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56
657장. 리처드 요한슨.
“외교 수장에 오른 걸 감축드립니다. 장관님.”
“감사합니다. 대사님.”
“하하. 이제는 대사 아닙니다. 그저 일개 기업의 고문일 뿐입니다.”
외교부가 위치한 광화문.
장관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북악산과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정부기관 상당수가 지난해 세종정부청사로 이전하면서 외교부는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외교부 장관실에 손님이 찾아왔다.
오병성 장관과 비슷한 이미지로 지난 10년간 한국 주재 일본 대사를 지낸 인사.
아소 마토.
작은 키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위 외교관으로 10년 넘는 한국 생활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한국 정관계뿐만 아니라 재계에도 친분이 많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한국 TV에 출현해 눈물로 감사함을 표했던 일본 대사.
그는 퇴임 후 자국 대기업 고문이 되어 한국을 다시 찾았다.
“차 드십시오. 본국 이토엔에서 수입한 유기농 녹차입니다.”
“오늘 입이 호강합니다.”
마토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한국 외교부 장관은 본국에서 심혈을 기울여 꽂아 넣은 간세였다.
위안부와 징용공에 대한 문제에 있어 일본 정부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간 배상 문제는 과거에 해결됐지만 개인이 입은 손해에 대한 민사소송은 계류 중이다.
일본은 이 문제를 지켜만 보는 입장일 수는 없었다.
한국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면 각종 소송이 뒤를 이을 게 빤했다.
더욱이 아직 북한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국가와 개인 등 모든 사안에서 배상 책임이 남아 있는 북한.
한국 문제를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안 좋은 케이스를 남기게 될 게 확실했다.
온 힘을 다해 대처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아소 마토는 자신 있었다.
눈앞의 한국 외교부 장관은 과거부터 알고 지내던 자다.
외무고시를 통해 관직에 올랐지만 유난히 돈을 밝히는 자.
돈을 위해서라면 나라를 팔아먹었던 구한말 친일의 잔류가 눈앞에 있었다.
리앤장에 있을 때부터 상당한 돈을 쥐어줘 왔다.
아니 그 전 외교관일 때부터 공적 자금으로 관리해 왔다는 말이 맞았다.
‘이런 자를 장관으로 뽑다니. 한국 놈들이란…… 쯧쯧.’
아소 마토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오병성에게는 자국을 위하는 애국심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다.
게다가 약점도 많았다.
일본 한국 대사관 근무시절 여성을 엮어 포섭했다.
어찌나 여자를 밝혔던지 포섭에 나섰던 자가 빠가야로라며 욕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 자가 외교 수장이 됐다.
냉정하게 한국의 미래를 보면 암담하지만 역시 일본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터져 나오는 과거사 문제를 이번 기회에 해결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적절히 한국을 사용할 일들이 많아졌다.
어차피 정권 태생 자체가 도덕적으로 흠결이 넘쳤다.
일본에서도 권력 실세나 진배없는 주순자에 대한 정보는 진작 수집해 알고 있다.
그 역시 한국인들만 몰랐다.
미국도 한국 정세의 흐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윗선의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게 되면 여러 가지로 협상하기가 용의해졌다.
어차피 국민들은 여론에 의해 줏대 없이 쏠려다니게 마련.
약점을 빌미 삼아 마음껏 조종하고 정당한 협상을 하는 척만 하면 먹을 게 많다는 걸 미국 정권도 알았다.
애국심과 도덕성에 흠결 있는 권력은 역사적으로 뒤탈이 생기게 마련.
편법과 불법으로 정권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일본도 마찬가지 사정.
다만 일본은 천황폐하와 신민들을 위해 어떤 짓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한국 독재 정권의 잔재는 오로지 자신의 입지와 최측근 주변인들만을 위해 기꺼이 국민들을 버렸다.
허점이 많은 정부인만큼 아소 마토는 느긋했다.
지금 당장 마음만 달리 먹는다면 앞에 앉은 외교부 장관 정도 쫓아내는 건 일도 아니다.
“대사님,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기탄없이 말씀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 아닙니까.”
오병성은 웃는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일본과 관련된 모든 인사는 모두 돈으로 직결됐다.
리앤장에서 고문으로 있을 당시부터 1년에 수억 원씩 보조금을 받았다.
퇴직 외교 관리치고는 단가가 비싼 편이었다.
