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42
643장. 죽음이 더 편안할 것이다 (2)
“어! 저 남자 뭐야?”
“응?”
장주희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는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아래 또 다른 벤치.
근접한 거리에서 은밀히 경호하고 있던 AT 씨큐리티 여성 경호원 두 사람이 행동이 의심스러운 남자를 발견했다.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복장으로 위장해 장주희 근처에 항시 대기했던 두 사람.
평범해 보이기 위해 얇은 화장과 가방을 멨다.
하지만 보통 학생 같은 겉모습과 달리 두 사람의 눈빛은 직업상 매서울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특전사 707 특임대 출신.
성인 남성들 대여섯 명 정도는 혼자서도 바로 제압이 가능할 만큼 빡세게 훈련을 받았다.
상의 탈의 말고는 남자 특임대 대원들과 동일한 훈련을 받아온 그녀들.
평범한 여성 외모와 달리 겸비한 실력은 무시 못 했다.
예리한 여성 경호원들 눈에 띈 남자.
어느 순간 그림자처럼 나타나 장주희 가까운 곳을 어슬렁거렸다.
오늘따라 날씨가 쌀쌀한 탓에 가죽점퍼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대학생들 상당수가 착용하는 야구모자도 평범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경쾌하고 가벼운 걸음걸이는 눈에 몹시 거슬렸다.
신경을 바짝 세워 그의 동태를 지켜봤다.
아는 사이인 듯 자연스럽게 대화를 몇 마디 나누는 남자와 장주희.
눈 깜짝할 사이 남자의 손에 번뜩이는 칼이 들려 있었다.
“!!!”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곧이어 들려온 비명.
“이런 개새끼가!!!”
타다다닥.
가방에서 호신 장비를 꺼내들고 내달린 여성 경호원들.
학교 내에서의 움직임이라 방심했다.
장주희의 신분은 학생.
너무 근접거리에서 경호하는 건 사생활에 방해가 될 뿐더러 환경상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당해 버렸다.
학교 내라 마음 놓았던 안일한 경호가 부른 화.
두 여성 경호원은 사고를 자초한 듯해 치솟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연봉이 1억을 넘는 직장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있는 직장.
그 몸값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데서 오는 자괴감.
무엇보다 프로 경호원으로서의 용납하기 힘든 실책.
이를 악물고 놈을 향해 뛰었다.
그 순간.
빠지지지지지지직.
갑자기 사방을 환하게 밝히는 푸른빛이 터졌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남자.
“???”
두 여성 경호원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퍼어억!
그대로 몸을 날려 장주희를 습격한 자의 몸통을 날라 찼다.
게거품을 물고 비명을 지르던 남자가 바닥을 굴렀다.
“괜찮습니까?”
서둘러 장주희의 상태를 살폈다.
“네? 네.”
장주희도 놀라고 당황한 건 마찬가지.
갑자기 다가선 남자가 꺼내든 칼날이 번뜩일 때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살기에 번들거리는 노란 눈빛에 어떤 반응도 못했다.
칼날이 번뜩였고 심장에 충격이 가해졌다.
그렇게 칼끝은 장주희의 심장을 찔렀고 동시에 남자는 파란 빛에 휩싸여 버렸다.
모든 게 한순간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남자는 거품을 토했다.
“아가씨!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경호원들은 마음이 급했다.
상의에 구멍이 보였지만 다른 곳은 상한 곳이 없는 듯했다.
손으로 충격을 받은 자리를 매만지던 장주희.
‘설마!’
순간 며칠 전 오빠가 가족들에게 나눠준 선물을 떠올랐다.
은은하게 은빛으로 빛나는 특이한 속옷.
바로 피부 위에 닿아도 된다고 했던 언더웨어.
굳이 세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특별한 옷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실제로 입는 순간 몸에 착 달라붙었다.
이번에 특수 개발된 소재라고 편하게 입어보라고 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자체적으로 시원해진다는 속옷.
감촉도 보통 속옷보다 매우 좋았다.
섬유 자체에서 묘한 향기도 났다.
봄날 바람 부는 시원한 언덕에서 맡게 되는 꽃향기 같았다.
기분도 한결 좋아졌다.
웬만한 스트레스는 모두 사라지고 매순간 긍정적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했다.
대신 조건은 꼭 평소에도 입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특히 집 밖의 활동을 하게 될 때는 반드시 착용하라던 당부.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당부하는 오빠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주, 주희야 괜찮아?”
“응. 다행히…….”
“이 미친놈은 뭐야?”
