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7
66장. 사랑원
“아들~ 웬일이야. 토요일에 자원봉사라니.”
“엄마를 닮아서 그렇지. 우리 엄마가 마음결이 실크잖아.”
“그건 그래~.”
엄마 차를 타고 토요일에 사랑원으로 가는 중이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10분 거리다.
내가 살던 곳에도 아파트 붐이 불어 외곽까지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다.
‘냄새가 나. 그것도 고약하게.’
무작정 사랑원에 가는 게 아니다.
우리시 지역구 국회의원은 오동성 그 개새끼의 작은아버지다.
오주혁이라 불리는 한국자유당의 의원이다.
예린 선배 졸업식 때 얼굴을 봤다.
전생에서는 나와 얽힐 일이 전혀 없었다.
지역 평판은 그저 그랬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야당과 여당이 번갈아가며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 부지가 확실해. 그곳 옆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는 거다. 이미 돈 냄새를 맡았어!’
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작은 산자락 앞에 아파트 건설부지가 예정됐다.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아 땅값이 들썩이지 않았다.
미리 선점해서 돈을 벌려는 대기업의 전형적 수법이다.
국가에서 하는 일이라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계속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그래서 엄마를 대동했다.
착하고 선한 엄마는 사랑원을 방문하자고 하자 바로 오케이 하셨다.
“다 왔네.”
엄마가 사랑원 주차장에 차를 파킹했다.
‘낡았네. 그것도 심각하게.’
차에서 보이는 사랑원은 제법 넓은 부지에 앉아 있다.
작은 운동장도 보였다.
키가 큰 나무들이 사랑원 주변을 병풍처럼 에워쌌다.
그러나 분위기는 딱 폐교된 학교다.
낡은 지붕은 비가 새는지 포장이 군데군데 덮어졌다.
곳곳의 건물 페인트는 대부분 벗겨졌다.
운동장에 놓여 있는 놀이기구는 고물이 된 지 오래다.
“많이 낡았네…….”
엄마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벌써 목소리가 촉촉해지셨다.
“들어가요.”
“응……, 그래.”
자원봉사라지만 오늘은 사정을 알아보러 온 자리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때 한쪽 건물 문이 열리고 꼬맹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토요일 자율 시간이라도 되는 양 공과 장난감 등을 들었다.
“예쁘네~.”
엄마 얼굴이 활짝 폈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과 웃음소리는 치유의 음악 소리다.
하지만…….
‘허어어어얼! 저, 저분들은 다 뭐야!’
넓은 마당에 뛰어나온 아이들의 숫자는 약 40여 명이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나타난 남자와 여자, 할머니, 할아버지 숫자가 20명은 됐다.
그것도 모두 산 자가 아니다.
자신의 피붙이가 넘어질까 다칠까 염려 가득한 눈길로 살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은 나를 보는 엄마의 눈길과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또 왜!’
평소에는 전혀 죽은 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깡패 두목 처리한 날, 졸업식,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다.
뭔가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음이 확실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니? 얼굴이 핼쑥하다.”
“아니에요. 들어가요.”
귀신들로부터 고개를 돌려 엄마와 함께 원장실로 향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주말이라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애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들 곁에도 혼령들이 보였다.
고아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죽어 보살필 수 없는 아이들이다.
마음이 쌉싸래해졌다.
옆에 있는 엄마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엄마 손을 잡고 걸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우리가 원장실이라 불리는 곳으로 걸어가자 20대 중반의 부드러운 인상의 여성이 나타났다.
화장기 하나 없는 단아한 인상이다.
“안녕하세요. 사랑원에 도울 일이 없나 하고 찾아왔습니다. 원장님 계세요?”
엄마가 웃으며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원장님 지금 애들 점심 준비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래요? 식당에 가서 뵐 수 있나요?”
“옷에 냄새가 밸 수 있습니다.”
“도와주러 왔는데 옷이 문제라면 그게 문제죠~.”
우리 엄마 센스 짱이다.
어머니가 오늘은 수수하게 입고 나왔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는 고급스러워 보였다.
어머니 자체가 명품이다.
“그럼……, 따라오세요.”
