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87
688장. 독립운동.
“일도 못하는데 팀장? 금수저면 다야! 지가 할 줄 아는 게 뭐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나이 먹어 신입사원이 될 수도 없었고 다른 기업에 경력직으로 재입사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안미소 대리.
오늘도 출근하며 상사를 씹었다.
주말이 지나고 여지없이 맞이한 월요일 아침.
이름처럼 얼굴에 미소를 짓지 않는 안미소 대리다.
“도대체 팀장이 화학대외사업팀에서 하는 일이 뭐야? 영업사원들처럼 누구를 만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바쁜 척만 하는지! 아우! 꼴 보기 싫어!”
안미소는 팀장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조금 못살 게 굴었다고 사업전략부문에서 화학대외사업팀으로 자신을 끌고 온 팀장.
몇 달 동안 혼자만 바쁜 척 동분서주했다.
회사에서 아예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중요 임원들은 물론 사장과도 시시때때로 대면하는 눈치였다.
누구도 그런 고연지를 터치하지 못했다.
기세가 전과 달리 확 달라져 있었다.
회장 직계 자손 아니랄까 온 몸에서 풍겨대는 묵직한 아우라.
안미소만 뒤끝을 털어내지 못하고 고연지를 미워했다.
“내가 그나마 일이 편해서 참는다! 아우!”
안미소는 발령 후 일이 많지 않았다.
배터리 신규 공장 건설 부지에 대한 보고서를 팀원들과 함께 작성한 게 다였다.
의외로 새로 맡은 일이 적성에 맞아 좋았지만 상사는 절대 눈에 안 찼다.
“요즘 스트레스를 받아 폭식을 했더니 살찐 것 봐. 히잉……. 고연지! 나쁜 년!”
빨간 소형차를 타고 회사 주차장에 파킹을 한 안미소.
차에서 내리기 전에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탁탁.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쳤다.
“그래도 여긴 남자 직원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다들 예쁜 건 알아가지고~”
화학 쪽 사업부는 공대 출신들이 많아 남자 직원들이 대다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 미모 하는 안미소에게 남자 직원들 여럿이 대시했다.
그 맛에 출근을 위안삼고 있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직원과 한창 썸이 농도 짙게 진행되고 있었다.
집안도 괜찮고 비전도 있어 보이는 공대 출신 남직원,
오늘은 그가 좋아하는 투피스 오피스 룩을 차려입고 출근했다.
“고연지. 곧 실력이 드러날 거다. 임원은커녕 팀장 자리에서나 잘려 나가지나 마.”
상큼하게 마지막까지 뒤끝을 보이며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안미소.
보안을 이유로 일단 1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목에 사원증을 건 안미소는 얼굴 근육을 풀며 미소 한 발을 장착하고 내렸다.
“와아…… 대박.”
“고연지 팀장님이 사고 칠 줄 알았다.”
“엄청나네.”
“이 정도면 그룹 역대급 인사 아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직원들이 사내 게시판 앞에서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안미소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게시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 대리님. 축하해요.”
“네? 뭐를요?”
“모르셨어요? 여기 게시판에…….”
안미소는 아는 남직원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게시판을 봤다.
짤막한 인사 공고문.
[화학대외사업팀 팀장 고연지- 엘자CMS 대표이사 영전]“대, 대표이사!”
안미소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방금 전까지 저주를 멈추지 않았던 고연지 팀장의 인사 발령.
당황스럽게도 신사업부 대표로 발령이 났다.
그룹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전이었다.
안미소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이제 쉽게 구경할 수도 없는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 고연지.
그만큼 크게 벌어진 신분 차이.
“응?”
인사 발령 내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화학 대외 사업팀 대리 안미소- 엘자CMS 팀장 발령]“!!!”
안미소는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렇게 염원했던 과장급 팀장 발령이었다.
새로운 사업부에 관해 구체적인 정보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래도 좋았다.
