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4
63장. 또 다른 면접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설립해 달라는 말씀입니까?”
“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설립해주십시오. 유럽계, 미국계, 아시아계 등이 필요합니다. 버뮤다, 케이먼 군도, 버진아일랜드,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등에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수백 곳 세워두십시오.”
“아!”
로버트는 당황했다.
어제 면접에 합격하고 바로 이사 직함을 달았다.
연봉은 300만 달러를 책정 받았다.
믿기지 않는 연봉이다.
펀드 매니저가 아닌 관리자로 최고 100만 달러를 마지막 연봉으로 받았다.
무려 연봉이 세 배가 뛰었다.
거기에 더하여 출장 중 모든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 이용이 가능하고 로열 스위트룸 투숙도 보장 받았다.
대형 금융업계 이사나 받을 수 있는 특혜다.
밤새 잠들지 못했다.
자기가 사용하는 로열 스위트룸의 푹신한 침대에서 날을 새다시피 했다.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로버트의 피를 뜨겁게 만들었다.
다시 야망에 가득 찼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흥분을 맛봤다.
‘비밀 자금을 관리하는 재벌의 손자? 그것도 아니면 과거 권력자의 손자?’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우는 이유는 대부분 똑같았다.
로버트는 눈앞의 청년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었다.
나이는 상당히 어려 보였다.
한국인이지만 영어는 본토인도 울고 갈 정도로 유창했다.
어리다고 우습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이 깊었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했던 로버트는 다니엘 장이라는 대표가 엄청난 배경을 가졌음을 확신했다.
가진 자들만이 소유하고 있는 깊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로버트 이사님.”
“네, 대표님.”
“제가 어제도 부탁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투자 방식은 독특합니다. 수익을 원하지 않습니다. 관리자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조용히 따라 주시면 됩니다. 비밀은 엄수해 주십시오. 비자금이나 마약 같은 불법 자금이 아니니 그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순수한 제 자산을 드러내지 않고 지키기 위함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꿀 많은 꽃에는 온갖 잡 벌레들이 달라붙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이 지시한 대로 따르겠습니다.”
“일단 각 대륙별로 헤지펀드 업체를 설립해 주십시오. 자본금은 모두 30억 달러로 시작하겠습니다.”
“!!!”
30억 달러를 거침없이 말하는 대표의 말에 로버트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투자자들이 몇이나 됩니까?”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의 투자자들은 모두 비밀이 보장됐다.
자신이 가진 부를 드러내지 않고 투자하려는 자들의 합법적 투자처였다.
유력 정치인이나 자산가의 비밀 자금, 회사의 비자금 따위가 원천이었다.
“일단 없습니다.”
“네? 그럼…….”
“모두 제가 투자하는 겁니다.”
로버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니엘 대표가 말하는 투로 보아 30억 달러는 기초자산이 분명했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자산은 필요한 만큼 지원해드리겠습니다. 팀도 구성해 주십시오.”
“바로 시행하는 겁니까?”
“보고서를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주십시오.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 해주십시오.”
“전권 위임입니까?”
“로버트 이사님의 전결로 처리하면 됩니다.”
“……, 다니엘 대표님.”
“네, 이사님.”
“절 이렇게 믿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제 겨우 만난 지 하루입니다. 제 상식으로는 이런 관계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로버트는 진심으로 물었다.
엄청난 행운을 움켜쥐었다는 걸 알았다.
이런 비밀 자금을 움직이는 헤지펀드들은 중요 임원들과 운명을 함께했다.
소러스 같은 헤지펀드 대부들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은퇴하지 않는 이유다.
“이사님을 보면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한 번 죽었다 싶을 만큼 실패한 자만이 품을 수 있는 치열한 독기……, 이사님 눈 너머로 그게 보입니다.”
“!!!”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 첫 번째 인생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함이 인간의 본능 아닐까요?”
느긋하지만 정확한 팩트에 로버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살하려 마음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 없다는 오기에 버텼다.
너무나 억울했던 지난 세월이다.
다시 살아 반드시 세상에 죽지 않았음을 알리고 싶었다.
“믿고 따라오십시오. 로버트 이사님이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살아가게 될 겁니다!”
묵직하게 심장으로 들려오는 대표의 말.
로버트는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했다.