오늘 만남도 진한 돈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일본인들은 작은 부탁이라도 들어주면 자연스럽게 성의를 함께 표시할 줄 알았다.
“작년 7월 저희 주한 일본대사관 참사관이 한국 외교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습니까? 제가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장관님도 다 알고 계시는 내용입니다. 일본 정부는 2012년 6월에 발생한 한국 대법원의 ‘일본 제철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책임이 있다’는 원심 파기 내용에 심각한 우려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관님을 통해 부탁도 하면서 일본 정부의 의견을 전달코자 합니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지요.”
‘흐흐. 이거 제대로 한몫 챙기게 됐군.’
오병성은 예상했던 대로 진한 돈 냄새가 나자 무척 행복했다.
전직 일본 대사이자 일본제철의 고문인 아소 마토.
그의 전언은 일본 정부의 비공식 루트를 통한 유려 전달이었다.
“장관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십시오. 일한의 우호적인 교류에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면 서로 나쁜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대사님도 아시다시피 외교부나 정부가 재판에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삼권이 분리된 대한민국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는 말로 여지를 뒀다.
반짝.
아소 마토가 말뜻을 알아들었다.
“내정간섭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게 다 일한 양국의 우호를 위한 목적이 아니겠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손을 써준다면 섭섭지 않게 일본 정부는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말입니다.”
씨익 웃어 보이는 아소 마토.
마토라는 이름 자체가 ‘목표’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소 마토는 한 번 목표한 바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끝을 보는 성미였다.
국가적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파기 환송심이 서울 고법에 배당됐습니다. 정부도 대법원의 뜻을 따라야 하기에 좀 어렵습니다.”
“장관님…… 왜 이러십니까. 서로 알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 새끼 이 와중에…….’
아소 마토는 능구렁이처럼 비열한 오병성의 모습이 불쑥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일본인 특유의 안면 표정 유지와 내숭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여기 일본 정부의 비공식 문건입니다. 만약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면 한국 정부에 책임을 추궁할 것임을 밝혀 두었습니다. 그러니 한국 입법부와 행정부는 사법부에 대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 막아 주셔야 할 것입니다.”
“…….”
불편한 듯 입맛을 다시는 척하는 오병성.
스윽.
그때 아소 마토가 두툼한 종이봉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한국 무기명 채권으로 준비했습니다.”
오병성의 눈이 대번에 반짝였다.
“아니 이러지 않아도 제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는데…….”
오병성 입술 주변 주름이 감출 수 없는 기쁨으로 파르르 떨렸다.
“괜찮습니다. 양국 우호를 위한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국회와 언론 쪽도 다른 방식으로 섭섭지 않게 전달됐습니다. 청와대만 잘 구슬려 주십시오. 그럼 다음에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파밧.
두 사람의 눈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쳤다.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두 사람.
“알겠습니다. 양국 우호를 위해 대한민국 외교부 수장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조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임명된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여러 분들이 그렇게 꽉 막힌 분들은 아닙니다.”
“하하하. 그래야죠. 일한 양국의 우정이 한두 해 쌓아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소 마토는 ‘한두 해’라는 말을 강조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수면 아래서 육성해 온 친일인사들.
‘너희들은 다음 세상에도 우리 대 일본 제국의 개로 태어날 것이다.’
오병성과 현 정권이 하는 짓을 토대로 미래를 예상해 보는 아소 마토.
돈 몇 억에 한민족의 결의와 자존심을 싸게 구입했다.
이익과 이익을 서로 나눠 갖게 된 두 사람.
한 사람은 조국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불법을 등에 업고 양심을 팔고 있었다.
이 일이 후대에 가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병성도 이 자리를 얻기 위해 뿌린 돈이 적지 않았다.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양심은 물론 영혼까지 팔아야 했다.
재외공관장들도 대거 받을 만큼 받고 승진 시켜 줄 예정이다.
‘재테크는 빌딩이 최고지. 흐흐흐.’
자신을 비롯해 대한민국 전체를 비웃고 있는 아소 마토 앞에서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 오병성.
머릿속은 온갖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역시 자가용 비행기야…… 아우. 개운하다.”
미국에 왔다.
비행기는 침대가 딸린 큰 놈으로 준비했다.
한숨 푹 자고 난 조윤태 이사님은 활기가 넘쳤다.
트럼프 형님이 준비하겠다고 한 선물에 대해 잔뜩 기대한 표정.
