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6
65장. 연속되는 인연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 하아, 요 녀석 정체가 뭐란 말인가?’
리장창은 거침없이 1프로 지분에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겁 없는 녀석에게 어이가 없었다.
리장창은 화교의 보이지 않는 대부라 불렸다.
홍콩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같은 화교권에서 리장창은 어른으로 통한다.
본토 최상부 권력층과도 연줄이 상당한 리창창이다.
본토에 투자되는 화교 지분의 상당수가 리장창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그런데 눈앞의 어린 녀석이 도발했다.
미화 10달러쯤을 푼돈으로 여겼다.
순수하게 현찰로 10억 달러는 리장창에게도 상당히 큰돈이다.
리장창은 고민에 빠졌다.
농담은 아닌 게 눈빛으로 보였다.
지금껏 돈과 관련된 수많은 인간들을 만났지만 이 녀석만큼은 속을 알 수 없었다.
외동딸인 클라라가 지난겨울부터 괜찮은 남자라고 칭찬했다.
하나뿐인 딸이 좋아하는 것 같아 자리를 마련했다.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전에 술 대작으로 자신이 먼저 뻗었다.
지금껏 수련한 내공으로도 버틸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멀쩡하게 아침에 나타났다.
그리고 투자를 받아준다는 거만한(?) 자세로 10억 달러를 제시했다.
“지분이 너무 적다 생각하십니까? 금액이 올라가도 지분은 1프로입니다.”
“그 이유가 뭔가? 투자금이 올라가면 당연히 지분도 오르는 게 상식 아닌가?”
“상식은 깨지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에게 그 돈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10억 달러면 한화로 1조 가까운 돈이네. 그게 적다고?”
씨익.
녀석이 대답 대신 웃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눈빛은 노회했다.
속에 능구렁이 몇 마리가 들어 있는 게 확실했다.
‘허허. 이거 오늘 어린 괴물에게 제대로 망신당하는군.’
거절하고 농담하지 말라고 적당히 끊어야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투자하라는 말도 안 되는 감이 잡혔다.
리장창은 당혹스러웠다.
이성은 거절했지만 본능은 이 말도 안 되는 투자 지분을 획득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리장창이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그 투자 감이 발동한 것이다.
“많다면 많겠지만 적다면 적은 금액이 아닐까요?”
알쏭달쏭한 말로 답하는 어린 녀석이다.
“끄응.”
리장창은 두 번째 신음을 흘렸다.
어리지만 절대 무시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내공이 중후하다는 걸 술로 판가름이 났다.
“그리고 투자하셔도 절대 일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묻지도 마십시오. 바로 정산 들어갑니다. 투자처는 오로지 저만 정할 수 있습니다.”
“허어……, 그런 말도 안 되는…….”
협박 수준이 상상을 불허했다.
10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녀석이 괴물로 보였다.
저 나이 때 리장창은 꿈도 못 꾸던 배짱이다.
“나 말고 다른 투자자들은 있나?”
“그럼요~ 지금쯤 투자자들을 제 직원들이 끌어모으고 있을 겁니다.”
“직원? 누구?”
대답 대신 돈 귀신이 붙은 녀석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아침부터 다시 독주가 땡기는 리장창.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
“로버트, 오랜만이네.”
“잭. 자네는 역시 학자보다는 정치인이 어울려~.”
“휴우. 무슨 소린가. 요즘 아주 죽을 맛이야. 차라리 학교에 남았어야 해. 어울리지도 않는 정치에 입문해 미래가 보이지 않아.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지내나? 소식에 듣자 하니 썩 잘 지내는 것 같진 않다더니…….”
민주당에서 경제 담당 파트 고위 당직을 맡고 있는 잭 브라운은 동문인 로버트를 보며 그간의 안부를 전했다.
소문에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하고 아내와 이혼해 빈털터리가 됐다고 들었다.
동문들 중에서 위로금이라도 걷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 정도였다.
‘망했다는데 이 사무실은 뭐야? 그리고 저 옷들 다 명품이잖아?’
그러나 잭은 소문이 거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맨해튼에 위치한 로버트의 오피스텔의 사정이 장난이 아니다.