승승장구하는 고연지.
‘결정했어! 이제부터 난 고연지한테 올인한다! 그래, 고연지 대표!!’
안미소는 생각지 못한 승진 소식에 고연지에 대한 모든 원한을 녹이기로 마음먹었다.
“안 팀장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직장인에게 최고의 보너스나 다름없는 승진.
“모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짓는 안미소.
그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2층 로비에서 안미소를 바라보고 있는 고연지의 차가운 시선을.
***
“이걸 다 하라는 거예요?”
도도희가 두툼한 서류를 들고 방에 찾아왔다.
질린 표정이 역력했다.
“일 좋아한다면서요.”
“그래도 이건 아니죠! 회장님 여름휴가 안 가세요?”
“갑니다.”
“그때 저도 같이 갈 거란 말이에요. 우리 은행 인수건만 해도 바쁜데!”
“도도희 대표님 능력 있지 않습니까. 삼우에서도 유능한 인수팀이 지원 사격을 하는데 뭐가 그렇게 일이 많다고 합니까.”
“회장님은 잘 모르시나본데 일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란 말이에요. 제가 일을 뒤로 미루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아시잖아요.”
“그래서 대표 아닙니까. 돈 받는 만큼 일이 힘들다는 것 자체가 세상이 공평하다는 증거입니다.”
“회장님……과 이런 대화를 하는 제가 바보 같아요.”
도도희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의 흐름은 순간순간 토막으로 삭제돼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느새 7월 중반.
장마가 본격적으로 올라오며 창밖에 비를 뿌렸다.
유세라 씨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곧 사라져 버릴 순간을 음미했다.
흐른 시간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고자룡 회장은 내 조건을 순순히 받아 들였다.
테슬러 배터리 공급 업체라는 타이틀은 놓칠 수 없는 대어였다.
엘자CMS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고연지가 대표로 취임했다.
스마트 팩토리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한국에 본사가 있었지만 직원들은 세계 곳곳에 포진했다.
특히 미국에 많았다.
온시은이 큰 도움이 됐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기술, 차세대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기술들이 접목될 스마트 팩토리 사업.
첫 번째 적용될 품목도 정했다.
공작기계.
1980년 미국을 추월해 전 세계 최고, 최대 공작기계 생산 대국인 된 일본.
그 중심에 아낙(我樂)이라는 회사가 존재했다.
이름처럼 한 우물만 파서 즐거움을 얻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와 반도체 자동화 공정에 70% 이상의 공작기계 점유율을 보였다.
한국의 가마우지 경제의 또 다른 이득자였다.
회사 영업이익률이 매출 대비 40%가 넘었다.
압도적인 기술로 이익을 엄청나게 챙겼다.
수익은 곧 바로 연구 개발비로 재투자됐다.
주먹구구식 한국 제조업체와 결을 달리했다.
그걸 무너트려야만 했다.
“공작기계는 힘든 과제 아닌가요? 아낙은 대체불가에요. 유럽 쪽은 자멘스가 잡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과 대만, 한국은 아낙 제품이 대다수에요. 다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력은 두 말 하면 입만 아파요.”
투덜거리면서도 도도희는 공부를 많이 했다.
그녀가 넘기는 서류철에는 형광펜들이 지나간 자리가 선명했다.
똑똑한 만큼 핵심을 짚어 빠르게 일머리를 잡았다.
“그래서 도전하는 겁니다.”
“왜요? 이 판은 레드오션이에요. 생각보다 이익도 드물어요.”
“독립운동 안 해 봤죠?”
“……회장님. 제 나이가 이제 겨우 서른 언저리에요.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죠.”
“제2의 독립운동 할 때가 곧 옵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군자금과 무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죽 써서 이웃집 개한테 언제까지 퍼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 회장님 애국자시라니까. 알았어요. 독립운동이라니까 맥이 확 잡혀요.”