지금껏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믿어주는 이는 부모님 말고 없었다.
하나와 다를 바 없이 생각했던 와이프와 아이들의 배신에 상처 받았던 영혼이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
“대표님을……, 신처럼 따를 것을 제 아버지 크리스 라이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바입니다!”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던 사랑하는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의 이름으로 로버트는 맹세했다.
그리고 로버트는 깨달았다.
눈앞의 이 사내.
뭔가 세상 대박사건 터트릴 위험한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
“역시 아버지 이름으로 맹세한 이유가 있었어~ 흐흐.”
30억 달러를 로버트에게 맡겼다.
큰돈이라면 큰돈이겠지만 내 사업 파트너 능력을 검증하기에는 적당한 액수다.
앞으로 내가 굴릴 돈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했다.
이것에 욕심내면 로버트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다.
관상했던 바대로 로버트는 실력자다.
홍콩에 있는 며칠 동안 로버트는 엄청난 수완을 발휘했다.
자기가 과거부터 알던 직원들 중에서 쓸 만한 펀드 매니저나 직원을 조용히 끌어모았다.
홍콩에서 미국을 몇 번씩 다녀왔다.
올 때마다 철저하게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보름 만에 난 조세피난처에 주소를 둔 헤지펀드의 주인이 되었다.
몇 바퀴 뺑뺑이 돌려 자금을 세탁했다.
법적으로는 완벽하게 문제가 없었다.
역시 월가에서 놀던 인물답게 빈틈이 없었다.
홍콩에 사무실도 얻었다.
클라라가 모를 정도로 은밀했다.
런던과 맨해튼, 홍콩에 헤지펀드 업체가 등록됐다.
관리자 접속 번호와 비밀번호가 나에게만 주어졌다.
내 비밀 병기가 또 완성됐다.
이 녀석들은 공개적 시장을 휘저을 놈들이었다.
물론 세 곳의 헤지펀드 업체들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로버트만 알았다.
로버트가 대표가 됐다.
영국 헤지펀드 이름은 힘, 지배권, 세력가를 의미하는 라틴어 포텐타투스로 명명했다.
미국 헤지펀드 이름은 조용한 별을 의미하는 스틸 스타였다.
홍콩 헤지펀드 이름은 백금을 의미하는 화이트 스톤이었다.
그 이외에도 계속 헤지펀드가 만들어졌다.
비상장 헤지펀드였기에 자본금 공개 의무가 없었다.
몇 바퀴 돌려서 입금이 되어 누가 자본금의 주인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개된 시장에서 누빌 때가 됐다.
“은근히 떨리네~.”
클라라와 매일 홍콩 데이트를 즐겼다.
홍콩 출신답게 일반 여행객은 알지 못하는 맛집과 명소들을 클라라는 잘 알았다.
그렇게 사업 준비와 클라라와의 데이트가 바쁘던 며칠 전 뜻밖의 초대를 받았다.
클라라의 부모님이 나와 식사 한 끼 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 승낙했다.
클라라도 한국 집에 와서 편하게 쉬었다 갔다.
연인 관계는 아니어서 부담이 없었다.
클라라가 몇 번 유혹했지만 난 꿋꿋이 버텼다.
아직 할 일이 많았다.
클라라가 매력적인 여성이긴 하지만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다.
죽기 전 인생이었다면 클라라가 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땡큐를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알았다.
누군가의 남자 친구나 애인이 되기보다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전생 몇 번의 치열했던 연애 경험이 있어 급하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호텔에서 리무진을 빌려줬다.
한 달 동안 최고급 객실을 장기 대여하는 손님에 대한 서비스다.
접대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턱시도를 착용한 운전기사가 트렁크에서 선물을 꺼내줬다.
클라라가 핸드폰에 문자로 적어준 곳에 도착했다.
클라라 어머니를 위한 작은 꽃다발을 준비했다.
장미꽃 47송이.
특이하게 프랑스에서는 기쁜 날에는 홀수 꽃송이를 준비한다는 것도 오늘 알았다.
클라라 아버지를 위해서는 정품 마오타이주 50년산을 준비했다.
호텔에 부탁한 마오타이주 50년산은 2007년도에는 500만 원 밖에 안 했다.
내가 살던 2020년에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중국 명주다.
