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44
645장. 죽음이 더 편안할 것이다 (4)
“……고속철도?”
“그렇습니다. 각하.”
러시아의 차르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보고 진심으로 놀랐다.
다니엘 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선물 폭탄을 안길 거라 짐작은 했지만 고속철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500억 달러는 장기 투자 정도로 여겼다.
누구도 러시아에 그런 큰돈을 투척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니엘 장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던 푸틴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행동했다.
한없이 넓은 땅은 만족스러웠지만 이동 제한이 너무 많았다.
미국처럼 인구가 집중돼 있거나 도시가 발달해 있다면 여객 산업이라도 함께 발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공항마저도 대부분 낙후되어 있는 상황.
워낙 비행기 좌석 가격이 높아 서민들은 이용하지 못했다.
장거리 이동 수단으로 철도를 사용할 수밖에 현실.
제정 러시아 시대에 만들어졌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러시아의 동맥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래 전부터 철도 현대화 산업을 추진해 왔지만 번번이 진척되지 못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나 세계 금융 대위기,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및 제재 등등으로 발이 묶였다.
당장 빵 살 돈도 없는데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기에는 재정 여력이 너무 부족했다.
2009년에야 겨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구간에 시속 25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는 철로가 놓였다.
다른 지방은 소치 동계 올림픽을 위해 독일 지멘스사와 협력해 공사 중이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최고 속도 200킬로미터도 나오지 않는다.
노후화된 철로를 순차적으로 바꿔가는 것도 벅찼다.
“누가 다니엘에게 알려준 것 아니야?”
“극비로 진행 중인 사항입니다.”
몇 달 후 모스크바와 카잔 노선의 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깜짝 발표할 생각이었다.
2020년 완공을 목표로 계획 중인 대규모 사업.
총 길이가 770킬로미터가 넘고 최고속도가 400킬로미터나 되는 진정한 고속철도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규모가 큰 국가사업에 대한 얘기를 다니엘 장이 먼저 꺼냈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고속철도가 깔린다면 3일 내에 닿을 수 있는 생활권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7일이 넘는 시간 동안 좁은 객실에서 보내야 하는 여행 시간은 단축 될 것이다.
그 대신 훈제 생선과 괜찮은 보드카를 마시며 낯선 이들과 대화를 나누던 정감 있는 모습들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푸틴도 몇 번 타 본 적이 있는 횡단철도.
은빛 몸통을 자랑하는 자작나무숲을 지나며 풍경을 감상했던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아니야, 나의 형제는 SFR 계획 냄새를 맡았어.”
“네? 러시아 슈퍼페스트 프로젝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참모이자 푸틴의 복심인 미하일이 크게 놀라며 물었다.
“맞아. 그걸 노렸어.”
“……지금 중국 기업과 고속철도 혁신 프로그램에 대한 MOU를 체결하기 직전입니다. 중국 정부가 개발은행과 철도공사를 통해 금융지원을 할 예정이구요. 그걸 알고 끼어들었다는 겁니까?”
“내 짐작은 그래.”
“최소 200억 달러를 단기간에 투입해야 할 사업입니다. 철도 교량 만 200개 이상을 세워야 하고……. 새로운 철로를 양방향으로 건설하기 위해서는……. 1000억 달러 이상 집행돼야 합니다.”
“200억? 1000억 달러? 나의 동생을 우습게 보는군. 후후훗.”
푸틴이 기분 좋게 웃었다.
지난 40년 동안의 숙원이 전혀 예상 밖의 인물로 인해 대대적 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
유라시아 회랑과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
사업을 위해 한국과 일본, 유럽과 중국이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들 모두 돈 냄새를 맡았다.
새로운 철도가 부설되면 유럽으로 향하는 수출품의 단가가 획기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내가 사람은 제대로 봤어.’
몇 발 앞을 내다보고 사업을 추진 중인 다니엘.
만약 고속철도 문제가 현실화 된다면 푸틴은 앞으로 20년 동안은 끄떡없이 권좌에 앉아 있을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건립될 공장단지는 어떤 사업 분야입니까?”
평소에 푸틴에게 조언을 해주던 미하일이 도리어 물었다.
자신을 배제하고 푸틴과 다니엘 두 사람만 나눈 밀담이었다.
“자세히는 나도 잘 몰라.”
“네?”
“대부분 반도체 산업과 연관된 기초 산업 기술을 요구했어.”
“반도체라면…….”
대한민국이 지금의 경제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압도적인 반도체 생산 능력 때문이었다.
미국과 대만, 일본 반도체 업체들을 치킨 게임으로 날려버리고 왕좌를 차지했다.