도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낙은 지금까지 내구성과 정밀도, 속도에 치중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다릅니다. 모든 산업을 불문하고 제품의 생산주기가 짧아집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뜻은…….”
“다수의 기계를 하나의 기계로 통합하고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다기능 공작기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공정 집약화와 MtoM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약점이자 우리의 강점입니다.”
“우리 회장님 엄청 똑똑하시다니까……. 그래서 로봇 핵심 부품도 동시에 개발 사업으로 추진하시는 거죠?”
도도희가 웃으며 물어왔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국에서 무기를 사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공작기계의 핵심이 바로 로봇용 감속기와 서보 모터입니다.”
“이것저것 공부해 보니까.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엄청나더군요. 감속기나 서보모터에 사용되는 필수 기술인 열처리 및 정밀 가공 기술, 부품 설계 기술, 슬림화 기술 등등…….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괜히 일본이 노벨상을 받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기초 투자가 오랫동안 이뤄져 있었어요.”
쉽지 않은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전쟁 준비를 마친 적과 불시에 교전해야 하는 상황.
먼저 공격을 시작한 자들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감속기와 서보모터 시장의 75%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그걸 빼앗아 와야 합니다.”
“부품 강도가 중요한데……. 이 기술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요. 일본은 제품 신뢰를 위해 연성철 소재를 사용하는 데 반해 대한민국 공작기계 업체들은 구상흑연주철을 사용해요. 이게 엄청난 노하우에요.”
“그건 제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이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술을 나는 습득하고 있었다.
드워프의 연금술은 가히 온 우주를 통틀어 최고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강화 마법을 이용하면 단시간에 역전이 가능했다.
“안 믿겨요?”
“보통…… 이럴 때는 믿지 말아야 하는데 회장님이라면…… 말이 다르죠. 제가 아는 회장님이라면 반드시 해내시는 분이잖아요.”
도도희가 존경과 신뢰의 시선으로 나를 봤다.
“IT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빠른 신중함이 필요한 법입니다.”
“신중함이 빠를 수 있나요?”
도도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커피잔을 들고 그녀를 지긋이 봤다.
“우유부단과 신중함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그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어려운 질문 같아요.”
“우유부단은 정보 부재로 인한 어리석음에서 기인합니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익과 비용을 빠르고 냉정하게 계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장점과 단점도 파악 못 하고 뛰어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
도도희가 금방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우유부단함은 탐욕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놓치기 싫은 탐욕이 우유부단을 불러 옵니다. 하지만 신중함은 탐욕보다는 성공하고 싶은 순수한 욕망에 기인합니다. 성공하는 이들은 대부분 공부를 많이 한 까닭에 그걸 바탕으로 빠른 신중함을 무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와아아! 귀에 쏙 들어오는 명강의예요. 회장님은 이런 쪽으로 나가셔도 대박일 것 같아요.”
도도희가 엄지 척을 내밀었다.
“이래서 우리는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요?”
강의를 듣는 신입생처럼 눈빛을 빛내는 도도희.
“제 주변에 포진한 이들은 의외로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내 지시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걸 실행하기 위해서 아이디어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 긍정적 에너지 파장은 반드시 성공을 불러옵니다. 신이 정한 성공의 법칙입니다.”
“빙고! 저도 회장님 옆에 있으면 아이디어가 샘솟고 힘이 막 나요. 가끔 옆구리가 외롭지만~.”
도도희의 성격은 여전했다.
웃으며 이미 식어 차가워진 커피를 마셨다.
쌉싸름함 속에 녹아 있는 맑고 청아한 풍미.
아아로 짧게 불리는 아이스 아메리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맛을 품고 있다.
띠리리리리.
스마트폰이 울렸다.
익숙한 번호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장태산입니다.”
– 장 대표……. 시간 있나
“무슨 일이십니까?”
– 빨리 만나야 할 것 같아. 나에게도 자네와의 계약서가 필요하네.
회귀의 전설 2부