자칫 실례일 수도 있지만 엄마는 개의치 않았다.
엄마 성격에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몸으로라도 아이들을 위해 뭘 해주고 싶음이 느껴졌다.
엄마를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도 낡았네……, 전부 낡았어.’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철제 식탁도 세월의 흔적으로 삭았다.
주방으로 보이는 곳은 깔끔했지만 그곳도 건물과 마찬가지다.
전혀 시설에 투자가 되지 않았다.
치이이잇 치이이이잇.
대형 가스 압력밥솥 몇 개에서 맛있는 밥 냄새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탁탁탁탁.
도마 위로 야채가 다져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화르르르르.
대형 가스 불 위로 중식당용 거대한 프라이팬이 움직였다.
“저기 원장님이세요.”
주방에는 세 명의 중년 여자들이 식사 준비에 한참이다.
개중에 50대 후반의 인자해 보이는 중년 여성이 양파를 다듬고 있었다.
“남는 앞치마 하나 주세요.”
“네? 네…….”
엄마는 이럴 때 여장부다.
앞치마를 척 걸치고 부엌으로 입성했다.
“저도 하나 주세요.”
“학생도?”
“네~. 제가 요리삽니다.”
“???”
의문의 눈길로 누나가 날 봤다.
안 믿기죠? 흐흐. 나도 날 못 믿는답니다.
앞치마를 받아들고 손질한 야채 곁으로 갔다.
“이거 짜장면 야채용으로 만들면 됩니까?”
“어~ 그래. 그거 적당한 크기로 썰면 돼. 그런데 칼 다룰 줄 알아?”
주방장으로 보이는 통통한 아줌마가 물었다.
“그럼요.”
이럴 때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이면 됐다.
탁타탁탁탁탁탁탁.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감자, 양파를 썰어갔다.
소림사 주방장처럼 절도 있는 동작으로 아작을 냈다.
순식간에 야채를 다듬었다.
“어머! 총각이 뭔 칼질을 그리 잘해?”
주방장 아줌마가 깜짝 놀랐다.
“소스 볶는 것도 제가 할게요.”
“이것도 할 줄 알아?”
“그럼요~ 저 요리는 다 할 줄 압니다!”
나도 모르지만 뭘 생각만 하면 기가 막힌 레시피가 떠올랐다.
신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대장금 아줌마 요리는 인간적 제한이 없다.
“소스는 불맛입니다.”
가스 화력을 더 키웠다.
프라이팬이 뜨겁게 달궈졌다.
그리고 대형 중식 프라이팬에 기름을 한 번 쫘악 뿌렸다.
화르르르르르.
화끈한 프라이팬에 불맛이 코팅됐다.
먼저 야채를 볶았다.
그 뒤에 불려 놓은 짜장 소스와 물엿을 넣고 본격적으로 맛을 창조했다.
따각 따각 따각.
프라이팬에 스냅을 주고 찰지게 볶았다.
“…….”
엄마와 주방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놀란 눈으로 날 봤다.
호박, 감자, 양파가 전부인 짜장 국물이었지만 냄새가 기가 막히게 났다.
한 판, 두 판, 세 판 연속으로 볶아서 커다란 냄비에 담았다.
“끝~.”
대형 짜장면 소스가 빠르게 완성됐다.
“와아아아아! 저 오빠 멋있다!”
“냄새가 달라!”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에 홀려 식당 앞에 몰려온 아이들이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다들 배고프지?”
“네에에에!”
어느새 주방을 내가 점령했다.
“원장님 밥 퍼주세요.”
눈치로 보아 짜장면이 아니라 짜장밥이 오늘 메뉴다.
단무지와 김치가 식탁 위에 놓였다.
“애들부터 와서 먹자~. 어서 들여와라.”
“엄마 감사히 먹겠습니다!!!”
애들이 원장님을 엄마라 불렀다.
사랑받고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산아. 너 언제부터 그렇게 요리를 잘했어?”
엄마가 밥그릇을 들어 나에게 건네며 물었다.
“인터넷 보고 가끔 배웠어요. 저 자취하잖아요.”
엄마에게 찡긋 윙크했다.