푸틴도 부러워했던 부분.
오정 같은 반도체 기업 하나만 있었다면 러시아의 역사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에칭 가스 같은 소재 부분 말이야.”
러시아에서도 핵무기와 여러 산업을 위해 생산 중인 고순도 에칭 가스.
기밀에 붙이고 진행 중인 사실을 장태산은 다 파악하고 접촉해 왔다.
“반도체 소재는 일본이 잡고 있지 않습니까? 풀리지 않는 과거사가 여전하지만 양국 간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제 협력과 신뢰가 있습니다. 그걸 무시할 수 없습니다.”
참모 미하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건 나도 몰라. 다만 다니엘이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계획이 성공한다면 일본은 뼈아픈 일격을 맞겠군요.”
“그것도 알고 있을 거야.”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과학원에서 올라온 보고서 있잖아. 앞으로 몇 년 후가 되면 일본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술수를 쓸 거라는 예견 말이야.”
“아!”
참모 미하일은 깜짝 놀랐다.
러시아의 최고 두뇌들이 모인 과학원은 앞으로 벌어질 세계 경제 전쟁이나 충돌 예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러시아가 직면할 위기에 대해서도 그들은 냉철하게 미리 경고했다.
하지만 기초 체력이 약하다 보니 다 알고 있으면서도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가장 최근 올라온 보고 내용 중 하나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일본의 견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북한의 통일을 두려워했다.
퇴보해 가는 자신들의 나라와 달리 통일의 과업을 해결한 후 세계를 호령하게 될 한국의 발전을 어떻게든 가로 막고 싶어 했다.
“만약 다니엘이 진짜 그것까지 예측하고 움직였다면……. 나는 그에게 러시아의 미래도 맡겨 볼 생각이야.”
“각하!”
“피를 나눈 형제보다 나의 신뢰와 사랑이 더 깊어지고 있어. 절대……. 녀석은 먼저 배신할 사람이 아니야.”
푸틴은 확신하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니엘 장은 직접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했다.
‘동생 어디 마음껏 한 번 놀아봐. 이 형님이……. 뒤에서 화끈하게 지원해 주겠어.’
러시아의 품으로 들어오는 순간 미국도 감히 터치하지 못했다.
탄탄한 방공망과 핵폭탄은 그 누구의 침해도 허락지 않았다.
익히 그 모든 사실을 알고 판을 벌이기 시작했을 다니엘 장.
“그런데 지금 동생은 한국에 간 거야?”
“가족 중 누군가가 습격을 당한 것 같았습니다.”
“습격! 감히 어떤 놈이!”
자신의 일처럼 분노하는 푸틴.
“잘 모르겠습니다.”
“지시해. 누가 겁도 없이 다니엘의 가족을 건드렸는지 면밀히 알아봐서 보고하라고!”
“넵! 각하!”
***
촤아아아아악.
콰다다다다다다당.
“크으으윽.”
“벌써 힘들어?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주현태는 피할 겨를도 없이 사정없이 뺨을 얻어맞고 뒹굴었다.
눈은 퉁퉁 부어 눈꺼풀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았다.
팔과 다리는 부러진 듯 멋대로 흐느적거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았던 회초리가 전부였던 주현태.
이렇게 초주검이 되도록 구타를 당해본 적이 없었다.
19금 영화에서나 연출될 만한 잔혹한 폭행.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그마…… 해…….”
입술이 불어터져 발음도 샜다.
비릿한 비린내를 풍기는 피가 입에 가득 고였다.
눈의 초점이 자꾸 풀렸다.
“뭘 그만하라는 거지? 넌 외할머니를 죽이고 조카인 나와 동생까지 죽이려고 했어. 그런데 겨우 몇 대 얻어터졌다고 그만? 그건 계산법에 안 맞잖아.”
히쭉히쭉 잔인한 얼굴로 웃는 장태산.
부르르르르.
인간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태산의 모습에 주현태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뜨겁게 또 한 번 바지를 적셨다.
저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놈은 진짜 악마였다.
흉내나 내는 자신과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쿨럭쿨럭…….”
주현태는 입에서 핏물을 쿨럭 거리며 게워냈다.
“이런 많이 아프겠네. 힐~.”
파아아앗.
주현태 의식이 흐려지려는 순간 낯선 한마디 말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눈꺼풀에 빛이 투영되는가 싶더니 온몸을 감쌌다.
“!!!”
주현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부러져 힘을 잃었던 관절에서 통증이 사라지고 얻어터져 피가 흥건하던 자리가 아물었다.
순식간에 몸뚱이가 상쾌해졌다.