그렇게 선물 보따리를 든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여기 엄청난 부촌 아니야?’
홍콩 여행 중에 알게 된 홍콩의 대표적 부촌 리펄스베이.
세계적 집값 거품이 오르기 전인 지금도 평당 1억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떡 하니 내가 내려선 집은…….
“단독? 그것도 3층짜리?”
홍콩은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거주하기에 집값이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개중에서 인공백사장으로 꾸며놓은 리펄스베이는 단연 모든 집들의 왕이다.
그런 왕들 사이에 홀로 황좌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단독 주택 앞에서 난 당황했다.
단단한 철문이 버티고 사방에 방범용 카메라가 작동됐다.
이건 주택이 아니라 작은 성이라 해도 믿을 판이다.
‘진짜 여기 사는 거야?’
주소는 틀림이 없었다.
뭐 집이 비싸봐야 1,000억 정도면 뒤집어쓰겠지만 클라라가 이곳에 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니엘!!!”
그때 클라라가 집 문을 열고 나타났다.
CCTV를 보고 있다가 나온 것 같았다.
‘오오오오!’
반가워서 내게 달려오는 클라라를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붉은 봉황이 수놓아진 치파오를 입고 다가오는 클라라.
동양의 청순함과 서양의 섹시함을 동시에 풍겼다.
어디를 가나 모델 소리 듣는 그녀답게 옷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클라라. 집이 대단해.”
클라라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
한 번도 내가 데려다주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내 집이 아니야. 아버지와 어머니 집이야.”
클라라는 빙긋 웃으며 논점을 벗어났다.
‘클라라 나중에 다 당신 거잖아. 외동딸에게 뭘 못 해주겠어.’
호구조사 때 클라라가 외동임을 알았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홍콩에서 이 정도로 살려면 엄청난 부자겠지?’
클라라 아버지가 궁금했다.
프랑스 아내와 함께 홍콩 대저택에 사는 부자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들어가자~.”
클라라가 내 왼팔에 팔짱을 끼고 인도했다.
내 손에 들린 술병 하나를 받아드는 센스도 발휘했다.
그렇게 난 클라라가 거주하는 대저택에 들어갔다.
‘정원도 엄청나네. 홍콩에서 이렇게 살아도 돼?’
워낙 땅값이 비싸 대부분 일반인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그런 평민들이 보면 눈 돌아갈 수백 평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 곳곳에서는 기암괴석과 나무, 탁자 같은 소품들이 적절하게 배치됐다.
유럽과 중국풍의 묘한 조합이다.
그렇게 정원을 가로질러 집 앞에 도착하는 순간.
두 명의 중년 남녀가 현관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아빠! 엄마! 다니엘이 왔어요~.”
클라라가 먼저 그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어서 와요. 클라라의 엄마 엠마뉴엘 삐에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40대 중반의 키 큰 미녀 아줌마가 활짝 웃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다니엘~.”
꽃을 받으며 활짝 웃는 엠마뉴엘이 다가왔다.
쪽. 쪽.
그리고 가볍게 내 양 볼에 키스를 했다.
비쥬라 불리는 프랑스씩 인사법이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머리털 나고 처음 맞이하는 낯선 이국의 예법이다.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은은한 향수를 풍기는 엠마뉴엘.
클라라가 미녀라 불릴 만한 원천이었다.
늘씬한 키에 마른 몸매, 깊은 푸른 눈동자, 화사한 미소가 매력적인 미모의 중년 여인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그녀의 이름은 한국 남자들에게 아주 친근(?)한 명칭이다.
“장미보다 아름다운 엠마뉴엘의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입니다.”
“오! 다니엘~ 프랑스어를 할 줄 아나요?”
엠마뉴엘이 버터 바른 혀로 발음되는 프랑스어에 감탄하며 좋아라했다.
언어는 그렇게 매력적인 외교수단이다.
“다니엘. 어서 오게. 내 집에 온 걸 환영하네. 리장창이라고 하네.”
엠마뉴엘의 나에 대한 환대에 질투의 눈빛을 보내던 중년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나를 시험하려는지 악센트가 강한 광둥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깔끔하게 광둥어로 답변하며 손을 잡았다.
콰아아악!
손에 강력한 압력이 가해졌다.
그때!
‘어라? 이 아저씨 정체가???’
# 6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