“세상에…….”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다.
믿지 못하는 게 정상인의 사고다.
동생들에게 가끔 야식 만들어 주는 것 말고 엄마에게는 대접하지 않았다.
내가 요리를 아무리 잘해도 엄마 손맛을 죽어도 따라갈 수 없다.
엄마의 밥은 그 자체가 사랑이다.
“더 주세요!!!”
“그래 많이 먹어.”
“저도 더 주세요!”
아이들이 정말 걸신들린 것처럼 짜장밥을 먹었다.
뜨거운 밥에 풍미 가득한 짜장 소스가 곁들어지자 눈이 돌아갔다.
‘고기만 들어갔어도 완벽했는데!’
짜장소스에 빠지면 섭섭한 고깃덩어리가 아쉬웠다.
그렇게 사랑원의 폭풍 같은 점심시간이 지나갔다.
학생들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몇 그릇씩을 비웠다.
–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물론 나도 그 대가를 충분히 받았다.
***
“정말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원장님이 타주는 커피믹스를 마셨다.
설거지는 큰 아이들이 도와줘 금방 끝났다.
“아이들이 순수하고 밝아서 아름다워요.”
엄마가 창밖을 바라보며 답했다.
밥을 든든하게 먹은 아이들이 공을 차며 뛰어놀았다.
구김살이 전혀 없다.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엄마는 원장님의 손을 잡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원장님 혹시 부족한 게 있습니까? 월동 준비는 하셨습니까?”
슬슬 내가 본론에 들어갔다.
“월동 준비라고 할 게 있나요.”
말을 하시는 원장님의 얼굴이 씁쓸해 보였다.
“쌀과 부식도 부족해 보이던데…….”
“과일도 넉넉한 시절인데 사과 하나도 제대로 못 먹이는 게 마음 아픕니다. 예전과 달리 독지가들 발걸음이 뜸합니다.”
“시청에서 지원이 나오지 않습니까?”
“……, 그게 사랑원 이전 부지 확보가 안 됐다고 해체하라고 합니다. 다른 지역 보육원으로 아이들을 보내라는데……, 하아.”
원장님이 말을 하면서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어느 어미가 자식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언제까지입니까?”
“올해 말까지 대체 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이들 강제 이동 처분이 내려질 거라고 합니다. 가진 게 없는 어미라 말도 못 하고…….”
원장님이 참았던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흐음, 국회의원이 뒤에 있는 게 확실해.’
시장이나 시의원 상당수가 한국자유당 소속이다.
국회의원과 서로 짜면 이런 힘도 없는 보육원 날리는 건 일도 아니다.
“엄마, 도와주실 거죠?”
“어?”
갑작스런 내 말에 엄마가 당황했다.
“원장님 걱정 마세요. 저희 어머니 부자세요.”
“네???”
원장님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엄마와 나를 봤다.
“냉장고 보니까 부식도 다 떨어졌던데……, 오늘 저녁은 삼겹살 파티 어때요?”
“삼겹살요?”
“애들이 싫어할까요?”
“아닙니다! 애들이 얼마 전부터 고기 타령을 했는데…….”
“그럼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시에서 가장 큰 슈퍼에 전화를 걸었다.
“장주 슈퍼죠?”
“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자 직원이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주문 좀 하려고 합니다. 오늘 배달 가능하죠?”
“물론입니다. 어떤 물품을 배달해 드릴까요?”
“메모해 주십시오. 일단 쌀 20킬로그램 30개, 삼겹살 50킬로그램, 콜라하고 사이다 10박스, 애들 먹을 스낵 종류로 이것저것 섞어서 100만 원 정도 계산되도록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짜장라면 30박스, 삼용라면 30박스…….”
“여, 여보세요?”
“네? 왜요?”
“지금 장난 전화하시는 거 아니죠?”
마트 직원이 당황하며 물었다.
“주문 끝나면 바로 폰뱅킹으로 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상추와 야채…….”
내 입에서 줄줄 주문이 이어졌다.
방언 터지듯 주문을 하며 하늘을 봤다.
오늘따라 유난히 푸르른 가을 하늘.
눈부시게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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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