수백 평은 될 평수에 직원들의 수가 20여 명이 넘었다.
월세 10만 불 정도에 직원들 월급까지 수십만 불 이상은 비용이 매달 발생할 만한 규모다.
그곳에서 로버트는 총괄 이사 직함을 달고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월가의 금융인의 모습이다.
“운이 좋아 사모펀드 운영을 맡게 되었네.”
“사모펀드!!!”
사무실 규모로 보아 최소 10억 달러는 운용되는 것으로 보였다.
상당한 잭팟이다.
“운용 금액이 그리 크지가 않아. 하지만 투자자가 아주 화끈한 분이지.”
“누군가?”
“왜 보고 싶나?”
“흐흐. 알면서 그러나. 내년이 대선이네. 정치자금을 준다는 은인이 있다면 지구 끝까지 가서 만나 볼 의향이 있네.”
“내가 협조하겠네.”
“고마워. 로버트~ 자네는 내 친구야! 하하하.”
정치자금 협조를 얼마나 받아오느냐에 따라 정권 집권 후에 선물이 달라졌다.
“슈퍼팩을 계획 중이네.”
“뭐, 슈……, 슈퍼팩!”
잭은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통고에 영혼이 놀라 손이 덜덜 떨릴 정도다.
미국 정치자금은 마음대로 기부를 하거나 받을 수 없다.
개인이나 사업체는 합법적 로비스트들을 통하거나 정해진 금액을 기부할 뿐이다.
하드머니라 불리는 후보자 직접 기부는 개인 연간 25,000달러 이상은 금지됐다.
하지만 정치활동위원회(PAC)을 통해서는 달랐다.
소프트머니라 불리는 PAC를 통해서는 단위가 달라졌다.
특정 당과 후보자에 대한 직접 광고만 아니라면 무제한으로 광고를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슈퍼팩이라 불리는 제도다.
특히 2008년도는 대선과 함께 상하 양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인이 슈퍼팩을 계획 중이라면 이건 엄청난 호재다.
“공짜는 아니네.”
“물론이지!”
“그리고 난 오바마 연방상원의원을 개인적으로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네.”
“뭐라고? 오바마 의원을!”
“민주당과 오바마 의원을 위해서라면 1억 달러, 아니 그 이상으로 지원할 수 있네.”
“헙!!!”
1억 달러라는 말에 잭 브라운은 신음을 터트렸다.
실로 엄청난 자금이다.
이런 거금을 투입할 자들은 포춘지 선정 100위권 부자들이나 가능한 금액이다.
아니 그들도 불가능한 후원금이다.
지금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어 현금이 곧 생명줄과 같았다.
“히, 힐러리가 대세네. 그걸 모르나?”
잭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민주당에서 유력 대선 주자는 힐러리였다.
“알고 있네. 하지만 난 오바마 후보를 밀 생각이야.”
로버트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잭……,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말게. 내 보스가 그렇게 정했으니 난 따를 수밖에 없어.’
로버트는 보스의 심중이 뭔지 모르지만 묻지 않았다.
젊은 오바마 상원의원을 전폭 지지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게 확실한 상황이었지만 로버트는 보스 말을 따랐다.
처음 약속한 바대로 일체 토를 달지 않았다.
“실은……, 나도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다네. 아니 그쪽에서 콜이 왔네.”
잭이 웃으며 말했다.
“오! 정말 다행이네!”
로버트도 마음속 짐이 한 겹 벗겨졌다.
자칫 지지하는 쪽이 다르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고맙네. 로버트……, 누군지 모를 자네의 후원자께도 감사함을 전하게. 만약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누구보다 1등 공신이 될 것이네.”
“우리 보스께 그렇게 전하도록 하지.”
둘은 그렇게 뜨겁게 악수를 나눴다.
자신들이 짐작할 수 없는 누군가의 계획대로 미래의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전혀 짐작도 못 했다.
***
“세월 한 번 빠르네~.”
과거로 회귀한 지 벌써 1년이 넘게 지났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불행과 불법적인 일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찾아온 평화.