살짝 힘을 실어본 팔다리가 다시 말을 들었다.
눈꺼풀이 가벼워지고 앞이 환해졌다.
“클리어!”
다시 한 번 들리는 낯선 한마디.
휘리리리링.
이번에는 상쾌한 바람이 몸을 감쌌다.
핏물이 묻은 옷과 바닥에 흥건하던 핏자국이 모두 깨끗해졌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악몽을 꾼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귀를 의심하게 하는 천둥 같은 목소리.
“사, 살려줘!!!”
털썩.
주현태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고개를 떨군 채 머리를 들지 못했다.
영혼 깊이 각인된 장태산의 폭력.
낯설었던 만큼 충격이 더 컸다.
진짜 미친놈 같은 장태산은 자신을 죽이고 말 것 같았다.
자존심이고 뭐고 이제는 다 필요 없었다.
일단은 목숨을 부지하고 이 자리에서 벗어나 살고 봐야 했다.
“아파?”
‘아프다! 이 미친놈아!’
비웃듯 묻는 장태산의 물음에 주현태는 혼이 나가기 일보직전이었다.
장태산의 손에 얻어터질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였다.
다 알고 있는 듯 가장 고통스러운 신체 부위만 골라 가격했다.
“태산아…… 이 외삼촌을 한 번만 용서해 주면…….”
퍼억!
용서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턱에 날아든 장태산의 발길.
콰다다당.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주현태의 몸은 둥 떠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눈앞에서 반짝반짝 별이 빙빙 돌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충격에 사지가 굳어 버렸다.
“힐!”
그때 또다시 반복된 이상한 말.
파아아앗.
아까처럼 빛이 몸을 감싸 안았고 이내 또 고통이 사라졌다.
하지만.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벌떡 일어나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타인에게 애원하듯 매달리는 주현태.
어떤 생각도 일으킬 수 없었다.
더 이상의 폭행만 가해지지 않는다면 다른 소원이 없었다.
“아프냐고 묻잖아!”
“네! 아픕니다! 많이 아픕니다! 흐으윽.”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흘렀다.
그룹 회장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진작 바닥에 굴렀다.
지속되는 폭력에 비굴한 본성을 드러내고 굴복해 버린 한 남자의 비참한 모습.
“외할머니도 아프셨겠지. 그렇지?”
“맞습니다! 많이 아프셨을 겁니다.”
“왜 죽였어?”
“미워서 죽였습니다!”
퍼어억!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이 돌아갔다.
콰다당.
다시 몸뚱이가 쓰러지며 바닥을 뒹구는 주현태.
이대로 기절하거나 아예 죽고 싶었다.
온몸의 힘이 거짓말처럼 쭉 빠졌다.
“힐!”
그때 또 다시 들려오는 무서운 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개운해지는 몸뚱이가 차라리 원망스러웠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왜 동생을 죽이려 했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처럼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빛으로 묻는 장태산.
“……고통을 주려고.”
빠아아악!
이번에는 머리통으로 날아든 발길.
한 번에 얼굴이 돌아갔다.
이제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주현태.
턱이 빠진 듯 벌어진 입으로 침이 질질 흐르기 시작했다.
“힐…….”
그러나 악마의 탈을 쓴 지옥의 사자는 결코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날…… 죽여……. 차라리! 죽여 달라고오오오오오!”
온 힘을 짜내 소리치는 주현태.
“조금만 참아. 지옥문이 곧 열릴 거야~”
인자하기 그지없는 악마의 목소리.
“그런데 갈 때 가더라도 네가 세상에 뿌려놓은 고통의 흔적은 지우고 가야지. 그리고 그 대가 역시 지불하고. 그래야 지옥에서 덜 맞아.”
다시 손을 치켜드는 장태산.
파르르 파르르르.
사정없이 흔들리는 초점 없는 주현태의 눈동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주현태는 온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이내 의식과 모든 육체의 교감이 툭 하고 끊어졌다.
더 이상 반복적인 육신의 고통을 견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주현태.
인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다 놓아버릴 만큼의 큰 고통의 끝.
주현태는 지금까지 사는 동안 쌓았던 그간의 죗값을 화끈하게 한 자리에서 치르고 있었다.
“헤에에에……. 헤에…… 흐으으으으……. 형아……. 아파……. 헤에에에.”
주현태는 더 이상 동룡을 이끌었던 그가 아니었다.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와 제 기능을 상실한 이성.
닫히지 않는 벌어진 입으로 연신 침이 흘러내렸다.
완벽하게 정신과 육신이 각각 제 갈 길을 찾아가 버렸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