한때는 일과 가정밖에 몰랐던 남자가 참 많이 발전했다.
“놀러온 것 아닙니다. 출장입니다. 할 일 많습니다.”
조윤태 이사님을 비롯해 외국어가 유창하고 인수 합병에 능통한 삼우로펌 변호사들 몇 명이 함께했다.
나와 몇 번 손발을 맞춰봤던 변호사들은 누가 자신들의 진짜 오너인지 알고 있었다.
“걱정 마. 내가 일처리는 꼼꼼하잖아.”
조 이사님 넉살도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딱딱하던 전직 차장 검사 모습은 아주 오래전 사라졌다.
내 병실에서 사기꾼 같은 검사를 발로 까던 카리스마 넘치던 과거의 조 이사님.
그 모습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멀어졌다.
“오셨습니까.”
LA 공항 출구장 밖으로 나오자 씨큐리티 소속 경호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미국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들로 구성된 경호원들.
미국에 충성하던 로버트 경호원들을 밀어 내고 핵심 멤버가 됐다.
총기 소지도 가능했다.
눈빛이 달랐다.
전직 특수대원들에게 총은 날개와 같았다.
나와 인사하는 도중에도 주변 경계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든든하고 마음에 들었다.
일상생활 중에도 총을 맞는 일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나라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 자신 또한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곳이었다.
“다들 수고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보스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경호원들과 함께 공항 밖으로 이동했다.
눈에 띄는 우리 일행을 사람들이 쳐다봤다.
동양인으로 구성된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 존재.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조 이사님과 변호사들도 바짝 긴장했다.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는 걸 이제 체감하고 있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적도 이 나라에 존재했다.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나를 제거하려던 오바마.
미국의 국익 앞에서 내가 이롭지 않은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똑똑한 인재다.
나를 적으로 삼는 게 아쉬울 뿐.
그를 지원할 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내게 주어졌던 권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기껏 훈련병 시절과 한국 정부와의 마찰 때 몇 번 이용했을 뿐.
오바마에게 있어 나는 채무보다 채권 행사로 만날 기회가 더 많았다.
나를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안전장치는 필요한 만큼 만들어 두었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오바마는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그의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4년 중임제 미국 대통령은 중임 이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레임덕에 빠진다.
오바마가 추구하는 이상적 민주주의에 미국인들이 신물을 냈다.
태생이 전쟁과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는 아메리카 백인들.
자신들의 피로써 권리를 쟁취한 유럽 정치 선진국들과 사상이 달랐다.
역사가 짧은 미국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
경제나 안보 이슈가 있을 때 내부의 용광로가 작동하면서 동화되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그만큼 분열도 빨랐다.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
백인과 유색 인종간의 대결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분열과 위기감을 조장해 먹고 사는 타락한 정치인의 표상이 바로 트럼프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가장 저열한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표출하는 미국 대통령.
그게 바로 미국인 상당수의 감춰진 본심이다.
국가 이익을 위해 포장한 세계 경찰이라는 타이틀도 지겨워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2020년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미국도 한국을 뜯어 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무역전쟁의 포구를 다른 상대가 아닌 약소국 한국을 향해 돌렸다.
제2의 IMF.
이제 판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그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나와 가정, 그리고 내 나라 내 민족은 스스로 지켜내는 수밖에 없다.
비굴하게 타국의 종살이를 할 건지 내 나라에서 독립된 주체로 살아갈 건지 선택해야 한다.
모두에게 직면하게 될 문제들은 그 대답을 요구할 것이다.
그 시간이 가까워졌다.
“차에 타십시오.”
방탄리무진 차가 준비됐다.
경호원들이 사용하는 묵직한 대형 SUV도 보였다.
마치 국가 중요 인사를 경호하는 듯한 장면이다.
경호원이 뒷문을 열었다.
저벅저벅.
그때 일단의 백인 경호원들이 나타났다.
스스슥.
나를 에워싼 경호원들이 앞을 막아섰다.
파바밧.
마주한 경호원들 사이에 눈싸움이 벌어졌다.
공항 경비를 보고 있던 경찰들이 우리 일행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다니엘 장 대표님이십니까?”
나타난 일단의 백인 경호원들 중 한 명이 나를 보며 물었다.
태도는 정중했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특정인과 만남이 약속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까칠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이 보낸 기운이 부드러웠다.
“대표님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누가 말입니까?”
“리처드 요한슨 상원의원님이십니다.”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