“신은 공평합니다.”
또로록.
빈 와인잔에 술을 채워줬다.
그리고 내 잔도 채웠다.
“태양처럼 하늘 한가운데서 모든 것들을 공평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공평함으로 인간들을 대하구요.”
세상은 얼마 살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신의 습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똑같은 빛을 내려줘도 각자 흡수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양지에서 태어난 녀석들은 따뜻한 햇살을 흠뻑 받고 성장하지만, 음지 식물들은 그 쏟아지는 빛을 피해 어둡고 축축한 곳으로 숨어듭니다. ……쥐새끼처럼.”
손대균 이사의 두 눈을 뜨겁게 바라봤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 많은 생명들 중에서 인간은 특히 특혜를 입었습니다. 살 터전, 양지에서 살 것인지 음지에서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습니다. 그건 특권입니다.”
파르르 떨리는 손대균 이사 눈빛.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정확히 지금의 자신이 겪고 있는 내적 갈등과 심정을 간파한 나의 말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일 터.
그로 인해 더 방황하고 헤매는 손대균 이사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음지 식물이 양지로 나오는데…… 쉽겠습니까?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아무리 바동거려도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그냥 달걀일 뿐입니다. 부리로 자신을 가둔 껍질을 깨고 부수고 나왔을 때만이 비로소 병아리라는 이름을 얻고 닭이 될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선배님 눈에 저는 그냥 어려 보일 겁니다……. 하지만 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외삼촌이라는 작자가 나를 죽이겠다고 킬러를 보내고 중국과 일본…… 등 타국에서 제 목을 노렸습니다. 국가도 한 패입니다. 믿을 건 오직…… 나의 힘, 그리고 나를 지켜봐 주고 걱정하는 태양과 같은 이들의 사랑뿐입니다.”
담담하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진심어린 고백.
이렇게까지 말해도 손대균 이사의 피부에 직접 와닿지 않을 것이다.
나의 고통은 나의 것, 그의 고통은 그의 것.
손대균은 대한민국 특권층이 보호해 주는 거물이었다.
“걸인구비(乞人篝肥)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지는 모닥불에 살이 찐다는 속담입니다.”
“…….”
부모에게 제대로 인생을 선물 받지 못한 손대균 이사.
“아무리 어려운 사람이라도 한 가지 사는 맛이 있다는데……. 선배님은 무슨 재미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돈과 명예? 와인? 가족?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뭡니까? 이 귀한 생을 반세기나 넘게 살아오면서 아직도 그 맛을 모르십니까?”
손아랫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추궁.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강하게 전했다.
처음보다 더 멍해지는 손대균 이사의 눈동자.
그의 심지가 악하지 않아 더 안타까웠다.
차라리 뼛속까지 악인이었다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전 물으셨죠. 넌 뭐가 그렇게 쉽고 편하냐고……. 저도 선배님처럼 매일매일을 똑같이 힘들고 고민하고 견디며…… 전진할 뿐입니다.”
꿀꺽 꿀꺽.
다시 한 번 와인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적당히 타협하며 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호랑이 같이 매서운 눈빛으로 저 자신을 지켜보며 소걸음처럼…… 그렇게 묵묵히 나아갈 겁니다.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 자생하는 어둠의 세력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모조리 목을 비틀어 찬란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말 겁니다……. 대신 그런 저의 앞을 막는다면…… 설사 그게 선배라 할지라도 전……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