“112에 신고했어! 저런 놈은 콩 밥 먹어야 해!”
“콩밥이 아니라…… 향냄새 맡는 거 아냐?”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한 듯한 남는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몸뚱이만 떨었다.
“죽어도 싸! 나쁜 놈!”
미래에 사람을 살리는 의사들이 될 의대생들.
장주희를 덮친 남자를 향해 베풀 자비심 같은 건 없어 보였다.
“……살아도 산 게 아닐 겁니다.”
경호원들은 이런저런 소문을 들어 짐작할 수 있었다.
회장 장태산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건드린 자를 결코 용서치 않았다.
***
“대충 견적 나왔습니까?”
“네? 넵!!!”
시장 세르게이 알리하노프는 수첩에 빼곡히 적힌 내용을 보면서 힘껏 대답했다.
차르가 앞에 있어도 이렇게까지 바짝 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극동의 중심지로 키워준다고 말했지만 중앙 정부의 지원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한때 북한을 관통해 한국까지 연료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려 계획하기도 했지만 무산됐다.
시베리아 종착역을 한국의 부산처럼 키우고 싶은 욕심도 냈다.
한 번 완성되면 러시아에 지속적인 이익을 가져올 만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남과 북의 관계가 장애물이었다.
분단된 남과 북은 생각했던 것보다 이념이 달랐고 또 쉽게 가까워질 수 없었다.
단절된 세월 동안 쌓인 불신과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이 끊이지 않았다.
당사자들 간의 문제를 넘어 주변국들이 더 통일을 원치 않았다.
입지적 조건이 좋은 러시아만이 남과 북의 통일을 적극 반기는 입장이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파트너로서 한국이 필요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지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너무 열악했다.
관광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산업이 거의 없었다.
항구도 겨울이 되면 제약을 많이 받았다.
부동항이라 불렸지만 외항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내항만 부동항 구실을 하는 수준.
그런 여건에 있는 시에 제안한 엄청난 투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문난 맛집으로 초대해 거하게 대접했다.
이어 시청에서 갖게 된 투자 계획에 대한 회의.
시청과 주지사 휘하의 고위 공무원들이 바깥에 모두 모여 계산기를 두들겼다.
한국 투자자는 성격이 급했다.
눈치가 빠른 시장과 주지사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러시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행동력.
차르와 다니엘의 눈 밖에 나면 안 될 일이다.
다니엘 장은 차르의 형제다.
‘호텔에 공항과 항구 확장, 놀이동산과 공업 단지 및 상업 지구 개발까지……. 도대체 투자될 자산이 얼마란 말인가!’
주지사 올레그 보로비예프도 격정에 찬 시선으로 한국인 다니엘 장을 바라봤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푸틴보다 더 경외스러운 존재였다.
가볍게 툭툭 던지는 사업들마다 한 건당 최소 투자액 10억 달러는 가뿐하게 넘어갔다.
“얼맙니까?”
“대략적으로 80억 달러가 넘어갑니다.”
“그래요? 얼마 안 되네요.”
“!!!”
러시아는 한때 수십억 달러가 없어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다.
특히 물가가 저렴한 러시아에서 80억 달러는 엄청난 자금이었다.
지금껏 블라디보스토크에 투자한 어떤 투자자도 이런 거액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국제 변호사를 보낼 겁니다. 모든 사업은 국제 규격에 맞게 양해 각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언제 말입니까?”
말만 요란하게 해놓고 막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고간 얘기들이 사실 황당한 수준임은 틀림없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만한 사업 얘기.
차르의 전화가 따로 없었다면 장난친다고 총을 꺼냈을 수도 있었다.
“내일 도착할 겁니다.”
“내일요?”
‘벌써 다 준비한 거야?’
시장과 주지사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 젊은 청년이 보기보다 매우 치밀한 사내라는 걸.
“그럼 기다려요?”
“아닙니다! 바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주지사와 시장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외쳤다.
외자 유치는 도시 발전의 필수불가결 조건.
기대하지도 않았던 돈을 덥석 내놓겠다는 투자자에게 머리를 조아려도 시원치 않았다.
받들어 경배를 해야 할 지경.
“여러분들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건설 부분은 한국 측 대형 건설사가 메인 파트너로 참여할 겁니다. 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과거에 건설한 연대 호텔도 한국 기업이 진행했습니다.”
“산업단지에 근무할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두십시오. 취업 박람회 같은 걸 열어도 됩니다. 극동 연방 대학교와 블라디보스토크 국립 경제 서비스 대학에서 지역 인재를 선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알고 있었어?’
