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
67장. 친구
“아빠, 고맙습니다!”
“뭐가 고마워. 당연히 돕고 살아야지.”
아버지를 호출했다.
한창 사과 수확 철이다.
사정 얘기를 하자 아버지가 바로 오셨다.
방금 딴 유기농 사과를 아버지가 몽땅 실어왔다.
이 풍요로운 가을에 아이들은 과일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다.
유기농 사과라 그냥 닦아 먹어도 됐다.
노란 궤짝으로 20박스나 됐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흔쾌히 도와주시기로 약속했다.
사과뿐만 아니라 고기 구워 먹을 드럼통 구이판 두 개도 들고 오셨다.
형제들 추석에 모이면 고기 구워먹겠다고 아빠가 제작한 대형 구이판이다.
“아저씨, 이거 먹어도 돼요?”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꼬맹이 여자애가 다가와 물었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아기 고양이 같다.
“그럼~ 공주님. 유기농 사과라 그냥 이렇게 쓱 닦고 먹으면 된단다.”
아버지가 사과 하나를 바지에 닦고 그냥 드셨다.
“너도 먹어봐라.”
사과 하나를 닦아서 꼬맹이에게 건넸다.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셨다.
“저도 주세요!”
“아저씨! 저도요!”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손을 내밀었다.
모두 눈치만 보고 있다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아저씨는 손이 하나란다. 다들 사과를 가져가서 맛있게 먹거라~.”
“와아아아아아아!”
꼬맹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짜장밥을 배터지게 먹고도 간식 먹을 배는 남겨 놓은 무서운 녀석들이다.
우르르 몰려와 사과를 잡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과를 하나씩만 골랐다.
평소 아이들이 어떻게 훈육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먹고 또 먹어도 돼.”
“안 돼요. 이거 아꼈다가 내일도 먹고 언니 오빠들하고도 나눠먹어야 해요. 형제들끼리는 그래야 한다고 엄마가 말했어요.”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협동과 우애가 남다른 아이들이다.
“거기 형아들 이리 좀 와봐~.”
사춘기 정도 되는 학생들은 다가오지 않고 바라만 봤다.
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
남자애들 몇 명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여드름 난 얼굴에 경계심이 빡빡 묻어났다.
녀석들이 귀여웠다.
“나 형석이 친구다.”
“형석이 형 친구세요?”
“그래, 형석이 친구 장태산이라고 한다.”
“와아! 형이 장태산 형이세요?”
아이들이 날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이름을 듣고 얼굴이 확 펴졌다.
“나 알아?”
“네! 형석이 형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학교를 구해 낸 영웅이라고요!”
“형님 덕분에 시내에 양아치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형석이가 나에 대해 어지간히 자랑한 것 같다.
애들 눈에 그냥 존경심이 팍팍 묻어났다.
“여기 과일 박스 모두 내려서 부엌에 가져가.”
“넵!”
“그리고 오늘 삼겹살 파티 할 테니까 저 구이판도 내려라.”
“삼겹살요?”
“그래, 삼겹살~.”
“와아아아아아아! 우리 진짜 삼겹살 먹어요???”
쑥쑥 크는 아이들에게 고기는 신이 주는 축복이다.
함성이 보육원 곳곳으로 퍼졌다.
부릉부릉.
그때 사랑원으로 거대한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장주 슈퍼?”
“뭐지?”
탑차라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대형 슈퍼 배달차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모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들어오는 차를 봤다.
“장 사장님 계십니까?”
차가 멈추고 차에서 내린 기사가 날 찾았다.
애들이 나를 바라봤다.
“아빠~. 저분이 찾잖아요.”
아버지께 윙크를 날렸다.
장 사장님이라는 이름으로 물건을 주문했다.
“접니다.”
아버지가 나섰다.
“아이고 사장님! 이렇게 대량 주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주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철이라고 합니다.”
사십대 중반의 남자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악수를 청해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도 연기가 일품이다.
눈치가 빠르셨다.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사랑원에 배달할 물건들은 각별히 신경 쓰겠습니다!”
한 번에 1,000만 원 가까운 주문이 들어갔다.
신경 안 쓰면 장사할 줄 모르는 거다.
“애들이 먹을 것들입니다. 신경 써주십시오.”
아버지가 재차 당부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신용하면 우리 시에서 빠지지 않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서비스로 애들 과자 몇 박스 더 실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장 사장님.”
장주 슈퍼가 시에서 잘 나가는 이유가 있다.
사장님이 저렇게 친절하고 센스가 넘치는데 망할 리가 없다.
“부식 창고가 어디에 있습니까?”
“얘들아, 창고가 어디야?”
나도 아는 바가 없어 애들에게 부식 창고를 물었다.
“저기 식당 옆이요.”
애들이 손으로 가리켰다.