여름휴가를 홍콩에서 뜨겁게 보냈다.
엠마뉴엘 부인은 겨울 방학 때 한국에 온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클라라가 고택의 아름다움에 대해 연일 말하자 마음을 훅 빼앗겼다.
리장창은 나에게 투자를 하지 못했다.
말이 좋아 10억 달러지 그게 한 번 본 나를 보고 투자할 금액은 아니다.
나도 그걸 노렸다.
내 지분을 눈곱만큼도 나눠줄 생각이 없었다.
미리 계산하고 무식하게 던진 것이다.
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않고 리장창은 고심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만약 자신이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라고 말이다.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본토에 합병된 홍콩에서 부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리장창의 능력을 인정해야 했다.
정확한 자산은 모르지만 엄청난 갑부가 확실했다.
“후우~.”
길게 기지개를 켰다.
3학년 마지막 학기도 정점을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빨랐다.
과거와 달리 친구들과 매 순간마다 우정을 나눴지만 아쉬웠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순수한 시절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따스한 눈길로 교실을 봤다.
교실 안은 치열함으로 후끈거렸다.
수능을 위해 묵묵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의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다.
창밖으로 하늘을 봤다.
이제 몇 달 후면 이곳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
재학생과 졸업생이라는 신분은 완벽히 달랐다.
마음껏 창문 너머 파란 가을 아침 하늘을 마음껏 담았다.
“형석이 오늘도 안 왔냐?”
“그 새끼 뭔 일 있는 거 아냐?”
“……, 급식 때문에라도 학교에 올 텐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그때 교실 한쪽에서 누군가 형석이를 찾았다.
요 며칠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공부하던 놈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누구 형석이하고 친한 놈 없냐?”
반장 태석이가 물었다.
“……, 형석이 요즘 힘들다.”
안경잡이 재열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집안에 무슨 일 있어?”
“형석이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야! 친구가 학교에 안 왔는데 뭘 아껴! 불어!”
친구들이 재열이를 다그쳤다.
재열이는 잠깐 고민했다.
“형석이 사랑원 출신인 거는 다들 모르지?”
“뭐, 뭐? 사랑원???”
“…….”
사랑원이 우리 시에 있는 유일한 보육원인 건 안다.
형석이랑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그곳에 사는지 몰랐다.
“사랑원이 요즘 힘들다고 하더라. 전세로 싸게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 아파트 단지 들어선다고 나가라고 그랬대. 지역구 국회의원이 연결돼서 시청에서도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형석이가 노가다 뛰고 있다.”
“노가다?”
“형석이 새끼 사회복지학과 노리고 있었는데…….”
애들 표정이 우울하게 변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언제나 교실 한구석에서 보살처럼 웃고만 있던 형석이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컸다.
지난 생에는 같은 반이 아니었다.
2학년 탑이 된 이후 교실과 친구들이 바뀌었다.
그래서 형석이 상황을 알지 못했다.
“이거 어떡하냐? 우리 용돈이라도 모아?”
“사랑원 덩치가 있는데 우리가 푼돈 모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그렇지? 그럼…….”
그때 아이들이 나를 봤다.
자식들이 형아 돈 많은 건 안다.
그래 이런 날에 돈 쓰라고 나 돈 많이 벌어 놨다.
통장에서 슈퍼 콩나물보다 더 빠르게 돈이 쑥쑥 자라고 있다.
“엄마에게 말해 볼게.”
“오! 그래! 우리에게는 태산이 너밖에 없다!”
“수능 끝나고 아버지 과수원에 알바 하러 간다!”
“흐흐흐. 형님, 일손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전 참고로 첫째 처남입니다.”
“닥쳐! 난 그 결혼 무조건 반대다!”
“혀어어어엉니이이이임!”
쌍둥이를 한번 본 적 있는 도중이 녀석이 넉살 좋게 그날부터 나에게 형님이라 불렀다.
미안하지만 난 내 친구와 형님 동생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야동 우정을 함께 나눈 친구가 처남?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연결되어 있다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젠장! 또 그 새끼 집안이잖아!!!’
# 66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