주지시와 시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돈 많은 졸부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툭툭 던지는 말속에 러시아에 대한 해박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더욱이 러시아어 구사 능력은 기가 막힐 수준.
극동 지방 사투리까지 완벽하게 구사했다.
러시아 문화를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쓸 수 있는 러시아식 유머도 간간이 쓰고 있었다.
“모집 주체는 누가…….”
이 부분이 중요한 지점이었다.
인원을 어느 정도 뽑아야 하는지 알아야 취업 박람회를 열 수 있었다.
“산업 단지에 들어갈 여러 기업들은 제가 선발할 겁니다. 그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모집 분야와 인원, 급여 체계를 제시하겠습니다.”
꿀꺽.
빈말이 아니었다.
불도저처럼 말 나오는 대로 파격적으로 밀어붙이는 다니엘 장.
“러시아의 위대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세계적으로 사람들 인식은 술주정뱅이가 넘친다고 알고 있는 러시아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춥고 척박한 대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피어나고 있는 수많은 천재들.
그들이야 말로 러시아를 지탱하는 보물들이었다.
“그들이 거주할 공간에 대한 주택부지 사업도 진행해 주십시오. 새로운 주거단지를 건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시장실로 바로 연락 주십시오!”
“주지사실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실업률이 아직도 높은 러시아.
젊은 인재들을 이곳에 묶어두고 외지에 나갔던 인재들까지 다시 끌어올 수 있다면 블라디보스토크는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구가 100만이 넘으면 연방정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다.
넓은 러시아에서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가 진행 중인 연해주의 주지사실에서는 시내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멀지 않은 곳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시작점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이 보였다.
“모스크바까지 횡단 철도를 타면 한참 걸리겠군요.”
“과거보다 빠르지만 모스크바까지 거의 9000킬로미터가 넘는 긴 여정입니다. 최소 일주일입니다.”
“……고속 철도라면 시간이 엄청 단축되겠군요.”
“고, 고속 철도요!!!”
시장과 주지사는 내심 충격을 받았다.
고속 철도 건설은 러시아 자체적으로는 불가능한 사업이었다.
사업비 규모가 천문학적이었다.
중국처럼 달러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기초 과학 기술은 충분했지만 응용 기술과 관련 산업 시설은 턱없이 부족했다.
한국과 같은 작은 국가도 설비를 갖추고 있는 고속철도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나 만약 시베리아 철도가 고속철도와 같이 운영된다면…….
‘신이시여!’
정교회를 믿는 두 명의 남자는 마음속으로 성호를 그었다.
신이 주신 러시아의 기회.
농담으로 던진 말 같지 않았다.
공사 기간 동안 창출될 엄청난 부가가치.
그리고 건설이 된 이후 벌어들이게 될 천문학적인 수익.
그렇게 되면 블라디보스토크는 더 이상 극동의 일개 도시가 아니게 된다.
“……. 외람된 질문이지만 다니엘 장님께서는 왜 이렇게까지 투자를 하시는지요?”
도저히 저 젊은 한국인의 투자가 이해되지 않는 주지사 올레그가 공손하게 손을 포개며 질문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운명을 손에 쥔 황제를 대하는 듯한 최상의 예.
“……신이 러시아에 주는 선물이 아니겠습니다.”
씨이익.
다니엘 장이 예사롭지 않게 웃었다.
파아아앗.
마치 성자인 듯 그의 등 뒤에서 빛나는 엄청난 후광.
올레그 보로비예프 주지사와 세르게이 알리아노프는 두 눈을 의심했다.
진심으로 다니엘 장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차르보다 더 헌신하며 섬겨야 할 신의 대리자로 여겨졌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다니엘 장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잠시만.”
양해를 구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는 다니엘 장.
“뭐라고 주희가……!”
통화를 나누다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며 격해진 다니엘 장의 목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가 튀어 나왔다.
“알았습니다. 당장 갈 테니 기다리십시오!!!”
뚝.
짧게 통화를 끝낸 다니엘 장.
우두둑.
손등의 핏줄이 터질 만큼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주현태……. 당신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또 넘은 겁니까.”
화르르르르르르.
눈부시게 빛나던 신의 후광 같았던 은은한 빛이 붉은 빛을 띤 색깔로 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분노를 감추지 않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다니엘 장의 모습.
주지사와 시장은 낯선 공포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경직된 채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분노하고 있는 한국인 다니엘 장이 보통 인간이 아님을.
선한 신과 악마의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품고 사는 범접하기 두려운 존재였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