“식당에 사장님 주방 이모가 있을 겁니다. 그분 뜻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슈퍼 사장님이 차를 몰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아이고! 이게 다 뭡니까? 전부 애들 부식이라고요???”
“네~ 저기 있는 장 사장님이 주문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여기를 봤다.
“아버지 손 한번 흔들어 주세요.”
“어? 그래~.”
아버지가 쑥스럽게 손을 들었다.
주방 이모의 고개가 땅을 향해 굽어졌다.
새끼들 먹일 먹을거리가 창고에 쌓이면 기분 좋은 게 부모 심정이다.
이곳 사랑원에 거주하는 사회복지사들과 주방 이모도 사랑이 넘쳤다.
***
“으윽……, 윽.”
늦은 시간 버스를 타고 사랑원 앞에 내린 조형석은 뼈마디가 쑤시는 고통에 인상을 썼다.
근육통이 상상 이상이었다.
새벽부터 나가 지금껏 노가다를 뛰고 왔다.
이렇다 할 기술이 없어 잡부 일만 맡았다.
이것저것 떼고 손에 6만 원 쥐었다.
학교를 며칠 빠진 대가로 겨우 수십만 원을 벌었다.
곧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랑원에 보탬이 되고자 했지만 어림도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떠나야 하는 자신과 달리 동생들이 걱정이었다.
원장 엄마의 사랑과 관심으로 다들 비뚤어지거나 상처받지 않고 컸다.
형석은 조금이라도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들만 보고 평생 시집도 가지 않고 돌보는 원장 엄마를 돕고 싶었다.
학교에 가는 줄 알고 계셨다.
형석의 어깨에는 가방이 들려 있다.
사랑원 정문에 다다르자 형석은 어깨를 폈다.
온몸이 쑤셨지만 얼굴에 미소 짓는 연습을 했다.
수많은 동생들을 두고 있는 가장 큰형이었다.
형은 아프거나 울면 안 됐다.
“수련이 물감이 다 떨어졌던데 내일은 돈 받으면 그거나 사와야겠다.”
돈을 모으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동생들 학용품 걱정도 많았다.
사랑원이 사라질 수 있지만 그 동안이라도 마음껏 해주고 싶었다.
마지막에 이사 비용에 보태고 고기 파티를 꿈꿨다.
애들이 일 년에 겨우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진짜 생삼겹살을 먹여주는 게 형석이 소원이다.
반 친구인 태산이가 한턱 쐈던 그 생삼겹.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돌았다.
“우와! 진짜 맛있다!”
“더 먹어도 돼요?”
“그럼 먹고 또 먹어라~.”
“태산이 오빠 최고! 나 커서 오빠에게 시집갈 거예요!”
“흐음, 그럼 일단 더 먹고 키부터 키우자.”
“네~. 헤헤.”
“헛!”
사랑원 정문을 통과하자 고소한 고기 냄새가 형석의 코에 맡아졌다.
단 한 번도 사랑원에서 맡아보지 못한 강렬한 고기 냄새다.
그리고 동생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장태산?”
사랑원 조리실 앞에 잔치가 벌어졌다.
커다란 드럼통 구이판 위로 빨간 숯불이 보였다.
그 옆에 간이 탁자 위로 동생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보이는 익숙한 얼굴 장태산.
친구 장태산이 고기판 위에서 삼겹살을 열심히 굽고 있었다.
형석은 놀라 그 자리에 멈췄다.
“어? 형석이 형!!!”
그때 동생 중 하나가 형석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형아! 어서 와! 우리 지금 삼겹살 먹고 있어!”
“오빠아아아아~.”
신이 난 동생들이 형석에게 손짓했다.
모두 다 행복한 표정이다.
“…….”
형석이 놀라 다가왔다.
“왔냐.”
태산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형석을 맞이했다.
사랑원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였다.
“어? 어.”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와서 도와줘. 네 동생들 식성이 어떻게 우리 반 애들보다 더 심하냐. 와서 빨리 구워~.”
“어!”
학교에 빠진 걸 알면서도 별말 없는 장태산이 도와달라고 말했다.
동생들 입가에 삼겹살 기름이 넘쳐흘렀다.
“아빠, 엄마, 여기 내 친구 형석이.”
“안녕. 형석아~.”
태산이 부모님이 밝게 웃었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형석이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아빠~ 그렇게 구우면 탄다니까요! 불길이 일어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 겉만 타고 속이 안 익어요.”
“아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잘 보세요. 고기는 말입니다. 타이밍입니다.”
형석은 태산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학교에서 폭력을 몰아낸 영웅 장태산의 진면목을 다시 확인했다.
집이 부자가 됐어도 결코 여전히 친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친구들을 배려하고 웃음을 주는 친구다.
‘고맙다……, 친구.’
형석은 눈치를 챘다.
자신을 위해 기꺼이 귀중한 고3의 시간을 투자해 준 장태산.
그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 68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